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플스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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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싱가포르 본관 숙박
3. 명물
4. 호텔 본관의 역사
4.1. 작은 시작
4.2. 입소문과 함께 높아진 인기, 그리고 확장 공사
4.3. 망했어요, 그리고 공기업화
4.4. 일본군싱가포르 강점기부터 영국 해군의 해군기가 호텔 위에 게양될 때까지
4.5. 재개장, 최고(最古)의 도안을 발견하다, 그리고 복원까지
4.6. 해외 기업의 인수
5. 갤러리


1. 개요


+3 Raffles Hotels & Resorts
莱佛士酒店
영국령 싱가포르시기인 1877년에 개장한 싱가포르의 국보급 호텔. 콜로니얼 양식의 건축이며 1989년에 쌍용건설이 내부 복원을 맡은 호텔로도 건축계에서 유명하다. 웹사이트는 https://www.raffles.com
이름은 싱가포르의 근대사를 시작한 사람인 토머스 스탬포드 래플스에서 따왔다,

2. 싱가포르 본관 숙박


한화 (한국 원)로 1박에 약 6-70만원. 모든 객실은 스위트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3. 명물



4. 호텔 본관의 역사



4.1. 작은 시작


처음에는 1830년대 초반 해안가에 위치한 개인 소유의 주택으로 시작했다. 1878년에 찰스 에머슨 박사 (Dr. Charles Emerson)가 임대해서 "에머슨의 호텔 (Emerson's Hotel)" 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박사가 1883년에 별세하자 호텔은 문을 받았고, 래플스 학원 (Raffles Institution, 1823년에 개교한 싱가포르에서 제일 오래된 명문학교)에서 인수인계를 받아 1887년 7월 에머슨 박사가 맺은 계약 만료일까지 활용했다.
첫 임대가 끝나고, 주인인 모하마드 (Syed Mohamad Alsagoff)는 이 건물을 사키스 형제 (Sarkies Borthers.) 에게 다시 임대해 이 작은 호텔을 하이엔드 호텔로 바꿔 놓으려 했다. 몇 달 뒤인 1887년 12월 1일, 호텔은 객실 10실과 함께 개장을 한다. 위치도 주변 해안가와 가까웠고, 높은 기준의 서비스와 숙박 시설은 부유한 고객들 사이에서 크게 유명해졌다.

4.2. 입소문과 함께 높아진 인기, 그리고 확장 공사


호텔을 세운 후 10년 뒤, 건물 세 동을 증축했다. 각각 22객실의 두 동은 1890년에, 이후 1894년 No.3 Beach Road에 있던 건물을 임대해 개건한 뒤 팜 코트 동 (Palm Court Wing)을 객실로 사용해 총 75실이 되었다.
몇 년뒤, 리젠트와 S&W (Regent Alfred John Bidwell, Swan & Mclaren Architects) 에 설걔를 의뢰해 본관 자리에 새 건물을 지었다. 1899년에 완공된 이 본관은 당시 (현지에서. 싱가포르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까지 포함하는 듯?) 얼마 안 되는 최첨단의 건물이었다. 당시의 최첨단 시설 중 하나는, 실링팬 (ceiling fan, 천장에 달려서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그거!) 과 전깃불이었다. 저 두 시설이 호텔에 있었다. 특히나, 전기가 들어오는 호텔은 본 호텔이 현지에서 처음이었다(...).
그렇게 계속 베란다, 볼룸, 당구장 뿐만 아니라 객실까지 넓혀가며 승승장구하다가...

4.3. 망했어요, 그리고 공기업화


31년에 대공황이 터졌다. 이 호텔이라고 그 영향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운영을 맡고 있던 사키스 형제는 33년에 파산신청을 하게 되었다. 헌데 당해에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며 래플스 호텔 유한회사 (Raffles Hotel Ltd.)라는 공기업으로 설립되었다.

