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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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리카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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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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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메탈리카
METALLICA

멤버
제임스 헷필드, 라스 울리히, 클리프 버튼, 커크 해밋,
제이슨 뉴스테드, 로버트 트루히요

입성 연도
2009년
후보자격 연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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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llica
결성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현재 멤버
제임스 헷필드
라스 울리히
커크 해밋
로버트 트루히요
이전 멤버
론 맥거브니
데이브 머스테인
클리프 버튼
제이슨 뉴스테드
장르
헤비메탈, 스래시 메탈, 하드 록, 스피드 메탈
활동 기간
1981년 ~ 현재
데뷔
1983년 싱글 ‘Whiplash’
1983년 앨범 ‘Kill 'Em All
링크

1. 개요
2. 역사
2.1. 냅스터와의 법적공방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앨범
3.2. 라이브 앨범
3.3. 라이브 비디오
3.4. 기타
3.5. 커버의 역사
4. 로고
5. 멤버
5.1. 현재 멤버
5.2. 이전 멤버
5.3. 그 외 관련인물
6. 음악적 위치
7. 내한
7.1. Poor Re-Touring Me 투어(1998)
7.2. Escape From Studio '06 투어(2006)
7.3. Summer Tour(2013)
7.4. Worldwired 투어(2017)
8. 기타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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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탈리카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하는 전설적인 록 밴드이다.
1981년 라스 울리히가 모집한 인디밴드로 출발하여 프로그레시브 성향의 스래시 메탈로 오버그라운드에 진입하였고, 1991년 5집 블랙 앨범의 수록곡 <Enter Sandman>을 히트시키며 미국 록 씬의 주류로 올라섰다.
히트한 싱글로는 <Seek and Destroy>(1983), <Creeping Death>(1984), <Fade to Black>(1984), <Master of Puppets>(1986), <One>(1988), <Enter Sandman>(1991) 등이 있다. 특히 <Master of Puppets>는 메탈 씬의 클래식 중 하나로 자리잡아 드림 시어터, 림프 비즈킷 등 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커버하였다.
현재까지 정규 앨범 10장을 발매하였고, 그래미 어워드를 8번 수상했다. 2003년에는 'MTV Icon'에 선정되었고, 2009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커리어 통산 1억2,6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2. 역사


[image]
제임스, 론, 라스, 데이브. (1981)
밴드는 1981년 10월 28일 결성되었다. 아마추어 드러머 라스 울리히가 일간지 LA Recycler에 밴드 멤버 구인 광고를 실었고, 다우니 지방의 촌뜨기 주유소 알바생 겸 기타리스트인 제임스 헷필드가 이 광고에 호응하며 첫 두 멤버가 모였다. 제임스는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인 론 맥고브니를 베이시스트로 데려왔고, 데이브 머스테인 역시 라스의 광고에 호응해 몸담고 있던 밴드인 패닉을 떠나 합류하면서 최초의 4인이 모이게 되었다.
결성에 앞서 밴드 명칭이 지어진 데 대한 일화가 있다. 메탈리카 멤버들의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Killing Time>[1]에 따르면 라스가 친구의 헤비메탈 매거진 이름을 같이 고민하면서 지극히 덴마크인스러운 괴악한 이름들을 내놓았고, 그 친구는 Metallica라는 이름을 후보에 올린다. 라스는 잠깐의 머리회전을 거쳐 Metal Mania라는 이름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친구를 설득하고 결국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 친구는 몇년 후 전미를 강타한 메탈밴드 Metallica에 라스 이 놈이 드러머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멍때렸다고. 이 친구의 이름은 Ron Quintana로, 후일 메탈리카가 대박이 난 다음 라스를 인맥으로 하여 인터뷰를 몇 개 따내 멋진 이름[2]을 뺏긴 아쉬움을 보상받았다고 한다.
1982년 3월은 인디밴드 메탈리카에게 중요한 달이었다. 그들은 론 맥고브니의 창고에서 오프닝 밴드 모집 오디션 제출용 테이프를 녹음했고, 이 테이프는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메탈리카의 역사상 첫 녹음이 되었다. 그들의 첫 자작곡인 Hit the Lights는 인디 컴필레이션 음반인 Metal Messacre에 수록되었다.[3] 14일에는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소재한 클럽 라디오시티에서 자작곡 2곡(Hit the Lights, Jump in the Fire)과 커버곡 7곡(다이아몬드 헤드, 블리츠크리그, 스윗 새비지, 새비지의 곡들)으로 구성된 데뷔 공연을 치렀다. 자작곡의 반응은 꽤 괜찮았고, 제임스와 데이브를 중심으로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 위한 작곡 작업이 계속되었다. 1982년 6월 경에는 정규 1집에 들어갈 곡들이 거의 다 완성되었고, 동월 6일에는 정말 팔기 위한 첫 데모 테입인 No Life 'Til Leather가 녹음되었다. 이 테이프는 그들의 근거지인 LA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2년 12월 10일, 베이시스트 론 맥고브니가 밴드를 탈퇴한다. 론은 베이시스트로서 별로 유능하지 않았으며, 친구인 제임스를 제외한 나머지 두 멤버와 꾸준히 갈등이 있었다. 정식 멤버로 대우받지 못하고 버스 셔틀, 창고 셔틀, 총무 역할이나 하던 론은 자신을 둘러싼 멤버들의 갈등이 커지자 밴드를 떠난다. 특히 데이브는 항상 론의 실력을 문제삼아 정식 멤버로 인정하지 않았고, 어느 날은 만취한 채로 론의 베이스에 맥주를 부어버렸다. 모욕당한 론은 "전부 내 집에서 나가!"를 시전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밴드를 탈퇴한 후 모든 음악 장비를 팔아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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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데이브, 라스, 제임스. (1982)
제임스와 라스는 베이시스트를 구하기 위해 자신들이 3월 27일에 공연한 바 있었던 클럽 Whiskey a Go Go를 방문한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투어를 온 신예 밴드 트라우마의 공연을 보게 되는데, 이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클리프 버튼이었다. 제임스와 라스는 클리프의 현란한 베이스 솔로를 듣고 그를 끝내주는 기타리스트라고 착각했으며, 그가 든 악기가 베이스라는 것을 눈치챈 후 그를 베이시스트로 영입하기로 마음먹는다. 클리프는 트라우마가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며 영입 제안을 수락했는데, 밴드 근거지를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로 옮겨야 가입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였다. 제임스와 라스는 매우 기뻐하며 이를 수락했고, 데이브를 포함한 세 멤버는 바로 이삿짐을 싸기로 결심했다.
1983년 3월 5일 클리프 버튼이 함께하는 메탈리카의 첫 공연이 샌프란시스코의 클럽 스톤에서 열렸다. 메탈리카가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온지 몇 주 되지도 않았지만 메탈리카의 인지도는 관객을 모을 만큼 충분히 높았고, 클리프 버튼 역시 인디 씬의 다크호스로 유명했던 고로 공연은 대성황이었다. 클리프 버튼을 영입하고 자신감을 얻은 메탈리카는 정규 앨범 발매를 위해 소속사를 물색했으며, 1983년 3월 16일에 데모 테이프를 녹음해 인디 레이블인 메가포스 레코드에 건넸다.
[image]
클리프, 라스, 제임스, 커크. (1986)
1983년 4월 11일, 기타리스트 데이브 머스테인이 해고당한다. 정규음반 녹음을 위해 뉴욕에 도착한 멤버들은 꽐라가 된 데이브를 고향으로 가는 싸구려 버스에 실어보냈고, 다음 날 울며불며 전화해 온 데이브에게 라스가 해고 통보를 하게 된다. 밴드 멤버 모두가 술고래라지만 특히 데이브는 24시간 술과 마약에 찌들어 인사불성인데다 성격이 워낙 거칠어서 멤버들과 항상 크게 충돌했다. 데이브는 이미 1982년에 한 번 멤버들과 주먹다짐을 벌이고 쫓겨났다가 다음날 사과하여 간신히 복귀한 전력이 있었으며, 론 맥고브니의 탈퇴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도 데이브가 그를 대놓고 무시한 탓이었다.
같은 날 오후 메탈리카는 미리 안면을 트고 물색해 뒀던 EXODUS 소속 기타리스트 커크 해밋에게 전화를 넣어 오디션을 보러 올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커크는 평생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살아 본 적이 없었음에도 메탈리카에 가입하기 위해 가진 돈을 닥닥 긁어모아 뉴욕으로 날아가 간단한 오디션을 봤고, 멤버들과 Seek and Destroy를 합주한 직후 가입 제안을 받고 메탈리카의 일원이 된다. 사실 커크의 영입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고, 데이브만 모르는 채로 이 달 1일부터 추진되고 있었다.
이렇게 헷필드/울리히/버튼/해밋의 4인조 구성으로 정규 1집을 녹음하게 되었으며, 베이시스트를 제외한 모든 멤버는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후의 메탈리카에 대한 이야기는 디스코그래피 문단의 각 앨범 링크 참조.

