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 가이아의 마지막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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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ll: Last Days of Gaia
1. 개요
독일 개발사 실버스타일이 제작하고 딥 실버가 유통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 어쩌면 폴아웃 3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이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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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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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신
황폐화된 지구, 황무지는 돌연변이와 무법자로 들끓고 있었고 그 와중에 신질서 정부(Government of the New Order, 줄여서 GNO)라는 단체가 그럭저럭 문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어느 용병으로, 어느날 자신이 살던 마을에 갱(gang)이 쳐들어와 아버지를 죽이고 여동생을 납치해간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복수를 갚고 여동생을 찾기 위해 신질서 정부에 가입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동차와 분대원들을 이끌고 자신의 마을을 습격한 레이더를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여러가지 딜레마적인 선택을 하며 황무지인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은가? 그렇다. 이 작품이 폴아웃처럼 보인다면 그건 제대로 본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장차 폴아웃 3로 팔리기 위해 제작된 게임이기 때문이다.
2004년 경영악화로 골골대던 인터플레이가 폴아웃 3의 타이틀을 경매에 내놓았을 때는 일단 트로이카 게임즈가 참여했다. 하지만 당시 상업적으로 불안했고 실제로 그 다음년도(2005년)에 폐업할 정도로 작은 기업이었던 트로이카 게임즈가 폴아웃 3 타이틀을 사들이기는 어려웠고 이에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것이 독일 게임개발사 실버스타일이다.
당시 실버스타일은 폴아웃 스타일의 3D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 게임 더 폴(The Fall : Last Days of Gaia)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제작 발표가 있던 2003년 10월 시점에서 이미 70% 가량을 완성한 상태였고 2004년 1분기 출시를 목표로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3년 12월, 프로젝트 반 뷰렌이 취소되고 블랙 아일 인원들이 해고되어 폴아웃 3 타이틀이 시장이 나오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에 실버스타일은 2004년 2월, 해고된 블랙 아일의 게임 디자이너 2명을 영입하고 인터플레이의 폴아웃 3 타이틀 경매에도 참여의사를 밝히게 된다. 즉, 폴아웃 유사작품으로 세상에 나올 예정이던 게임이 진짜 폴아웃 3이 되려고 방향을 튼 것이다.
당시 트로이카가 폴아웃 3를 가져가길 원했던 대부분의 폴아웃 팬들은 실버스타일이라는 생소한 개발사가 끼어들자 술렁술렁했는데 당시 실버스타일은 폴아웃 3은 물론 장차 폴아웃 4, 폴아웃 5까지도 제작할 용의가 있다고 자신만만해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폴아웃 3를 트로이카 게임즈가 만드는 것이 낫냐 실버스타일이 낫냐고 키배가 벌어지고는 했다. 정통성과 팬덤으로 따지면 당연히 트로이카쪽이 우위였지만 실버스타일 역시 전작 '솔져 오브 아나키'를 통해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 분대형 전술게임에서 나름 개발력을 보여주었고 무엇보다 의욕뿐인 트로이카에 비해 '더 폴'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만만치 않았다.[1]
한동안 유력한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아 자신만만하던 실버스타일은 더 폴을 폴아웃 3에 맞게 뜯어고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베데스다가 갑자기 경매에 끼어듦에 따라 변수가 생겨 버린다. 그리고 2004년 7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100만달러라는 비교적 약소한, 하지만 당시 경매 참가자중에서는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베데스다가 폴아웃 3에 대한 권리를 인터플레이로부터 구매하는 데 성공한다.
