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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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교구의 주교좌성당인 부산대성당
1. 개요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大韓聖公會 釜山敎區, Anglican Diocese of Busan)
대한성공회 대전교구에 이어 한국에서 3번째로 설정된 성공회 교구이다. 대한성공회 3개 교구 중 교세가 가장 약하다. 또한 후술하겠지만, 서울교구와 대전교구에 비해 복음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띈다.
2. 교회 일람
교무구가 2개밖에 없을 정도로 대한성공회에서도 교세가 가장 빈약한 지역이다. 사실 영남과 제주, 이 지역들은 성공회 뿐만 아니라 천주교와 다른 개신교 등 기독교 전반의 교세가 약한 지역이다.
3. 여담
- 대한성공회의 최초 주교인 찰스 존 코프 주교[13] 가 1890년 인천시 제물포에 발을 내딛기 전이었던 1880년에 이미 캐나다성공회 소속이면서 일본성공회의 개척자였던 알렉산더 크로프트 쇼(Alexander Croft Shaw, 1846년 6월 26일 ~ 1902년 3월 13일) 신부가 부산에 교회를 세워 목회를 하고 있었고,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존 리처드 울프(John Richard Wolfe) 신부도 부산에서 선교를 한 바 있다. 이후 부산을 비롯한 영남 지역은 자연스럽게 서울에 있는 주교[14] 의 치리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사제를 배출한 교구이다. 주인공은 민병옥 카타리나 신부. 민 신부는 1978년에 성공회 신학교를 졸업했으나, 당시에 여성은 서품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도사 직분에만 머물렀고, 23년이 지난 2001년에야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그는 10년간 사제로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2011년에 은퇴했다.
- 대한성공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저교회파·복음주의 성향을 많이 띠는 교구다. 대한성공회 내에서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변화에서 부산교구는 상대적으로 저교회파·복음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울교구와 대전교구에서는 성당에서 통성기도나 방언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 부산교구의 성당들은 종종 하는 편이다. 또한 흔한 일은 아니지만 평신도가 주교의 관면을 받아 감사성찬례에서 설교를 하기도 한다.[15]
- 대구교회는 벽제대 등 고교회적 영향이 남아있으면서도 전임 관할 신부가 복음주의적 강론을 해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 이는 기독교계 언론에 소개된 적도 있었다.
- 현재 부산교구는 일본성공회 오키나와 교구 및 규슈 교구와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1] 예전에 성 베네딕트를 '분도' 라 했었다.[2] 실향민이다.[3] 대만에서도 사목했던 경력이 있다.[4] 2020년 교구 의회에서 새로이 채택된 문장[5] [image] 구 문장이다.[6] 부산주교좌대성당, 동래교회, 서면교회, 덕포교회, 기장교회[7] 마산교회, 진주교회, 거제교회, 성분도수도원(수녀회)[8] 제주교회, 서귀포교회[9] 울산이 부산·경남이 소속된 중앙교무구가 아니라 대구·경북과 함께 북부교무구에 소속되어있다.[10] 대구교회, 서대구교회[11] 포항교회(2017년 포항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상주교회, 영주교회, 구미교회, 성프란시스수도원(수녀회)[12] 울산교회, 서울산교회, 경주기도소[13] 영국성공회 파송[14] 당시 한국성공회는 성공회 켄터베리관구 한국교구로써, 단일교구였다.[15] 1999년 시험 예식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것으로, 대한성공회가 앵글로-가톨릭 혹은 고교회 일색이었던 시절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1999년 시험 예식서에서는 아예 주교의 관면조차 없이 평신도가 설교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