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1. 唐衣
2. 糖衣


1. 唐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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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중전 유씨가 입었던 당의. 길이가 매우 길고 품이 넓으며, 당의를 처음 도입했을 때에는 용보를 '''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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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순원왕후 김씨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1]가 입었던 자적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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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민속자료 103호 전왕비당의(傳王妃唐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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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후기 여성 예복(禮服)의 하나로, 그 동시에 치마저고리 위에 겹쳐입는 저고리 형태의 '''겉옷'''. 사극을 보면 곤룡포, 단령과 더불어 가장 많이 보이는 옷이기도 하다. 실록에서 당의의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때는 광해 2년으로, 조선 건립시기에서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입었던 장삼(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단삼)을 대체하라는 명이 나온다.

광해 2년(1610년) 5월 7일

명부(命婦)의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의 복식은, 평시에 있어서는 마땅히 장삼(長衫)을 입고 머리를 수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일이 촉박하여 형편상 구비하기가 어려울 듯하니, 임인년 가례(嘉禮) 때에 행했던 예에 따라 양이엄(涼耳掩)에 당의(唐衣)를 입고 입시하도록 하라.

이후에도 소례복으로 계속 입게되는 장삼을 제외하면, 왕비와 세자빈의 평상복으로 단삼이 당의로 대체된다. 당의의 옷감과 색은 계절, 빈부와 신분에 따라 구별되었는데, 후궁의 것은 금직(金織)하거나 금박(金箔)을 찍고, 상궁의 것은 짙은 초록색으로 지어 흰색 거들지를 달고 금박을 하지 않았다. 사대부 부인들의 당의의 경우 색을 제외하면 상궁의 당의와 마찬가지이며, 기존의 단삼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품계와 같은 흉배를 달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여름에는 홑당의를 입고 겨울에는 겹당의를 입었는데 단오 전날 중전이 홑당의로 갈아입으면 단오날 궁중 사람들 모두 홑당의로 갈아입었고 추석 전날 중전이 겹당의로 갈아입으면 추석날 궁중 사람들 모두가 겹당의로 갈아입었다고 한다. 또한 평복을 모두 착장한 후에 입었는데, 이렇게 되면 상의만 총 5겹이다.[2]
흔히들 드라마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왕비와 공주, 세자빈의 당의에는 양어께와 가슴, 등에는 왕의 것과 같은 용보나 봉황보를 다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왕비의 당의에 용보를 달았던 시기는 의복 개혁을 시행해 용보의 크기가 작아진 고종 때로 추정된다. 그리고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왕비 외에도 그 외 비빈, 왕녀도 용보를 달았다.
과거에 당의는 당의(唐衣)에서 당나라 당(唐)이란 글자 때문에 당나라에서 유래된 옷이라고 추측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연구 결과 명나라 멸망 전까지는 명나라 왕실 여성 예복인 원령포를 변형한, 상술한 단삼이라는 단령 형상의 옷을 주로 치마저고리 위에 착용하였으며, 당의는 명나라와의 교류가 거의 단절되기 직전이던 광해군 시기에 더 이상 명나라에서 예복을 받아올 수 없게 되자 조선 초중기 때 만들어진 장저고리를 변형시켜 도입하였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이다.출처필요 다만 전문가 및 한복에 관심이 많은 준전문가들을 제외하면 정보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 탓에 여전히 당나라 유래설로 알며 이를 미는 사람들이 더 많다.
중문,영문 Wikipedia, 바이두는 위와 같은 '당' 글자를 이유로 당나라에서 유래된 옷이라 추측하거나 단정 짓고 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는 거의 모두 일상적으로 나오며, 현대에도 여아들의 돌복이나 어린이 한복으로 많이 입기 때문에 인지도는 매우 높다. 다만 성인 한복은 위의 4~5번째 사진과 같은 긴 저고리 형태가 정형화되어 일반인은 거의 착용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도 카라기누(唐衣)라 하는 의복이 있는데, 한자는 같지만 이것은 당나라에서 전래된 반비가 변형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당의와는 전혀 다르다. 길이가 짧은 상의로 쥬니히토에를 입을 때 위에 덧입었다.

2. 糖衣


Frosting, Icing
당의정할때의 그 당의다.

[1] 조선왕조의 마지막 공주이다. 이후로는 옹주만 태어난다.[2] 정조 시기 기준으로 가슴가리개 → 속적삼 → 속저고리 → 저고리 → 당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