이미 '폴아웃 3'를 따낼 것이라고 장담하던 실버스타일은 폴아웃 설정에 맞게 게임을 뜯어고치고 있었는데 이제 이게 불가능해져버렸다. 결국 더 폴의 정식 출시일은 2004년 11월이 되었고 당초 예정했던 2004년 1사분기에서 크게 늦어지게 되었다. 70%를 이미 완성했다고 1년전 장담하던 때와는 달리 2004년 11월 최종 결과물의 완성도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을 보면 더 폴->폴아웃 3->더 폴로 재작업을 거듭한 결과, 완성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니면 70% 완성도 운운 자체가 뻥이었든가. 결국, 완성본을 출시할 때는 폴아웃 관련 설정을 전부 버리고 독자적인 설정으로 나왔다.
한편, 폴아웃 3 개발을 강력히 원했던 트로이카 게임즈도 이 결과에 실망하였고 레오나도 보야스키같은 양반은 "내 자식이 돈에 팔려가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라는 말로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하지만 베데스다가 이 경매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도 트로이카 게임즈가 폴아웃 3를 개발했을 가능성은 낮다. 퍼블리셔 딥 실버를 등에 업고 '더 폴'을 거의 완성해가는 실버스타일을 자금력으로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트로이카 게임즈의 상황은 팀 케인항목에서 보듯이, 어떻게든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를 만들고 싶어서 테크 데모 하나 만들고 퍼블리셔에게 투자를 호소하고 있던 수준이었고(결국 아무도 투자하지 않았다) 트로이카 자금 사정도 좋지 않아 해산 직전에 있었다.
3. 폴아웃 시리즈와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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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파워 아머가 될 수도 있었던 갑옷
이런 연유로 세상에 나온 '더 폴'이다보니 군데군데 폴아웃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황무지 유일의 문명집단인 신질서 정부는 원래 뉴 캘리포니아 공화국이었으며 주인공의 마을을 습격한 갱은 원래 폴아웃의 레이더 집단이었다. Schatten(그림자)라는 집단은 화성이주계획의 일원이었으나 지구종말+지구온난화+유전자 실험 때문에 키가 250cm에 달하는 거인 괴물된 이들이다. 폴아웃으로 치자면 슈퍼 뮤턴트.
이 게임에 등장하는 바이오스피어(Biosphäre)라는 시설물은 화성이주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장소로서 황무지에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거주 공간인데 이는 폴아웃의 볼트와 유사하다. 그리고 신질서 정부와 그림자 집단은 이 바이오스피어의 주도권을 두고 싸우고 있다.
또한 자동차를 움직여 필드를 이동할 수 있으며 폴아웃 택틱스 마냥 다수의 분대원(주인공+5명)을 움직여 황무지를 정찰하고 대화하고 전투하여 퀘스트를 해결한다. 대화는 다양한 선택지와 분기를 가지고 있었고 전투는 칼과 야구 방망이에서 권총 및 소총, 샷건, 수류탄, 다이나마이트 등 다양한 현대 무기로 진행된다. 총기 사격은 폴아웃의 샷(싱글, 버스트, 조준)과 유사하게 3개의 모드(싱글, 버스트, 자동)로 가능하다. 아이템 조합은 프로젝트 반 뷰렌의 동일한 시스템을 이어받았고 의학, 은닉이나 소매치기 스킬도 그대로 등장한다. 그리고 분대원들 역시 각자 다양한 사연이 존재한다. 이 게임의 최종 보스는 '신질서 정부'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사실 황무지를 무력으로 제패하고 돌연변이들을 몰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데 이는 사실상 폴아웃 2에 등장한 엔클레이브와 NCR의 패권정책에다 프로젝트 반 뷰렌에 등장한 프레스퍼의 돌연변이 정화계획을 합친 것이다.
