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데 라모스
1. 개요
스페인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6년에 말라가 CF 감독을 맡았다.
28살의 이른 나이에 부상으로 은퇴하고 하부리그부터 감독 커리어를 쌓아 UEFA 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결국에는 레알 마드리드 CF라는 세계구급 빅클럽의 감독직까지 따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엘체 CF에서 데뷔했으나 오래 뛰지 못하고 하부리그를 전전했으며, 무릎 부상으로 인해 28세의 나이에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었다.
3. 감독 경력
은퇴 후 엘체 CF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0년 엘체의 B팀인 엘체 CF 일리시타노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2년 CD 알코야노에서 본격적으로 1군 팀 감독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레반테 UD, CD 로그로녜스에서 감독을 맡았고 로그로녜스에서는 세군다 디비시온 2위를 기록해 FC 바르셀로나 B팀에서 감독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만에 팀을 나와 UE 예이다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1년 후 세군다 디비시온에 있던 라요 바예카노 데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해 첫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일궈내며 라 리가 승격에 성공했고, 승격 첫 해에는 시즌 중반까지 리그 선두를 질주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아쉽게도 후반기에 힘이 떨어지며 리그 9위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페어 플레이 랭킹에 따라 UEFA 컵 1라운드 진출 티켓까지 거머쥐었으며, 이어진 2000-01 시즌에는 리그 순위는 14위[3] 에 그쳤으나 UEFA 컵에서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FC 지롱댕 드 보르도 등을 꺾고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라요에서의 성공 이후 후안데 라모스를 영입한 팀은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였다. 베티스는 90년대 중반 로렌소 세라 페레르 감독 하에서의 성공적인 나날들 이후 하락세를 타더니, 급기야 1999-00시즌에는 시즌 내내 부진하다가 결국 18위로 강등을 당하는 고통까지 겪었다.[4] 2000-01시즌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절치부심해서 승격을 이루어낸 베티스는 팀을 도약시키기 위해 라모스를 영입했고, 라모스는 베티스를 6위에 올려놓으며 팀에게 UEFA 컵 1라운드 진출 티켓까지 안겨주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이후 RCD 에스파뇰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에스파뇰에서는 단 3개월만 팀을 이끌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후 휴식을 취하다가 2003년 여름 말라가 CF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팀 순위를 지난 시즌 13위에서 10위로 끌어올렸다.
말라가에서의 1년이 끝난 후 한동안 감독직을 맡지 않다가 2005-06시즌을 앞두고 세비야 FC의 지휘봉을 잡은 후안데 라모스는 임대로 데려온 하비에르 사비올라와 주포 프레데릭 카누테라는 강력한 공격 자원들을 바탕으로 리그에서 6위를 기록하고 UEFA 컵에서는 릴 OSC,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FC 샬케 04를 연달아 격파하더니 결승에서는 미들즈브러 FC를 4:0으로 대파하고 UEFA 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어진 2006-07시즌에는 사비올라가 바르샤로 돌아갔으나 카누테가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하며 호나우지뉴와 함께 리그 득점 3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하며 리그 3위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냈으며, UEFA 슈퍼컵에서는 FC 바르셀로나를 3:0으로 격침하고 코파 델 레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UEFA 컵에서는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안드레스 팔롭이 PK 3개를 막아내는 활약을 보여주며 2회 연속 우승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2007년 유럽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후 2007-08시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으나,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비극적인 사망과 UEFA 슈퍼컵 준우승을 기록하며 팀 분위기가 저하되었다. 거기에 라모스는 시즌 시작 전부터 토트넘 홋스퍼 FC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었는데, 시즌 시작 전에는 제안을 거절했으나 결국 10월 25일, 마틴 욜 토트넘 감독이 경질되었고, 2일 후 후안데 라모스의 토트넘 부임이 발표되었다.
