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야마 요시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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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야마 요시히로 (高山 善廣)
'''생년월일'''
1966년 9월 19일
'''출신지'''
도쿄스미다
'''신장'''
196cm
'''링네임'''
아파치 타워, 제왕
'''소속'''
프리
'''링크'''
트위터
1. 소개
2. 프로레슬러 활동
3. 종합격투기 활동
4. 프로레슬링 스타일
5. 예능
6. 여담
7. 둘러보기


1. 소개


일본의 프로레슬러. UWF 인터내셔널전일본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 NOAH 등을 거쳐 프리 신분으로 활동한다.

PRIDE 무대에서도 몇 차례 출전해 경기마다 패배했지만 돈 프라이, 밥 샙 등과 괴랄한 맷집을 앞세운 노가드 난타전을 벌여 명경기를 만들어낸다.

2. 프로레슬러 활동


타카야마 요시히로의 커리어는 UWF에서 시작됐는데, 막상 커리어 초반에는 미드카더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였다. 그러던 중 UWF와 신일본 프로레슬링, WAR 사이에 대립하게 되자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안죠 요지와 야마모토 켄이치와 함께 "골든 컵스"라는 스테이블을 조직해 태그팀 전선과 6인매치에서 활약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는 안죠 요지와 함께 슈퍼 스트롱 머신을 조롱하기 위해서 "200% 머신"이라는 태그팀을 조직해서 활동했다. WAR에서는 게도와 쟈도, 후유키 히로미치와 대립했다.
UWF가 몰락한 뒤에는 킹덤이라는 단체에 들어갔지만 그 단체도 곧 망하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프리신분으로 UWF 시절 동료인 카키하라 마사히토와 같이 활동한다. 처음에 그는 카와다 토시아키와 대립을 갖게 되지만 대립 과정에서 자주 패배했고, 결국엔 하위권의 위상에 머물게 된다. 그 뒤에는 UWF 시절의 외국인 용병이였던 게리 올브라이트와 오모리 타카오와 같이 "트라이앵글 오브 파워"라는 스테이블을 구성한다.
1999년에 자이언트 바바의 사망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이 된 미사와 미츠하루는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카키하라 마사히토를 전일본의 정식 소속 프로레슬러로 입단시키고, 그 후에는 오모리 타카오와 같이 팀 NO FEAR로 푸쉬를 받으며 성공을 맛본다. 하야부사를 커버해 아시안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하고, 쟈니 에이스 & 바트 건을 상대로 더블 컵까지 따내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미사와 미츠하루 & 오가와 요시나리에게 패배한다.
2000년에 미사와 미츠하루가 새로운 프로모션으로 프로레슬링 NOAH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을 때 따라나섰다. UWF 시절 동료들이 PRIDE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본 후에는 종합격투기에 진출하기로 결정하지만 미사와 미츠하루의 배려 덕에 프로레슬링 NOAH에서 프로레슬러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프로레슬링 NOAH 설립 후 몇주간 초대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되기 위해 토너먼트에 참가해서 경쟁했으며,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미사와 미츠하루의 모든 엘보 기술들을 받아낸 후 에메랄드 플로전을 맞고 패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공가도는 프로레슬링 NOAH에서 계속되어 타카오 오모리와 GHC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한다. 2002년엔 프로레슬링 NOAH에선 좋은 경기들을 만들어내며 종국에는 오가와 요시나리를 상대로 승리한 후 GHC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따냈다. 하지만 한 달 후에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타이틀을 뺏긴다.