하지만 폴아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더 폴의 배경은 핵전쟁으로 인한 황무지가 아니라 화성 이주 계획도중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의해 파괴된 지구가 배경이기 때문에 자동차 연료로 석유를 소비하는 세계다. 무엇보다 더폴의 전투는 발더스 게이트처럼 정지가능한 실시간(real time with pause)이다. 그래서 전투 플레이 영상같은 걸 보면 C&C처럼 유닛이 총을 뿅뿅 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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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나는 자동차 운전 장면
또한 기존 폴아웃 시리즈에 비해 대중성이 증가하여 자동차 운전은 2편처럼 마우스로 목적지 클릭 찍고 기다리는게 아니라 여타 레이싱 게임처럼 키보드를 눌러 직접 움직인다. 게다가 자동차가 한 종류가 아니고 여러 종류다. 풀 3D 그래픽을 활용하여 360도 카메라 회전이 가능한 점과 NPC의 대사는 전부 녹음한 점, 그리고 대화시 모든 NPC의 초상화가 크게 뜨는 점, 주요 장면은 컷신으로 진행되는 점도 대중성이 향상된 점으로 들 수 있다.
폴아웃에 비해 발전한 점도 있다. NPC의 스케쥴링 시스템이 도입된 점이나 인벤토리가 깔끔해진 점 등. 또한 자체적으로 지도를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에디터까지 내장되어 있어서 만약 이 게임이 흥행했다면 G.E.C.K.이 그랬던 것 마냥 다양한 모드가 나왔을 것이다.
4. 평가와 반응
그렇다면 이렇게 세상에 나온 '더 폴'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처절히 망했다. 독일 자국내 일부 게임언론은 80점대 초중반의 리뷰 점수를 주는 등 나름대로 호평했으나 그외에는 일반적으로 평점이 60~70점대로 평가가 그저그랬고 특히 프랑스 게임언론 2곳은 10점 만점에 1점, 2점을 주는 등 완전히 쿠소게로 못박아 버렸다.
게임성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2004년 11월 출시된 '더 폴'의 리뷰를 보면 일단 거의 만장일치로 무수히 많은 버그를 지적하고 있다. 그로부터 수개월 지난 2005년 4월에는 동일한 게임의 확장버전(Extended Version)이 출시된다. 확장팩같은건 당연히 아니고 원래 출시버전에서 버그를 패치하고 각본을 다시 쓰고 사운드 작업을 다시 한 개선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걸 패치 CD로 뿌린 것도 아니고 아예 새로운 패키지로 팔았다는 데서 그 막장성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최초 출시버전을 구매한 게이머라면 인터넷으로 무료로 확장분을 다운받을 수 있게 해놓았다. 다만 그 용량이 1.1GB에 달한다. 2005년 유럽에서 1.1GB를 다운받으려면 상당한 고역이었던 점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확장버전을 낸 실버스타일은 이제 본편 이후의 스토리를 다룬 확장팩과 후속작 작업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 확장팩과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2006년 7월, 리로디드 버전(Reloaded version)이라는 패키지를 다시 발매한다. 위와 똑같이 확장팩같은 게 아니고 2004년 11월에 나온 원래 게임에서 거의 2년동안 작업한 패치추가, 퀘스트 추가, 텍스처 그래픽 개선 작업이 반영된 본편이었으며 이 역시 패치 CD같은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패키지로 판 것이다. 결국 더 폴은 3종류의 패키지로 각각 나와서 팔렸다. 최초 출시일과 마지막 리로디드 버전의 출시일은 거의 2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즉, 딥 실버와 실버스타일은 원래라면 2년동안 더 작업했어야 할 미완성 게임을 판 것이다. 리로디드 버전은 게임이 그럭저럭 안정화되고 그래픽도 많이 나아졌다.
또한 RPG Codex나 No Mutants Allowed처럼 폴아웃1, 2의 팬들이 모인 곳에서는 알음알음 이 게임을 플레이해본 폴아웃 팬이 있으며 이들의 평가는 나름 호의적인 것 같다. 그 수가 극히 적은게 문제지.
그외에 이 작품을 접한 폴아웃 팬들의 반응은 양분되는데 '폴아웃 3은 원래 이렇게 나와야했다'는 것과 '베데스다가 폴아웃3 가져가길 잘했다'는 게 그것. 다만, 이 작품이 폴아웃 3가 되었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폴아웃 프랜차이즈의 막대한 상업적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반응.
