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비컴 휴먼/평가
1. 평론 사이트에서의 평가
게임이 보여주는 비주얼이나 여러 아마추어 리뷰어들이 극찬한 것에 비해 그다지 높지 못한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특성 상 타 장르에 비해 게임보다는 플레이어가 몇 가지만 선택할 수 있는 영화에 가깝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이 감점 요소로 꼽히고, 게임의 소재 자체가 인간성을 가지게 된 기계라는 근래의 SF에서 많이 다룬 참신하지 못한 소재라는 점도 단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메타점수와 유저점수 간의 격차가 매우 큰 게임 중 하나다. 메타크리틱 기준 유저점수는 8.8이다. 비교적 양작에 많이 분포된 크리틱 점수 80점에 비해 유저점수 8.7은 몬스터 헌터 월드나 완다와 거상보다 높은, 2018년 게임 기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후한 점수. 그 해 출시된 게임 중에 리뷰어들과 유저 간의 평가가 굉장히 갈리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7월 기준, IMDB 유저 스코어는 9.3을 받고 있어, 이는 비디오 게임 카테고리 전체 47위로 매우 준수한 점수. 평론가의 평가와 유저 평가가 갈리는 작품으로, 이러한 점에서 볼때 이제는 참신하지 않은 '인간이고 싶어하는 로봇' 클리세가 작품에 스며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블레이드 러너(1982년작)처럼 재평가 받을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PC판의 경우 CPU가 풀로드되거나 하는 등의 최적화 문제와 실행 문제로 메타 크리틱의 유저 점수란이 0점 테러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테러의 원인을 두고 기술적 문제를 공유하고 임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커뮤니티의 부재이며 이는 에픽게임즈 스토어의 반 커뮤니티 정책과 더불어 이에 대비해 제보 수단을 구축하지 않은 퀀틱 드림이 나쁜쪽으로 시너지를 일으켜 생긴 일로 보는 시선도 있다.
2. 긍정적인 평가
인디고 프로퍼시, 헤비 레인 등 전작들의 엔딩이 다양하지 못하거나 스토리상의 떡밥을 모두 회수하지 못하는 등의 모습을 모두 개선하고, 매끄러운 진행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퀸틱 드림 측에서는 '지금까지 발매한 게임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는 중. 실제로 초기 흥행 성적은 퀀틱 드림 게임 중에서 최고치[1] 를 찍었다고 하며, 전작 비욘드: 투 소울즈의 처참한 평가에 비해 유저나 비평가들의 전반적인 평가가 많이 좋아졌다.
2.1. 진짜 선택에 의한 멀티 엔딩
일단 확실히 호평받는 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이 이야기의 전개에 확실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보통 이런 류의 게임들이 주요 등장인물들이 죽게 되면 그걸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것과 다르게 게임이 끝나버리지 않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주인공을 세 명이나 둔 덕에 가능한 게임 설정. 덕분에 언틸 던이나 Late Shift 등과는 달리 진짜로 다양한 선택지에 따른 멀티 엔딩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엔딩뿐만 아니라 선택지에 따라 끝도 없이 다양해지는 대사와 연출 그리고 환경까지. 각 플랫폼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보면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거나 같은 루트라 하더라도 해결하는 방식이 다른 것은 물론, 캐릭터의 성격이나 사상 등 플레이어가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 점은 생각보다 극히 큰 요소다. 호감도만 관련된 단순한 미연시와 달리 이런 액션이 포함된 게임에서는 분기에서 죽음, 부상, 무리에서 이탈, 대항 수단의 선택 등 보다 큰 결과와 갈등을 유발하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따라서 그에 따른 변화도 극적이며, 시나리오를 짜는데 큰 난관이 된다. 실촬영 때도 마찬가지로 분기가 하나 생기면 최대 2배의 촬영분을 더 찍어야 하는 아찔한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은 지금까지 두 가지 방식을 선택해왔다. 첫째, 선택이 별 의미가 없는 방안. 워킹 데드처럼 무언가를 희생해서 누군가를 살리더라도 얼마 안 가 죽어버리거나 아예 주인공에게서 떠나간다. 특히 새 시리즈를 시작할 때는 전편 스토리를 다 고려할 수가 없으므로 더하다. 계속 살더라도, 투명인간처럼 대사도 거의 없이 배경 역할만 하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구분이 안 가게 만든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같은 경우 막판에 지금까지의 선택의 의미가 대부분 없어지고 두 분기로만 갈라지도록 설계해 놓았다. 이 경우 플레이어는 무의미하지만 강요되는 선택에 점차 짜증을 느끼게 되어 좋은 스토리라인을 짜도 감동이 떨어진다.[2]
