세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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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리카 대륙 최서단, 대서양과 맞닿아있는 국가. 북으로는 모리타니, 동으로는 말리, 남으로는 기니비사우와 기니와 인접하고 있다. 위 지도에서 뭔가 국토 가운데를 강으로 파낸것 같이 생긴 나라는 감비아. 수도는 다카르(Dakar)로, 다카르 랠리의 종착점으로 유명하다.
2. 수도 다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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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봐도 수도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반도이다. 이 곳은 아프리카의 최서단에 위치하고 3면이 바다라 대서양 횡단 무역 및 유럽 무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항만이기 때문에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이래로 발전을 거듭했다. 그래서 독립이후에 이곳을 수도로 결정한것이다.
다카르는 프랑스에 의해 도시를 이루었다. 1902년에 생루이로 바뀌었고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수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세네갈 식민지는 비시 정부에 충성을 맹세했기 때문에, 1940년 9월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이 다카르를 공격했지만, 실패로 끝났던 적이 있다(다카르 해전). 1959년부터 1960년까지는 말리 연방의 수도였고 나중에 세네갈의 수도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프랑스 영향을 많이 받아 유럽풍 건물이 있고, 식민지때 남은 노예수용소도 위치하고 있다.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 3개의 대륙을 잇는 해양교역로의 중요한 요충지로도 불리고 있다. 수많은 국가의 무역선과 여객선, 해군 함정들이 여기서 기항한다.
3. 역사
3.1. 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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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카르타고에서 한노가 이끄는 함대가 이 지역을 탐사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려 시도하였으나 서사하라 일대의 부족들이 카르타고인들의 정착을 방해하면서 실패하였다 한다.
9세기경에 풀라족의 타크루르 왕국이 존속하였으며, 가나 왕국이나 말리 제국 등의 왕국들의 땅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동남부 지방은 말리에 이어 송가이족의 지배를 받았으나, 서북쪽 지역은 월로프족의 졸로프 왕국에 이어 카요르 같은 왕국이 들어섰고, 서남쪽 지역에는 세레르 족의 시네 왕국이 들어섰다. 이 때 동쪽 지방엔 풀라 족들이 데낭케(大풀로 왕국) 같은 큰 나라를 세웠고, 이들의 후신인 푸타토로가 19세기 세네갈 북부에 존재했다. 졸로프 왕국은 풀라족들에 의해 멸망했다.
모리타니 남부와 세네갈 북부 지역에서 유래한 무라비트 왕조가 모로코와 스페인을 지배하기도 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이 유럽을 정복한 경우는 이게 유일하지 않을까. 단 무라비트 왕조는 흑인이 아니라 북아프리카에 널린 베르베르인들이었다.
한편 유럽인들은 16세기경부터 세네갈의 해안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포르투갈인들은 남부의 카자망스에 진출하면서 기독교전파를 하기도 했다. 카자망스는 세네갈에서 기독교인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3.2. 근대사
19세기 프랑스가 이 지역을 침략, 페데허브 장군이 점령해 식민지로 만들었고 세네갈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가 되었다. 중심지도 생루이에서 다카르로 옮겨졌다.
3.3. 현대사
이후 1960년 6월 20일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독립했다. 독립 전인 1959년부터 바로 옆나라인 수단(말리)과 함께 '말리 연방(Fédération du Mali / Mali Federation)'을 구성하여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으나 독립한 말리 연방의 주도권를 두고 세네갈의 지도자 레오폴 상고르와 수단의 지도자 모디보 케이타의 갈등이 격화되었고[2] 독립 직후 치뤄질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케이타가 세네갈이 무슬림 다수 국가인 점을 이용해 상고르를 낙선시키려한 계획이 발각되자 격분한 상고르가 같은 해 8월 20일 연방에서 탈퇴를 선언하고는 단독으로 세네갈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감비아는 모든 국경이 세네갈과 맞닿아 있는 나라로서, 위의 지도에서 보면 가운데 빈 곳에 해당하는 나라이다. 1982년 '세네감비아 연합(Confédération de Sénégambie / Senegambia Confederation)'이라는 이름으로 합병한 적이 있지만, 7년 만에 다시 분리독립했다.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3]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 두 지역이 다른 나라가 된 건 아무래도 식민지배의 영향이 컸다. 세네갈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지만, 감비아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거기에는 프랑스가 감비아 지역까지 먹으려 들었지만 주도권을 잃었다는 비극적인 서막이 있기도 하다.[4]
2019년 KFC가 개장했다.
4. 기후 및 경제, 사회
세네갈은 건조기후[5] 에 토질이 나빠 수수나 조(식물)를 재배하였으나 프랑스 식민지 이후 땅콩을 재배하게 되었고, 주식은 아시아산 쌀로 바뀌었다. 따라서 현재 세네갈은 베트남, 태국 등의 동남아에서 쌀을 수입하고 있다.
