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벤틀리
1. 개요
'''데이비드 베컴을 이을 잉글랜드 최고의 윙어였던 선수'''
'''실력을 따라오지 못했던 축구 열정[1] '''
2. 클럽 경력
2.1. 아스날 FC에서의 시작
13살에 아스날 유스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당시에는 스트라이커로 입단했지만, 후에 오른쪽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된다. 16살이 되던 2001년에 프로 계약을 맺으며 많은 기대를 모으게 된다. 그리고 2년 뒤에 FA컵 경기에서 콜로 투레와 교체되며 프로 데뷔에 성공했고, 1년 뒤에 마크 슈워처를 상대로 감각적인 골을 넣으며 프로 데뷔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아스날은 리그 최고의 팀이었고, 많은 경쟁자들에 밀려서 벤틀리는 리그에서 단 1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2.2. 노리치 시티, 블랙번 로버스 임대
2004-05시즌을 노리치 시티에서 보내게 된 벤틀리는 이 시즌에 리그 26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꽤나 쏠쏠한 활약을 해주었지만, 여전히 아스날에서 그의 자리가 없었다. 결국 2005-06시즌 또한 다시 임대를 떠나게 되었고, 임대를 떠난 팀은 블랙번 로버스였다. 임대를 떠난 블랙번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블랙번은 그를 완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2.3. 전성기였던 블랙번 로버스
2006년 1월에 완전한 블랙번의 선수가 되었고, 이후 첫 경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벤틀리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블랙번이 맨유를 꺾는 기적을 보였고, 잉글랜드 전역에서 해트트릭을 한 벤틀리를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벤틀리는 2005-06시즌에 모르덴 감스트 페데르센과 함께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윙어 라인으로 불렸고, 블랙번은 리그 6위를 차지하며 유럽 대항전에 진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2006-07시즌 벤틀리의 포텐은 완전히 터지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부터 팀을 이끌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리그, 유럽 대항전 가리지 않고 골을 기록하며 팀의 귀중한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이후에도 그의 활약은 엄청났고 빅 6가 점차 그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2011년까지 블랙번에 남는 재계약을 하면서 팀에 대한 애정을 보인다. 벤틀리는 2006-07시즌 7골과 13도움을 기록하면서 블랙번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이듬해에도 마찬가지로 벤틀리는 엄청난 활약을 보이면서 베컴의 후계자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고, 빅 클럽들의 관심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결국 벤틀리의 마음은 변화기 시작했고 블랙번은 그를 비싼 가격에 팔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벤틀리는 2007-08시즌 8골 13도움으로 커리어하이를 경신했고, 그런 그를 경쟁 끝에 토트넘이 그를 데려갔다.
2.4. 불행의 시작, 토트넘 홋스퍼 FC
1500만 파운드라는 비싼 이적료로 많은 기대를 받으며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벤틀리 영입은 당시 감독이었던 후안데 라모스가 원했던 영입이 아니었고, 벤틀리는 팀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최악의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후안데 라모스가 짤리고 해리 레드냅 감독이 선임되었지만, 레드냅은 벤틀리보다 빠르고 날렵한 애런 레넌을 더 중용했다. 결국 벤틀리는 팀에서 잊혀져가기 시작했고 제 2의 베컴이라는 칭호에서 토트넘 역사상 최악의 영입이라는 평가를 받고 만다.
2.5. 그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벤틀리는 자리를 잡기 위해서 임대를 선택했다 버밍엄 시티를 시작으로 웨스트햄, FC 로스토프, 친정팀인 블랙번 로버스까지 이리 저리 움직여 봤지만, 돌아온 것은 시련 뿐이었다. 결국 토트넘과의 계약 기간이 마감되면서 방출되고 말았다.
2.6. 은퇴 그리고 이후
2014년 6월 13일, 결국 은퇴를 선언하면서 축구계를 떠난다. 은퇴하면서 벤틀리는 최근 돈과 소셜 미디어가 판을 치는 축구계에 실망했고 그런 축구계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토트넘 이적 이후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임대 다니면서 가족들이 힘들어했던 것 또한 은퇴 이유 중 하나이다.
은퇴 이후에는 스페인에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토트넘 시절에 인연을 맺었던 해리 케인을 비롯한 몇 축구 선수들이 자주 놀러가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게일식 풋볼이라는 아일랜드식 풋볼 경기에 참여하면서 또 다른 풋볼 인생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3. 국가대표 경력
U-15를 시작으로 대다수의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거친 엘리트였다. 특히 U-21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넣었던 환상적인 프리킥은 여전히 회상되고 있는 장면이다. 당시 그 경기에서 잉글랜드의 벤틀리와 이탈리아의 키엘리니가 상당히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는데 이후 초창기엔 둘 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하다가 한 명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몰락을 또 다른 한 명은 팀의 레전드 및 아주리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성장한 것을 보면 단순히 유스에서의 성공이 성인 무대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시사해주는 선수. 2008년 스위스전에 성인 대표 팀에 데뷔했고 이후 6경기를 더 뛰었다.
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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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 판박이'''
외모도 외모지만, 플레이 스타일 또한 베컴과 매우 유사했다. 강력한 킥력을 바탕으로 환상적인 크로스를 자주 올려주었다. 세트 피스에서 그의 오른발은 프리미어 리그 내에서도 최고의 오른발 중 하나였다. 또한 드리블 능력도 상당했는데, 벤틀리가 한창 잘 할 때는 공을 가지면서 전진하는 속도가 가장 빠른 선수였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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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배우급이다. 제 2의 베컴이라고 불렸던 것은 단순히 플레이 스타일 뿐 만이 아니었다.
매우 똘끼가 있던 선수였다. 스카이 스포츠의 이적 시장 데드라인 데이 방송에서 갑자기 훈련장 입구에 나와 전화를 받으면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신나게 점프를 하지를 않나, 2009-10 시즌 4위가 확정 된 이후 인터뷰하는 레드냅한테 갑자기 물을 쏟아부우면서 많은 토트넘 팬들을 웃게 만들었다.
토트넘 시절에 유스 선수들에게 굉장히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당시 토트넘 유스에는 현재 토트넘의 핵심 공격수인 해리 케인과 스완지 시티의 미드필더 톰 캐롤, 헐 시티의 미드필더인 라이언 메이슨이 있었고 여전히 그들과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1] 벤틀리의 평소 태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었고, 한창 전성기를 구가 할 나이인 만 30살이 되기도 전에 미련없이 축구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