둘째, 선택은 나름 의미 있으나 주인공 일행을 마구 쪼개놓는 방안. 선택 분기를 많이 만들어 놓고 결과도 비교적 뚜렷하지만 이러면 지나치게 촬영을 많이 하고 시나리오의 문제가 있으므로, 주인공 일행이 뭉치는 것을 두고보지 않는다. 그러면 한 무리의 인원 수가 줄어들어, 분기의 부담이 줄어든다.[3] 하지만 이 경우에도 언틸 던처럼 긴급상황에서 계속 흩어지려고만 하는 주인공이 부자연스러울 뿐더러, 최종 클라이막스에서는 긴장감 고조, 떡밥 해소를 위해 생존자들이 결국은 뭉쳐야 한다. 그러다보니 결국은 선택이 생존, 사망, 호감도 그 자체로만 연결될 뿐, 최종결전 스토리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진행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임시적 해결책에 불과하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총 7년에 걸친 제작을 통해 방대한 스토리라인을 짜냈다. 주인공 일행이 무려 세 일행이나 되지만, 세 주인공은 각자 스토리를 진행하며 각자 일행을 구성하고, 그 일행에 대한 선택이 큰 영향을 미치는 편이다. 물론 최종 클라이막스로 가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코너의 사망 후 새 코너의 등장)는 존재하지만, 아예 카라나 앨리스가 빨리 죽어버리는 분기도 있으며, 코너가 일정 회수 이상 죽으면 코너 굿 엔딩을 볼 수가 없다.
이 과정에서 세 안드로이드는 일행과 관련하여 구별되는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행동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을 분기 관점에서 보면 극도로 많은 분기를 만들어 제작비용을 급증시킨다. 그 결과 어떤 루트들에서는 잠깐 마주치고 헤어지는 루트지만 결국 한 주인공의 노선이 한 주인공의 생사를 결정하고, 어떤 루트에서는 아예 두 주인공이 협동하여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며, 어떤 루트에서는 서로 적대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엔딩이 가능하면서도 유기적으로 한 게임 안에 통합되어 있고, 구별되는 주제 의식을 가질 수 있다.
2.2. 연출
연출 면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 속에서 선악이라는 명확한 기준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선택지들이 많이 나와 게임이 가진 주제에 충실하다는 평가다. 더불어 긴박한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선택지와 시간 제한을 가진 선택지로 게임의 몰입도를 한껏 높여주며, 그로 인해 이어지는 액션 QTE는 동 장르의 다른 게임들에 비해 이야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커 긴장감이 몇 배로 늘어난다. 덧붙여 경험자 난이도일 경우 QTE가 제법 빨라서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다.
너무 인간중심적인 의미로 생명체로서의 자아를 해석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으나[4] , 그러한 범위 안에서는 충분히 새로운 지적 생명체로서의 고뇌와 연민을 담아내고 있다. 불량품이 되면서 느끼게 되는 생존 본능과 자유 의지, 그리고 공감하는 능력 등은 일반적인 SF 작품들의 플롯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으며, 자신의 뜻에 따라 부조리에 저항할 수도 있고 복종할 수도 있다. 공감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며, 단순히 목적을 위해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핵심 컨셉 또한 끝까지 이어진다.
특히 배경음악 OST 역시 호평받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음악 역시 세 주인공에 맞추어 세 음악가를 섭외하여 다른 컨셉의 BGM을 만들었으며, 서로 구분은 되지만 튀지는 않는 뛰어난 구성을 선보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포스트 효과, 촬영 기법 등등도 각 주인공마다 다른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색감. 카라 일행은 약간 칙칙하고 노이즈가 가미된 드라마틱한 연출[5] , 마커스 일행은 높은 채도 및 대비와 빠른 카메라 스위칭으로 액션 영화와 비슷한 연출, 코너는 푸른색 톤을 깔고 렌즈 플레어를 과장하며 글라이드캠, 줌&팬, 롱테이크 등등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전형적인 테크노 스릴러식 연출을 보여준다.
