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백 대럴
[image]
1966년 8월 20일 ~ 2004년 12월 8일
[image]
절친 잭 와일드와 함께.
1. 개요
본명은 대럴 랜스 애벗(Darrell Lance Abbott).
전 판테라와 데미지플랜에서 활동했던 비운의 천재 기타리스트. 판테라와 데미지 플랜의 드러머였던 비니 폴과는 친형제 간이다.
팬들이 떠올리는 그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면도날 목걸이, 딘 ML 모델 기타와 랜달 앰프로 대표된다.[1]
2. 특징
비극적인 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90년대 메탈을 주름잡았던 기타리스트. 험상궂게 생긴 외모[2] 와는 달리 실제로는 매우 성실하고 착한 기타리스트였다.[3] 거친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헤비메탈 계에서 실력으로나 인간성으로나 안티가 보기 드문 인격자. 공식적으로 그를 씹은 사람은 잉베이 말름스틴과 필립 안젤모 정도. 최고의 기타 솔로 선정시 반드시 거론되는 곡인 'Floods'의 기타 솔로 완성도를 베이시스트 렉스 브라운의 연주로 돌린 건 그의 인격을 알 수 있는 일화[4]
블루지한 느낌을 바탕으로 한 리프와 특유의 그루브, '면도날'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만든 피킹 하모닉스와 스퀄링이 연주의 특징이다. 거기에 미들을 줄이고 하이와 로우를 최대로 올린 톤은 카피하기 무척 어려운 유니크함이 있다. 물론 메탈리카를 포함한 다수 스래쉬 밴드 기타리스트 들이 V형 이퀄라이저를 사용하지만 다임백의 톤은 카피해보면 의외로 난해한 면이 있다. 특히 그루브감을 살리려면.
그를 평하는 기타리스트들
다임백이 영향을 받은 기타리스트로는 랜디 로즈, 에디 밴 헤일런, 키스의 에이스 프레일리가 있다. 여기서 다임백 대럴의 평을 볼 수 있다.
이후 필립 안젤모와의 불화로 판테라가 해산한 뒤 드러머인 형 비니 폴과 데미지플랜을 만들었지만, 공연 중 판테라의 해체의 원인이 다임백 대럴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광팬 나단 게일이 난입해서 쏜 총에 맞아 무대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사고 당시 나단 게일이 권총으로 쏜 15발 중 3발이 다임백 대럴에게 명중했다. 나단 게일이 쏜 총에 형이자 드러머인 비니 폴도 어깨를 맞아 총상을 입었고 경비원을 포함 관객 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7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나단 게일은 경비원의 총에 사살당했다. 공연개막 직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라 제대로 대응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관객들 중에서는 공연 연출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고...
더 문제는 사적 감정이 겹친 안젤모의 실언이었다. 사건 발생 며칠 전 필립 안젤모가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판테라 해체의 원인을 이야기하다 불화의 극에 달한 다임백을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하필 판테라 사생팬인 게일이 듣기에 이를 팬들에게 다임백을 죽여라라는 암살 명령이라고 과대망상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 존 레논을 살해한 마크 채프먼도 그러지 않았는가.[5] 이 때문에 수많은 사건사고를 쳐 이 바닥에서 인성좋기로 유명한 대럴,비니 애봇 형제조차 참지 못한 해체원인 1순위인 주제에 아무 생각 없는 폭언을 한 안젤모는 폭풍까임과 함께비니가 저놈 오면 죽여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뛴 탓에 장례식 참석도 못하게 되었고... 다임백 사망 이후 인터뷰에서 엉엉 우는게 고작이었다.
절친한 친구 잭 와일드는 'In this river'라는 곡으로 다임백을 추모했다. 뮤비에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한(물론 본인들은 아니고) 두 꼬마의 모습과(어린 잭 와일드의 모습이 정말 필견) 공연 장면들이 교차편집되는 가운데 잭 와일드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분노와 슬픔으로 도끼로 피아노를 때려부수는 잭 와일드의 모습도 또한 명장면.
참고로 니켈백의 곡 중 side of a bullet이란 곡은 다임백 대럴에 대한 추모와 그 범인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는 곡이다. 중간의 기타 솔로는 다임백의 리프를 샘플링 한 것. '그의 형이 보고 있었는데 너는 어떻게 방아쇠를 당겼느냐, 소식을 듣고 나는 울면서 칼로 총알에다 네 이름을 새겼어'라는 가사.
[image]
워시번에서 발매된 시그니쳐도 있으나[6] 가장 오래 사용했으며 사망 직전까지 사용한 기타는 Dean의 ML 모델이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기타 바디가 ML과 그를 기초로 한 다임백 시그니처 모델과 레이저백 시리즈.
다임은 10대 시절 동네 기타 컨테스트에서도 DEAN의 ML 모델로 입상했으며 이후에도 ML 바디를 개조해서 사용했다. 게다가 사망 직전까지 DEAN의 시그니처 라인업 외에 직접 디자인한 레이저백[7] 시리즈를 런칭하기도 했다. 레이저백 라인의 특징은 날카로운 모서리 디자인과 12프랫에 자리한 면도날 인레이. 헌데 DEAN은 다임백 사후에도 계속 새로운 시그니쳐를 만들어내는데다 가격또한 개념이 없어서 사골 다임백이냐고 까이는 면도 있다. 중국산 OEM제품이 100만원이 넘어가는 모델도있고.
참고로 예명인 Dimebag의 본뜻은 10센트(Dime. 10센트가 짜리가 들어가는) 봉지(Bag)라는 뜻으로 10불 어치의 마리화나라는 뜻의 속어라는 말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미국 남부(텍사스 지역 인근)에서 방울뱀(사이드 와인더)을 다이아몬드백이라 부르는데서 다이아몬드백->다임백이라는 식으로 만든 예명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초기에는 다이아몬드백 대럴이라는 예명을 쓰기도 했다.
[1] 딘 기타는 10대 시절부터, 랜달앰프는 기타 컨테스트에서 우승상품으로 받은 이후 애용한 듯하다.[2] 십대~이십대 초반 사진을 보면 의외로 꽃돌이 타입이기도 하다.[3] 외모 만으로 보면 의외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를 아는 이들은 다들 대인배로 칭송했다.[4] 실제로 렉스 브라운의 연주가 엄청난 그루브를 보여주긴 한다. 그런데 다임백의 공격적인 연주는 그 그루브함이 경이로울 지경이다.[5] 흥미로운 사실은 다임백 대럴의 기일이 존 레논과 같은 12월 8일이라는 것이다. 사망 원인도 극성 팬의 총격이라는 점까지도...[6] 90년대 중 후반 무렵 딘 기타 브랜드가 워시번에 병합되면서 이전의 딘 기타 모델 자체도 워시번 브랜드로 나오고 그로 인해 인도스먼트가 워시번 쪽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워시번기타를 메인으로 사용한 시기가 있었다. 이때 대표적인 모델이 333 시리즈.[7] (레이저=면도날)+다임백의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