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가든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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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인 2014년 리마스터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의 라인업.
왼쪽부터 윤병주(기타), 박건(보컬), 양시온(베이스), 김태현(드럼)
대한민국의 록밴드이다. Noise가 원래 스펠링 상 맞는데, Noize를 사용했다. nOiZeGaRdEn도 로고처럼 멋있어 보이려고 한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노이즈가든(Noizegarden)은 대한민국의 얼터너티브 메탈 밴드이다.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부류의 인디 1세대 출신이다. 크래쉬, 레이니썬과 더불어 1990년대 대한민국의 메탈 음악을 대표한다. 다만 밴드 이름부터가 사운드가든의 영향을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운드가든과 앨리스 인 체인스 등의 메탈 성향이 강한 그런지 음악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메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음악을 보여준다. [1] 1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27위에 오를 정도[2] 로 음악성과 참신함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윤병주의 밴드 탈퇴로 해체된 데다가[3] , 보컬 박건이 캐나다 이민을 떠나 재결합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밴드의 리더였던 윤병주는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을 이끌고 있다. 박건은 2016년 9월 26일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병[4] 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5세.
2. 구성원
- 창단·데모 테이프
윤병주(기타) 정재준(보컬) 최민호/김기현(베이스) 김태윤(드럼)
- 1집
윤병주, 박건, 이상문(베이스), 박경원(드럼)
- 2집
윤병주, 박건, 염재민(베이스), 박경원(드럼)
- 고별 공연(2009)
윤병주, 박건, 김락건(베이스), 이민우(드럼)
- 재발매 기념공연(2014)
윤병주, 박건, 양시온(베이스), 김태현(드럼)
김락건은 개인 작업으로 베이스를 섭외하기 전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연주 대신 공연장에서 사운드 체크를 담당했다.
UGC라는 사이트에서 멤버들이 직접 작성한 프로필을 확인 할 수 있다.김락건은 개인 작업으로 베이스를 섭외하기 전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연주 대신 공연장에서 사운드 체크를 담당했다.
박건이 박진이라고 표기되어있는 오타가 있다. 기타리스트인 이인규는 윤병주의 절친으로 윤병주 탈퇴 후 완전 해체되기 전까지 활동하였다. 현재 KAC 한국예술원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 박건의 10년 뒤 자신의 모습, 앞으로의 계획이라는 질문의 답변도 여전히 음악과 관련되어 있다.
3. 역사
기타리스트 윤병주가 PC통신 하이텔 메탈동호회에서 멤버들을 모아 1992년 결성했다. 1996년 1집《Noizegarden》과 1999년에 2집《...But Not Least》을 발매했다.
1999년에는 국내 록밴드 최초로 서울 팝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가졌다. 음원은 윤병주의 사운드 클라우드 에서 들어볼 수 있다. 초대 보컬리스트 정재준이 음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는 하성호씨, 편곡은 서울 팝스에 전속된 러시아인[5] 과 뮤지션 페인(Pain)이 맡아주었다. 당시의 셋리스트는 "Beethoven Symphony No 5(팝스 오케스트라 버전)", "여명의시간", "유혹", 그리고 '누구나 알 만한 외국 록 음악'을 해야 한다고 해서 선곡한 레드제플린의 "Rock And Roll"과 비틀즈의 "Helter Skelter" 등이었다
그러나 리더인 윤병주가 탈퇴하면서 밴드도 곧 해체되었다. 윤병주의 탈퇴 사유는 월간대담22호 로다운30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종합하고 요약하자면 윤병주는 생계유지를 하며 인기와 명성에 구애받으며 음악을 하기 싫었다고 한다. 아마추어 정신으로 그저 음악을 즐기면서 인디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멤버들이 그런 자신의 생각을 반겨줄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멤버들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점점 커지는 유명세와 의외의 1집과 2집의 성공이 언젠가 인디로 돌아가 마음 편하게 음악하는 그런 분위기를 보장해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것이 싫어서 2집 녹음을 할 때부터 밴드 탈퇴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6]
2009년 2월 14일 토요일 클럽 프리버드에서 박건의 이민을 격려하는 고별공연 전체를 촬영한 영상이 유투브에 올라와 있다.
2014년 5월 24일 V-Hall에서 재발매 기념 공연을 가졌다.
2014년 6월 21일에는 사운드 홀릭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서기도 했다.
4. 디스코그래피
현재 2장의 정규 앨범 전부 온/오프라인에선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중고사이트에서 1집이 5~8만원 선에서 중고 앨범이 간간히 올라오고 있고, 2집은 3~5만원 선에서 간간히 올라오고 있다.