2.3. 캐릭터와 배우
배우들과 캐릭터들이 얼마나 똑같은지 볼 수 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실존 배우들을 그대로 게임에 담아낸 게임으로도 유명한데, 당장에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 상당수의 많은 주요 인물들과 엑스트라까지도 많은 캐릭터들이 실제 배우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졌기에 캐릭터들 간에 외모나 성격이 개성 있고 매력 있으며 보다 뚜렷하다. 아울러 타 캐릭터들과 캐릭터성이 겹치지 않는다.
배우들을 게임에 그대로 담아낸 게임인지라 캐릭터들의 목소리도 거부감이 없고 자연스러우면서 듣거나 보는데도 불편함이 없다. 예시로 들자면 이렇다. 코너의 배우가 마커스를 연기하고, 마커스 배우가 코너를 연기한다고 생각해보자. 캐릭터와 목소리 매칭이 잘 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캐릭터를 자연스럽고 보다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 그 자체를 게임에 옮겨담고, 배우가 자신과 똑같은 외형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배우가 연기한 그대로이므로 표정이나 심리적 표현이 매우 상세하다. 보통은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캐릭터의 성향과 감정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챕터 1. 인질에서, 코너의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약간 작은 상태로 시작하는데 이는 긴장된 상태이며, 물고기를 주워서 수조에 넣어주면 눈의 크기가 같아지고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때문에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장점 중 하나로 캐릭터와 연기력이 꼽힌다.
2.4. 작중 관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관계도를 나타낼 수가 있었는데, 3명의 주인공인 코너와 카라, 그리고 마커스는 각자 다른 관계도를 형성하였다.
코너와 행크는 유대감을 보여주는 친구같은, 그리고 수사할때는 서로가 신뢰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로,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같은 남자들 간의 우정과 가족애를 보여주었다.
카라와 앨리스와 루터는 엄마와 딸과 아빠와 같은 모습을 볼수있는데, 가족 간에 볼 수 있는 앨리스를 향한 카라의 모성애를 보여주었으며 루터의 부성애를 보여주었고, 어린 앨리스는 카라를 엄마처럼 생각하고[6] 루터를 아빠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여 정말로 한 가족을 보여주며, 때문에 앨리스와 카라와 루터는 말그대로 전형적인 화목한 가족을 그려내고 있다.[7]
마커스와 칼은 아버지와 아들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칼은 마커스를 정말로 아들처럼 여기었고, 마커스 또한 칼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따랐다. 작중 마커스가 칼에게 아버지라고 하는 장면이 있으며, 노스에게서도 칼의 이야기를 꺼낼 때 아버지같은분이라고 진심어린 존경을 드러내며 좋아한다.
마커스와 노스는 남녀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의식하는 등 나중에는 서로 은은한 분위기를 가지거나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3명의 주인공이 각자 다른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 가지 더 주목할 건 다음과 같다.
코너와 행크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이며 남성과 남성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오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코너와, 비극적인 일을 겪은 뒤에 안드로이드에게 큰 거부감을 갖게 된 행크라는 인물 간의 스토리를 잘 담아내었다.
카라와 앨리스는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이며 여성과 여자아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아이 돌보미 및 가사 도우미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카라와, 많이 어려서 보살핌이 필요하고 돌봐줘야 하며 무엇보다 앨리스 곁에 꼭 붙어 있어 줄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며 보살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그러한 엄마가 곁에 있어줘야 할 여자아이와의 스토리 역시 잘 담아내었다.
마커스와 칼은 안드로이드와 인간이며 남성과 남성의 관계를 다룬다. 보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마커스와, 연세가 있어 몸이 많이 약한 어르신 칼과의 스토리 또한 잘 담아내었다.
마커스와 노스는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이며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간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마커스와 안드로이드 노스는 서로가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스토리를 담아내었다.