2.1. 냅스터와의 법적공방


메탈리카는 2000년 미션 임파서블 2의 주제곡으로 <I Disappear>를 작업하여 일부 라이브에서 이 곡을 미리 선보인 바 있었다. 공식적으로 이 곡의 존재는 영화사와의 합의에 따라 비밀에 부쳐져 있었는데, 발표일 이전에 이 곡이 수십 곳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송출되는 일이 벌어진다. 어느 팬이 녹음한 음원이 P2P 음원 공유 사이트인 냅스터에서 유통되었고, 방송국에서 이 곡을 메탈리카의 신곡 예정곡이라고 틀어댄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메탈리카는 영화 팀으로부터 클레임을 받았고, 그들은 메탈리카 측에서 공개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라디오 방송국을 추궁하였다. 음원의 출처를 추적한 결과 앞서 말한 냅스터라는 음원 공유 사이트가 모습을 보였고, 메탈리카는 냅스터에서 <I DIsappear>의 유출 외에도 그들의 모든 앨범이 무료로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빌미로 여론 싸움[4]과 법적 공방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이 싸움이 '푼돈에 눈이 먼 메탈리카와 디지털 세대의 싸움'정도로 알려졌는데, 라스 울리히의 말에 따르면 (신곡을 유출시킨) 주범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지엽적 공방으로 생각했지 음악 산업의 미래와 과거의 대결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생각은 전혀 아니었다고 한다. 메탈리카 자신들 스스로도 음악 산업에 발을 담근 사람들로서 다른 뮤지션들과 이런저런 테이프를 교환하는 일이 매우 잦아 유저들끼리의 음원 공유는 간섭할 분야가 아니라고 여겼고, 단지 냅스터라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이상한 주체에 대해 책임을 묻다 보니 미국의 저작권 법률에 따라 메탈리카의 음악을 공유한 30만 개의 유저 계정을 대상으로 밴(ban) 조치를 하게 된 것[5]. 어찌 되었든 메탈리카가 음원 공유 사이트를 고소한 사실이 뮤지션들에게 알려지면서 닥터 드레 등 거물들이 줄이어 냅스터를 고소했고, 결국 냅스터는 문을 닫고 청산 절차를 밟으며 역사의 뒤로 사라진다.
메탈리카, 특히 고소의 주체이자 리더인 라스 울리히가 이 문제에서 간과했던 것은 냅스터가 미국 젊은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사이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메탈리카는 공룡급 거물이었고, 냅스터는 열 아홉 살 창업자가 이제 갓 불을 당긴 핫한 스타트업 사이트였는데, 메탈리카가 이 곳에 음원 유출의 책임을 묻고 불법 공유로 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주장하는 모습은 결코 좋게 비칠 수가 없었다.[6] 또한 메탈리카는 과거 1983년 데이브 머스테인을 퇴출시킨 후 그가 남기고 간 리프를 무단으로 사용하며[7] 저작권 개념을 씹어먹은 전적이 있어 더 큰 조롱을 받기도 했다.
림프 비즈킷, 아이언 메이든[8], RATM톰 모렐로 등 동료 뮤지션들 역시 메탈리카를 비꼬고 냅스터를 홍보하며 이 송사에 부정적 스탠스를 취했으며,[9] 슬레이어의 게리 킹은 고소할 시간에 드럼 연습을 더 하라며 라스의 행동을 비판했다.[10] 데이브 그롤은 메탈리카를 직접 겨냥한 것 아니지만, 냅스터에 대해 논쟁이 일어나는 요즘의 세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음악에 가격표를 매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전세계 메탈 씬을 다룬 다큐멘터리 <Global Metal>에서는 라스 울리히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등 메탈 음악이 금지된 국가에서 인터넷을 통한 공유로 메탈 씬이 유지되고 성장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극딜을 넣기도 했다. 당황하며 "좋은 일이다"라 답하는 라스의 표정이 압권.
어찌 되었든 이는 아티스트가 P2P를 고소한 첫 판례이자 가장 핫한 사례가 되어 저작권 이야기를 다루는 많은 책에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서 실리게 되었다.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앨범



3.2. 라이브 앨범


  • S&M (1999)[11]
  • 메탈리카 스루 더 네버 (2013)
  • S&M2 (2020)

3.3. 라이브 비디오


  • Cliff 'Em All (1987)[12]
  • Live Shit: Binge & Purge (1993)[13]
  • Cunning Stunts (1998)
  • S&M (1999)
  • Français Pour une Nuit (2009)[14]
  • Orgullo, Pasión y Gloria: Tres Noches en la Ciudad de México (2009)
  • The Big 4 Live from Sofia, Bulgaria (2010)[15]
  • Quebec Magnetic (2012)[16]