군데군데 몇몇 곡을 커버한 그들의 작품이 보인다. 메탈리카의 'Ride the Lightning', 또한 윤수일의 '제2의 고향' 이 눈에 띈다.
윤병주는 현재까지 재발매에 관련한 이야기는 따로 한 적이 없다. 언니네이발관 공식 사이트의 일기란 11월 2일자에 이석원이 비공식적으로 재발매에 대한 언급을 했다. 여기서 확인 가능.
드디어 2014년 4월, '열혈 팬' 강명수 사장에 의해 그들의 앨범이 재발매된다.
3CD 디럭스 리마스터드 에디션 세트
- 1집(1996년), 2집(1999) & 보너스 CD(편집음반 수록곡, 94 데모, 부틀렉 라이브)
- 오리지널 믹스 & 마스터 음원 사용 리마스터링 by 남상욱 (The Mastering Lab, USA) [7]
- 초판 한정 트라이 폴드 미니 페이퍼 슬리브 패키지 by 키오브(Khiov)
- 28페이지 부클릿(해설, 연혁, 가사 수록)[8] by 이석원(언니네이발관), 윤병주(로다운30)
원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원판의 가치를 신중히 생각해서 일부로 세트를 다르게 디자인 했다고 한다.
초판이 다 팔리고 나면 패키지가 바뀌어 제작된다고 하는데, 요즘 앨범 시장에서 초판(몇장이나 찍을지 모르겠지만)이 다 팔릴수 있을지는 의문. 하지만 워낙 절판되고 나서 고가에 거래되던 음반이라 일단 기대는 해 볼만 할 듯.
초판의 판매량이 의외로 좋아, 강명수 사장이 더욱 열심히 수작업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디차트 앨범 판매량 1위에 올랐다.
4.1. 1집 《nOiZeGaRdEn》
1집과 관련된 내용은 문서로 분리되어 있으니 아래를 참조하자.
4.2. 2집 《...But Not Least》
1997년 말부터 준비에 들어갔던 두 번째 앨범은 1998년 가을에 본격적인 제작에 착수, 1999년 2월에 《...But Not Least》 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9] 1집과 마찬가지로 미국 A&M 스튜디오의 데이빗 콜린스에 의해 마스터링되었다. 물론 사운드 질은 상당히 사기급인 것은 변함 없다.
1집에 비해 묵직한 느낌은 유지하되 좀더 정리하여 선명하고 깔끔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갖가지 실험적으로 접근했다. 대부분의 기타 솔로 연주시에 기타 백킹을 넣지 않는다는 점, 솔로 연주가 lowdown30 스러운 블루스 색채를 띈다는 점, 일렉트로닉의 차용, 박건의 내면적인 보컬은 1집에 비해서 꽤나 달라진 부분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대부분 1집을 평 할때 '사운드, 톤이 좋다'고만 평하는 점에서 회의감이 들어 구성면에서는 좀 더 발전하고, 톤은 오히려 빈티지한 그런 느낌의 앨범을 준비했다고 한다.
원판에는 가사를 싣되, 띄어쓰기 없이 붙여써서 제대로 볼 수 없을 지경으로 다가 실었다고 한다. 1집에 가사를 싣지 않아, 가사를 중요히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것에 대한 부정의 의미라고 했다.
- 1. 더이상 원하지 않아 (4:51)
- 2. 쇼생크 탈출 (4:40)
- 여명의 시간처럼 MBC 예술의 전당에서 라이브를 한 적이 있다. 다만, 화질이 정말 좋지 않다.
- 윤병주가 말하기를 스튜디오 버전은 키가 A 이지만 라이브 때는 D 로서, 6번줄을 D로 다운튜닝해서 연주했다고 한다.
- 가사의 일부분은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에서 따왔다.
- 3. 다시 어둠이 (5:45)
- 앨범과 고별공연에선 동료 인디 1세대 밴드 레이니 썬의 보컬 정차식과 함께 부른다. 정차식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때 구석에서 불 다끄고 접신했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 유투브에 상대적으로 고화질의 영상이 올라와 있다.
- 4. 인생의 리세트 버튼 (4:06)
- 크레이지 군단의 인생의 리세트 버튼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그림도 실려있다.
- 노이즈가든의 유일한 어쿠스틱 곡이다.
- 5. 여명의 시간 (6:20)
- 예술의 전당에서 라이브를 했다. 풋풋한 박건과 윤병주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 약 2분 20초간의 몽롱한 솔로가 일품이다. 마지막의 파열음은 아날로그 딜레이 이펙터 2개를 이용하여 낸 파열음이다.
- 6. 미로 (6:32)
- 7. 또 다른 유혹 (5:35)
- 박건씨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고 한다.