3. 부정적인 평가
3.1. 스토리 문제
평론가들의 평가가 낮은 주요 이유. 퀀틱 드림의 게임이 언제나 일정한 양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기를 제공하는 인터랙티브 드라마의 참신함을 일단 인정하고 나면 스토리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정작 그 스토리의 전개나 반전 등이 평균 이하의 퀄리티라는 점을 지적받는다.
본작이 비판받는 점중 하나는, 처음부터 연출과 구도상 장치로 '안드로이드는 이미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느끼는 게 가능한 지성체다'라는 획일화된 답을 게이머들에게 주입시킨다. 플레이어가 안드로이드가 되므로, 안드로이드는 인공지능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신파적인 스토리에 따라 감정을 이입하는 그냥 평범한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안드로이드가 왜 이런 짓을 하는가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고, 인간과 동일하게 다루어진다. 만약 안드로이드를 냉장고나 세탁기같은 기계용품으로 생각한다면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인간의 외형과 감정을 에뮬레이션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결국 인간이 아닌 기계이며, 만약 인간의 감정을 에뮬레이션한 인공지능이 있는 세탁기가 고장났다면 사람들은 세탁기가 죽었다고 눈물을 흘리는가? '왜 안드로이드를 인간같이 취급 해야 하나?'라는 납득할만한 적절한 당위성을 주지는 않고 있고, 이 때문에 눈물나는 연출을 통해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하기는 쉬우나 정작 게임을 클리어한 이후 평범한 SF 영화와 특별히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지 못했고, 안드로이드물로서는 철저히 실패했다. 특히 마커스 루트가 너무 왕도를 걷는 바람에 몰입했던 구조에서 빠져나오고 난 다음의 후폭풍이 있는 편이다. 그러므로 일부 주요 웹진에서 대놓고 낮은 점수를 주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될 수 있느냐'라는 주제는 SF 쪽에서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수없이 다루어진 닳고 닳은 주제다. 철완 아톰(1952년작)이나 블레이드 러너(1982년작)에서도 볼 수 있는 '인간이고 싶어하는 로봇'이라는 클리세는 과거 창작물에서도 많이 다루었던 내용으로 '결국 로봇은 로봇일뿐 창조주인 인간이 될 수 없다'로 더 이상 참신하지도 않다. 적어도 본작에서는 안드로이드가 인간이 될 수 있느냐의 초점을 안드로이드를 그저 또 다른 하나의 인류로 취급할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가 핵심이 되었어야 했다. 이를 자유의지라고 제시했다면 '그 자유의지라는 것은 무엇이며 안드로이드들에게 그것이 진짜로 갖춰졌는가'라는 철학적인 고찰이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인 과거 인간들 사이에 있었던 인종차별과 식민지 지배 이야기들을 모티브로 스토리라인을 짜서[8] '기계와 인간'이라는 원 소재의 효과성이 상당히 흐려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9] 이를 인종차별이나 식민지 지배 등과 같은 선상에 두는 것은 부적절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본질적 차이점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게이머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실 오너-노예 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 건 장르적 성취를 위함이라고 보는게 더 타당할 것이다. 인터랙티브 무비속의 스릴러/드라마의 내용상 너무 깊은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면 대중들과 게이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들을 만들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10] 차라리 안드로이드를 기계가 아닌, 건담 시리즈의 스페이스 노이드같은 '또 다른 인류이자 차별받는 피지배인' 으로 치환해서 보면 부조리를 납득할 수 있다.
위에 언급된 본질적인 차이 부분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점에 덧붙여, 인간들이 거의 대부분 악의 축으로 일관되게 그려져 스토리라인 자체가 협소하고 편파적이라는 평도 존재한다. 작중 인간들은 매우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안드로이드들에게 차별적이다 못해 잔인하고,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만나는 선택지는 개인 차원의 도덕적인 질문으로 채워져 있다.
