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언어 별 명칭
한국어
베네딕토/분도
芬道
중국어
번두
本篤/本笃
일본어
베네디쿠토
ベネディクト
네덜란드어
베네딕투스
Benedictus
독일어, 러시아어, 아이슬란드어, 체코어
베네딕트
Benedikt
라틴어
베네딕투스
Benedictus
스페인어
베네딕토, 베니토
Benedicto, Benito
이탈리아어
베네데토
Benedetto
영어
베네딕트
Benedict
포르투갈어
베네디투
Benedito
폴란드어
베네딕트
Benedykt
프랑스어
브누아
Benoît
헝가리어
베네데크
Benedek

1. 남성 이름


베네딕트스페인식 발음으로, '축복'[1], '축복받음', '축복받은 자'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여성형은 베네딕타(Benedicta).

2. 가톨릭/정교회/성공회/루터회성인


라틴어: Sanctus Benedictus de Nursia
이탈리아어: San Benedetto da Norcia
영어: Saint Benedict of Nur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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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모셔진 전신상
생몰년은 480년 ~ 543년. 축일은 가톨릭에서는 7월 11일. 정교회에서는 3월 14일.
농부, 수도자, 학생, 유럽이탈리아 누르시아(현 움브리아주 테르니현 노르차-Norcia)의 수호성인이다. 그뿐 아니라 유혹을 받는 사람, 악마로부터 공격을 받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가톨릭의 대표적인 수도회베네딕토회의 창설자이다. 그의 생애를 서술한 유일무이한 문헌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베네딕토 전기》가 있다. 성 베네딕토가 유명해진 이유가 이 베네딕토 전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평.
베네딕토는 누르시아의 명망가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어, 수도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유모가 같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젊은이들이 그러했듯이 베네딕토는 수사학 등 학문을 배우기 위해 로마로 갔지만 혼란스럽고 타락한 분위기에 젖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여 학업을 중단하였다.
베네딕토는 유모와 함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어느 도시에서 첫 기적을 일으키게 되었다. 유모는 밀가루 음식을 만들기 위해 동네 사람에게 를 빌렸는데 그만 분질러먹고 말았다. 유모는 당황하여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신앙심 깊은 베네딕토가 기도를 하자 체가 다시 달라붙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베네딕토의 능력을 경이로워하였는데, 그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산 속으로 피하였다.
베네딕토는 로마누스 등 선배 독수자[2]의 원조를 받기는 하였지만 혼자서 산에서 수도생활을 하였다. 베네딕토의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악마의 유혹이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베네딕토는 끝내 이를 이겨냈다. 베네딕토 전기에서는 이때 악마가 성 베네딕토에게 치를 떨며 "너는 베네딕토(축복받은 자)가 아니라 말레딕토(저주받은 자)다!"라고 악담(...)을 했다고 전한다.
대단한 명망을 얻은 베네딕토는 어느 수도원의 원장으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베네딕토가 엄한 규율로 수사들을 대하자, 수사들은 베네딕토를 암살하기 위한 가공할 음모를 꾸몄다. 그것은 베네딕토가 마실 포도주에 독약을 타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베네딕토에게 포도주가 건네어지고, 베네딕토가 음용 전 강복을 하자 포도주잔이 돌 맞은 유리창처럼 깨어졌다.
그 후 베네딕토는 그 수도원에서 나와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베네딕토는 기존의 수도원의 규율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취사선택하여 새로운 규율을 만들고[3] 그의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베네딕토의 이러한 업적 때문에 사람들은 베네딕토를 일컬어 '서방 수도승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한국에는 독일 오틸리아 베네딕토회와 이탈리아 올리베따노 베네딕토회가 진출해 있다. 칠곡군,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 서울특별시 등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있고, 대구와 창원[4], 부산[6]에 베네딕토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
베네딕토의 쌍둥이 여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축일 2월 10일)도 수도생활을 하였는데, 매년 한 번씩 오누이가 서로 왕래하며 영적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종종 '베네딕', 또는 한문 음역인 '분도(芬道)'라고도 불린다. 가톨릭 계열의 '분도출판사', '성분도병원' 등은 다 베네딕토 성인의 이름을 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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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 탄생 1400주년 기념 분도패.
베네딕토 성인의 모습과 십자가, 라틴어 구마 기도문을 약자로 새긴 성 베네딕토 메달은 악마의 공격을 막아주는 효험이 있다 하여 은근히 수요가 있으며, 묵주나 목걸이에 자주 사용된다. 성 베네딕토 메달을 한국 천주교에서는 한자식으로 '분도패'라고 부른다. 다만 가톨릭 신자로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가톨릭 교회는 저런 류(성상, 십자고상 포함)의 특정 물건 자체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구마경을 외든, 메달을 패용하든 어디까지나 악마를 막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가진 능력이다. 따라서 부적처럼 사용하기보다는 몸에 지니면서 베네딕토 성인의 행실을 상기하는 용도로 씀이 바람직하다.
성 베네딕토 메달은 대략적인 틀은 있어도 표준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성 베네딕토가 직접 머물렀던,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 수도원[7]에서 1880년에 성 베네딕토 탄생 140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기념 베네딕토 메달을 발행하였다. 당시 가톨릭 교회에서 종교예술로 명성이 높았던 보이론(Beuronese) 양식[8]을 따라 디자인되었는데, 너무나 인기 있던 나머지 누구도 그렇게 정한 적은 없지만 사실상 성 베네딕토 메달의 표준이 되었다. 성물 제작사들은 기념 베네딕토 메달의 틀을 대충 따라 만들지만, 정말로 정확하게 똑같이 만드는 곳은 드물다.
위 분도패 사진도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발행했던 기념 메달의 모양을 따라했으나, 부조의 정밀도가 원본만 못하며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9]
영화 콘스탄틴(영화)의 주인공역인 키아누 리브스가 작중 사용하는 라이터에 이 분도패가 각인되어 있다.