3.4. 기타


  • EP - The $5.98 E.P./$9.98 C.D.: Garage Days Re-Revisited (1987)[17]
  • 커버앨범 - Garage Inc. (1998)[18][19]
  • 사운드트랙 - 미션 임파서블 2 주제곡 I Disappear (2000)
  • EP - Beyond Magnetic (2011)[20]
  • 콜라보레이션 - Lulu (2011)
  • 영화 - 메탈리카 스루 더 네버 (2013)
  • 팬클럽 한정 박스 셋 - 메탈리카는 비정기적으로 공식 팬클럽 회원만이 접근 가능한 한정판 박스 셋을 출시해 오고 있다. 페인트 깡통만한 캔에 비디오, 부틀렉, 티셔츠, 열쇠고리 정도의 상품을 담아 제공한다.
- Fan Can I(1996)[21]
- Fan Can II(1997)
- Fan Can III(1998) - Load 문서의 데모 문단 참고.
- Fan Can IV(2001)
- Fan Can V(2005)
- Fan Can VI(2010)
  • 주요 라이브 투어
- Kill'em All (1983-1984)
- Ride the Lightning (1984-1985) - 메탈해머페스트, Day on the Green 페스티벌이 있었던 투어기간이다.
- Damage Inc. (1986-1987) -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이 투어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투어가 일시 연기되고 제이슨 뉴스테드로 대체.
- Damaged Justice (1988-1989) - 이 투어의 시애틀 공연이 Live Shit: Binge & Purge 실황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 Wherever We May Roam (1991-1992) - 이 투어의 샌디에이고 공연이 Live Shit: Binge & Purge 실황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 Guns N' Roses & Metallica Stadium Tour (1992) - 액슬 로즈가 목이 나가고 제임스 헷필드가 공연 중 사고로 좌측 반신에 2~3도 화상을 입는 등 불행이 많았던 투어.
- Nowhere Else to Roam (1993) - 5집 3대 투어의 마지막. 이 투어의 멕시코시티 공연이 Live Shit: Binge & Purge 실황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 Poor Touring Me (1996-1997) - 이 투어의 텍사스 공연이 Cunning Stunts 실황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 Poor Re-Touring me (1997-1999) - 처음으로 내한하여 1998년 4월 24-25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양일간 공연하였다.
- Garage Remains the Same (1998-1999) - Garage Inc. 음반 서포트 투어. 위 투어와 병행되었으며, 이 기간에 S&M 공연이 있었다.
- Escape from the Studio '06 (2006) - 두 번째로 내한하여 2006년 광복절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공연하였다.
- 2012 European Black Album Tour (2012) - 블랙앨범 20주년 기념으로 수록곡 전곡을 역순으로 연주하였다.
- The Full Arsenal (2012) - 영화 Through the Never에 쓰인 공연 영상이 촬영된 투어.
- Summer Tour (2013) - 2013년 8월 18일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콘서트 2일차 헤드라이너로 참여한 투어.
- By Request (2014) - 관객의 투표로 연주할 곡을 뽑는 독특한 투어. 별의별 마이너 곡들이 다 연주되었다.
- WorldWired (2016-2019) - 2017년 1월 11일 고척 스카이돔에서의 내한공연이 포함된 투어.

3.5. 커버의 역사


메탈리카는 다이아몬드 헤드, 모터헤드 등 NWOBHM 계열 뮤지션들을 추종하는 커버 밴드로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와서도 여러 뮤지션들의 곡을 계속 커버해 오고 있다.
메탈리카의 커버 이력은 스래시 밴드 기준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커버에 이만큼 적극적인 메이저 스래시 밴드는 앤스랙스밖에 없다. 그 외 메가데스, 테스타먼트, EXODUS, 판테라 등 동세대 스래시 밴드 또는 메탈 밴드 중에서도 이만큼 커버를 좋아하는 밴드는 찾기 드물다. 하드 록까지 범위를 넓히면 건즈 앤 로지스 정도가 있다.
메탈리카가 커버해 온 뮤지션들과 곡들은 아래와 같다. 괄호는 처음 커버한 연도.
  • ABBA - Dancing Queen(2018)
  • Accept - Balls to the Wall(2018)
  • A-ha - Take On Me(2018)
  • Anti-Nowhere League - So What(1991)
  • Black Sabbath - Hole in the Sky(2011)/Iron Man(2011)/Paranoid(2010)/Sabbra Cadabra(1998)
  • Blitzkrieg - Blitzkrieg(1984)
  • Blue Öyster Cult - Astronomy(1998)/Veteran of the Psychic Wars(2007)
  • Bob Seger - Turn the Page(1998)
  • Budgie - Crash Course in Brain Surgery(1987)/Breadfan(1988)
  • Buffalo Springfield - Mr. Soul(2016)
  • Celtic Frost - Procreation of the Wicked(2018)
  • Cheech & Chong - Earache My Eye(2000)
  •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Fortnate Son(2000)
  • David Bowie – Space Oddity(2018)
  • Deep Purple - Mistreated(1992)/When a Blind Man Cries(2014)
  • Diamond Head - The Prince(1982)/Sucking My Love(1982)/Am I Evil?(1982)/It's Electric(1998)/Helpless(1982)
  • Dire Straits - Brothers In Arms(2007)
  • Discharge - Free Speech for the Dumb(1998)/The More I See(1998)
  • Drafi Deutscher - Marmor, Stein und Eisen Bricht(2018)
  • Dżem - Wehikuł czasu(2018)
  • Europe - The Final Countdown(2018)
  • Fang - The Money Will Roll Right In(1985)
  • Garbage - Only Happy When It Rains(2007)
  • Guns N Roses - You're Crazy(1990)
  • Hassisen Kone – Rappiolla(2018)
  • Holocaust - The Small Hours(1987)
  • Iron Maiden - Remember Tomorrow(2008)
  • Ivan Mládek - Jožin z bažin(2018)
  • Judas Priest - Rapid Fire(1994)
  • Kid Rock - Somebody's Gotta Feel This / Fist of Rage(2000)/American Bad Ass(2000)
  • Killing Joke - The Wait(1987)
  • Korn - Counting(2000)/Blind(2000)
  • Lenny Kravitz - Are You Gonna Go My Way(2003)
  • Lynyrd Skynyrd - Tuesday's Gone(1998)
  • Michael Jackson - Beat It(2003)
  • Michael Monroe – Dead, Jail or Rock 'n' Roll(2018)
  • Misfits - Die, Die My Darling(1998)/Last Caress(1987)/Green Hell(1987)/London Dungeon(1985)
  • Mötorhead - Overkill(1998)/Damage Case(1995)/Stone Dead Forever(1995)/Too Late Too Late(1995)/The Chase is Better than the Catch/We are the Roadcrew
  • Nazareth - Hair of the Dog(1990)/Please Don't Judas Me(2007)
  • Nick Cave & the Bad Seeds - Loverman(1998)
  • Nirvana - Smells Like Teen Spirit(2003)
  • Oasis - Wonderwall(1996)[22]
  • Ozzy Osbourne - Diary of a Madman(2014)
  • Queen - Stone Cold Crazy(1990)
  • Ramones(2003) - Now I Wanna Snif Some Glue/Cretin Hop, Commando/Today Your Love, Tomorrow the World/We're a Happy Family/53rd&3rd(2003)
  • Rare Earth - I Just Want to Celebrate(2007)
  • Savage - Let It Loose(1982)
  • Saxon - Motorcycle Man(2009)
  • Skid Row - Piece of Me(1990)
  • Spider Murphy Gang - Skandal im Sperrbezirk(2018)
  • Sweet Savage - Killing Time(1982)
  • Tankcsapda - A legjobb méreg(2018)
  • The Beatles - Hey Jude(1996)/In My Life(2014)
  • The Clash - Clampdown(2016)
  • The Kinks - You Really Got Me(2010)/All Day and All of the Night(2010)
  • The Rolling Stones - Jumpin' Jack Flash(2000)
  • The Stooges - T.V. Eye(2017)
  • The Velvet Underground - Sweet Jane(2010)/White Light/White Heat(2009)
  • Thin Lizzy - Whiskey in the Jar(1998)
  • Tiny Bradshaw - The Train Kept A-Rollin'(2011)