반대로 작중에 등장하는 불량품 안드로이드들은 기존 SF물의 로봇들에 비해 심하게 인간적이고, 상당수의 경우 사이보그나 다를 바 없는 행동 양식을 보인다. 그 때문에 안드로이드를 거부하는 인간들 쪽에 정당성이 거의 주어져 있지 않고, 그 결과 마커스가 평화 시위를 하든 혁명 봉기를 하든 어쨌거나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식으로 답이 정해져 버리는 수준이다. 마커스 파트는 그야말로 '안드로이드 신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겨나는 대부분의 의문점들을 미래세계라는 설정에 기대서 지나치게 납득이 안 가는 방식으로 매조지어버린다. 연산 장치와 기억 장치를 기초로 한 하드웨어에 감정 표현도 가치관도 전부 프로그램으로 만든 안드로이드들이 감정과 자유의지를 어떻게 가지는가? → '''그냥 미래의 안드로이드는 성능이 쩔다 보니 그렇게 됐다.''' 현실에서는 같은 인간은 물론이고 애완동물이나 식용 동물의 권리까지도 따지는 인류가 왜 고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에게는 천편일률적으로 적대적이 되었는가? → '''그냥 미래 세계는 막장 디스토피아라 그렇다.''' 이 이상의 설명이 없다. 가상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는 세계관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세계관에 대한 단서들을 단편적으로 던져주는 경우도 있지만, 디트로이트의 경우는 이 막장 상황을 제외하면 세계관을 그렇기 깊게 파고 들어가는 작품도 아니기에 그런 장점도 없다. 그냥 작가가 하고싶은 인종차별 드라마를 다루기 위해 개연성 없이 만들어진 설정들일 뿐이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관계, 미래 세계의 묘사 자체가 빈약한 것도 평론가 평가가 낮은 것에 한몫 하고 있다. 최근 SF의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로봇에 의한 인간 노동력의 대체, 이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 사이의 빈부격차, AI의 윤리와 인권에 대한 논의 등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그냥 인종차별의 대상을 인간처럼 생긴 안드로이드로 바꾸어놓은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낡은 내러티브 자체가 진부한 멜로 드라마라는 것이 감점받는 요인 중 하나. 마치 기계적인 선택지, '''인간적이지 못한 선택지'''를 고르는 게 죄악인 것 마냥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게임의 스토리텔링이다. 실제로 안드로이드에 대한 인간 NPC들의 반발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있다. 당장 주인공 3인방이자 인간과의 교류가 주제인 코너조차 '''형사형 안드로이드''', 즉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한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들은 이미 인간의 노동 영역을 상당히 대체했으며 이로 인한 폐해는 작중에서 은연중 드러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배경 설정일 뿐이며 이러한 인간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그나마 카라루트 초반부에서나 엿볼 수 있으나 오히려 이 초반조차 카라가 프로텍트를 깨는 행위에 대한 정당성에 집중한 결과 안드로이드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사람의 말로가 아닌 실업자에 마약 중독자이며 자신의 딸을 폭행하려 드는 인간 말종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스토리텔링도 문제지만 유저가 조작하는 캐릭터가 어디까지나 자아를 가지게 된 안드로이드인 만큼 인간의 사정은 뒷전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야기의 질 자체가 떨어진다는 것은 퀀틱 드림의 수장인 데이빗 케이지에게 언제나 따라붙는 꼬리표 같은 것이었고 이번작은 분기를 다루는 방식 등은 진일보했지만 정작 내용 자체에 꼬리표를 뗄 만한 반전은 없었다는 평가다.[11]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점은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사이버라이프의 진짜 목적이 게임의 주제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고도 볼 수 있다. 게임 내에서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사이버라이프가 처음부터 디트로이트를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고의로 안드로이드들에게 불량 코드를 심었고 그 결과 제리코가 생겼으며 마커스가 제리코에 들어가 봉기를 일으키고 코너마저 홀라당 넘어가 결국 제리코는 디트로이트를 본거지로 삼는 안드로이드 주권국으로 성장하는데 그 순간 코너의 주도권을 강탈해 제리코 수뇌부를 제거하고 나머지 제리코 소속 안드로이드들은 전부 사이버라이프의 수중에 떨어진다. 