본격적으로 MMA에 손을 대기 위해 그는 프로레슬링 NOAH를 탈단하고 FA 신분으로 전환했다. 그 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나가타 유지, 쵸노 마사히로, 텐잔 히로요시 같은 정상급 스타들과 경쟁하면서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2003년과 2004년에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G1 클라이맥스에도 참가했다. 2004년 중순에는 판크라스 미션 소속 프로레슬러인 스즈키 미노루와 연합하여 IWGP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재기불능이란 판정을 받지만 2006년 6월, 프로레슬링 NOAH에서는 7월 16일 무도관에서의 흥행에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복귀해서 코바시 켄타와 함께 미사와 미츠하루 & 아키야마 준[1]을 상대한다는 소식을 발표한다. 이후에 코바시 켄타의 암 제거 수술 일정으로 인해 사사키 켄스케와 팀을 맺는 것으로 대진이 변경된 채 복귀했다. 그리고 코바시 켄타가 암을 극복하고 돌아왔을 때에도 같은 팀으로 미사와 미츠하루와 아키야마 준 태그를 상대했다.
복귀 후의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옛 UWF 동료인 사노 타쿠마와 팀을 맺고, 코바시 켄타의 신장 수술로 인해 공백이 된 GHC 태그 타이틀을 노리게 됐는데,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무하마드 요네와 모리시마 타케시의 태그에게 패배한다. 같은 해 12월 27일에는 ZERO-1에 모습을 드러내 전 파트너인 오모리 타카오를 공격하고 다음 흥행에 다시 온다고 약속하고 갔다(...).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2009년 3월 14일에 그레이트 무타를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PPV인 프로레슬링 러브에서 패배시키고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로서 사사키 켄스케를 이어 두번째로 일본의 3가지 메이저 타이틀을 모두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2]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7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삼관 헤비급 챔피언을 유지했고, 11월 26일에 코지마 사토시에게 타이틀을 뺏겼다.
2010년 1월 4일 도쿄 돔에서의 레슬킹덤 4에선 나카무라 신스케의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했지만 패배했다.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사노 타구마와 함께 프로레슬링 NOAH의 "글로벌 태그 리그" 토너먼트에서 연승가도를 이어갔지만, GHC 태그팀 챔피언인 무하마드 요네와 리키오 타케시를 이기는 데에는 실패한다.
2010년 3월 28일에서 5월 2일 사이에는 프로레슬링 NOAH 사상 최초의 글로벌 리그 토너먼트에 참가해 결국엔 우승을 거둔다. 결승전에서 아키야마 준을 만나 승리를 거두었으며, 총점 7점으로 우승했다. 그리고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우승자로서 스기우라 타카시의 GHC 헤비웨이트 타이틀에 도전할수 있는 권리를 얻어 7월 10일에 타이틀전을 가졌으나 패배했다. 같은 해 9월 18일에는 사노 타쿠마와 함께 사이토 아키토시와 빈슨 스미스의 태그팀 타이틀마저 따냈고, 2011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열린 레슬킹덤 5에선 스기우라 타카시와 팀을 맺어 오카다 카즈치카고토 히로오키의 태그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사노 타쿠마의 태그는 타이틀을 신일본 소속 자이언트 버나드 & 칼 앤더슨에게 6월 18일에 잃었다.
2011년 후반부에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스즈키 미노루에게 가세해 스즈키군의 멤버로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대로 2012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열린 레슬킹덤 6에서 마카베 토우기를 상대했지만 패배했다. 3월 18일에는 같은 스즈키군 멤버인 랜스 아처와 함께 텐잔 히로요시와 코지마 사토시 태그의 IWGP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2015년에 스즈키 미노루가 스즈키군을 이끌고 프로레슬링 NOAH를 침공할 때 스즈키군이 아니라 NOAH의 편에 서서 맞서싸웠다. 2017년 5월 4일, DDT 프로레슬링의 흥행에서 경기 중 선셋 플립을 접수할 때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지면서 전신마비 증상을 보였다. 진단 결과 경추 손상 및 변형성 경추증으로, 남색 디노와의 KO-D 태그 타이틀을 반납하고 입원했다. 목 아래쪽에는 전혀 감각이 없는 상태에다가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친다. 이에 스즈키 미노루를 비롯한 동료와 선후배 프로레슬러들은 TAKAYAMANIA를 발족해 타카야마 요시히로를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한편 PRIDE에서 전설의 난타전을 펼쳤던 돈 프라이도 타카야마 요시히로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3. 종합격투기 활동


