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니히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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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모노가타리의 삽화, 이 장면 같은 경우엔 쥬니히토에 라기 보다는 약식이자 평상복인 코우치기(小袿)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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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니히토에 차림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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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니히토에 차림의 히나 인형. 이와 같은 같은 경우에는 제작시에 옷이 구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종이로 본을 대고 솜을 누빈다.
十二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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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구성
3. 나라 말 헤이안 초기의 복식과 착의법
4. 헤이안 시대 중기 ~ 후기 착의법
5. 헤이안 시대 말기 ~ 현재 착의법
6. 코우치기
7. 특징
8. 실제 착용 예
8.1. 쥬니히토에
8.2. 코우치기
9. 기타
10. 관련 문서


1. 소개


일본의 전통 여성 복식의 일종으로, 헤이안 시대 후기의 궁중여관(宮中女官) 및 황/귀족 부인들의 정장 겸 대례복이다.
이름대로 꼭 12겹이었던 것은 아니고, 충분의 일본어 발음 '쥬분'이 12의 일본어 발음인 '쥬니'와 비슷하기 때문에 12에 '많다'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옷을 겹쳐 입는 옷'''으로 인식되었다. 8겹에서 신분이 높아질수록 25겹까지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안에 입는 기본 옷 위에 겹겹의 옷을 겹쳐 입으니 여름에는 그야말로 찜통이며, 옷 자체도 20 ~ 30kg 정도 나간다고 하니 신부로서는 죽을 맛이다. 당대에도 평상복으로 겹수를 줄인 코우치기를 주로 입었다.
근현대의 일본 황실에서는 결혼식 때 이 의상을 입으며, 교토 등의 의상 스튜디오 같은 곳에서도 체험이 가능하다.

2.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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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역할인 코소데와 하카마 위에 겹겹이 껴입은 옷들은 10겹이면 10번, 5겹이면 5번씩 각기 끈을 묶는 게 정석이다. 1번 묶고 2번 묶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번거롭고 답답하여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자리 외에는 헤이안 시대 여성들 대부분이 옷매무새를 다듬고 난 뒤 마지막으로 모의 끈으로만 묶어 지냈다.[1]
특징으로 유사시에는 모의 끈 하나만 풀면 하카마 차림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이는 화재시에 유용했다.[2] 앉아 있는 자세에서 몸만 빠져 나가면 겹겹이 쌓인 옷들은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남아 있어서, 조명이 부실했던 시대에는 사람이 앉아 있는 걸로 착각하기도 했다. 이를 '모를 벗어 놓은 껍데기(裳抜けの殻: 모누케노가라)'라 하고, 겐지모노가타리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우츠세미가 이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우츠세미(매미 허물)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 애당초 우츠세미란 이름 자체가 '空蝉', 즉 매미 허물을 뜻한다.
나중엔 인술의 일종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무협물사극에서도 이따금 등장한다. 매미가 가지에 허물만 벗어놓고 사라지는 것과 같은 하여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핫토리 한조블리치쿠치키 뱌쿠야가 동명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3. 나라 말 헤이안 초기의 복식과 착의법


나라 시대와 마찬가지로 중국풍 옷을 입었고, 이는 헤이안 중기인 894년에 견당사가 폐지되고 국풍 문화가 유행하기 전까지 계속 유지된다.
1. 속옷 위에 겉옷(衣)를 입고 그위에 히라미(褶) 라는 속치마를 두른다.
2. 당나라에서 도입된 반비가 변형된 카라기누(唐衣)를 그 위에 입는다.
3. 모(裳, 치마)를 허리에 두른다. 이 당시의 모(裳)는 흔히들 아는 길게 끌리는 뒷치마 형태가 아니었으며, 앞치마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4. 허리에 소에오비(紕帯)를 두르고, 당나라에서 도입된 표(裱)가 변형된 히레(領巾)를 어께에 걸친다.

