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슈워처
[clearfix]
1. 개요
20년 동안 호주의 골문을 지켜낸 레전드 골키퍼이자 미들즈브러와 풀럼의 레전드격 골키퍼. 196cm라는 큰 키에 반사신경도 좋았던 골키퍼.
2. 클럽 경력
2.1. 무명 시절
1972년 호주 시드니에서 태어났다. 유스 출신 구단인 마르코니 스탤리언스에서 18살에 데뷔했다. 큰 활약을 펼친 슈워처는 분데스리가의 디나모 드레스덴, 1.FC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둥지를 옮겼고 1996년 잉글랜드 1부 리그(현 EFL 챔피언십)의 브래드포드 시티로 이적하며 잉글랜드 무대에 첫발을 내딛는다.
2.2. 미들즈브러 FC
1997년 브래드포드 이적 후 반 년만에 프리미어 리그의 미들즈브러 FC로 이적한 슈워처는 96-97 시즌 7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1998년 리그컵 결승에서 첼시[1] 를 상대로 분투했으나, 2-0으로 팀의 패배를 막지 못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해 팀이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2005년 리그 컵 우승, 2006년 UEFA 컵 준우승 등의 시간을 함께 한 보로의 전성기의 주역이었던 슈워처는 2008년 미들즈브러를 떠나 풀럼 FC로 이적한다. 슈워처는 보로에서만 446경기에 출장하며 현재까지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 팀을 위해 가장 많은 경기를 뛴 외국인 선수로 남아 있다. 그리고 슈워처를 이적시킨 보로의 수비는 급격히 약해졌고, 결국 보로는 2009년 강등의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2.3. 풀럼 FC
입단 첫 시즌인 2008/2009에 10경기의 클린시트를 기록하여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이 시즌에 풀럼의 올해의 선수로 지정되기도 했다. 2010년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맞아 분투했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2009/2010시즌에는 호주인 최초로 EPL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마크 휴즈 감독이 부임했으나 성적부진으로 1년만에 짤리고, 후임으로 마틴 욜이 부임했으나, 역시 성적부진으로 2년만에 경질된다. 마틴 욜이 경질되고, 풀럼 구단주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큰 활약을 펼친 네덜란드의 골키퍼 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를 분노의 영입하여 41세의 골키퍼로서도 고령이었던 마크 슈워처는 방출되었다. 브라질 월드컵을 뛰고 싶었던 슈워처는 은퇴를 하지 않고, 새로운 팀을 물색하던 중 의외로(?) 디스계의 황제의 눈에 들어 이적하게 된다,
2.4. 풀럼 FC 이후
첼시로 이적한 슈워처는 페트르 체흐에 밀려 일라리우와 세컨 키퍼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다만 13-14시즌 후반기에 체흐가 부상으로 빠지고 나서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주전으로 몇경기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14-15시즌 티보 쿠르투아의 합류로 써드 키퍼로 밀려 별로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고, 2015년 1월 당시 리그 최하위였던 레스터 시티로 이적한다. 레스터에서는 주전 카스퍼 슈마이켈의 백업으로 나왔으나, 슈마이켈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는 주전으로도 자주 출전했다. 그리고 레스터는 시즌 후반기에 엄청난 페이스로 강등권을 탈출하더니, 다음 시즌에 대형사고를 친다. 15-16시즌에는 백업 골키퍼로서 통틀어 공식 경기 6경기를 출전했다.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고 은퇴했다.
프리미어 리그에 514 경기에 출전하며 호주 축구 역사에 확실한 한 획을 그은 선수. 특히나 슈워처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시기 호주는 축구에서 거의 별볼일 없는 수준의 완전한 변방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호주 축구리그인 A리그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도 2014년도에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고 난 이후다.
3. 국가대표 경력
1993년 국가대표로 데뷔하여 10여 년 넘게 호주의 수문장이었다. 그리고 2005년, 독일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속에 슈워처가 2번의 슛을 막아내어 32년 만에 조국이 월드컵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오심인 듯 오심으로 허용했지만[2] , 후반 막판에 팀이 내리 3골을 넣으며 월드컵 첫 승리를 거뒀고, 2차전에서 브라질에 2골을 허용해 패했지만, 3차전인 크로아티아 전은 출전하지 않았다. 16강에서 이탈리아를 맞아 선전했지만, 후반 막판 루카스 닐이 파비오 그로소의 발목을 걸었다는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했고[3] , 실점하며 결국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 후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 그쳤고,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마누엘 노이어를 '''개성이 없는 키퍼'''라고 조롱했다가 아예 광탈했고, 2011년 아시안컵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일본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013년에 국가대표 은퇴 선언을 했다. 통산 기록은 109경기 출전.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이고, 호주 대표팀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