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한강 제1지류
임진강'''
| Imjin River


'''발원지'''
[image] 강원도 법동군[1] 룡포리[2] 두류산
'''하구'''
[image] 개성특별시 림한리
[image]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유입 해역'''
황해
'''길이'''
244 km
'''유역 면적'''
8,897.24 km2
1. 개요
2. 군사분계선의 강
3. 관광
4. 사고
5. 북한 노래 임진강


1. 개요


임진강은 한반도의 강으로 한강의 제1지류이다. 그런데 사실상 서해 바다에 접한 곳에 와서야 한강으로 합류한다. 한강으로 합류하고 '''200 m'''만 더 가면 바다라서 '''이 정도면 그냥 별도의 강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한강의 제1지류로 간주한다.[3]
북한에서는 두음 법칙이 없으니 당연히 '림진강'이라고 적고 읽는다. 남북한에 걸친 강이라 구글 지도에서도 임진강, 림진강 둘 다 검색이 된다.
오른쪽 유역에는 아호비령산맥이 뻗었고, 왼쪽 유역에는 지류들이 흐른다. 주요 지류는 강원도 고미탄천(古味呑川: 114 km), 경기도 평안천(平安川: 81 km)·한탄강(漢灘江: 130 km) 등이고, 5 km 이상인 지류는 250여 개이다. 환경부 수상교통의 요지로 6.25 전쟁 이전에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작은 배는 안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경기도 연천군에 고구려 칠중현(七重縣)[4]의 치소(治所)인 파주 칠중성(城)이 있었다. 예부터 신라·백제·고구려의 국경으로 분쟁이 잦은 지역이었다. 파주문화원 칠중성 전투 문서 참조.

2. 군사분계선의 강


한탄강과 더불어 남/북 자연경계선이다. 하구에서 남북 경계선으로 시작했다가 판문점 인근에서는 남한 쪽으로 흐르고, 상류로 가면 다시 한 번 남북 경계선이 되었다가 더욱 상류로 올라가면 북한 쪽으로 올라간다.
이 강의 '''남북'''을 잇는 다리는 임진강철교가 상행과 하행 2개 있었으나 6.25 전쟁 때문에 파괴되었고, 휴전협정 이후 포로교환을 위해 자유의 다리가 임시로 건설되었었다. 현재는 임진강철교의 상행선만 복구되었으며, 통일대교와 전진교 등 다리가 여럿 건설되어 있다. 그러나 전부 다 관할 군부대의 검문검색을 거쳐야 하는 점은 똑같다. 임진각국민관광지에 관광전시물로 활용하기 위해 복원한 자유의 다리가 2개 있으나,[5] 관광전시용일 뿐 실제로 임진강을 건너기 위한 용도는 아니다.
임진강에는 분단의 문제로 인해 하구둑이 없어서 황해 바닷물이 역류하는 문제가 있다.[6] 하루에 두 번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바닷물이 역류하거나 강물이 내려가거나 하는데, 심하게 역류할 경우 연천군까지 바닷물이 역류한다. 이 때문에 임진강 강물은 식수원 및 수돗물로 쓰지 못하게 되어 있고, 한강 팔당댐에서 물을 끌어다 공급한다.
연천군 군남면군남댐이 있다.

3. 관광


피서를 가는 행락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북한과 가까운 전방지대이긴 하나. 오두산 전망대, 태풍 전망대 등은 안보 견학 관광지로 인기가 있고, 임진강 주상절리대와 한탄강 지질공원을 따라 강변 캠핑이 인기가 있다. 파주시와 연천군 등지에서도 적극적으로 관광자원으로 밀고 있는 지역. 연중 각종 축제가 개최되고, 2018년 현재는 감악산 출렁다리 등이 관광지로 인기가 있다.

4. 사고


  • 2005년에는 강변에서 전술 훈련 중이던 JSA 경비대대 부대원들이 급류에 휘말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포탄 낙하 상황이 주어지자 길 옆으로 몸을 피하다가 병장 한 명이 실족하여 임진강에 빠졌는데, 이를 구하러 중대장, 소대장, 병사 3명[7]의 총 5명이 들어갔으나 중대장과 이병만 가까스로 살아나오고 나머지 3명과 처음 물에 빠진 병장 1명을 포함한 4명은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 2009년에는 북한의 황강댐 무단방류 도발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 북한에서 흘러들어오는 강이기 때문에 목함지뢰가 떠내려오는 일도 있었다.

5. 북한 노래 임진강



[1]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전에는 함경남도 소속이었다.[2] 龍浦里[3] 파주시 교하읍(交河邑)은 임진강과 한강이 해당 지역에서 만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고려시대고려 정부가 몽골 제국의 침공에 강화도로 피난하였을 때 강화도 일대와 교하, 일산 일대를 일부 간척하였다. 이 때문에 현재 한강의 유로는 과거의 모습에서 바뀐 것이다.[4] 칠중현은 고구려 때 난은별(難隱別)이라고도 하였는데, 일본어 なな(나나)가 7을 의미하는 것으로부터 연관성을 찾아 고구려어 7을 재구하려는 시도가 있다.[5] 하나는 2000년에 복원한 자유의다리, 다른 하나는 2016년 12월에 옛 자유의 다리 위치에 복원한 독개다리 스카이라인 내일의 기적소리.[6] 한강은 행주대교 쪽에 신평수중보가 있어서 바닷물의 역류를 막을 수 있다.[7] 병장, 일병, 이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