당시 마틴 욜 체제 하에서 심각한 수비 붕괴를 겪으며 18위까지 밀려나있던 토트넘은 라모스 부임 이후 수비 안정감을 어느정도 되찾으며 중위권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칼링컵에서 승승장구하며 준결승에 진출, 북런던 더비 라이벌 아스널 FC를 만나 원정 1차전에서 1:1로 비기고 홈 2차전에서 '''5:1''' 대승을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첼시 FC를 만나 디디에 드로그바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으나 후반에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페널티킥 동점골을 기록하고 연장전에서 조너선 우드게이트의 결승골이 터지며 칼링컵 우승을 거머쥐었다.[5] UEFA 컵에서도 조별리그를 2위로 통과하고 32강에서 SK 슬라비아 프라하를 격침시키며 16강에 진출했으나, 16강에서 PSV 에인트호번을 만나 승부차기 끝에 석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그래도 충분히 희망적인 시즌을 보냈고 리그컵 우승으로 내년 시즌 UEFA 컵 진출 티켓까지 따내면서 이제 라모스 체제 하 토트넘에 대한 기대감이 본격적으로 꽤나 높아졌는데, 정작 2008-09 시즌 개막 후 8경기 2무 6패를 기록하는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팀이 최하위로 처지자 10월 25일 해임되었다(...). 조금 위를 다시 읽어보면 알겠지만 라모스 직전 토트넘 감독이던 마틴 욜도 10월 25일에 해고되었으니, 참 묘한 결말. 또한 라모스는 재임 시기 이영표를 잘 기용하지 않아서 국내 팬들이 라모스 감독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6]
그리고 라모스에게 러브콜을 보낸 팀은 다름아닌 '''레알 마드리드 CF'''였다. 당시 베른트 슈스터 감독이 이끌던 레알은 리그에서 세비야 FC에게 3:4로 지는 등 5위로 처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바테 보리소프에게 진땀승을 거두고, 유벤투스 FC와의 2연전을 모두 내주는 등 기세가 좋지 않아 결국 슈스터 감독이 짤린 상황이었다. 라모스는 부임 이후 18경기에서 승점 52점을 쓸어담고 1위를 질주하던 FC 바르셀로나와의 격차를 좁혔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에서 리버풀 FC를 만나 2경기 합산 스코어 0:5라는 부진한 경기력으로 광탈했고, 그나마 가망이 보이던 리그에서도 후반기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2:6으로 패하는 대참사를 겪은 이후 4연패 늪에 빠지며 바르샤와 9점차로 벌어진 채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으며, 그 여파로 재계약에도 실패하며 시즌 종료와 함께 레알을 떠나야했다.
레알 이후 2009년 여름, 지쿠의 후임으로 CSKA 모스크바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부진 끝에 2009년 '''10월 25일''' 경질되었다. 토트넘 시절의 데자뷰가 느껴진다면 기분 탓이다. 이후 2010년 10월 1일,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팀 FC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4시즌 동안 76승 30무 29패를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2013-14 시즌 리그 준우승을 기록했으나, 이후 계약 만료와 함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재계약을 포기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드니프로의 재정난으로 인해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7] 이후 2016년 5월 24일, 하비 그라시아 감독의 후임으로 오랜만에 말라가 CF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코파 델 레이에서 코르도바 CF에 패해 탈락한 이후 2016년 12월 22일 사임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27일 자로 공식적으로 사임이 발표되었다.
이후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종료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올랐으나, 최종적으로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임됐다.
[1]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와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네이버 정보에는 AD 알코르콘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영어위키나 과거 존재했던 후안데 라모스 홈페이지의 경력란에 의거하면 알코야노가 맞는것으로 보인다.아카이브[3] 더구나 강등당했던 18위 레알 오비에도와의 승점차는 단 2점차였다. 이 해는 리그 최하위 CD 누만시아(39점)와 12위 아틀레틱 클루브(43점)간 승점차가 단 4점밖에 나지 않았을 정도로 강등권 경쟁이 치열한 시즌이었다.[4] 당시 베티스를 이끌던 카를로스 그리구올 감독 하에서 리그 16위를 기록하던 베티스는, 그리구올 경질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했으나 오히려 성적이 18위까지 떨어지며(...) 강등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시즌 종료 직전 히딩크를 경질하고 파루크 하지베기치 감독을 선임하나 강등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CF에 이어 베티스에서도 실패를 겪으며 커리에어 적잖은 타격을 입은 히딩크는 이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위기감을 느끼던 '''동아시아의 어떤 나라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 기적이었다.'''[5] 여담으로 이 우승컵 이후로 토트넘은 우승을 하지 못하고있다. -[6] 사실 후안데 라모스 감독의 눈에 이영표가 만족스럽지 않을 만은 했다. 세비야시절에 다니에우 아우베스라는 최고의 측면 수비수를 두고 있었고, 수비력과 동시에 공격력도 일정 이상 갖춘 풀백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영표는 냉정히 말해서 공격 측면에서는 많이 아쉬웠는데, EPL 기준에서 피지컬도 많이 아쉽고, 드리블 능력은 수준급이긴 했으나 스피드는 리그의 평균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라 돌파에 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크로스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크로스를 올리기만 하면 공격수들이 어떻게든지 위치를 잘 선점해서 공격 기회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왼쪽 풀백으로 주로 기용되면서도 왼발 사용 빈도가 많지 않아 크로스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오른발을 사용할 만한 각도를 만들어내야 했는데, 이는 당연히 비효율적이었고 성공률은 거의 제로였다. 수비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체 불가능할 만큼 리그 탑급의 임펙트를 남긴 것도 아니었으니, 물갈이 대상이 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이 시점에 이미 이영표는 30줄을 넘은 상태였고, 그와 함께 신체 능력도 차츰 쇠퇴할 때였으니 감독 입장에서는 그리 나쁜 선택도 아니었다.[7] 참고로 14-15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하며 화제가 됐던 드니프로는 이 재정 문제로 인해 16-17 시즌부터 UEFA 주관대회 출전 금지 징계를 먹었고, 리그에서도 16-17 시즌을 끝으로 3부 리그로 강등당하였고, 2018년 여름에는 아마추어 리그로의 강등까지 결정되는 수모까지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