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 부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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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부인 표준영정(제60호_1995년 지정, 윤여환 作)[1]
1. 소개
2. 평가
3. 당시 군주는 개루왕이 아닌 개로왕?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1. 소개


백제의 평민 도미와 그 아내에 관한 설화로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제48권 열전 제8 도미
백제개루왕(개로왕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은 도미의 아내[2]가 아름답고 행실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미를 잡아놓고 도미의 집에 찾아가 강압으로 도미의 처를 범하려 했다. 하지만 도미의 처가 꾀를 내어 자기 대신 계집종을 바치자, 속은 것을 알고 분노한 개루왕은 도미에게 눈을 빼는 형벌을 가해 장님으로 만들고 배에 태워 강에 떠내려 보냈다. 그리고 도미의 처를 불러들여 다시 범하려 하자, 도미의 처는 월경을 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서 기한을 미룬 다음 도망쳐서 천성도[3]에 떠내려와있는 도미를 찾았다. 부부는 같이 배를 타고 고구려로 도망쳤으며[4], 그들을 불쌍히 여긴 고구려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야기의 정확한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팔당나루 부근에서는 개루왕이 도미를 던진 곳이 그 부근이라는 전설이 있다.
판본에 따라서는, 왕이 다짜고짜 도미의 처를 범하려 한 것이 아니고 그녀의 정숙함에 대한 소문을 듣고 도미와 내기를 한 뒤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고 바뀌기도 한다.

2. 평가


정조를 지키는 여성이 나오는 작품이라, 유교 도덕을 중시한 조선시대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많이 읽었다고 한다.
또한 비극적인 내용이면서도 연약한 여성이 남성에게 보호받기만 하지 않고 육체의 연약함을 두뇌로 극복하여 왕의 권력에 대항하는 흥미로운 구도 때문에 현대에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월탄 박종화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한 단편소설 '아랑의 정조'를 집필했다. 김치나 조선시대를 연상케 하는 도읍 한성의 묘사, 곤룡포 등 시대 고증 부분에는 볼만하지 않지만 원래 기록을 충실히 옳겼다. 작가 최인호도 '몽유도원도'[5]라는 단편을 집필했고 개로왕-장수왕 시기를 다룬 '왕도의 비밀'에서도 꽤 길게 다루었다.[6] 그 외에도 여러가지 각색물이 있다.
사실상 권력자가 백성을 괴롭히고 백성은 복수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목숨만 부지하는 결말이라서 어린이 동화같은 쪽에서는 어느 정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는데 도미의 부인이 눈을 고쳐서 도미가 '''애꾸눈'''으로 살아가다가 이 소식을 들은 고구려의 장수왕이 도미부부를 앞세워 백제를 치고 도미 부부 앞에서 개로왕을 베면서 복수한다는 식으로 나온다. 개로왕 자신도 백제의 두 배신자에게 잡혀서 목이 잘렸으니 그 이야기를 나름 차용했다고 보면 된다. 또한 이 설화는 개로왕의 왕권강화책으로 실시한 왕궁증축과 축성으로 고된 노역에 시달리게 된 백제백성들의 왕에 대한 원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당시 군주는 개루왕이 아닌 개로왕?


이병도는 도미 부부가 생존했던 시기의 군주를 개루왕이 아닌 개로왕으로 보았다. 근거로 개루왕의 재위기에는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 한군현이 있어서, 백제에서 고구려까지 배를 타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개로왕의 경우 '근개루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름이나 발음 등이 비슷하다보니 햇갈려서 잘못 표기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있다. 한 편 개로왕이 무능한 폭군이 되었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개로왕이라고 보는 시각도 은근히 있지만 개로왕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잘못알려진 부분도 많다. 분명히 개루왕이 아닌 개로왕일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이것과는 별도로 개로왕이 폭군이었기에 도미 설화의 왕이 개로왕이라는 것은 핀트가 약간 어긋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리메이크판 전설의 고향에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홍일권이 도미 역을, 장진영이 도미의 아내 역을 맡았다. 물론 호러적인 내용으로 각색되지는 않고, 마지막 장면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하늘에서 내린 비를 맞은 도미가 두 눈을 회복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부부간의 변하지 않는 신의와 사랑을 교훈으로 얘기하며 끝을 내렸다. 최인호의 소설은 뮤지컬로 각색되어 2002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 적이 있다.
2016년 2월부터 4월간 충무아트홀 중극장에서 동일한 설화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 '아랑가'가 공연되었다.
천 개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에서도 도미 부부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1] 도미부인상 都彌婦人像, / 가로 132cm, 세로 160cm / 비단+먹+채색 / 1995. 보령시 도미부인사당 소장[2] 도미 아내의 이름은 사서에 전하지 않는다. 박종화가 본 설화를 바탕으로 <아랑의 정조>라는 소설을 창작하면서 아랑이란 이름을 만들어냈다.[3] 정확히 어떤 섬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강 가운데 있는 섬으로 추측.[4] 한강을 따라 내려간 한강 하구에서 해안을 따라 갔거나 임진강이나 예성강 등 다른 강을 타고 올라간 것으로 볼 수 있다.[5] 아랑과 도미가 그냥 평민이 아니라 마한 목지국의 후손이었다고 나와 있다.[6] 이 버전은 뒷 이야기를 더 넣어서 고구려에 가서도 자신의 미모때문에 위험에 빠질 것을 두려워한 도미의 처가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감염시켜서 엉망으로 만들어 살아간다는 이야기, 결말에서는 도미 부부가 죽고 고구려인들은 도미 부부의 진짜 얼굴을 한 유령이 배를 타고 가는 환상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