4. 헤이안 시대 중기 ~ 후기 착의법


견당사가 폐지된 894년 이후, 국풍 문화의 유행과 함께 이에 대한 급진으로 일본의 풍토에 맞게 옷이 변형되었는데, 현재 잘 알려진 헤이안 시대 말기 ~ 현재 착의법의 초석이 된다.
1.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 위에 하리바카마(풀을 먹여 뻣뻣하게 만든 하카마)나 우치바카마(생견[정견, 명주, 실크]을 다듬이질한 하카마)를 입는다.
2. 카사네이로에(히토에(單)의 다채로운 색상들이 깃, 소맷부리, 도련에 드러나 보이는 것)를 입는다. 이 시절에는 코소데(小袖)가 없었고, 히토에가 속옷 역할을 했다. 여름에는 히토에가사네라고 우치기를 생략하고 히토에만 여러 벌 껴입기도 했다.
3. 우치기(袿)를 입는다. 우치기는 우와기(上着, 겉옷)와 카사네우치기(중간)로 나누어졌다. 본래 카사네우치기는 최대 20겹 이상 껴입었지만, 헤이안 시대 후기부터는 이츠츠기누五衣로 줄이게 된다.
4. 모(裳)를 허리에 두른다.

5. 헤이안 시대 말기 ~ 현재 착의법


현대의 쥬니히토에는 헤이안 시대 말기 ~ 가마쿠라 시대에 정착된 착의법을 사용하고 있다.
  1. 코소데(小袖, 상의)와 나가바카마(長袴, 하카마의 일종)를 입는다. 미혼 귀족 여성의 나가바카마는 자주색. 기혼 여성은 붉은색.
  2. 히토에(単, 홑겹옷)을 그 위에 입는다.
  3. 이츠츠기누(五衣, 홑겹옷을 5겹 겹친 것)을 그 위에 입는다.[3]
  4. 우치기(袿)를 그 위에 입는다.[4]
  5. 우와기(上着, 겉옷)를 그 위에 입는다.
  6. 카라기누(唐衣, 짧은 겉옷)을 그 위에 입는다.
  7. 모(裳, 뒤로 늘어지는 긴 치마)를 그 위에 또 걸친다.(…)
이렇게 입은 옷의 무게는 대략 15~20kg. 이렇게 옷이 무겁기 때문에 사뿐사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옷이 많기 때문에 옷을 어떻게 겹쳐 입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의 배합이 나올 수 있는데, 이는 계절에 따라 다르게 맞췄다고 한다. 약 200여 가지의 조합이 있었으며, 이를 센스있게 잘 코디해서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 헤이안 시대 여인들의 중요한 패션 감각이었다.
헤이안 시대 여자들은 12~13세에 모기(裳着)라는 성인식을 치렀는데, 이 때부터 모를 입을 수 있었으며 어른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사이시(금색 머리 장식)를 꽂고 '올려 빗은 머리'로도 종종 번역되는 그 스타일은 '''행사가 있을 때''' 외엔 여관(뇨보)도 보통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길게 기른 머리도 포함되었는데, 신분이 높을 수록 머리를 길게 길러서 바닥까지 닿게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예의에 맞는 차림이었다고 한다(또한 이렇게 긴 머리는 당시 미인의 기준이기도 했다는 설도 있다). 반면 신분이 낮으면 머리를 짧게 잘랐고, 출가할 때는 이 긴 머리를 어깨 언저리에 닿게 잘라서 신분을 버렸음을 표시했다.

6. 코우치기


小袿
정식 쥬니히토에가 무겁고 불편했기 때문에, 궁중여관들을 제외한 귀족 여인들은 평상시에는 우치기까지만 입거나 더 간소한 옷을 입었고 부채도 종이부채로 가벼운 것을 사용했다. 이 중 코우치기(小袿)는 실내에서 편하게 지낼 때 주로 입었는데, 긴 속옷과 하카마 위에 적으면 1~3겹, 많으면 5~6겹 정도의 겉옷을 겹쳐 입는 정도였다.
습한 여름에는 평상복으로 히토에바카마(単袴)라고 해서 코소데를 입지 않은 알몸위에 하카마를 입고 그위에 홑옷을 걸쳤다. 하카마는 허리에 묶어서 가슴을 드러내거나 가슴 위에 묶기도 했다.

