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막리지
1. 개요
大莫離支
고구려의 보장왕 시기에 연남생이 역임하였고 연개소문 역시 지냈을 것으로 생각되는 관직이다. 동시기 신라의 태대각간이나 중국의 상국과 비슷한 전설의 관직 같은 특별한 이미지가 있다.
2. 칭호와 별칭
대막리지는 기록마다 칭호가 다른데 삼국사기에선 막리지와 동일시되는 기록이 있고 대막리지라는 칭호가 나온다. 한편 묘지명에서는 태막리지, 태대막리지가 등장한다. 등장하는 수를 따져보면
- 대막리지(大莫離支): 1번(삼국사기 개소문 열전)
- 태막리지(太莫離支): 1번(천남생 묘지명)
- 태대막리지(太大莫離支, 太大莫離之): 2번(천남산 묘지명, 천헌성 묘지명)
3. 상세
구당서에는 '''막리지'''가 병권과 인사권에 관여하는 최고위직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막리지는 본래 고구려 '태대형'(2품)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이후 막리지의 그것에 권한과 권위가 더해져 등장한 것이 '''대막리지'''이다. 연남생의 묘지명에는 연개소문이 역임한 관직이 '''태대대로'''(太大對盧)로 나타나 있다.
일설에 의하면 태대형은 원래 부족장급의 직위였으나 국왕 중심의 관료화가 이루어지면서 최고위 귀족들의 관직으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고구려의 제가회의에서 선출되었던 3년 임기의 수상이 '대대로'(1품)였다고 하는 기록과 무관 최고위직이었던 '대모달'(이명은 '막하라수지'이다.)이 대형의 일종인 '조의두대형'(5품) 이상의 매우 높은 직위를 가진 자만이 역임할 수 있었다고 하는 기록을 더불어 보면 직위가 분명하게 분화되지 않았던 귀족사회의 특성상 '''대대로(1품)의 경우도 고위 귀족들의 투표에 의해 후기 고구려 사회의 최고위직인 태대형(2품)들 중에서 주로 선발되었기에 혼동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이에 의하면 '''막리지=대대로''', '''대막리지=태대대로'''에 해당한다.[2]
연개소문이 대막리지일 때 장남 연남생이 막리지에 임명되었으며 이후에 실권을 잡을 때 삼국사기에 따르면 대막리지가, 묘지명에 따르면 태막리지가 되었다고 나온다. 그 후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동생 연남건의 경우 대막리지가 되었다는 기록은 없고 삼국사기에 막리지가 되었다는 기록만 있다.
이의 경우 연개소문 관련 기록을 보면 대막리지를 그냥 막리지라 줄여서 부르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연남건이 연남생의 자리를 탈취했다는 것은 정황상 거의 확실해 보인다. 연남건과 함께한 막내 연남산의 경우는 태대막리지를 역임했다고 묘지명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연남산이 막리지 계열의 관직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이에 대해 잠깐 추론을 해보자면 첫 번째 경우 만약 연남생이 연개소문의 대막리지보다 높은 자리를 신설했던 것이라면 고구려의 일반적인 관직 작명법에 비춰볼 때 정확한 명칭은 태막리지가 아닌 '''태대막리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연남생, 연남건과 연남산은 차례로 태대막리지를 역임한 것이 된다. 연남산이 태대막리지를 역임했던 때가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 멸망의 해인 668년 쯤으로 보이는데 보장왕과 연남산이 함께 항복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보장왕이 항복을 종용하기 위해 연남건의 관직을 삭탈하고 연남산에게 넘겼던 것일 수도 있다.
두 번째 경우 태막리지나 태대막리지 같은 관직명이 묘지명에 기록되었던 시기가 연남생과 연남산이 중국으로 넘어간 뒤였다는 걸 고려해볼 때 묘지명 기록시에 혼동이 생겼던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연개소문 때부터 연남산 때까지 그냥 쭈욱 대막리지였던 것이 된다. 이 추론이 맞는다면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연남건은 관직을 삭탈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경우 태막리지는 대막리지의 오기가 맞으나 태대막리지는 실제로 존재했던 관직이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보장왕이 연남건의 의견을 찍어누르고 항복을 종용하기 위해 연남산에게 대막리지보다 높은 태대막리지라는 자리를 내린 것이 된다. 물론 어느 경우이든 연남산은 최고위직이 되자마자 항복한 것이므로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
연개소문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그런지 막리지는 연개소문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으며 먼 훗날 고려시대에 당시 몽골제국의 우승상이던 사천택이 '너희 나라에서는 재상을 막리지라 부른다지?' 라고 물어봐서 고려 사신으로 온 이장용(李藏用)이 뻘쭘해 했다한다.
4. 역임자
4.1. 막리지
- 연자유(淵子遊) - 연태조의 아버지.
- 연태조
- 연개소문
- 연남생
- 연남건
- 고임무(高任武) - 삼국사기 보장왕 본기 재위 6년 12월에 등장. 보장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한다.
- 고무(高武) - 고구려 유민 고자(高慈) 묘지명에 등장. 고자의 증조부라고 한다.
- 고문간(高文簡) - 동사강목 성덕왕 13년조에 등장하는 인물. 자치통감을 인용한 것으로 돌궐의 10대 가문 중 하나인 묵철(黙啜) 씨에게 장가갔다고 한다. 사실은 고구려 부흥운동을 이끌다가 돌궐 제2제국 2대 카간인 묵철가한의 사위가 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