4. 로고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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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981~
② 1984~
③1996~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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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2003~2008
⑤ 2008~
⑥ 2016~
은 1982년 데모테이프를 들고 데뷔하던 인디 시절부터 1995년 5집 투어 최종종료시점까지 널리 쓰였다. 는 2집 커버아트에 처음 등장하여 5집까지 ①과 혼용되었다. 최전성기의 위용을 간직한 로고들이어서, 음반에 따라 밴드 공식 로고가 바뀌는 와중에도 계속 이 로고들로 된 상품이 찍혀 나왔다.
은 6집부터 8집 활동 전까지 사용하였다. 1번과 2번의 포스는 만족스럽지만 정작 다른 밴드들과 로고를 나란히 두거나 어딘가에 로고를 띄울 일이 있을 때 차지하는 부피에 비해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편이었어서, 멤버들은 이 로고에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한편 기존의 스래시한 멋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깝기도 하고 부담도 되었는지, 오른쪽과 같이 기존 로고의 M만 따서 사방으로 둘러 표창같은 로고를 새로 만들어 여기저기에 쓰기도 했다.
는 2000년대 초반 하드코어 펑크 기반의 뉴 메탈의 느낌이 반영되었는데, 이전에 비해 원년 로고처럼 공격적인 느낌을 살리긴 했으나 앨범이 흑역사(...)가 되며 공식 로고로는 사실상 최단명했다. 2006년 내한한 메탈리카의 포스터 등에 사용된 로고가 이것이었다.
는 2008년 9집부터 사용중이다. 원년 로고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약간 다듬어냈으며, 2016년 10집에서 과 같이 활용 중이다.

5. 멤버


사용하는 장비는 메탈리카/사용 장비 참고.

5.1. 현재 멤버



5.2. 이전 멤버


  • 론 맥거브니(Ron Mcgovney) - 베이스 (1982년)
제임스 헷필드의 고교시절 친구였고 메탈리카의 원년 멤버 중 한 명이다.[23] 차를 소유하고 있어서 밴드의 매니저를 도맡아했고 메탈리카의 초기 데모도 그의 지하실에서 녹음될 정도로 밴드의 물주 역할을 했지만 데이브와 라스가 그의 베이스 실력을 문제삼기 시작하면서[24] 멤버들과 충돌이 생기기 시작, 라스 울리히가 밴드의 연고지를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긴다고 하자 이에 반발하며 탈퇴했다. 어찌보면 당시 어렵게 생활하던 시기에 베이스뿐만 아니라 매니저의 역할까지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 론의 입장에서 나머지들은 천하의 개객기들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고 당시 멤버들과의 관계는 한동안 좋지 않았다. 이후 론은 베이스 기타와 앰프를 팔고 음악계를 떠났다가[25] 제임스와의 친분으로 메탈리카 30주년 라이브에 출연하였다.[26] 현재 카센터를 운영중이다. 여담으로 역대 멤버 중 이목구비가 가장 또렷하다.
  • 클리프 버튼(Cliff Burton) - 베이스, 배킹 보컬 (1982년~1986년, 1986년 9월 27일 사망)

5.3. 그 외 관련인물


  • 플레밍 라스무센(Flemming Rasmussen) - 프로듀서(1984~1989)
- Ride the Lightning 앨범부터 시작해 ...and Justice for All 앨범까지 메탈리카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특히나 고평가받는 앨범들을 프로듀스, 믹싱,마스터링을 담당하면서 오늘날의 메탈리카를 있게 해준 일등공신인 프로듀서이다. 다만 항목에서 보다시피 ...And Justice for All 앨범부터 메탈리카 멤버들은 1집부터 시작했던 기존의 스래쉬적인 면모에서 탈피를 하고 싶었었기 때문에 결국엔 동명의 앨범인 Metallica부턴 밥 락에게 프로듀서의 자리를 넘겨준채 프로듀서에서 빠지게 된다.이후 그는 다른 밴드에서 탁월한 프로듀싱의 능력을 다시 입증하게 되는데. 바로 블라인드 가디언이 되시겠다.
  • 밥 락 (Bob Rock) - 베이스(2001~2003), 배킹 보컬(2001~2003), 프로듀서(1989~현재)
- 제이슨의 탈퇴부터 로버트의 가입까지 메탈리카의 베이시스트 자리는 공석이었으며, 이 시기에 프로듀서인 밥 락이 베이스를 연주하였다. 스튜디오 레코딩은 물론, 라이브도 두 차례 소화하였다. 메탈리카의 베이시스트 계보에 넣지는 않으나, 멤버들은 그를 가족처럼 여기고 있다.
  • 로이드 그랜트(Lloyd Grant) - 기타 (1982)
자메이카 출신의 1961년생 기타리스트. 메탈리카의 멤버였던 적은 없으나, 라스의 도움 요청으로 메탈리카의 첫 자작곡 를 함께 녹음한다. 로이드가 기타, 제임스가 베이스를 쳤으며, 이 버전은 메탈 컴필레이션 음반 에 수록되어 있다.
  • 데미안 필립스(Damian Philips) - 기타(1982)
본명은 브래드 파커(Brad Parker). 1982년 4월 23일 코스타 메사 뮤직 팩토리 공연에서 딱 한 번 함께해 메탈리카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5인조를 구성한 멤버이다. 로이드 그랜트와 마찬가지로 정식 멤버로 카운트하지는 않는다.
  • 콘, 키드 락,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멤버들이 제트스키 사고로 허리를 다친 제임스 헷필드의 공백을 메운 적이 있다.

6. 음악적 위치


1980년대 스래시 메탈을 들고 데뷔한 커버밴드가 끝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메탈리카가 낸 음반들의 작품성과 멤버들의 기량에는 다소간의 이견이 있다. 누군가는 클리프 버튼의 재직시기를 최고로 치고, 또 누군가는 블랙 앨범까지를 최고로 치고, 또 어떤 누군가는 제이슨 뉴스테드가 나가면서 메탈리카가 끝났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메탈리카 전체를 그닥 들을 만한 음반으로 치지 않기도 한다. 제임스와 커크가 왕년에 잘 나갔다지만 명실공히 천재라 불리는 데이브 머스테인과 기타 실력이나 작곡 등에서 일 대 일로 맞붙을 레벨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라스는 옆 동네 천재 데이브 롬바르도와 비교하는 것이 결례인 시시한 드러머로 여겨진다. 클리프 버튼은 20대 시절의 데이브 머스테인이 인정하는 천재였으나 단명하였고, 이후의 베이시스트들은 좋은 테크니션이지만 자신들의 음악적 색체를 드러내기 보다는 묵묵히 밴드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초천재에 미치지 못하는 네 멤버가 뭉쳐 찍어낸 음반들은 같이 모터헤드를 바라보며 자란 초천재 동기들이 이루지 못한 대중적 성공을 연이어 거둬냈다. 그들의 5집은 미국에서만 쳐도 1,600만장이 팔려나가며 2018년 기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공동 5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5집부터 9집까지 다섯 장의 음반은 발매 첫 주 빌보드 차트 1위를 연이어 거머쥐며 비틀즈의 기록 하나를 눌렀다. 그리고 끝내 블랙 사바스, U2, 밴 헤일런, R.E.M., AC/DC, … , 비틀즈 등 전설적인 대선배들이 계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까지 올렸다. 명예의 전당 이상의 수식어는 그다지 필요가 없을 것이다.