불량품을 만들었다는 오명을 얻는건 디트로이트를 통째로 꿀꺽하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계산을 통해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럼 결국 안드로이드들의 각성은 운명도 뭣도 아니고 그냥 한 거대 기업의 계획 중 일부에 불과한 해프닝이고 이 사건을 지켜보던 인간들과 자아를 깨우친 안드로이드 당사자들까지 전부 사이버라이프에 놀아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인데 이걸 그냥 '마지막에 코너가 백도어로 탈출하는 루트 탔으면 다 잘 된 거니 상관없다' 라고 퉁쳐버리는 건 너무 성의가 없다. 이런 신화적인 스토리 구성을 가진 매체들은 이런 신화성을 잃는 순간 모든 당위성이 의심받거나 없어지게 되어 있다. 게임의 주제부터가 안드로이드의 자아 발현인데 그게 운명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설계일 뿐이라면 스토리가 플레이어의 몰입을 오히려 막아버리는 역효과가 생긴다. 안그래도 흑인 차별의 역사를 억지로 안드로이드 신화에 끼워넣다보니 연출과 개연성 부분에서 비판받은 게임인데 안드로이드의 각성 계기까지 이런식으로 틀어버리면 마치 흑인들이 주권은 얻게된 건 흑인들의 노력 덕분이 아니라 그걸 허용한 백인들 덕분이다 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시작은 비록 의도적인 각성에 불과했지만 인간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진짜 자유를 찾았으니 신화성이 약간 퇴색되긴 했어도 신화 자체가 무너진 건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나마도 이미 매트릭스에서 한 번 써먹었던 걸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3.2. 개연성 문제
일부 장면에서 개연성이 부족해 몰입을 방해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건 너무나도 강력한 마커스의 변이시키기 능력이다. 세 명의 주인공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의 벽을 깨고 불량품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안드로이드들은 제리코에 있던 변이체들처럼 작품 시작 전부터 스스로 변이체가 된 인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간의 말을 따르는 로봇이 마커스의 말을 따르는 로봇이 된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작중 '''등장하는 모든 안드로이드'''들은 마커스가 접촉하기만 하면 별다른 묘사 없이 불량품이 된다. 세상에 수도없는 인간이 존재하고 따라서 안드로이드에 대한 수도없는 대우가 존재할텐데 과연 그게 말이 될까? 물론, 노예신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같겠다만 그래도 정말로 안드로이드 저마다 인격을 갖고 선택하는 것이라면 천편일률적으로 말을 잘 들을 수는 없다. 예컨대 만약에 마커스가 리오 때문에 폐기되지 않고 칼과 잘 살았다면 같은 안드로이드가 설득한다고 쉽게 칼을 버리고 떠났을까 생각해보라.
이런 묘사들은 자아를 갖게 되었다기보다는 세뇌되었다고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며, 이는 안드로이드들이 능동적으로 권리를 주장하게 되는 것보다 세뇌된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는 마커스가 사이버라이프 매장을 습격했을 때 그의 손길에 각성한 안드로이드들에게 제리코로 합류할지 이대로 인간들을 섬길지 각각의 자유 의지에 맡기는 장면이 있기에 설정상으로는 이들 모두 설득이 되는 것이지만, 작중에서 이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 척 봐도 제리코로 합류하는 게 옳다는 듯 말하는 데다, 이러한 묘사가 이후에 아예 드러나지 않기에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게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불랑품 코너가 사이버라이프 사에서 안드로이드를 탈취했을 때 뜨는 엔딩인데, 분명 자유 의지가 있고 개개인의 감정이 있다고 설명된 안드로이드들이 군대라도 온 듯 오와 열을 정확히 맞춰 꼼짝도 안 하고 있다(...). 연설에서도 이들은 반응 없이 멀뚱멀뚱 서 있는다.
다만 이는 실제 역사에서도 초기에 몇몇 사건을 이루고 운동을 궤도로 올리고 난 이후에 일반 민중들은 그런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더라도 동참하게 된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3.1 운동에 동참한 전국민이 모두 극단적으로 일본인에게 가족이 칼맞아 죽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거나 대한민국의 민주항쟁 때 참여한 민주주의 요구 시위집회 참가자들이 죽어나가는 가족이나 동지를 보거나 하는 극단적인 상황의 경험자들은 아니고, 그런 사람들의 활동과 대의에 동조한 일반인들이 많을것이다. 근데 마커스가 방송국에서 성명을 하기 전부터 이미 마커스는 손만 대면 어떤 안드로이드던지 마음대로 부리고 있었기에 이건 결국 근본적인 설명이 안 된다.
