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푸엔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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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3]
1.1. 축구 선수
1.1.1. 클럽
빌바오에서 태어난 라몬 데라푸엔테 레알(Ramón de La Fuente Leal)은 라푸엔테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라푸엔테는 16살이 되던 1923년, 바라칼도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1926년에는 아틀레틱 클루브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라푸엔테는 기예르모 고로스티사, 호세 이라라고리 등과 스페인 최고 수준의 공격진을 구성했고 그에 걸맞게 아틀레틱 클루브는 이 시기에 리그 3회 우승, 코파 델 레이 4회 우승 등 라리가 초창기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우뚝 섰다. 라푸엔테는 6시즌 동안 211회의 공식 경기[4] 에서 64득점[5] 을 넣으며 당시 빌바오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라푸엔테는 1934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다소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1935년 코파 델 프레지덴테 데라레푸블리카 8강전에서 라푸엔테는 세비야 FC의 골키퍼 기예르모 에이사기레와 충돌, 다리 경골과 비골의 이중골절[6] 로 이듬해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스페인 내전까지 터졌고 라푸엔테는 선수 은퇴를 결정했다.
1.1.2. 국가대표
라푸엔테의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1927년 4월 17일 산탄데르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경기였다.
라푸엔테는 1935년까지 8경기의 A매치에 출전했고 그 중에는 1934년 월드컵에서의 2경기도 포함되어 있다.
1.2. 감독
1940-41 시즌에 라푸엔테는 리카르도 사모라가 구금되어 공석이 된 아틀레티코 아비아시온의 감독을 맡아 10경기를 소화했고 5승 4무 1패의 기록을 남겼다.
그 이후 1943년부터 2년간 데포르티보의 감독을 맡았다.
2. 수상
2.1. 클럽
-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1929–30, 1930–31, 1933–34(아틀레틱 클루브)
- 코파 델 레이 우승 4회: 1930, 1931, 1932, 1933(아틀레틱 클루브)
-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2회: 1931–32, 1932–33(아틀레틱 클루브)
- 바스크 챔피언십 우승 6회: 1927–28, 1928–29, 1930–31, 1931–32, 1932–33, 1933–34(아틀레틱 클루브)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리그 96회, 컵 대회 56회, 지역 대회 59회.[5] 리그 26골, 컵 대회 17골, 지역 대회 21골.[6] 정강이 뼈가 부러진 상태. 의술이 그때와는 상당한 차이가 날 정도로 발달한 현재도 이런 이중골절 판정을 받으면 1년 정도는 피치에 나서지 못한다고 봐야한다. 이런 부상을 입었던 선수를 예로 들면 아론 램지, 이청용, 루크 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