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프라이
1. 소개
종합격투기의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선수로, 투지와 근성으로 충만한 사나이다. 대학 시절 레슬링을 배워 전미 레슬링 지역 예선에서 자유형, 그레코로만형 2관왕에 올랐고, 졸업 후에는 복싱 무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꼬이면서 격투기를 그만두고 소방관으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었다가 결국 4년만에 이혼하며, UFC를 통해 다시 격투기 무대에 뛰어들었다.
2. 전적
- 무승부: 루벤 빌라리엘
- 무효: 나카오 요시히로
2.1. UFC
1996년 2월 UFC 8에 참가한 프라이는 첫 상대인 토마스 라미레즈를 8초만에 펀치로 KO시키며 충격의 데뷔를 선보였다. 2회전의 샘 앳킨스 역시 48초만에 초살로 보내버리고 결승전에서 개리 굿리지와 격돌했다.
굿리지 역시 아마추어 복싱 커리어가 있었으나 펀치 테크닉의 우열은 누가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프라이는 20kg이 더 나가는 굿리지를 상대로 클린치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초근거리에서 연거푸 숏어퍼를 성공시켰다. 굿리지는 유효타를 맞으면서도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지만 백마운트에서의 초크가 실패하며 포지션을 역전당했다. 상위를 잡은 프라이는 파운딩으로 승부를 결정지으며 UFC 토너먼트의 우승자가 되었다.
1996년 7월의 UFC 9에서도 마크 홀과 브라이언 존스톤을 타격으로 꺾고 결승에 오른다. 하지만 결승에서 만난 마크 콜먼을 상대로 패배하고 만다. 콜먼의 태클을 막아내지 못하고 그라운드로 끌려가 파운딩과 헤드벗을 연신 허용했고, 이마에 커다란 컷이 생기며 TKO로 패배하고 말았다.
1996년 12월에는 UFC의 왕중왕을 가리는 Ultimate Ultimate에 출전했다. 1회전에서는 다시 만난 개리 굿리지와 11분이 넘는 혈전을 벌인 끝에 굿리지가 탈진하며 경기를 포기했다. 2회전의 마크 홀은 20초만에 아킬레스 홀드로 잡아내고, 결승에서는 탱크 애봇을 만나게 된다.
레슬링 + 복싱 베이스인 양 선수의 대결은 클린치 상태의 더티복싱으로 흘러갔다. 애봇이 연이어 큰 훅과 어퍼를 날렸지만 프라이는 쓰러지지 않았다. 체력이 바닥난 애봇이 먼저 쓰러졌고 프라이가 백마운트를 잡고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성공시키며 Ultimate Ultimate의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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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PRIDE
이후 UFC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그는 PRIDE로 무대를 옮겼다.
2001년 9월 PRIDE 16에서 길버트 아이블과 대결했으나 아이블의 눈찌르기로 실격승을 거두게 된다. 2001년 12월에는 이노키 봄바예에서 입식 스트라이커인 시릴 아비디를 맞아 백마운트에서 리얼네이키드 초크로 승리했다. 2002년 2월 PRIDE 19에서는 켄 샴락과 대결하여 판정승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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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PRIDE 21에서는 프로레슬러 출신의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MMA 역사에 길이 남을 난타전을 펼쳐 TKO승을 거두었다. 지근거리에서 강력한 훅을 주고받았고, 나중에는 서로가 왼손으로 상대의 머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펀치를 날려대는 난타전이었다. 결국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킨 프라이가 파운딩으로 TKO승을 거두며 시합이 마무리되었다. 여담으로 경기가 끝나고 요시히로가 프라이한테 가서 '더 좋은 경기를 펼치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했다. 그리고 양 선수 모두 초근접 노가드 난타전을 벌였음에도, 1분여 만에 타카야마의 얼굴은 그야말로 멍투성이 고구마 상태가 된 반면, 프라이의 얼굴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별 상처가 없었다는 것[1] 도 놀라웠다. 여러모로 프라이의 타격 센스를 잘 보여준 경기라 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노가드 난타전을 벌였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란 질문에, 양 선수는 '딱히 없다. 그냥 몸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2002년 11월 PRIDE 23에서 요시다 히데히코에게 암바로 서브미션 패를 당하며 기세가 주춤하게 되었고, 2003년 6월에는 마크 콜먼과의 2차전에서 만장일치로 또 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2003 남제에서는 개리 굿리지에게 36초만에 하이킥을 허용하며 KO로 패배하며 3연패를 기록하게 된다. 단 이 시합에서 하이킥 KO는 프라이드라는 단체 특성도 있고 워크 의혹이 많았다. 우선 한참 현역시절 프라이는 굿리지의 절대적인 천적이었던데다 굿리지는 입식에서조차 킥을 거의 활용 안하는 스타일인데 뜬금없는 하이킥을 구사해서 절묘하게 맞았으니...실제 둘이 상당히 절친이고 굿리지의 은퇴선물로 하이킥 KO를 당해준게 아니냐는것.
굿리지에게 패배를 당한 이후 은퇴를 선언했으나 1년도 지나기 전에 복귀를 선언하고 2004년 K-1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2004년 12월에는 일본의 레슬러인 나카오 요시히로에게 판정패했다. 이후 아케보노 타로, 김민수와 대결해 승리하기도 했으나, 2007년 4월 다시 돌아온 PRIDE 34에서 제임스 톰슨에게 패했다. 이 경기에서도 타카야마 전의 그 장면이 잠깐이나마 나왔다.
2008년 8월에는 DEEP에서 미노와 이쿠히사와 대결해 니바로 패배했다.