프로레슬링 NOAH에서 프로레슬러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종합격투기에 출전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노아를 퇴단하고 PRIDE에 참전한다. 프로레슬링 NOAH의 사장인 미사와 미츠하루가 타카야마 요시히로를 배려하여 노아 소속 신분을 유지시켜 주려고 했지만, 노아와 프라이드의 방송사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종적으로 노아 퇴단을 하고 프리 신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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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에 참전할 때마다 '''전설적인 난타전'''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PRIDE.21에서 돈 프라이와의 노가드 난타전은 전설의 반열에 들었고, MMA팬에게 명경기를 선정해달라고 할 때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경기를 펼쳤다. 두 사람은 서로 왼손으로는 상대의 머리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가드 없이 상대방의 얼굴만 집요하게 때렸다. 타카야마 요시히로는 직감적으로 본인이 박살날 것을 예상했는지 중간중간 뺨클린치 니킥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효과는 없었고 결국 패배한다. 이후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돈 프라이를 찾아가 경기를 망쳤다며 사과했다는 일화가 있다.

심지어 '''밥 샙과도 똑같은 형태의 난타전을 벌였지만''' 체중이 50kg이나 더 나가는 우람한 밥 샙에게 박살나다가 결국 암 바로 패배했다. 다만 밥샙이 '태클-암바' 패턴으로 타격가들과의 타격전을 회피하는 그래플러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밥샙은 입식타격 K-1의 스타로서 K-1에서도 난타전으로 유명한 파이터였고 MMA에서도 여느 K-1출신 파이터들과 마찬가지로 태클을 방어하고 타격전으로 풀어가는 패턴이었는데,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난타전을 걸자 밥샙이 타격전을 회피하고 그라운드로 끌고가서 암바로 승리하는 말도 안되는 광경을 연출한 것이다. 데미지를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 그라운드전으로 간 것도 아니고, 시작하자마자 한두번 주먹 섞더니만 바로 그라운드로 끌고 갔기에 '''MMA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상남자 싸움'에서는 밥샙이 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이 둘의 캐릭터도 그렇고 시합을 부킹한 목적은 주최측의 기대나 팬들의 기대나 수준높은 MMA대결보다는 '상남자들의 대결'을 예상하고 붙인 것인데, 대놓고 난타전을 펼치려 달려드는 '프로레슬러'에게 K-1 밥샙이 그라운드로 끌고가 암바로 승리했기에 경기에서는 승리했을지 몰라도 주최측과 팬들을 실망시킨 측면이 있다. '그래플러' 밥샙의 모습은 주최측과 팬들이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밥샙이 타카야마와의 난타전을 부담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3] 난타전 외에는 생각이 없어보이는 '프로레슬러' 타카야마와는 달리, K-1 밥샙은 한두번 주먹 섞더니 바로 태클 후 암바 패턴으로 간 것을 보면, 애초 이런 전략으로 경기를 준비한 듯 싶다. 물론 '싸움'이 아닌 'MMA'시합이므로 이기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타카야마와 밥샙의 대결은 주최측이나 팬들이나 수준높은 MMA공방을 기대한 것이 아니고, '화끈한 상남자 대결'을 기대하고 대진을 짠 것이다. 설마 밥샙과의 대결에서 그래플링 하리라곤 미처 생각지 않고 철저히 타격전만을 준비해온 듯한 타카야마와는 달리, 상대의 허를 찌르는 '그라운드전'을 준비해와 '영리하게' 승리한 밥샙의 암바승에 실망하는 팬들이 많았다. 물론 괴물 밥샙이 태클로 그라운드로 끌고가서 암바를 걸어 승리하는 모습 자체는 이색적인 볼거리이긴 했다.