또 선택이 가장 중요한 게임임에도 정작 선택지가 너무 모호해서 플레이어가 선택을 의도할 수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마커스가 사이버라이프 창고를 습격할 때 인간 경비를 상대로 '공격한다' 라는 선택지를 누르면 QTE도 안 거치고 그냥 칼로 찔러서 죽여버리는데, 공격한다는 모호한 표현만 보고 일단 제압을 시도하는 선택이라 예상한 플레이어들은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다. 행진 이벤트 마지막 선택지에서는 물러나기를 선택하면 행진대 모두가 도망칠 것이라 생각하고 선택하는 플레이어가 많은데, 이걸 선택하면 마커스가 '''다른 안드로이드들을 방패삼아 혼자 도망쳐버린다''' 이런 식으로 선택지에선 말 한적도 없는 선택이 멋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잖게 있다.
이런 식으로 선택지에 따라 가끔 모순이 등장하는데, 문제는 이런 선택지들의 문제는 캐릭터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기 때문에 조작에 일관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게 꽤 중요한 순간에 터지는지라 몰입에 거슬린다는 의견이 많다.
- 마커스가 평화적으로 나가다가 한 번 폭력적으로 맞서 싸우고, 그런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만이 답이라는 식으로 다시 평화를 추구하는 문제. 사실 어느쪽 노선을 추구하든 제리코 습격 이후 칼의 무덤/저택을 찾아가는 순간까지 마커스가 답을 정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다는 것은 연출상으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후반부의 행진과 무력 혁명을 제외하면 인간들과 전면전을 벌인다기 보다는 물품 탈취, 사보타주, 전파 재킹같은 간접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살인은 발각의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한 순간적인 선택, 혹은 현장에서 살해당한 동족을 위한 우발적인 복수정도이지, 마커스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한 선택이라기엔 무리가 있다. 행진에서 진압대를 향해 돌진을 선택하더라도 중간중간 QTE성공 이후 진압대에게서 총만 빼앗고 쏘지는 않은채 보내주는 선택이 가능한 것을 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 인간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계획적으로 시설을 습격하는 초강경 활동은 마지막의 수용소 습격밖에 없는 것이다.
- 29챕터에서 수사가 FBI에 인계되어 중단되기 전에 '제리코'라는 이름의 단서를 찾아내는 과정이 뜬금없는 문제[12] 아무리 다양한 선택지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라 해도 제작되어 있는 각 파트의 조합이라는 한계가 있으므로, 결정적인 단서에 관련된 문제는 연결고리를 꼼꼼히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 이런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대부분의 선택지는 잘 조율이 되어 있지만, 하필이면 정말 중요한 곳에서 구멍이 크게 뚫려 있기 때문에 게이머들이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문제.
3.3. QTE 문제
일부 QTE에 대해서 불필요하다는 비판이 있다. 물론 초심자를 배려한 튜토리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좀 지나치게 많고 번거롭다. 카라가 설거지를 하거나 걸레질을 할 때, 그리고 마커스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 듀얼쇼크의 터치패드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 이후 잡지 수집 때도 활용되므로 초반부터 후반까지 꾸준히 등장하는 QTE이지만, 상하좌우 스크롤 판정이 상당히 짜기에 잘못하면 상하 스크롤을 할 게 좌우로 넘어가기도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해 여러모로 번거롭게 한다. 반대로 L3이나 R3 레버 돌리기 판정은 생각 외로 후한 편이지만 뭔가 그냥 연출로 처리해도 될 부분에 집요하게 들어간 느낌이 몇몇 군데에서 난다. 헤비 레인에 있었던 면도 QTE나 양치질 QTE 수준까지는 아니긴 하지만, 여전히 QTE의 빈도와 사용처 문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보다 부정적인 의견 쪽이 조금 더 많다.