그런데 한가지 웃긴 점은 '더 폴'은 영문판으로 출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심지어 중국어(대만)로까지 출시된 게임인데 정작 영어로는 출시되지 않았다. 이 게임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베데스다의 폴아웃 3 개발과 무관하게 위에서 언급된 시스템 등으로 인해 기존 폴아웃 팬의 지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게임이었다. 그런데도 정작 영어로 출시되지 않았고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 국가에서 인지도는 바닥이다. 일반 RPG팬은 물론이고 폴아웃 골수팬을 자처하는 사람중에서도 이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메타크리틱같은 사이트에는 등재도 되지 않았고 고전게임 전문 사이트인 GOG[2] 나 미국 아마존에도 이 게임은 검색되지 않는다. 영국이나 유럽쪽 아마존에서 검색해야 중고판 몇개가 눈에 띌 뿐이다. 그래서 미국의 폴아웃팬은 한때 폴아웃 3가 될 수가 있었던 이 게임에 대해 자기들이 영어로 직접 번역해서 영문패치를 뿌렸다.
5. 후일담
한편 실버스타일은 2년동안 미완성게임을 다시 만드느라 맛탱이가 가버렸기 때문인지 2006년 TGC(The Game Company)라는 회사에 합병되어 TGC 산하 스튜디오가 되었고 여기서는 데모니콘(Demonicon)이라는 판타지 RPG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0년 TGC가 법정관리절차에 들어가자 데몬니콘 IP와 실버스타일 스튜디오 직원 중 17명은 트로피코 시리즈로 유명한 칼립소 미디어로 인수되었고 이주한 직원들은 Noumena Studios라는 이름의 새로운 스튜디오로 재시작하였다. 그리고 Noumena는 2012년에 다크 아이 : 데몬니콘(The Dark Eye: Demonicon)을 정식출시한다.
한편, 직원과 IP를 뺏긴 실버스타일은 남은 직원들끼리 살아남아 아래의 후속작을 제작하기도 하고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오픈 베타도 하는 등 나름 노력한듯 하나 2014년 결국 파산하고 만다.
한편 게임을 망친 장본인중 하나인 딥 실버는 당시 설립 초기라서 막장 행보가 그리 주목받지 않았으나 그 이후에도 막장 퍼블리셔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러던중 웨이스트랜드 2의 퍼블리셔를 맡게 되어 다시 입방아에 오른다. 더 폴과 웨이스트랜드2는 꽤 닮은 게임이기 때문이었다(포스트 아포칼립스, 분대형 전투, 폴아웃과의 연관성 등). 하지만 웨이스트랜드 2는 딥 실버의 간섭없이 만들어진 작품이어서 더 폴과 같은 참사는 면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딥 실버는 왜 2번이나 이런 게임을 맡은 것인지...
6. 후속작
안 나올 것 같던 후속작이 2011년 드디어 나왔다. 개발사는 실버스타일. 원래는 확장팩으로 나오려했던 '더 폴: 뮤턴트 도시(The Fall: Mutant City)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RPG가 아니라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로 나왔다.
평가는 별로 안좋다. 리뷰를 해준 웹진도 거의 없을뿐더러 리뷰점수도 100점 만점에 40~50점대다. 분량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얘기도 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영미권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고 구체적인 정보는 여기서 확인 가능.
[1] 옵시디언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프로젝트 반 뷰렌 개발취소에 따른 해직인원들이 모여 만든 게 옵시디언이니만큼 당시에 그럴 여유는 전혀 없었다. 당시에는 설립 직후여서 EA나 2K같은 퍼블리셔에게 접촉해 게임 만들게 해달라고 사정하던 상황.[2] 폴란드 회사인 CDP가 관리하고 있다. 이 게임은 폴란드에 정식출시되었기 때문에 GOG가 알 수도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