'91 Monsters of Rock @ Tushino Airfield, Moscow
메탈리카의 위용을 보여줄 때 가장 많이 재생되는 공연 실황. '91 Monsters of Rock 유럽 투어 중 소련 모스크바 투시노 비행장[27]에서 열린 1991년 9월 28일 공연이다. 이 날 라인업은 그야말로 레전드. AC/DC, 메탈리카,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가 한 날에 모였다.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네 밴드의[28] 공연을 보기 위해 구름같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이 날 이 콘서트의 총입장관객수는 160만명에 달했으며, 동시에 들어와 있는 관객의 수만 10만 이상으로 추산되었다. 메이저 커리어 10년도 되지 않은 스래시 메탈 밴드이었음에도 당시 메탈리카의 위세는 AC/DC의 거대한 이름 앞에 잠시 맞서도 좋을 만큼 높았다. 더불어 제이슨 뉴스테드의 정신나간 헤드뱅잉을 필두로 하여 메탈리카 멤버들의 무대 위에서의 왕성한 활동량과 제임스의 양호한 목 상태가 더해져, 이 날의 공연영상은 1981년 결성 이래로 메탈리카의 공연 영상 중 가장 볼만한 영상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오죽하면 Creeping Death 라이브 유튜브 영상에 달린 베댓이 Soviet Union's funeral(소련 공산주의 장송곡)...[29]
알아야 할 사항으로, 이 공연이 벌어지던 시대는 동유럽 공산정권의 도미노 붕괴와 소련의 해체를 코앞에 둔 시기였다. 같은 시기 서방세계의 문화가 빠르게 침투하고 있었으며, 당시 서방세계에서 한 손에 꼽히는 초거물들이 하루에 연이어 공연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산권의 심장인 모스크바에 거대한 충격을 몰고 왔다. 일간 160만명의 관객이 몰린 것은 이러한 이유이며, 저 개미떼같은 관객들이 오로지 메탈리카만을 보러 온 것도 아니므로 이해에 주의를 요한다.[30]
1990년대에 너바나Nevermind를 기점으로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새 시대가 찾아오면서 메탈리카는 이런 흐름의 영향을 받아 두 번(Load, Reload)의 변절[31][32]을 감수해야 했으며, 메가데스 역시 그나마 당시 미국대중에게 친숙한 하드록과 정통 헤비메탈의 조합으로 이러한 광풍 속에서 어느 정도 버텨나가나 싶더니 마티 프리드먼과 데이브 머스테인의 음악적 방향성에 관한 다툼과 갈등으로 인해 Risk라는 함정 앨범이 탄생했다. 앤스랙스는 밴드의 특징이나 다름없던 조이 벨라도나가 탈퇴하면서 음악적 하락세를 겪기 시작하였고, 어줍잖게 얼터너티브 록의 요소와 힙합적인 요소[33] 를 넣으려다 대차게 망했던 적이 있다. 그나마 멀쩡했던게 슬레이어였지만 이들도 기량하락으로 예전의 Reign of Blood의 시절이나 그에 근접하는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후 메탈리카는 팬들을 위해 열심히 정규음반을 내고 해마다 투어를 뛰어왔다. 결과물의 평에는 매번 이견이 있어 왔으나 다양한 시도를 해 가며 밴드를 유지해 온 끝에 메탈리카는 멤버들이 온전히 모여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 행사에 참가하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다. 행사에는 일찍이 2001년 결별하였던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테드, 1986년 사고로 작고한 클리프 버튼의 부친이 참석하여 멤버들에게 그 의미를 더했다.

7. 내한


대한민국에서는 1998년 4월 24일, 25일, 2006년 8월 15일, 2013년 8월 18일, 2017년 1월 11일에 내한공연을 한 바가 있다.

7.1. Poor Re-Touring Me 투어(1998)



Poor Re-Touring Me @ Seoul
일시
1998년 4월 24일, 25일
당시멤버
헷필드/울리히/해밋/뉴스테드
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관객
약 35,000명 (양일 합산)
셋리스트
So What
Master of Puppets
King Nothing
Sad but True
Fuel
The Memory Remains
Bleeding Me
Bass/Guitar Solos
Nothing Else Matters
Until It Sleeps
For Whom the Bell Tolls
Wherever I May Roam
One
Kill/Ride Medley
앙코르
Low Man's Lyric
The Four Horsemen
Motorbreath
Creeping Death
Enter Sandman
Battery
  • 1997년 외환위기로 무산될 뻔하였다가 메탈리카 측의 통 큰 양해로 어렵게 성사된 공연이었다. 당시 기획사는 850원대 환율을 기준으로 개런티 협상을 맺었으나 그 해 말 한국 경제가 수렁에 빠지면서 환율이 2,000원을 찍고 말았다. 이런 환율로는 잔금을 치르지 못해 부도를 맞을 판이었고, 기획사에서는 한국 외환위기에 관련된 사정과 환율 상황에 대한 기사 스크랩을 메탈리카 측에 보내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메탈리카 측에서는 이 사정을 이해하고 개런티를 25만 달러 깎아주었고, 덕분에 첫 내한공연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 영 생소한 나라에 처음 투어를 와 아래와 같이 재미있는 경험들을 하고 공연에서 열광적인 떼창을 선물받은 메탈리카는 8년 후 투어에 한국을 포함시켜 두 번째로 내한한다.
[image]
[image]
[image]
종로 낙원상가 앞 시장 방문[34]

7.2. Escape From Studio '06 투어(2006)



Escape From Studio '06 @ Seoul w/ TOOL
일시
2006년 8월 15일(광복절)
당시멤버
헷필드/울리히/해밋/트루히요
장소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관객
?
오프닝
(TOOL)
}
Stinkfist
The Pot
46&2
Jambi
Schism
Sober
Lateralus
Vicarious
Aenima
셋리스트
Creeping Death
Fuel
Wherever I May Roam
Harvester of Sorrow
Welcome Home (Sanitarium)
Frantic
The Unforgiven
For Whom the Bell Tolls
Guitar Solo
Orion
Master of Puppets
Fade to Black
Battery
앙코르
Sad but True
Nothing Else Matters
One
Enter Sandman
The Other New Song
Seek and Destroy
  • MBC에서 공연실황을 촬영하여 동년 9월 9일 심야에 방송하였다. 3집 Master of Puppets 발매 20주년 기념을 겸하는 투어였으며, 방송시간 문제로 Wherever I May Roam과 Welcome Home(Sanitarium)는 잘렸다.
  • 2000년대 중반의 메탈리카 영상 중 세계적으로도 꼽아도 가장 볼만한 영상으로 남아있다. 메탈리카가 마침 이 시기에 3집 20주년을 기념하여 수록곡 를 10년만에 완곡으로 연주하였으며[35], 1986년 작곡 이래로 봉인되어 있던 3집 수록곡 의 봉인이 풀린 것도 이 시기였다. MBC는 마침 이 시기에 갓 걸음마를 뗀 HD 방송기술로 메탈리카의 공연을 찍었고, 이 실황영상은 음향과 영상미, 화질 등 모든 면에서 동시대 최상급이다.[36]
  • 당대 한국 관객들이 열정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일종의 자부심이었던 떼창이 적절한 음량으로 잘 녹아있다. Master of Puppets 기타솔로파트인 56:21부터 들어볼 수 있다. 이전에도 메탈리카 팬들이 기타리프나 솔로를 제창하는 일이 없던 것은 아니나, 이러한 떼창이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떼창하는 곡들이 늘어가고 있다. 공연하는 입장에서도 떼창을 감상하는 것이 즐거운지[37], 리드 보컬인 제임스는 가끔 비인기곡을 라이브에서 선보이면서 직접 떼창을 지정해 독려하기도 한다.
  • 이 공연을 맡은 박현호 MBC 디지털사업본부 콘텐츠사업국장(당시 담당PD)이 메탈리카의 팬이었던 덕에 이런 수준급의 영상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PD는 일본의 섬머소닉 페스티벌에 직접 가서 촬영 기법을 상당수 참고해 왔으며, 이 공연을 촬영하기 위해 초고가 장비들을 펑펑 사들인 탓에 이후 몇 년간 한직을 전전했다고 한다.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다.
  • 당시 빌보드 1위 등 온갖 차트를 석권하던 14년차 초일류 밴드[38] TOOL이 고작 오프닝 밴드 자격으로 내한해 70분짜리 오프닝 공연을 하는 기형적인 라인업을 선보인 공연이기도 했다. 현장측의 미숙한 운영으로 8월 땡볕에 한시간씩 입장 딜레이를 두들겨 맞은 관객 일부는 "메탈리카 내놓으라"며 무대 위로 물병을 던지는 추태를 보였으며, 툴은 이후 2018년까지 한 번도 내한하지 않았다.[39]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 일시적으로 메탈리카의 안티가 늘었다.