4.4. 일본군싱가포르 강점기부터 영국 해군의 해군기가 호텔 위에 게양될 때까지


1945년 2월 15일, 일제가 싱가포르를 침공하면서 일본군은 마지막 왈츠를 추고 있던 방문객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 사이 직원들은 호텔의 은식기 등을 팜 코트에 묻어서 숨겨버렸다. 당시의 손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현재 찾을 수 없으나, 어쨌든 이 건물은 이후 영국 해군 측의 탈환 전까지 현지의 일본군 사령부로 활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말레이 반도에서 싱가포르까지 밀린 영국군은 래플스 호텔에서 최후의 항전을 했으나 포위되어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싱가포르가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가면서 쇼난 료칸(昭南旅館)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당했다. 쇼난의 쇼는 당시 일본의 연호 "쇼와(昭和)", 난(南)은 남쪽의 섬, 즉 일본령 싱가포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후 호텔은 45년 영국 해군이 재탈환하고 (Operation Tiderance), 스탠리 레딩턴 (Stanley Redington) 이라는 군인 (계급 미상)이 영국 해군기를 래플스 호텔 위에 게양했다. 이 때 호텔 안으로 피신한 300여명의 일본군 병사들이 단체로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하면서, 호텔 본관과 함께 수많은 시설들이 파괴된다. 전쟁 포로 수용소로도 징발되었다.

4.5. 재개장, 최고(最古)의 도안을 발견하다, 그리고 복원까지


1987년, 한 세기만에 재개장된 후 안드레아스 아우구스틴(Andreas Augustin)이라는 호주의 작가이자 연구원이 싱가포르 문서 보관소에서 제일 오래된 래플스 호텔의 원본 도안을 찾아낸다. 당해 도안은 "래플스에 대한 보고 (The Raffles Treasury)"라는 책으로 처음 출판되었으며, 싱가포르 정부는 호텔을 국가 기념물(National Monument)로 지정한다.
그러나 워낙 노후화된 건물이다보니 낡거나 파괴된 곳이 많아서 싱가포르 정부는 건물 뼈대를 그대로 남겨둔 채 최대한 과거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로 하고, 이후 89년에 광범위 개축을 위해 일시적으로 폐쇄한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국보급 건물을 공사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결정적으로 당시의 설계도면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 복원을 잘못하게 될 수도 있었기에 많은 건설사들이 이 호텔의 개축공사를 꺼려한다. 일본과 서양의 수많은 건설사들이 손사래를 치던 중 단 한 군데의 건설사가 수주를 받아들이는데, 그 건설사는 바로 '''쌍용건설'''. 쌍용건설은 지하 1층, 지상 3층 6동 104개 객실로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한 채 초현대적으로 복원한 한편, 여기에 호텔의 역사관과 명품관 등 상가 건물 4개 동을 신축했다. 이 과정에서 쓰인 예산은 당시 돈으로 1억 6천만 달러. 야사에 따르면 당시 쌍용건설 직원들이 싱가포르는 물론 태국이나 말레이시아까지 뒤지면서 래플스 호텔의 과거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다 찾아내고, 당시 모습을 기억하는 노인들까지 수소문했다고 한다.
호텔은 1915년 전성기의 웅장한 건축 양식으로 복원되었으나, 당시와는 다른 세밀한 몇몇 차이가 생겼다. 모든 객실은 스위트룸으로 전환되었으며, 유명인사들이 좋아하던 "롱 바 (Long Bar)"는 로비로 옮겨졌다. 여담으로 롱 바는 응이암 똥 뿐(Ngiam Tong Boon)이라는 종업원이 "싱가포르 슬링" 이라는 유명한 칵테일을 만든 곳이기도 하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래플스 호텔 복원을 겨우 2년여 만에 훌륭하게 성공해낸 쌍용건설은 업계는 싱가포르 정부를 놀라게 했고, 싱가포르에서 쌍용건설의 입지는 하늘을 찌르게 된다. 훗날 쌍용건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또다른 건축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성공적으로 완공하면서 그 위상에 정점을 찍는다.

4.6. 해외 기업의 인수


2005년 7월 18일, 145만 달러에 래플스 호텔 홀딩스의 전 지점을 콜로니캐피탈 LLC (Colony Capital LLC) 에서 인수했다고 선언했다. 자금은 카타르의 한 기업에 인수되었다.

5.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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