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군부인
[clearfix]
조선의 제15대 왕인 광해군의 비. 남편이 인조반정으로 폐위돼 왕에서 일개 왕자 신분인 군(君)으로 격하되면서, 그녀 역시 왕비에서 군부인으로 강제 격하됐다.
1. 광해군과의 혼인
1576년 8월 15일(음력 7월 21일), 판윤 류자신의 딸이자 류희분의 여동생으로[류자신에게] 태어나 선조 때에 광해군의 부인(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가례를 올렸다.
2. 세자빈이 되다
그 뒤 광해군이 세자에 책봉되자 왕세자빈(王世子嬪)이 되었으며 그 후 광해군이 1608년, 34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그녀는 왕비(王妃)로 진봉되었다.
3. 인조반정
1623년 4월 11일(음력 3월 12일),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이 반정(쿠데타)을 일으켜 광해군을 왕위에서 축출시키고 왕으로 즉위하면서 류씨도 남편과 함께 폐위/폐서인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
4. 그 이후
그 해 6월, 아들 폐세자 지(祬)와 며느리 박씨가 탈출기도 실패 후 목을 매 자결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결국 같은 해 10월 31일(음력 10월 8일), 폐위된 지 7개월여 만에 유배지에서 사망[1] 하였다. 경기도 양주시 적성동(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장사지냈으며, 폐비(廢妃)인 까닭에 왕릉(무덤)은 조성되지 않았다.
5. 사시(私諡)
2002년 11월 15일, 사이버 조선왕조라는 사이트에서 인터넷 논객들은 광해군을 '혜종 경렬성평민무헌문대왕(惠宗 景烈成平愍武獻文大王)'으로 추숭 복위하고, 폐비 유씨를 '소온사헌혜장왕후(昭溫思獻惠章王后)', 능호를 열릉(烈陵)으로하여 추숭하였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가상 사회에서 있었던 일이라 어떠한 공적인 권위는 없으며, 전주 이씨 왕실종친회인 대동종약원과도 아무 관계가 없으니 당연히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6. 야사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반대하고 친명배금을 주장'''했다고 한다.
'''불교를 신봉했고 "내생에는 두 번 다시 왕가의 며느리가 되지 않게 해주소서"라고 빌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남편과 같이 갖은 고생을 다 해서 겨우 왕비가 되었는데 남편은 후궁들만 좋아했다'''고 하니...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에게 자결하자고 주장하거나 광해군을 원망하거나, 아들 부부의 죽음을 듣고 '''화병으로 죽었다고 한다는 야사'''가 있다.
7. 문성군부인을 연기한 배우
- 장서희 - 서궁
- 사강 - 왕의 여자
- 한효주 - 광해, 왕이 된 남자
- 이시아 - 구암 허준
- 김희정 - 왕의 얼굴
- 김효서 - 화정
- 이세영 - 왕이 된 남자[2]
- 박민정 - 조선로코 녹두전
[류자신에게] 총 6남 4녀가 있었고 문성군부인 류씨는 딸로 셋째이다. 이들 형제자매를 살펴보면 이미 인조와 얽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먼저 장남인 류희갱의 손녀가 인조의 동생인 능원대군과 결혼한다. 또 차남인 류희발의 부인(새언니이자 올케)인 심씨는 심강의 딸로 조카인 심엄의 부인이 정원군의 처제다. 인목왕후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는 인목왕후 집안과도 연결고리가 형성된다.[1] 야사에 따르면 인조반정으로 폐출된 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광해군을 노려보듯 원망하였으며, 이로 인한 화병으로 유명을 달리하였다고 하거나, 스스로 음식을 거부해 아사했다는 설 등이 있다.[2] 원작 영화에 비해 드라마에서는 가상 인물임을 확실히 명시하고 있다. 고로 실존 문성군부인과는 다른 모티브된 캐릭터 정도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