7.3. Summer Tour(2013)


[image]
Summer Tour @ Seoul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9 시티브레이크

일시
2013년 8월 18일
당시멤버
헷필드/울리히/해밋/트루히요
장소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관객
-
셋리스트
Hit the Lights
Master of Puppets
Holier Than Thou
Ride the Lightning
Fade to Black
The Memory Remains
Cyanide
Welcome Home(Sanitarium)
Sad but True
...And Justice for All
One
For Whom the Bell Tolls
Blackened
Nothing Else Matters
Enter Sandman
앙코르
Creeping Death
Fight Fire With Fire
Seek and Destroy
2013년 8월 17~18일에 열리는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에 둘째날 헤드라이너로 공연했다. 공연 셋리스트 제임스의 입국지연 및 그날이 생일이었던 스탭에게 깜짝파티를 해준다는 이유로(...) 30분이나 늦게 무대에 올랐지만 대신 예정시간 2시간을 훌쩍 넘겨 공연했다.

7.4. Worldwired 투어(2017)



Worldwired @ Seoul w/ BABYMETAL
일시
2017년 1월 11일
당시멤버
헷필드/울리히/해밋/트루히요
장소
서울 고척 스카이돔
관객
약 18,000명
오프닝
(BABYMETAL)

BABYMETAL DEATH
Catch Me If You Can
Megitsune
Gimme Chocolate!!
KARATE
Road of Resistance
셋리스트
(*:라이브 데뷔)

Hardwired
Atlas, Rise!
Sad but True
Wherever I May Roam
The Unforgiven
Now That We're Dead*
Moth Into Flame
Harvester of Sorrow
Halo on Fire*
The Four Horsemen
One
Master of Puppets
For Whom the Bell Tolls
Fade to Black
Seek and Destroy
앙코르
Battery
Nothing Else Matters
Enter Sandman
  • 10집 프로모션 투어로, Dream No More를 제외한 1CD의 수록곡 전곡이 연주되었다. 6~9집 수록곡은 배제되었다.
  • 공연기획사는 액세스 엔터테인먼트이며, 오프닝 게스트는 일본의 아이돌 BABYMETAL이었다. 일본인 팬들이 이들을 보러 오기도 했으며, 2006년 삼복 더위에 개고생을 하고 간 TOOL에 비하면 꽤 달리는 타입의 음악을 선보이는 그룹이어서인지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 BABYMETAL의 세션밴드인 KamiBand의 기타리스트가 첫 곡인 BABYMETAL DEATH 직후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전 잠시 Master of Puppets의 트윈기타솔로를 연주하여 호스트를 리스펙트함과 동시에 관객들의 집중도를 휘어잡으며 메탈리카 팬들의 환호를 얻어냈다.
  • 한국 공연이 늘 그렇듯 입장 지연으로 불평이 있었으며, 오프닝부터 본공연에 걸쳐 약간의 사운드 문제가 있었다.
  • 보통 메탈리카의 공연은 Enter Sandman이 끝난 후 앵콜 곡을 3개 정도 연주하면서 마지막을 Seek & Destroy로 장식하는데, 이번 공연의 경우 Seek & Destroy를 끝낸 후 앵콜을 유도한 다음 Battery를 필두로 Nothing Else Matters-Enter Sandman으로 공연을 마무리하였다.