2010년 2번째로 은퇴했으나 역시 3달도 못버티고(…) 복귀했다. 2011년 11월 Gladiator Challenge에서 루벤 빌라리엘과 재대결했으나 KO로 졌다.
3. 파이팅 스타일
데뷔 때는 레슬링 베이스로 소개되었지만 복싱스킬이 무엇보다 뛰어났다.
정확하고 빠른 핸드 스피드와 위력적인 숏블로는 그때까지의 스트라이커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였는데, 이러한 프라이의 펀치 테크닉은 당시 체급 빨로 밀어붙이던 뜨내기 파이터들과, 그래플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반면 이렇다할 스트라이커의 활약은 없었던 전반적인 종합격투기의 흐름에서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레슬링 베이스로 그라운드나 클린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고 스스로의 페이스대로 자신있게 타격전을 벌여나가는 것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프라이의 존재는 결론적으로 종합격투기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관절기에 대한 이해도가 취약했기에 유도가나 슛파이터들에게 어이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4. 기타
간지나는 콧수염 덕에 일본에서는 슈퍼 마리오라는 별명이 붙었다.
수염덕인지 프레디 머큐리와도 꽤 닮은 인상으로#, 돌격 크로마티 고교의 프레디와는 판박이다. 그때문에 크로마티 고교의 영화화때 프레디 역으로 돈 프라이가 캐스팅 되길 바란 사람이 꽤 있었으나 정작 그 역을 맡은건 별로 프레디와 닮지도 않은 배우[2] . 명승부를 벌인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작품에 타케노우치 역으로 출연해서 더더욱 아쉽다.
UFC 8에서 거둔 8초 KO는 당시 최단시간 KO였으며, 이는 UFC 114에서 토드 더피의 7초 KO가 나올 때까지 15년간 깨지지 않았다.[3]
타카야마와의 난타전은 PRIDE를 상징하는 대결로, 하이라이트 모음집에는 항상 빠지지 않고 방영되었다. 물론 패러디도 수없이 많다. 종합격투기에서 좀처럼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였기때문에 워크 의혹도 있었으나 '''본능적으로 주먹이 나갔다'''고 대답했다. 타카야마도 '''그걸 짜고 했다는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고 하며 정면으로 부인했고, 경기 후 타카야마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혐짤주의 이게 워크의 결과라면 그것도 나름대로 인정해 줄 수 있을 듯 하다, 연출에 목숨을 걸었단 얘기니까... 실은 다른 시합에서도 이런 양상이 가끔씩 나온다. 대표적으로는 UFC 102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vs 랜디 커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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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반칙을 해도 어필을 잘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과묵한 파이터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개리 굿리지와 라이벌 플래그가 있다. UFC에서 함께 데뷔해서 토너먼트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고, PRIDE에서도 은퇴시합을 함께 했다. 그래서 3차전에서의 하이킥 패배는 프라이가 굿리지에게 준 선물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도 꽤 친분이 있는 사이다.[4]
은퇴를 선언했다가 금새 번복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면 천성이 파이터인 듯 하다.
2004년 3월에는 국내에서 이왕표가 개최하는 울트라 FC에 출전 예정이었다. 당시 기자회견장에서는 돈 프라이의 상대선수로 켄 샴락이나 여타 동급의 일류선수를 섭외하겠다는 이왕표의 말에 돈 프라이가 나는 한국의 정상 파이터라는 이왕표 당신과 겨루기 위해 온거라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울트라 FC의 무산으로 대회는 사라졌다.[5]
종합격투기 커리어가 워낙 대단해서 가려지는 느낌이 크지만 일본에서는 프로레슬러로서도 꽤 오래 활동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악역으로 활약했고, 안토니오 이노키의 은퇴 경기의 상대를 맡기도 했다.
한때 돈 프라이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가지고 케이온!의 작가 카키후라이의 사진이라고 낚는게 유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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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촬영화 고지라 파이널워즈에 주연 캐릭터 중 하나인 고든 대령 역으로 출연, 아주 화려한 칼솜씨를 보여줬다.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퍼블릭 에너미에서도 수사관으로 아주 잠깐 출연했다.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를 '''역겨운 자식!''' 이라고 말할 정도로 화이트를 대단히 싫어한다고 한다.
파이널 파이트 팬 필름에 마이크 해거역으로 나왔다 '''진짜다'''
2007년 인생 최대의 굴욕을 당한바 있는데 호텔 로비에서 '소니 웨스트브룩(Sonny Westbrook)' 이라는 무명 흑인 권투선수 출신과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벌였다가 소니에게 강편치 4방연타를 맞고 KO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 동영상이 찍힌 이후 프라이는 열이 받아서 다시 소니 웨스트브룩을 찾다가 주차장에서 발견하고 패러 갔다가 또다시 얻어터지고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안습한 뒷이야기가 있다.(...) (여담으로 구글에서 소니 웨스트브룩을 검색해보면 보통 체격에 배 많이 나오고 굉장히 순하게 생겼다. 얕잡아 보기 쉬운 인상이라 돈 프라이가 그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소문이 있지만 싸움은 사실 1차전에서 끝났고 실제 영상을 보면 돈 프라이는 넘어졌지만 바로 투레그를 잡고 소니를 넘어트리려다 싸움이 말려진것을 볼 수 있다. 영상을 보면 말리지 않았으면 테이크다운이 성공했을것으로 보이며, 테이크다운 후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돈프라이가 펀치를 맞기 전 오른편 사람이 돈 프라이의 팔을 잡아 방해가 된 것도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