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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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국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 수도는 방콕이다. 현재는 시암(BTS 시암역)이라는 구역이 방콕의 중심지이다.
국토가 적도 근방에 위치한 데다 모양도 은행나무 잎처럼 위는 넓고 아래는 매우 좁고 긴 형태이기 때문에 지도상으로는 그다지 넓어보이지 않지만, 남한 영토의 5배에 이르고 프랑스와 면적이 비슷하다. 제국주의 시대에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한 국가이기도 하다. 불과 19세기 중반만 해도 프랑스와 영국을 합친 것보다 넓었지만, 제국주의 시절 국가의 독립을 위해 오늘날에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속하는 영토를 전략적으로 프랑스에 식민지로 할양하여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1867년부터 1909년까지 영토를 지속적으로 상실했다. 심지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전적이 있다. 방콕에 있는 아눗사와리 전승기념탑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태국 - 비시 프랑스 전쟁의 승리를 기린다.
인지도 면에서 베트남과 함께 인도차이나 반도의 투톱이다. 전통적으로 말레이시아와 더불어 동남아시아 지역의 맹주 역할을 해왔으나, 말레이시아의 미칠 듯한 고속성장과 인구빨을 앞세운 인도네시아가 G20에 진입하면서 콩라인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주변국인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옛 버마)에 미치는 문화적, 경제적 영향이 크다. 지리적으로 봐도 내륙국인 라오스, 소국인 캄보디아, 말라카 해협으로 인해 왠지 고립되어 보이는 미얀마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이들 나라들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당연히 역사상 이들 인접국가와 늘 엎치락뒤치락하는 관계였는데, 1767년 꼰바웅 왕조가 당시 태국에 있던 아유타야 왕조를 멸망시키면서 더더욱 이를 갈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경제적 격차로 인해 역으로 태국인들이 버마인들을 크게 무시하는 상황.
그러나 동남아 여느 국가들이 그렇듯이, 빈부격차와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또한 경제수준에 비해 너무 빠른 고령화, 그리고 경제 수준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정체중인 조로현상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편이다. 태국의 2010년대 후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대 초반밖에 안 된다. 이는 단순 성장률 기준으로도 미국, 한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서유럽과 같은 선진국들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들 국가에 비해 국민소득과 경제수준이 많아봐야 20%에 불과한 태국의 현 상태를 감안하면 거의 정체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른바 친 탁신파 VS 반 탁신파의 갈등도 알고보면 이러한 빈부격차로 인한 계급(빈곤층 VS 부유층/중산층)투쟁적인 요소가 강하다.[2] 한편 지역 간 빈부격차도 굉장히 심각하다. 2013년 태국의 1인당 지역 총생산186p을 보면 가장 부유한 라용 주(105만 8293바트)와 가장 가난한 넝부아람푸 주(4만 6804바트)의 1인당 GRDP 격차가 무려 23배에 달했다. 좀 더 넓은 지방으로 보아도 북동부 지방(7만 4532바트)의 1인당 GRDP는 태국 수도권(37만 6463바트)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거리에 동물이 돌아다닌다. 방콕 시내는 좀 덜하지만 아유타야 같은 곳은 어딜 가든 떠돌이 개 두셋은 보일 정도이며, 이런 떠돌이 개 대부분이 중대형견이다. 현지인들이 개를 해코지하지 않고 개도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잠자기 바쁘다.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국교가 없지만 실제론 불교가 강한 불교 국가라, 교리 때문에 함부로 사람들이 개를 살생할 수 없는데다 음식도 충분히 공급하기에 개들이 굶어죽는 일은 별로 없다. 개들의 죽는 원인 대다수가 로드킬이거나 피부병 때문이라고.
2018년 12월에는 쁘라윳 내각이 아시아 최초로 대마와 크라톰을 의료 및 연구 용도로 합법화하였다. 태국 정부는 앞으로 대마가 태국의 주요한 수익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태국 시민들은 이런 조치에 대해 여론조사에서 99%가 찬성했다.