8. 기타


  • 2016년, 메탈리카 멤버들이 최고급 남성정장 브랜드인 브리오니의 모델이 되었다.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간지 작살. 링크
  • 비틀즈의 노래와 메탈리카의 음악 스타일을 적절히 커버한 밀워키 출신 카피밴드 비탈리카가 그들을 카피한 대표 밴드다. 메탈리카가 소송을 걸 법도 한데 오히려 비탈리카가 자신들의 음악을 커버해줘서 무척이나 고마워했다고. 심지어 비틀즈 앨범 판권을 가지고 있는 소니뮤직에서 비탈리카에게 소송을 걸었는데 메탈리카가 비탈리카 측의 입장을 변호해줘서 이 역시 원만하게 넘어갔다. 역시 대인배 메탈리카. 오오오. [40] 비틀즈의 저작권 관리가 워낙 빡세다보니 소니 측에서도 해당 프로젝트를 심각한 저작권 침해행위로 보고 소송을 걸긴 했으나,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자신들도 계면쩍을 정도로 지나치게 시덥잖은(?) 사건이다보니 흐지부지 끝난 감도 없지 않은 헤프닝이다.
  • 왠지는 몰라도, 스래쉬 메탈 BIG 4중에서 커버를 가장 맛깔나게 잘한다는 인식이 있다(...) Garage.inc 앨범 때문에 그런 듯.
  • 의 BGM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비단 메탈리카뿐만 아니라 당대 미국 헤비메탈 넘버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것에 가깝지만). 가령 둠1에서 유명한 곡인 1에피소드 맵1 BGM의 메인 기타리프는 No Remorse 혹은 Master of Puppets의 기타리프를 차용했다는 설이 중론이다. 둠의 미디 BGM 작곡자는 바비 프린스라는 사람이지만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의 쌍두마차였던 존 로메로가 메탈 리스너였기 때문에 그의 입김이 미쳤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 80년대 초반에 부른 Seek & Destroy와 2009년에 부른 Seek & Destroy를 비교해보면 사람 목소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 수 있다. (2005년이라고 나오는 것은 'We are scanning the scene in the Seoul tonight' 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2006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에 내한 왔을 때의 공연인 듯하다. Seek & Destroy는 라이브에서 부를 때마다 원 가사의 'City' 부분을 공연하는 도시의 이름으로 바꿔서 부른다.) 링크
  • [41]
  • 최근에 유럽에서 2012 European Black Album Tour라는 투어를 돌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셋리스트 도중 5집을 통째로 다 연주한다. 마지막 트랙 'The Struggle Within'으로 시작해서, 첫 트랙 'Enter Sandman'으로 끝나는 그야말로 5집의, 5집에 의한, 5집을 위한 투어.[42] 놀랍게도 제임스의 보컬이 예전 전성기 때로 돌아갔다. 91년의 맷돌 가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로드, 리로드 때의 기량을 회복하여 2000년 이후 최상의 컨디션인듯. 라스의 드럼도 차츰 돌아가는 기미가 보인다.[43]
  • 메탈리카가 헤드라이너가 되어 직접 여는 락페스티벌이 있다. 이름하여 Orion Festival. 메탈리카가 오리온 페스티벌을 개최하게 된 취지는 후배 밴드들을 소개하고 양성함과 동시에, 팬들에게 새로운 메탈리카의 도전과, 락페스티벌의 즐거움을 제공해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음악은 47초부터
최근 들어선 오프닝 때 아예 해당 클립을 스크린에 띄운다.
  • 2013년 12월 8일에는 남극(!)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사진 공연영상 남극에서 공연을 함으로써 메탈리카는 지구 상의 모든 일곱 대륙에서 공연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오디오슬레이브처럼 쿠바에서는 아직 공연을 못 하는 듯하다.
  • # 이들도 부녀자들의 모에선을 피할 수 없었다... 캐릭터를 상당히 잘 살려서 그렸다. 왼쪽부터 클리프 버튼, 커크 해밋, 라스 울리히, 제임스 헷필드.
  • 메가데스의 리더 데이브 머스테인은 메탈리카에서 해고 당한 이후 자기가 만든 곡의 리프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The Four Horsemen과 The Call of Ktulu 등에서 머스테인이 쓴 리프를 그대로 썼다.[44] 이후 열받은 머스테인이 쓴 곡들이 Mechanix[45][46]와 Hangar 18. 그 외에도 2집의 Ride The Lightning에도 데이브 특유의 스파이더 코드가 사용된 리프가 그대로 쓰였다. 이렇게 리프들을 메탈리카 앨범에 심어버려서 이후 20년 이상 둘 사이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고 메가데스가 Mechanix를 연주할 때 The Four Horsemen의 인트로를 연주하고 욕하면서 엿을 먹였다. 참고로 인터뷰에서 제임스 헷필드는 자신의 보컬 스타일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에게 리프 메이킹은 데이브 머스테인에게 화성학 이론은 클리프 버튼에게 각각 배웠다고 했다.
  • 멤버들도 나름 야빠들이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경기에서 가끔 볼 수 있다. [47] 그리고 2013년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시즌 때 리베라가 Enter Sandman을 등장음악으로 쓰는 인연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vs 뉴욕 양키스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리베라가 9회 초에 등판할 때 라이브로 Enter Sandman을 부르기도 했다. 2013년 부터 메탈리카 나잇 행사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경기에 매 년 하루는 반드시 열리는 행사이다. 경기전에 공연도 하고 메탈리카/자이언츠 기념품이 해당일 입장 선물이 된다. 예를 들어, 7년차 행사인 2019년의 경우, 4월 26일 양키즈 전이 메탈리카 나잇이고 비니를 선물로 준다.# [image]
  • 2017년 2월 4일(현지시각) 10집 월드투어 코펜하겐 공연 때 제임스 헷필드의 목소리가 심하게 맛이 가서 노래를 제대로 못 부르는 바람에 공연이 중단될 뻔했고 제임스도 이 목 상태로 지속하기엔 비싼 돈을 주고 공연을 보러 온 팬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며 공연을 중단하려 했으나,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공연을 끝까지 하였다.# 다만 다음 날 공연은 아쉽게도 취소되고 말았고, 제임스의 목상태 진단에 따라 향후 투어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허나 최근 메탈리카의 인스타그램 소식을 잘 살펴보면 그렇게 큰일은 아닌 듯. 다행히 잘 회복하고 투어 일정을 무난히 소화하는 것 같다.
  • 대형 헤비 메탈 페스티벌인 WOA(Wacken Open Air)에 참여한 적이 없다. WOA가 유럽 밴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메가데스도 무려 2회나 공연을 했는데 메탈리카는 아직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매년 매진을 기록 하는 WOA에서도 감당 못할 정도의 비싼 섭외 금액(즉, 몸값)이 가장 결정적이다.
  • Now That We 're dead는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의 은퇴 전 마지막 테마곡이 되었다. 스태파니 맥마흔에 의하면 레슬매니아에서 공연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무산이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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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weet Savage의 곡이며 메탈리카가 강하게 영향받은 여러 곡 중 하나.[2] 그런데, 메탈리카가 엄청나게 성공했으니 그 이름도 멋져 보이는 거지, 그 이름 자체만으로는 촌스럽다고 하는 시각도 많다. 말 그대로 스무살 무렵 메탈에 푹 빠진 애들이나 멋지다고 생각할 이름이라는... 나중에 밴드가 Load로 음악적 변화를 모색하려고 할 때 이 이름이 속박이 되기도 해서, 밴드 스스로가 우리는 메탈 밴드가 아니라 록밴드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3] 아주 잠시 로이드 그랜트가 기타리스트로 몸담고 녹음을 함께하였다. 로이드는 2011년 메탈리카 결성 30주년 행사에 나와 함께 Hit the Lights를 연주하였다.[4] 라스가 만들어서 MTV에 내보낸 영상이 대표적이다. #[5] 유저들이 금전적 손실을 입은 것도 아니며, 어차피 냅스터 계정은 인증도 필요 없는 익명 계정이라 새로 파서 활동하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이 소송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트가 망했다는 것.[6] 비유를 들자면, 음원 불법 공유는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니 통신업체를 때려잡자는 수준이다. 다만 냅스터는 돈이 없어 제대로 붙어볼 만한 변호사를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공룡과 개미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 과연 냅스터가 음원 공유 외에 얼마나 쓰였는가 하는 점과, 냅스터 경영진이 그런 상황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미 냅스터는 유능한 변호사 하나 못 구할 영세 업체가 아니었다. 많은 법적 소송 건들과 마찬가지로 단편적인 정보로 선악의 문제로 판단해선 안 된다.[7] 크레딧에 데이브 머스테인을 넣기는 했지만 머스테인은 자신의 리프를 메탈리카의 곡에 넣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였다. 리프 사용 문제는 향후 20년 넘게 메탈리카와 데이브 머스테인의 관계를 악화시켰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8] 원래부터 메탈리카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9] 라스에게 저택 수영장을 금으로 칠하려고 돈이 더 필요하느냐는 조롱까지 나왔다.