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왕(상)
1. 개요
중국의 고대 국가 상나라의 제29대 국왕이다. 시호는 덕왕이며, 왕호는 제을이고 이름은 자선(子羡)이다.[1]
황제(黃帝)와 요(堯)임금의 후손이며 상나라 제28대 왕인 광왕(匡王) 자탁(子托) 태정(太丁)의 아들이다. 3대 현인(賢人)이라 불리는 비간(比干)과 기자(箕子)는 형제이며 미자계는 맏아들이다.
2. 기록
자선은 아버지 자탁이 졸한 후 왕위에 올랐다. 사기에는 그가 왕위에 오른 뒤 상이 더욱 쇠퇴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버지 자탁은 주족(周族)이 강해지는걸 우려해 그들의 제후 계력(季歷)을 살해하여 주족과 갈등을 빚어 계력의 아들 희창이 상을 치려 하였고,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제을 2년에 주나라 군사들이 상을 공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을의 맏아들은 미자계였으나 그는 서자였기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의 동생인 제신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제신이 폭정으로 폐위되자 제신의 아들 무경(武庚)이 상나라의 종사(宗祀)를 잇게 되었으나 반란(삼감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3. 진실
제신과 상나라, 주나라 항목을 보면 알다시피 당시 상나라는 초기 씨족 연합 국가의 체제에서 벗어나 점차 자성子姓의 중앙집권적인 왕권을 확립하고 있었던 시절로, 이는 상나라의 군주가 초기처럼 형제상속이나 숙질상속에서 벗어나 부자상속이 정착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미자계가 아닌 제신이 즉위한 것도 적장자로서 자성子姓의 강성해진 왕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 국가가 점차 강성해지면서 제을과 제신 부자는 황하 유역의 상나라 동쪽 동이를 갈아버리면서 동방진출을 매우 적극적으로 꾀했다고 나와 있다. 실제로 사기에서도 그로 인한 타 지역의 경계가 약해지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 나온다. 이렇게 진출하고 복속시킨 이민족들과 노예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인신공양을 행했으며, 여러 압제를 떨쳤다고 한다. 이는 상나라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잔인한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제신의 이런 동방에 대한 공격은 자연히 서쪽의 방비를 약하게 만들어 서쪽의 주나라 국가연합에 의해 상나라가 몰락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1] 상나라대부터 춘추전국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성姓과 씨氏는 별개로 사용했으며, 氏는 상황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과거 일본에서 氏와 묘지苗字가 따로 있던 것과 같은 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