4. 프로레슬링 스타일



신장 '''196cm'''로, 190cm 언저리만 되어도 거구로 취급하는 일본인으로서는 대단한 덩치이다. 그러나 이런 거구를 살린 파워형 프로레슬러는 아니고, 타격계열 기술 위주의 전통적인 UWF식 '''슈터 스타일'''인 것이 특이한 점이다. 묵직한 킥과 장저, 강력한 니 킥이 특징이다. 필살기는 니 리프트저먼 수플렉스다. 특히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시전하는 저먼 수플렉스는 196센티미터의 신장에서 고각도로 꽂히는 호쾌한 비주얼이 일품인데, 본인의 이름인 타카야마(高山)와 장신에서 따와 "에베레스트 저먼"이라고 부른다.
UWF식 슛 레슬링 스타일은 설득력이 중요한데, '''타격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경기가 지루하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196cm의 거구가 타격음이 제대로 나는 킥과 장저를 날리고, 헤비급 선수의 몸이 뜰 정도의 니 리프트를 꽂아넣는다. 한편 테크니컬한 공방전도 나쁘지 않게 진행한다. 그렇다고 힘이 약한 것도 아니어서, 벨리 투 벨리 수플렉스나 더블 언더훅 수플렉스도 살벌하게 잘 사용한다. 특히 벨리 투 벨리 수플렉스의 경우엔 경량급에게 사용했을 때 피폭자가 바닥에 부딪힌 후에 한 번 튕긴 뒤 나뒹구는(...) 엄청난 파워를 보여준다.

5. 예능


험상궂게 생긴 얼굴을 살려 영화나 드라마, 예능 쪽에서도 간간히 활약한다. 돌격 크로마티 고교에서 타케노우치 유타카 역으로 분한 바 있다.
노기빙고에서는 충격과 공포의 '''요시링''' 기믹을 민다.

6. 여담


흔히 타카야마 요시히로의 이미지를 올백 금발에 험상궂은 인상이 주 이미지로 박혀있지만 신인시절에는 큰키에 말쑥한 외모를 가졌었다.
요리실력이 꽤 좋다. UWF 신입시절 동영상에서 식사당번때 나온 칼질 솜씨를 보면 예사롭지가 않다.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서열주의야 뭐 알려진대로고 저렇게 다 만들고도 당시엔 신입이었던지라 가장 나중에 식사를 해야만 했다.
이 요리실력을 이용해 도쿄 요오기 시 우에하라 역 근처에 스토막 홀드라는 이름의 라면집을 직접 경영하고 있다. 여기는 닭을 이용한 담백한 맛의 라면을 주로 만들고 있으며 유명인들도 많이 찾는편. 여담으로 아리요시 AKB 공화국 2012년 5월 22일 방영분인 108회에서 이 가게가 출연하여 주인장인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AKB 13기 연구생 두명에게 몰카를 건었던 전적이 있다.[4]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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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레슬킹덤 메인 이벤트'''[★]
'''2010.1.4'''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매치
'''타카야마 요시히로 vs 나카무라 신스케'''(C)
[image]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브롤러'''
스티브 오스틴
(2001)


'''타카야마 요시히로
(2002)
'''

브록 레스너
(2003)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밥 샙
(2002)

타카야마 요시히로
(2003)

사사키 켄스케
(2004)

[1] 익스플로이더의 창시자이자 전일본 프로레슬링 5강 중 한 명이다.[2] 프로레슬링 NOAH의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3] 이게 사실일수도 있는게 실제로 요시히로는 전적도 밥샙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편이고 그렇다고 승리도 한적도 없는데다 엄청난 기술이 있는것도 아니라서 밥샙 입장에서 요시히로는 기술시험용 떡밥에 불과했을것이다. 예시로 최홍만도 아케보노 3차전에서 잘 안쓰던 미들킥과 플라잉니킥까지 선보인것을 보면 진짜로 이게 맞는거 일 수도 있다.[4] 이때 당한 사람은 13기 연구생 이었던 이와타테 사호와 타카시마 유리나의 두명.[★]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