반면 남부 카자망스 지역은 지역명의 유래가 돤 카자망스강을 끼고 있고, 북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우기로 풍족하게 쌀을 재배하고 있으며,[6] 이 외에 과일들 역시 매우 다채롭고 풍부하다.[7]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에 속하지만 아프리카 나라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어서 큰 문제 없이 자국민들에게 식량 공급이 가능한, 그럭저럭 먹고 사는 나라다. 그냥 아프리카의 인도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세네갈은 현재 서아프리카에서 가나,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안정적인 고성장을 보이고 있다. 2014년부터 경제성장률이 6~7%대이며,빈곤율 역시나 감소중이다. 특히 2022년부터 바다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할 것이라고 해 기대를 불러모으고 있다.
대서양을 끼고 있어서 전통적으로 어업이 발달한 국가이다. 수산물의 생산이 높은 편이며, 대다수의 수산물을 자국에서 소비하기도 하지만, 해외로도 수출한다.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세네갈의 대표적인 수산물은 갈치, 위소라다. 최근 중국어선들이 대서양까지 진출하여 세네갈 근해의 수산물을 남획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의외로 의료 수준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중에선 가장 높은 편이다. [8]
문맹률이 무려 44%나 된다. 이는 1950년대 한국과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5. 정치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가나, 모리셔스, 나미비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함께 꽤 민주적인 나라로 손꼽힌다. 독립 이후 쿠데타나 큰 분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는 '''아프리카 국가중에선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문 케이스'''다.
이러한 기풍은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 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재임 1960 ~ 1980)의 영향이 컸는데 '''아프리카에서 처음 자진해서 퇴진한 지도자'''로써 위업을 세웠다. 대통령의 퇴임이 '''당연한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막장 부패 종신 독재가 기본이요 정권 세습이 옵션인 아프리카에서 이 정도 수준이면 정말 민주주의 정치에 공을 세운 거나 다름없을 지경이다. 다만 상고르 본인 자체가 다섯 번(...)이나 해먹긴 했지만 엄연히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지수는 2020년 기준 86위를 기록하였으며 '혼합형 체제'로 분류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우수하지 않고 중견급에 속한다.[9]
본래 이원집정부제였지만 마키 살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2019년 5월 14일에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
6. 분리주의
감비아·기니비사우와 맞닿아 있는 남부 카자망스 지역에서는 1980년대 부터 지속적으로 분리독립 요구가 있었다. 남부 카자망스 지역은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 중심의 세네갈에서 이슬람화를 반대하며 주민의 대다수가 그리스도교(약 5%), 토착종교(약 1%)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세력이 종교적 차이로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 반군 단체인 MFDC(카자망스 민주 운동단체)를 결성하고 정부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여왔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세네갈 남부 카자망스 지역을 2단계 여행 자제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7. 문화
아프리카 최초로 장편 영화를 만들어 아프리카 영화의 선조로 불리는 우스만 셈벤이 이 나라 출신이다. 원래 소설가였다가 소련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 감독이 되었다고. 때문인지 세네갈은 남아공과 이집트를 제외하고 아프리카에서 영화업계가 가장 먼저 발달한 나라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마틴 스콜세지를 비롯한 서구 영화 감독들도 찬사를 보낸 지브럴 좁 맘베티의 투키 부키가 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는 영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태. 그러다가 맘베티의 조카인 마티 디옵이 애틀랜틱스로 데뷔한 2019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7.1. 종교
주민들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하지만 남부의 카자망스는 기독교를 믿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리고 수피즘의 영향이 매우 크다. 수피즘이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세네갈은 모로코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차단하고 있다. 또한, 수피즘 모스크의 위상이 매우 높은 편이다. 카자망스 지역은 대부분이 기독교와 원시신앙을 믿는 비중이 높지만, 세네갈에 속해 있어서 무슬림들도 많은 편이다. 대체로 세네갈의 이슬람교는 수피즘과 샤머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10]
공휴일도 이슬람 휴일과 기독교 휴일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또한 세네갈 역시 8월 15일이 공휴일이며, 대체휴일은 없다.
7.2. 언어
세네갈은 공용어가 프랑스어이지만, 월로프어, 세렐레어, 풀라어, 밤바라어, 만딩카어와 그외의 토착어도 사용되고 있다. 이중 월로프어화자가 많기 때문에 월로프어가 많이 쓰이고 있고 월로프어는 세네갈내에서 프랑스어와 함께 링구아 프랑카이자 공용어중의 하나에 속해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서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어서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으로도 가입되어 있다. 하지만 세네갈은 월로프어사용자가 다수이고 거기에다 월로프어가 널리 퍼지면서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비율이 3분의 1정도에 불과해서 프랑코포니의 도움으로 프랑스어 교육과 콘텐츠개발에 착수하고 있다.#
세네갈은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표준중국어)를 배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세네갈은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
세네갈도 아랍어 방언의 일종인 핫사니야 방언이 쓰이는데, 세네갈에서 쓰이는 핫사니야 방언은 다른 지역의 아랍어 방언과 달리 세네갈 정부에서 로마자표기를 도입했다.