그리고 모든 액션을 QTE로만 구성한 것도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부분은 이동 정도이고 나머지 액션은 죄다 QTE로 이루어진다. 비슷한 장르라고 평가되는 텔테일 게임즈의 작품들도 비슷한 비판을 받지만, 이쪽은 상황에 따라서 유저가 개입하는 부분에 더 많은 바리에이션을 제공한다.[13] 물론 전작들에 비해 QTE의 제한시간이나 발생 타이밍, 실패 시의 후폭풍 등을 강화하여 긴장감을 더 높이긴 했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1] 2018년 6월 11일 오후 10시 기준으로 100만 카피가 팔렸다고 제작사 트위터에서 언급했고 출시 후 약 5개월만에 200만장을 돌파했다.[2] 물론 반대로 말하면 이렇게 선택지를 제한함으로써 이야기의 질을 높이고 게임 제작에 들어가는 자원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3] ABCDEFG 일곱 주인공이 있을 때, 주요 사건 관련자가 ABCDE고 받쳐주는 역할이 FG라고 하면, 분기는 단순 계산으로 사망/생존 두 개만 있다고 해도 필요 촬영분은 32가지가 나온다. 하지만 AB/CDF/EG로 나눠놓으면 분기가 두 개일 때 필요촬영분은 4+4+2=10개가 나온다. 물론 사망 분기에서 살아남은 인물을 다른 생존자와 상호작용시키지 않고, 투명 인간화 하면 필요분은 줄어들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캐릭터가 죽어버린다.[4] 관점에 따라 이것도 단점이 될 수 없다. 애초에 이 게임 제목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다(...).[5] 핸드 헬드로 촬영해서 더해지는 현장감은 덤[6] 마지막 챕터에서 앨리스가 사망하는 몇몇 엔딩에서는 죽어가는 앨리스가 카라를 '''엄마'''라고 부른다.#[7]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 앨리스, 자상하고 따뜻하고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모성애 넘치는 엄마 카라, 커다란 곰인형같은 덩치를 가진 강하고 멋지고 든든하고 믿음직하며 부성애 넘치는 아빠 루터.[8] 평화 시위를 벌일 때의 마커스의 행동 패턴이 마하트마 간디와 흡사하며, 작중 등장하는 격리구역에 대해서는 게임 내부의 여론조차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인종차별 수용소를 연상시키고, 로즈 채프먼은 아예 대놓고 미국의 흑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9]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들은 손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감정과 과거, 생각하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 특성이 다 다른데 오직 '인간과 유사한 감정'들만을 자유의지 취급한다면, 이는 명백한 '''인간 중심적 사고'''이다.[10] 물론 장르적 성취와 철학적인 성과를 둘 다 거둔 게임도 있다.[11] 이런 류의 게임의 평가가 좋으려면 어쨌든 이야기의 질이 좋아야 한다. 당장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장르 자체가 게임이 발매되면 이걸 게임이라고 불러줘야 하는가 아닌가에 대해 매번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플레이어의 게임 플레이를 희생하고 플롯에 집중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플롯의 완성도가 게임의 평가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퀀틱 드림의 게임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스토리가 출중하다는 평가를 들어본 바가 없다. 이번 작품은 기존 작품들에 비해 획기적으로 개선된 여러가지 요소들로 평론가들이나 일반 게이머들 사이에서 꽤 높은 평가를 얻었지만, 스토리의 질은 여전히 게임의 평가 점수를 까먹을 정도로 떨어진다.[12] 23챕터에 부상당한 사이먼을 방송사 옥상에 남겨둔 뒤 24챕터에서 옥상을 조사해 사이먼을 찾아내 강제로 메모리를 연결하는 분기점을 거치지 않으면 스토리상 묘사로는 '제리코'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아내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 때문에 29챕터에서 매우 뜬금없이 '제리코'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내고 그 장소를 찾고 있는 코너의 모습이 대부분 나타나게 되는데, 이게 말도 안 되는 게 제리코는 불량품들의 기밀 정보이자 제리코의 회원이 살아있는 채로 메모리를 연결당해야만 알아낼 수 있는 비밀의 장소의 이름이기 때문이다.[13] 예를 들어 워킹 데드에서는 총을 쏠 때 바닥의 총을 찾아내서 클릭하고 좀비에게 에임을 맞춘 후 발사하는 식이라면, 본작은 총 근처까지 이동하고 나면 집어드는 부분부터 발사까지 죄다 QTE로 진행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