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현

 

1. 후한 말의 인물
1.1. 미디어 믹스
2.1. 미디어 믹스
3. 조선 초의 인물


1. 후한 말의 인물


鄧賢
생몰년도 미상.
유장의 수하 장수로 익주를 공격해 온 유비를 맞아 싸웠으나 끝내 패하고 면죽으로 물러났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장이 장로의 침입을 막으려 유비를 불러들일 때 극력 반대했고 연회를 베풀어 위연장임이 칼춤을 출 때 유괴, 냉포와 함께 검을 뽑아 들고 나서서 무리로 춤을 추어 웃음을 자아내겠다고 했다가 유비가 눈치채 이를 중지시키면서 유비와 유장의 꾸짖음을 받았다.
유비가 양회, 고패를 죽이고 부수관을 점령하자 장임, 유괴, 냉포 등과 함께 유장의 명으로 군사 5만을 이끌고 낙현으로 달려갔는데, 그 전에 유괴의 제안으로 자허상인을 찾아가 점괘를 묻기도 했다.
유비가 낙성을 공격할 때도 용감히 잘 싸웠으며, 위연을 쫓아 넘어뜨리고 창으로 찌르려던 찰나 황충의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2의 등현과는 이름의 한자까지 같다. 연의에서는 1의 등현이 죽은 후 2의 등현이 나오기 때문에 동명이인이지만 정사에서는 둘이 동명이인인지, 동일인인지 알 수 없다.

1.1.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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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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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13
꽤나 용맹하게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2의 등현과 동일인으로 나오기 때문에 능력치와 의리가 박하다. 경우에 따라 아예 안 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삼국지 9에서는 67/72/49/38. 분투와 연사가 없고 분전과 제사 뿐인 것이 많이 아쉬운 장수다. 결국 수송용 쩌리가 된다.
삼국지 10에서는 63/70/45/36/49에 특기는 반목, 기염 2개 뿐이다.
삼국지 11에선 소심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성격은 저돌형이다.
삼국지 12에서는 통무지정 순으로 61/73/45/36이며 일러스트에선 빼빼 마른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두 손을 모으고 있으면서 빌빌거리고 있다. 실제 활약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훈련 1, 순찰 1, 공성 2. 전수특기는 공성이고 전법은 궁속약화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1, 무력 72, 지력 45, 정치 36, 매력 47로 전작에 비해 무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소심, 주의는 명리, 정책은 안행강화 Lv 3, 진형은 안행, 전법은 정란, 충차, 구축,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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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도 등장하여 하마터면 일기토로 위연을 이길 뻔 한다. 하지만 곧바로 황충에게 사살된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유빅으로 등장한다. 동료 냉포와 함께 낙성 전투 (4)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냉포와 더불어 콤비 플레이의 말로를 보여주었다.
낙성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유장이 소환한 익주의 5명장 중 하나로 등장하며, 유비군을 상대하게 되자 맨날 반란군 찌질이들만 상대하다 네임드와 대결하게 됐다며 오히려 좋아했다.
냉포와 더불어 낙성 근처에 영채를 세워서 유비군을 상대로 낙성을 방어하고자 했다. 유비군이 냉포 진영을 공격하자 바로 지원군을 끌고 냉포에게 가려고 했지만 그 사이 위연이 등현의 영채를 급습하려 하고, 이에 군사를 돌려서 돌아가려 했지만 진군하던 군사를 되돌리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지라 난항을 겪고 그 사이 위연에게 영채를 털렸다. 뒤늦게 돌아와서 위연을 상대하려다 사로잡힌 건 덤.
삼국지 영걸전에선 문관 일러로 등장, 능력치도 형편없다. 낙성 전투 1,2에서 전차대로 등장. 별 다른 이벤트 없이 낙성 전투 2가 끝난 후 참전한 익주 장수들이 (유비로 설득한 장수들은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고 나오는 것으로 봐선 전사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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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본래 플레이어블 무장으로 예정되었다가 탈락 무장이 되었으며, 유비전, 방통전에서 적으로 등장해 유비전에서는 낙성 전투2에서 황충과의 단기접전으로 사망한다. 방통전에서는 부현 전투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위연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죽이려 했다가 황충이 활을 날려 사망한다. 병과는 중기병. 능력치는 무력 73, 지력 68, 통솔 45, 민첩 56, 행운 73. 성격은 요설. 초상화는 제왕 전횡과 돌려쓰는 공용 초상화.

2.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鄧賢
생몰년도 미상
맹달의 생질이다.
위에 항복했던 맹달이 다시 촉나라로 돌아갈 생각으로 상용에서 반기를 들었을 때 사마의가 신속하게 달려와 맹달을 공격하자 이보와 등현은 성에서 나와 항복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신의가 종을 통해 사마의에게 맹달이 모반한다는 사실을 보낼 때 이보와 등현은 맹달을 고발하는 글을 보냈으며, 사마의가 성을 공격하자 이보와 등현은 성문을 열어 성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 공으로 조예로부터 신성과 상용을 지키는 일을 맡겨지게 된다.

2.1.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1의 등현과 동일인으로 나온다.
진삼국무쌍 4 맹장전에서 외전 모드의 시나리오인 227년 신성전에서 성에서 멀리서 떨어진 동쪽에서 말을 타고 있는데, 등현을 격파하면 투항한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나, 나, 나, 나는 나쁘지 않다. 나쁜 것은 맹달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사마의 2 : 최후의 승자(7회)에서는 사마의가 쳐들어 온 상황에서 맹달을 체포하여 사마의에게 잡아다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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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맹달을 배신했노라고 이름만 언급된다.

3. 조선 초의 인물


藤賢
생몰년도 미상
태종치세 초기 항복하여 조선에 향화한 왜군 장수 중 한명이다.
개명 전 이름은 현준(賢准)이다. 1406년 태종에 의해 개명된 뒤, 산원이라는 하급 무관직을 받고 왜적 침입을 방비하도록 하였다. 1419년 세종 즉위 직후 단행된 대마도 정벌에서 상왕 태종에 의해 변상(邊尙)등 4인과 함께 항복을 권유하는 문서를 들고 대마도주에게 가서 항복을 권유했다.
마침내 대마도주의 항복의사를 받아들고 돌아와서 대마도 재정벌 계획은 무산되게 되었다.
조선 태종 치세에 향화(向化)한 왜인(倭人)으로서 1451년 문종의 생일 하례까지 등장한다.
서울에서 거주하며 향화 직후에는 무관으로서 종사하고, 대마도 정벌 즈음으로 부터는 일본과의 교류 등에서 외교관 및 자문 역할을 수행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