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영발표
1. 개요
大本營發表[1] 일본의 패망 이전 제국주의 시절 기관이 하였던 발표이므로 구자체를 사용한다.
태평양 전쟁시기 일본군의 최고사령부 구실을 한 대본영에서 전황을 보도한 내용. 본디 육해군 합동으로 행하는 대본영육해군부발표(大本營陸海軍部發表)와 육군 단독으로 행하는 대본영육군부발표(大本營陸軍部發表)와 해군 단독으로 행하는 대본영해군부발표(大本營海軍部發表)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1942년 1월에 통합되어 대본영발표로 개칭되었다.
발표의 형식은 보도의 형태로 아나운서가 읽는 것과, 대본영 육·해군부의 보도부장이 읽는 것 두 종류가 있었다. 개전부터 종전까지 총 846회가 행해졌다. 단 1945년의 8월 14일의 840회 이후는 대본영급제국정부발표(大本營及帝國政府發表)[2] 라는 명칭으로 바뀌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일본 점령과 관련된 사항을 전하는 것에 주력했다.
2. 주요 대본영발표 내용들
2.1. 제1보: 태평양 전쟁 개전
1941년 12월 8일 오전 7시 NHK라디오로 방송
2.2. 제80보: 1941년 12월 10일 발표
"제국 해군은 개전 벽두부터 영국 동양함대, 특히 그 주력함 2척의 동정을 주시하고 있던 즈음, 어제 9일 오후 제국 해군 잠수함은 적 주력함의 출동을 발견, 그 뒤 제국해군 항공부대와 긴밀한 협력 아래 수색 중, 오늘 10일 오전 11시 반, 말레이 반도 동안 쿠안탄 난바다에서 다시 우리 잠수함이 이를 확인하여 써, 제국해군 항공부대는 틈을 놓치지 아니하고 이에 대하여 용맹과감한 공격을 가하여, 오후 2시 29분 전함 리펄스는 순간에 굉침하며, 동시에 최신식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한순간에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 잠시 도주하고 이윽고 같이 오후 2시 50분 대폭발을 일으키고 마침내 침몰하니라. 이에 개전 3일차에 벌써 영국 동양함대 주력은 전멸함에 이르니라.”
2.3. 제840보: 1945년 8월 14일 발표
"우리 항공부대는 8월 13일 오후 가시마나다[3] 동방 25해리에서 항공 모함 네 척을 기간으로 하는 적 기동부대 한 무리를 포착 공격하여 항공모함 및 순양함 각 한 척을 대파 염상케 하노라."
'대본영발표'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발표로서, 사실상 일본 정부가 주체가 되어 발표한 것으로서는 마지막이다.
2.4. 제846보: 1945년 8월 26일 발표
"본 8월 26일 이후 실시 예정의 연합국 군대 제1차 진주 일정 중, 연합국 함대의 사가미만(相模灣) 입항 이외에는 각각 48시간 연기되니라."
'대본영 및 제국정부 발표'의 명칭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발표이다.
3. 공식발표를 거짓으로 함을 뜻하는 관용어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은 전황을 국민들에게 라디오로 방송했다. 초반에 승전할 때야 사실대로 보도했지만, 전황이 점차 불리해지자 전황을 왜곡보도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커져서 미드웨이가 무너지고 과달카날이 무너지자, 뻥에 뻥을 덧붙이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만 항공전 전과보도. 대본영은 '''미군 항공모함 19척 격침'''이라는 거짓말을 도쿄 로즈로 내보냈지만, 실제 미 함대가 입은 피해는 구축함 1척 격침, 항공모함 4척 소파, 항공기 89대 손실뿐이었고 당시 전투에 미군 항모 19척이 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내용을 듣고 미 제3함대 사령관 윌리엄 홀시 제독은 태평양 함대에 '''"침몰당했다는 제3함대는 현재 해저에서 무사히 인양되어 적을 향해 급속 퇴각 중."'''이라는 희대의 드립성 보고를 올리기도 했다.
1944년 말이 되면 방송에선 연일 승전 소식을 전하는데 현실은 도쿄가 불타고, 부녀자들을 모아놓고 죽창훈련을 하는 막장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일본에선 현재까지도 '대본영발표'라는 말이 '''공식발표를 실제상황과는 다르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분명히 상황이 나쁜데도 공식적으로는 좋다고 뻥을 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데, 사전에도 실렸을 정도라 일시적인 유행어가 아니라 이미 관용어로 굳은 지 오래임을 알 수 있다. 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