3. 교황


[1] 어원을 공유하는 영어 단어인 benediction이 '축복' 또는 '복을 비는 기도'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2] 혼자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3] 특히 <Regula Magistri(스승의 규칙서)>라고 부르는 규칙서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 베네딕토가 쓴 규칙서와 스승의 규칙서를 비교해 보면 스승의 규칙서와 문장까지 똑같은 부분이 나타난다. 아마 자기 규칙서를 쓸 때 스승의 규칙서를 옆에 펴 놓고 보면서 생각했던 듯.[4] 포교 성 베네딕도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대구에 있는 쪽이 더 오래됐다.[5] 서울역 바로 앞이다. 동부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바로 뒤편, 현재는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도회 수녀회 서울 분원이 있다.[6] 광안리에 있는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도회 수녀원 근처에 성 분도 치과병원이 있다. 예전에는 직영으로 초량동에 성 분도병원과 서울 용산 동자동[5]에 서울 성 분도병원도 있었지만, 두 병원은 모두 문을 닫고 용호동 부산성모병원을 위탁경영하고 있다.[7]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언급하는 바로 그 수도원이다. 항목 참조.[8] 19세기 독일 베네딕토회 보이론(Beuron) 수도원에서 시작한 예술양식. 옛 이집트 교회의 성화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유의 서체를 개발하여 적용하곤 했는데, 1400주년 기념 분도패 앞면에 양각된 기도문도 그 서체를 따랐다. E를 마치 좌우를 뒤집은 '3'처럼 표현한 점이 특징적이다. 19-20세기에 가톨릭 교회에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있었다.' 하는 정도.[9]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차이는 메달 앞면에 있는 성 베네딕토의 얼굴. 원본보다 얼굴이 훨씬 뭉개졌다. 또한 성 베네딕토의 발 아래 있는 반원형 공간에 원본에는 EX·S·M·CASINO MDCCCLXXX (거룩한 몬테카시노에서, 1880년)이라고 라틴어로마 숫자로 새겨져 있으며 쉽게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