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수산성
1. 개요
일본의 중앙성청 중 하나. 한국의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수산 사무)에 해당한다.[1] 舊 농상무성에서 분리되었다가 1943년 상공성의 일부 사무를 이어받아 농상성이 설치, 전후에 다시 농림성으로 분리되었다.
식료의 안정공급의 확보, 농림수산업의 발전, 농림업자의 복지 증진, 농산어촌 및 중간지역 등의 진흥, 농업의 다면에 걸친 기능의 발휘, 삼림의 보존배양 및 삼림생산력의 증진과 더불어 수산의 적절한 보존 및 관리를 꾀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농림수산성설치법 제3조). 약칭은 농수성.
설립 초기에는 농림성이었으나 200해리 수역문제 등 수산행정의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1978년 7월 5일 현재의 성명으로 바뀌었다.
농업・축산업, 임업, 수산업을 비롯해 식품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공급, 농촌의 진흥 등을 관장한다. 광의의 '먹거리' 안전에 대해서는 농수성소비・안전국도 관여하고 있지만 협의의 '식품' 안전에 대해서는 후생노동성 의약식품국이 관장하고 있다.
경마의 감독관청이기도 하여, 경주명에 '농림수산성상전'이 붙는 경주도 있다. 지방경마의 경우는 '농림수산대신상전'이 된다. 국영경마 시절에는 경마부가 경마를 주최한 적도 있다.
2. 역사
3. 농림수산성의 저주
각료로서 중요성이 높은 한편, 취임한 정치인은 취임 중 불상사에 직면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거나 퇴임 후 불행을 맞기도 한다. 그래서 매스컴에서는 '귀문(鬼門)'이나 '저주받은 자리(呪われたポスト)'라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가타야마 데츠 내각의 히라노 리키조 농림대신이 니시오 스에히로 내각관방장관과 대립하다 GHQ의 의향을 따라 카타야마 테츠 수상에게 파면당한 후, 공직 추방의 쓰라림을 당했다. 히로카와 고젠 농림대신은 요시다 내각에 있어서의 요시다 수상징벌 동의에 결석해 본회의에서 가결되었기 때문에 파면되어 빠가야로 해산에 의한 해산 총선거로 낙선했다. 마지막 농림대신이자 초대 농림수산대신인 후쿠다 다케오 개조내각의 나카가와 이치로는 퇴임 5년 후 57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했다. 요도호 공중 납치 사건의 인질 대역으로도 알려진 야마무라 신지로는 퇴임 8년 후 차녀에게 살해당했고, 그 차녀도 자살했다. 2019년에는 이와 정 반대로, 구마자와 히데아키 전 차관이 44세의 히키코모리 아들을 말다툼 끝에 흉기로 살해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성청개편 후 2001년에 취임한 다케베 쓰토무는 광우병 문제를 둘러싼 실언으로 비판을 받아 이듬해 내각개조에서 사실상 경질, 후임인 오시마 다다모리도 여러 의혹으로 경질되었다. 뒤이어 카메이 요시유키는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쓰러져 사망했으며 2004년 취임한 시마무라 요시노부는 이듬해 우정해산 직전 각료 회의에서 중의원 해산에 반대해 서명을 거부, 사표를 제출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에 의해 파면당했다. 부대신(차관)에서 승격한 이와나가 미네이치도 퇴임 후에 헌금 문제를 지적받았다. 2005년 취임한 나카가와 쇼이치(초대 농림수산대신 나카가와 이치로의 아들)는 무난히 직무를 수행하고 퇴임했지만 4년후 재무대신 사임, 쓰라린 낙선을 당하고 2009년 10월 아버지 이치로보다 1살 젊은 56세로 급사했다.
특히 2006년 9월 26일에 발족한 아베 내각에서는 농상의 교대가 빈번히 일어났으며 처음 취임한 마쓰오카 도시카쓰는 국회에서 광열수비문제를 추궁당해 전후 각료로서는 처음으로 재임 중 자살, 와카바야시 마사토시의 임시대리에 이은 후임 아카기 노리히코도 자신의 여러가지 의혹으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패배를 불러왔다는 이유로 2007년 8월 1일 경질, 2009년 제45회 중의원 총선거에서도 낙선했다.
그리고 와카바야시 마사토시 환경대신의 겸임을 거쳐 8월 27일 발족한 아베 개조내각에서는 엔도 타케히코가 취임하지만 오키타마공제조합금 부정수급의혹을 받아 9월 3일 사임, 재임기간 8일이라는 근래에는 드문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후임은 또 다시 와카바야시. 같은 정권에서 임시겸임을 포함하면 3개월 남짓한 동안 3번째의 농상 취임이었다. 와카바야시는 퇴임후 2010년 4월 2일, 참의원본회의 부정투표 문제로 의원 자리에서 쫓겨났다.
2008년 8월, 오타 세이이치에 의한 사무소비 문제도 부상해, 재임중에 사고미 부정 전매 사건에 관한 발언이 문제시되었다.9월 19일, 사고미의 부정 전매의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것으로, 후쿠다 야스오 수상에 사표를 제출. 오오타도 아카기와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낙선했다. 오오타의 사임 후에는 내각관방장관을 지낸 마치무라 노부타카가 임시대리를 맡고 있었으나 아소 다로 내각에서 농림수산대신에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는 이 사태에 "누구한테서 사무를 이어받아야 하지?"라며 취임시 인터뷰에서 이를 비꼬았다. 2009년 탄생한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의 아카마츠 히로타카는 이듬해 구제역문제의 늑장 대응으로 비판을 받아 각료의 태반이 잔류한 6월의 간 나오토 내각에서 책임을 지는 형태로 퇴임했다. 후임으로 부대신에서 승격한 야마다 마사히코는 직무 그 자체는 무난히 수행했지만 2010년 9월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수상과 대립하는 오자와 이치로 후보를 지원했기 때문에 불과 3개월만에 퇴임했다. 간 제1차 개조내각에서는 가노 미치히코가 직무를 무난히 수행했지만 중국서기관의 스파이 의혹에 직면해 2012년 6월의 노다 제2차 개조내각의 발족에 따라 퇴임, 군지 아키라가 농림수산대신에 취임했다. 짧지만 직무 자체는 무난히 수행했던 야마다나 스파이 의혹에 직면하기 전의 카노가 1년 이상 직무를 무난히 수행했듯이, 민주당 정권에 들어와서는 불상사에 의한 사임이나 그 후의 불행은 줄어들었다.
이번에는 재직 이후에 불행이 시작되어 2020년 12월 전 농림수산대신이었던 요시카와 다카모리 의원이 뇌물수수 의혹으로 의원 직을 사퇴했으며, 전 도치기 2구의 니시카와 고야가 뇌물수수 의혹이 나왔다.
또한 일본국 헌법 하에 지금까지 파면된 장관은 5명인데, 그 중 3명이 농림수산성 장관이다.
4. 외청
- 임야청(林野庁): 대한민국 산림청에 해당한다.
- 수산청(水産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