7.3. 스포츠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부바 디오프의 결승골로, 프랑스를 1:0으로 물먹이고 8강에 진출하면서 아프리카 축구 강호로 유명해졌다(그 유명한 '''세네갈 쇼크''').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또한 아프리카 내에서는 여자 농구의 강호이기도 하다. 1960년대~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농구선수권 대회 (Africa Championship)에서 이집트와 더불어 우승을 다투며 서로 결승에서 여럿 대결을 벌이고, 이집트와 같이 역대 5번 우승 동률을 거뒀다. 그러나 1989년 우승을 시작으로 앙골라 농구가 우승을 마구 독점하여 2013년 11번째 우승을 거두면서, 세네갈과 이집트가 각각 거둔 역대 5회 우승(10번)을 넘어섰다. 세네갈은 1992, 1995, 2005년 대회에서 앙골라에게 결승에서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첼시 FC에서 활약했고 현재 상하이 선화의 뎀바 바 가 세네갈 출신이고,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파피스 시세도 세네갈 출신이다. 이름 때문에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파피 질로보지도 세네갈 선수이고 리버풀의 사디오 마네와 나폴리의 칼리두 쿨리발리는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존재이다. 첼시에서 활약 중인 골키퍼 에두아르 멘디 역시 세네갈 출신이다. 그 외에도 프랑스 국적의 흑인 선수들 중에서 세네갈계이거나 세네갈 태생인 선수들이 많은 편이다.
2022년 하계 청소년 올림픽 개최지에 다카르가 선정되면서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는 나라가 되었다.
8. 사고
세네갈 주민들이 남북지방을 오갈 때 육로를 이용하려면 감비아를 가로질러 가야 하기 때문에, 선박을 많이 이용한다. 그 배경 속에서, 2002년 9월 26일 르 줄라호 침몰사고로 1,863명이 사망한 참사가 벌어졌다.
9. 외교
10. 창작물에서
이 나라의 수도 다카르는 기동전사 Z건담에서는 지구연방 연방의회소재지다. 에우고의 지도자였던 블랙스 포라 준장의 암살이나, 그립스 전역 시대의 분기점이 된 샤아 아즈나블의 다카르 연설은 여기서 일어난 일로 돼 있다.
쿠로코의 농구에서는 해당 국적의 유학생이 출연한다.
[혼합된체제] 5.67점[1] 카자망스는 행정구역상으로 지긴쇼르주(비뇨나현, 우수예현, 지긴쇼르현), 세디우 주(붕킬링현, 구둠프현, 세디우현), 콜다주(콜다현, 메디나요로풀라현, 벨링가라현)에 해당한다.[2] 두 사람은 모든 성향이 정반대였는데 세네갈의 상고르가 가톨릭 신자에 친프랑스, 부르주아 성향을 대변했다면 수단의 케이타는 무슬림에 반프랑스, 사회주의 성향이었다.[3] 두 나라 모두 만딩카족, 풀라족, 월로프족, 졸라족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구성비는 꽤 차이가 있다. 감비아는 만딩카족이 42%, 풀라족이 18%로 월로프족은 16% 정도지만 세네갈은 월로프족이 43.3%, 풀라족이 23.8%로 만딩카족은 3%에 불과하다.[4] 사실 프랑스는 식민지 경쟁 과정에서 영국에게 깨진 적이 많이 있었다. 캐나다는 말할 것도 없고, 인도도 플라시 전투에서 깨져 영국에게 빼앗겼고, 팔레스타인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식민지 세력 다툼에서 영국에게 깨져 차지하지 못했다.[5] 7~10월의 우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가 전혀 오지 않는 건기다. 남부 카자망스 지방의 우기는 6~11월 정도로 중북부에 비해 우기가 2개월 정도 더 길다.[6] 주식이 쌀이라고 해도 중북부 지역은 주로 점심식사에서만 쌀을 먹는 것에 반해(아침은 바게트에 커피를 곁들인 프랑스식, 저녁은 수수나 조로 만든 쿠스쿠스를 먹는다), 카자망스 지역의 주민들은 한국인처럼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쌀을 주식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7] 세네갈 현지인에게 따르면 망고 수확철의 남부에서는 망고가 넘쳐나 상품성이 높은 것들만 수확하고 나머지들은 방치해두는데, 떨어진 망고들이 길가에 즐비하다고 한다. 심지어 동네에 돌아다니는 소, 양, 염소 등의 가축들조차 맛있는 망고만 먹고 그저그런 망고들은 길가에서 그냥 썩어간다나.[8] 같은 옆나라 말리도 그랬지만 2000년대 와서 말리 내전 여파와 독재정치+쿠데타로 국가가 거의 망했다.[9] 아프리카 중에서는 모리셔스, 카보베르데, 보츠와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튀니지, 나미비아, 가나, 레소토, 말라위, 마다가스카르를 이어 11위에 위치했다. 참고로 한국은 같은 통계에서 23위로 아시아 1위를 기록했다.[10] 인근의 감비아, 말리, 니제르의 이슬람교도 샤머니즘과 수피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