[10] 다만 케리킹은 냅스터 고소건에서 만큼은 라스울리히와 같은생각이었다고 한다. [11] Symphony and Metallica의 줄임말이다. 메탈리카의 주옥같은 명곡들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협연해 클래식의 장엄함과 메탈의 날카로움을 한데 묶어 만든 라이브 앨범이다. 라이브 앨범이지만 신곡도 두 곡 포함되어 있다.[12] 클리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발매 됐다. 초기 메탈리카의 클리프의 절륜한 연주를 여과 없이 들어 볼 수 있다.[13] 그 유명한 1989년 시애틀 라이브와 1992년 샌 디에고 라이브, 1993년 멕시코 시티 라이브가 수록되어 있다.[14] 영어로 번역하자면 French for One Night. 실황 DVD/블루레이/Death Magnetic 앨범 포함 디럭스 에디션 세 가지 형태로 프랑스에서만 발매되었다. 그런데 뭐 수입판매 돼서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15]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랙스, 슬레이어의 합동 공연 실황이다.[16] 2009년 캐나다 퀘벡 시 공연 실황이다.[17] 메탈리카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앨범 중 최고의 레어 아이템으로 한때 30만 원을 호가하기도. 물론 지금은 'Garage Inc.' 발표로 가치가 하락하기는 했다. 팬 서비스 차원이자, 198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을 대신해 새롭게 영입된 제이슨 뉴스테드와의 호홉을 맞추는 차원으로 전세계 3000장만 찍어냈다. 노래는 대부분 데뷔 전 차고에서 연습하던(Garage Days) 옛날 락음악을 메탈리카식으로 리메이크한 곡들이다.[18] 'The $5.98 E.P.: Garage Days Re-Revisited'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 앨범을 추가로 찍어달라는 메탈리카 팬들의 요청이 쇄도. 결국 이 앨범에다 각종 싱글의 B-side로 발표되었던 곡들, 그리고 그 전에 발표한 적이 없는 리메이크 곡들을 2CD로 묶어 발표한 앨범이다. 공식 스튜디오 앨범은 아니지만 Load, ReLoad로 살짝 녹아내렸던 그들의 위상이 다시금 소폭 반등하기도 했다. 고평가 받는 앨범이다. (Master of Puppets의 경우 곡도 괜찮고 메탈리카의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나있지만, 녹음 퀄리티나 재해석의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다. 애초에 리메이크 앨범인 만큼 멜로디의 완성도가 높고 그걸 상당히 뛰어나게 재해석한 거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물론 St. Anger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wiki:"지못미"[19] 한국판 음반에는 Clean Version이라는 딱지가 별도로 붙어있으며 수록곡 So What의 가사 중 욕설 부분이 비프 음 처리 되어있다. [20] 9집 Death Magnetic에 수록되지 못한 곡들 네 곡이 러프 믹스로 수록되어 있다.[21] 비틀스, 오아시스(밴드), 딥 퍼플, AC/DC 등 여러 선후배 밴드의 커버 메들리가 담겨 있다.[22] 제대로 된 커버는 아니고, 오아시스를 좋아하던 라스 울리히가 술을 한 잔 걸치고 대충 불러 본 곡이다. 팬클럽 한정 박스 셋 부틀렉에 수록되어 있다.[23] 원래 라스와 제임스가 프로젝트로 밴드를 돌리고 있었는데 지지부진한 상태로 지내다가 몇 개월 후 론과 머스테인이 들어오면서 제대로 메탈리카가 시작되었다.[24] 왜 갑자기 론의 연주력을 문제삼기 시작했느냐에 대한 한 가지 설로는 클리프 버튼을 영입하기 위해 론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론의 연주력을 문제삼기 전에 클리프 버튼이라는 베이시스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를 영입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근거지를 옮겨야 하는데 마땅한 이유를 붙여서 론을 쫓아내고 밴드의 근거지를 이동하였다는 것이다.[25] 탈퇴 이후 1986년부터 1988년까지 Phantasm이라는 스래쉬메탈밴드에서 활동하고 앨범도낸걸로 보인다.[26] 취미생활로 연주를 했겠지만 메탈리카 이후 음악계를 거의 떠났던 사람임에도 거의 30년만에 선 무대에서 연주를 제대로 하고 있는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론의 연주 실력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수준을 돌파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뒤에도 데이브 머스테인의 메가데스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친분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27] 현재도 투시노 비행장이 있긴 하지만,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축구팀의 홈구장인 옷크리티예 아레나가 들어서는 등 일부 부지가 개발되기도 했다.[28] 정확히는 이 무대의 오프닝을 뛴 판테라까지 5개 밴드다. 판테라는 당시 Cowboy from hell로 성공적인 이미지 체인지를 성공한 뒤 여기서 그야말로 엄청난 무대를 선보이며 소련은 물론 본국인 미국 헤비메탈 씬에도 엄청난 임팩트를 선사했다.[29] Creeping Death의 브리지 가사인 Die! Die!를 그 수십만은 될법한 소련 관중들이 맨앞에 군인 정복을 입은 안전요원들 앞에서 외쳐댔으니 영상으로만 봐도 장관이다.[30] 메탈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밴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악질 팬들이 밴드의 우월함을 보이기 위해서 관중이 벌떼처럼 모여있는 공연 영상이나 사진을 끌어오는데 Woodstock, Rock in Rio, Monsters of Rock 같은 페스티벌의 자료들이다. 메인 스테이지에 오르기만 한다면 그 벌떼같은 관중을 필연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다.[31] 메탈리카 특유의 파워와 기승전결이 살아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메탈 팬이라면서 이 음반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32] 참고로 너바나는 무명 시절부터 메탈리카와 친분이 있다. 하지만 Load와 Reload의 사운드는 너바나보다는 앨리스 인 체인스의 영향이 더 강한 편이다.[33] 이쪽은 예전에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와의 콜라보로 괜찮은 성과를 낸 적이 있긴 하지만...[34] 남대문시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첫 내한때 가이드가 가고 싶은 장소가 있냐고 물어보자 메탈리카가 '악기를 파는 곳을 보고 싶다'고 했고, 당시 낙원상가 앞에는 국밥집 등이 밀집한 시장골목이 있었다. 가게 앞에 걸려 있는 돼지머리를 본 멤버들이 신기해서 방문한 것.[35] 90년대 중후반에는 S&M 라이브를 제외한 모든 공연에서 브레이크 지점을 기준으로 반을 잘라 앞부분만 연주하였다. 이후 다시 완곡으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36] 당시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절대다수의 영상이 144p~240p 선에서 놀았고, 360p~480p면 고화질에 속했다. 이 공연은 720p로 방송되었다.[37] 훗날 이를 회상하면서 특히 제임스가 "연주를 하면서도 전율을 느꼈다"고 고백했을 정도.[38] 툴은 같은 시기 해외에서 킹 크림슨과 공동 헤드라이너로 투어를 도는 거물이었다.[39] 보컬리스트인 키넌이 마지막 곡을 앞두고 뭐라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사람에 따라 말이 엇갈린다. 한국 관객의 리뷰에 따르면 "This is the first time in Korea and it will be the last time in Korea"라 했다 하고, 또 다른 관객의 말에 따르면 "Not last"라 정정하였다 하고, 다른 관객의 리뷰에 따르면 "This is the first time in Korea and we appreciate your warm welcome. This won't be the last time in Korea."이라 했다고 한다. 진실은 저 너머에.[40] 음악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위의 사건도 그렇고 불따라는 행위 자체가 음악가들에게 있어서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41] 이 곡은 사실 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자신들이 젊은 시절 메탈리카를 좋아했던 정도로 아이유가 좋다'라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본의아니게 노래 제목이 어그로를 끌어 댓글이 아수라장이 되었다(...)[42] 블랙 앨범 수록곡만 연주하진 않는다. 주로 Hit the Lights로 스타트를 끊고, 4~5곡을 선보이고 블랙 앨범 인트로 영상과 함께 시작되며, Enter Sandman 이후엔 3곡 정도 더 하며 마무리를 한다. 물론 공연의 끝은 Seek & Destroy[43] 그러나, 제임스는 투어 중후반이 되면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고, 라스의 2000년도 중반까지만 해도 묵직하게 들렸던 베이스 드럼 사운드는 이제 틱틱거리는 개미소리로 들리는 것으로 보아, 결국, 나이에 따른 체력 저하는 이겨내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44] 앨범을 보면 작곡에 머스테인이 들어가 있다.[45] 사실은 가사만 다른 The Four Horsemen과 동일한 곡. 템포가 더 빠르다.[46] 사실 데이브 머스테인이 메탈리카를 나오기 전에 쓴 곡이다. 데모 테잎인 No Life 'Till Leather의 곡 목록을 보면 Mechanix가 있다[47] 메탈리카의 출신지는 LA지만, 클리프 버튼이 합류조건으로 샌프란시스코를 활동거점으로 삼게 된 후 쭉 샌프란시스코를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됬는데, 당시 스래쉬 메틀의 메카로 불리던 베이 에이리어 지역이 바로 이 곳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쟁쟁한 이곳 출신 스래쉬 밴드들과의 교류도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