7. 특징


쥬니히토에는 무겁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홑겹의 옷을 겹쳐입는 구조이기 때문에 생각한 것보다는 옷감이 가볍다. 특히 소례복 차림의 코우치기 따위를 입을 때는 옷감이 널럴하고 바지통도 넓어 현대 기모노보다는 편하고, 임신부 역시 제약이 없기에 몸집이 커도 작아도 입을 수 있었고, 옷감의 폭이 넓고 여유와 풍요의 시대답게 옷이 활동성보다는 느긋히 앉아 편안함을 도모하는 것에 가깝다고 해석된다.[5]
쥬니히토에의 흔적은 무가가 권력을 잡으면서 무가식의 '격식 차림'으로 쳐지는 겉옷인 '우치카케(打掛け)'를 코소데 위에 걸쳐입는 것으로 대신하게 된다. 옷감 소모가 비교적 적으며 품위 있고 한겹만으로 예장이 되며 활동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6]
현대의 쥬니히토에는 일본 황실, 특히 황후와 황자비, 공주의 결혼예복이며 동시에 특별행사에 입는 옷인데, 조선시대의 왕비와 세자빈이 입었던 적의(翟衣)와 비슷한 케이스다. 단, 보통 황족이 아닌 이상 전통 일본식 결혼식에는 순백색의 우치카케를 입거나 이로우치카케를 입으며 쥬니히토에를 고집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맨 위의 히나 인형 사진과 아래의 실제 착용 예 문단의 머리 모양은 오스베라카시(大垂髪)로, 에도 시대 중기 이후 올림머리가 교토 공가(公家)의 귀족 부인과 여식들·황실 여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면서 막말(幕末) 때 이르러 지금과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8. 실제 착용 예



8.1. 쥬니히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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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구니노미야 나가코 여왕. 히로히토 황태자(쇼와)와의 결혼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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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나가코 황후의 큰며느리 쇼다 미치코正田美智子(왼쪽)/1964년 작은며느리 츠가루 하나코津輕華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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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미치코 황후의 큰며느리 오와다 마사코小和田雅子(왼쪽)/1990년 작은며느리 가와시마 키코川嶋 紀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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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미치코 황후의 딸 노리노미야 사야코 내친왕紀宮清子内親王

8.2. 코우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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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리코 공주와 센게 구니마로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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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아야코 공주와 모리야 케이의 결혼식
다이쇼 덴노의 증손녀로 방계 공주인 센게 노리코모리야 아야코는 혼인식 때 코우치기를 입었다.


9. 기타


일본풍, 그 중에서도 헤이안 시대 풍이 강한 옷이어서 그런지 헤이안 시대를 소재로 한 서브컬처에도 종종 등장한다.
코스프레 등을 할 때는 여러 겹을 겹쳐 입으면 곤란한 부분도 있어서, 끝부분에만 천을 겹쳐서 여러 겹을 입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입기도 한다.

10. 관련 문서



[1] 헤이안 시대 관련 자료를 보면 대례복과 궁중무희의 옷차림은 모두 깃이 V 자로 한 겹씩 일일이 여며져 있는데 비해 소례복, 평상복으로 보이는 코우치기 등은 그저 겹쳐서 한번에 여미거나 여미지 않은 상태이다.[2] 헤이안 시대는 딱히 소방과 도둑에 대한 경비가 좋지 않았다. 천황의 궁중까지도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치거나 불이 나곤 했다.[3] 5벌의 배색이 이루는 카사네노 이로메(襲の色目)라는 색채 구성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로 착장자의 센스가 판단된다고 할 정도. 뭐, 매뉴얼의 나라 일본답게 나중에는 정형화된 패턴이 수십 가지 등장하지만. 꼭 홑겹은 아니고 안감의 끝단이 겉으로 드러나게 만들어서 10겹으로 보이게 하기도 한다.[4] 이츠츠기누의 배색과는 구별되는 1겹으로 액센트를 주는 역할. 사실 이츠츠기누도 우치기를 5겹 입는 것이다.[5] 헤이안 시대가 끝나고 전쟁이 잦아질 수록 여성들의 옷은 슬림해지고, 묶고 올린 머리로 바뀌어갔다.[6] 그러나 각광받던 실용성과 달리, 우치카케에 부리는 호화스러운 직물과 장식들로 후에 실용성이 아닌 값비싼 사치품으로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