- 8. 에필로그(끝이 보이는 이곳에서) (4:32)
- 에필로그라고 해놓고 뒤에 향수와 G-Spot이 있는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한다.
- 인천의 락밴드 사하라의 기타리스트 인재홍이 기타솔로를 연주하였다.
- 9. 향수1 (5:24)
- 10. 향수2 (4:54)
-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이 작사/작곡/피쳐링했다.
- 11. Blank (0:04)
- 12. Blank (0:05)
- 히든 트랙 G-Spot을 13번에 맞추기 위한 블랭크로 이외에 다른 뜻은 없다.
- 13. G-Spot (3:28)
5. 음악성
- 보컬
- 기타
6. 근황
박건은 러스티즈[10] , 요호, 글로우(이이언과 함께 했는 프로젝트 밴드) 등 몇몇 밴드를 거치다가 캐나다 부인을 두어, 캐나다 이민을 갔다. 고별공연 멘트에 의하면 캐나다 부인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자 부인 가족측에서 박건이 캐나다에서 함께 사는 것을 바랬기 때문에 이민을 갔다고 한다.그 즈음 2009년 2월 14일 밴드 해체 10주년 기념 공연을 하고 나서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박건의 네이버 블로그도 정전상태이다. 보컬리스트 박건이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공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에서는 Echo Nebraska라는 현지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
최근 재발매를 하며 귀국하여 공연을 했다. 고별공연 때 캐나다에서의 담배는 비싸다는 농담과 함께 담배를 끊겠다고 하시더니, 정말로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그간 캐나다에서도 'Amber Hills'라는 밴드의 베이스를 연주하며 음악활동을 계속 했다고 한다.
현재 윤병주는 로다운30 이라는 블루스 록 밴드를 현재까지도 잘 이끌어 나가고 있다. 트위터를 하면서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는데, 헤비한 음악 이미지와 달리 독설 잘하고 가끔 갭모에를 보이는 형님 이미지로 소소하게 유명세를 타고 있는듯. 참고로 소녀시대 팬이라고 한다.
베이시스트 염재민씨의 블로그로 추정되는 사이트를 남긴다. 염재민씨가 참여했던 음악들을 확인할 수 있다.
드럼의 김태현은 다른 셋과 달리 근황을 찾아보기 힘들다.
재발매를 기념하여 노이즈가든 동문회를 가졌다. 데모 멤버들을 비롯한 노이즈가든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윤병주씨의 페이스북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년 7월 25일에 베이시스트 고 이상문 추모공연이 열렸다. 언니네이발관, 로다운30등이 참여했다.
16년 9월 26일에 보컬리스트 박건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7. 관련 음악인
- 김락건
- 김태현, 이민우(前)
로다운 30의 멤버이다.
- 강명수
노이즈가든의 열혈 팬이며, 재발매에 큰 역할을 했다. 강명수와 윤병주의 인연은 이곳과, 음악취향Y 및 전기버러지 팟 캐스트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아마 한국에서 이들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팀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14년 재결성 공연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았다.
[1] 실제로 인디 활동 당시 모던 록 성향 밴드하고도 교류가 많았다. 델리스파이스 2집에도 비중있게 참여했으며, 언니네 이발관 1집인 비둘기는 하늘의 쥐 프로듀싱을 담당하기도 했다.[2] 메탈 성향의 음반들만 놓고 보면 부활 1집 바로 다음의 순위.[3] 박건의 이민으로 해체를 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윤병주의 탈퇴가 우선적인 해체 이유이다.[4] 박건이 캐나다에서 베이시스트로 몸담았던 밴드인 Echo Nebraska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박건은 2016년 3월부터 암투병을 해왔다. 링크/[5] 후일담으로, '클래식 할아버지께서 락을 몰라 편곡에 헤맸다'고 윤병주는 회상했다.[6] 취소선을 긋긴 했지만 당시와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 시장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행운이 따르지 않는 한 노이즈가든이 인디 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로 클 일은 없었을 것이다.[7]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엔지니어로 폴 매카트니, 배리 마닐로, 데이비드 길모어, 프랭크 자파, 캐롤 킹 마스터링에도 참여했다. 그래미 상에도 두번이나 노미네이트 된 적 있을 정도. http://www.allmusic.com/artist/sanwook-sunny-nam-mn0000663634[8] 윤병주는 1집을 낼 때 즈음 '만약에 우리의 앨범이 재발매가 된다면, 그때는 레드제플린이나 다른 밴드들의 박스 세트처럼 해설, 가사를 제대로 싣겠다'라고 상상을 해봤다고 한다.[9] 나중에 윤병주가 밝힌 바에 따르면 어느 정도 탈퇴를 암시하고 있는 타이틀이였다고 한다.[10] 네이버 팬카페도 있는 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