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간

 

'''比干'''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은나라 말에 미자는 떠나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 공자께서는 (그들을 두고) 말씀하셨다. "'''은나라(말기)에 사람다웠던 자(仁)가 세 명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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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미자편1장

상나라의 신하로 상의 29대 덕왕의 아들이며, 상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에게는 숙부뻘이 된다. 주왕의 폭정을 보다 못해 간언하며 물러서지 않았고, 폭군 주왕에게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계속 잘못을 간하다가 "'''규범을 무시하시고 아녀자 말만 들으시니 재앙이 올 것입니다.'''"라는 말에 짜증이 난 주왕이 "'''듣자 하니 성인의 심장엔 7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던데 한 번 확인 좀 해보자'''"[1]며 그 자리에서 가슴을 갈라 심장을 뽑아내는 참혹한 형벌로 죽였다. 이를 옆에서 달기가 부추겼다고도 한다.
'충신'이라는 단어가 호칭처럼 불릴 정도며 항목 내에서도 시기상 가장 빠른 인물. 주무왕이 상을 멸망시킨 뒤 비간(比干)의 무덤에 흙을 더 쌓아 봉분 높이를 높여주었다고 한다. 구당서에 따르면 당중종이 복위한 뒤인 신룡(神龍) 2년(706년) 3월에 무당현승(武當縣丞) 주경(周憬)이 위황후와 간통하던 무삼사를 죽이려는 부마 왕동교(王同晈)의 모의에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비간의 사당으로 달아나서 "비간은 충신이다. 그의 영혼이 내가 충을 위해 죽는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라며 사당 안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김월회 교수는 미자와 기자, 비간이라는 세 사람의 모습에 대해 언급하면서 비간을 두고 '''무고한 피를 흘림으로써 왕조가 인간이기를 포기했음을 비극적으로 증명'''한 인물이었다고 해석했다. 주왕이 자신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자 종묘의 제기를 들고 망설임없이 조정을 떠난 미자는 조정의 바깥에서 왕조의 정통성이 다했음을 보여주었고, 홍범구주라는 새로운 통치이념 개진을 받아들이지 않는 주왕에 대한 더 이상의 간언을 그만두는 대신 고귀한 신분에서 천민으로 전락하는 길을 택한 기자는 조정 내부를 향해 주왕이 답이 없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켰으며, 그런 주왕에게 끝까지 간언하는 길을 택하다 죽음을 맞은 비간은 '''이제 사태가 무고한 피의 희생이 요청되는 단계로 접어들었고 너무도 늦어버렸다'''는 것을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것으로 보여줌으로써)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
소설 봉신연의에서도 상나라의 충신으로 등장해 폭군 주왕에 의해 심장이 뽑혀 죽는다. 이후 문곡성으로 책봉된다. 후지사키 류의 만화 봉신연의에서는 상용과 함께 내정을 맡길 인재로 문중이 언급할 뿐이다.
위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2006년 38부작 드라마 <봉신방: 봉명기산>에서는 상의 충신으로 묘사되며 달기가 요괴에 모습인 것을 확인하고서는 황비호와 함께 행동하다 끝내 달기의 음모에 의해 죽는다.[2]





[1] 참고로 7개는 정상보다 많은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 적은 거다. 정상인은 폐정맥 4개, 폐동맥 1개, 대동맥 1개, 대정맥 2개로 8개. 폐정맥 2개가 서로 붙어 있거나 한 경우에 7개가 가능하다.[2] 여기서는 심장이 뽑혀 죽는 것이 아닌 스스로 칼로 심장을 도려낸 후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