2. 국가 상징
2.1. 국호
정식 국명은 타이 '''왕국'''(ราชอาณาจักรไทย, 랏차 아나짝 타이). 쁘라텟 타이(ประเทศไทย, 자유의 땅) 또는 므앙 타이(เมืองไทย, 자유의 나라)라고도 한다. '타이(ไทย, Thai)'는 '자유'라는 뜻이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이것이 '사람'을 뜻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한자 음차 발음인 태국(泰國)으로 주로 불린다. 1939년부터 타이 왕국으로 개칭되었고, 과거의 명칭은 시암(สยาม, 사얌). 샴쌍둥이가 여기서 유래되었다.
2.2.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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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ธงชาติ)는 '통 트라이롱(ธงไตรรงค์, 삼색기)'라고도 불린다. 와치라웃(라마 6세)이 디자인하였으며, 1917년 9월 28일에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빨강과 하양, 파랑 3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빨강은 태국의 국민 및 원주민을, 하양은 코끼리의 상아를 본따서 이루어진 것으로, 태국의 주요 종교인 상좌부 불교를 상징하며 파랑은 짜끄리 왕조를 상징한다.
그 이전에는 적색 바탕의 흰 코끼리 였다. 하지만 서구권에서는 코끼리 기에 대해서 비웃게되자 결국 근대적 국기로 바뀌었다.
2.3. 왕실기
중앙에 있는 새같이 생긴 것은 가루다로 태국 국왕의 상징이며 국장이기도 하다. 가루다는 아유타야 왕국 시절부터 태국 왕실의 상징으로 쓰였다.
왕실기는 왕의 탈것이나 전용기, 왕궁 등에 걸려있으며, 국기와 같이 나란히 걸리는 경우도 많다.
2.4. 국가
항상 오전 8시와 오후 6시가 되면 TV에서 흘러나온다. เพลงชาติไทย(Phleng Chat Thai)라고 하며, 말 그대로 태국 국가다. 지금은 영화관에서는 나오지 않고, 오전 8시와 오후 6시가 되면 거리에서 틀어준다. 이 시간에 국가가 나오면 태국 시민들은 마치 옛날 군부독재 시절 한국처럼 가던길을 멈추고 국가가 끝날때까지 기립한다. 자동차도 이 시간대에는 정차한다고 한다.
2.5. 왕실가
극장을 비롯한 특정한 지역에서 들을 수 있으며 텔레비전에서는 방송 시작과 종료 시간에 국가처럼 송출한다. 금요일 날의 학교에서도 나온다.
태국 국가 행사 때에도 연주하는데 왕실가를 부를 때는 아래의 영상처럼 기립 상태로 제창한다. 움직이면 안된다.
1932년 시암 혁명 전에는 이 노래가 국가로 쓰였다. 현재 쓰이는 국가는 혁명을 통해 채택한 국가여서인지, 왕실가는 부드러운 느낌인데에 비해서 현재 국가는 에너지가 넘친다. 대부분의 영상은 선왕 푸미폰 아둔야뎃 생전이어서 선왕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나오지만 새로운 국왕이 즉위한 후부터는 새로운 국왕의 모습과 초상화, 어떤 영상은 선왕과 현 국왕, 왕대비의 초상화를 실은 영상이 있다.
2분째 부터 시작한다. 장엄하다. 시암 신포니에따가 연주한다.
2.6. 기타
- 태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코끼리가 있다. 한때 국기에 흰 코끼리를 사용한 적도 있다. 다만 이와 별개로 태국에서 코끼리는 멸종위기에 놓여 있어 국가에서 보호를 받는 동물이다.
3. 역사
- 태국/역사 문서 참조.
4. 종교
태국은 국교가 없는 나라지만[3] 불교, 그 중에서도 상좌부 불교가 압도적이라 전체 인구의 95%가 불교도이다. 국왕도 반드시 불교도여야만 한다.
태국 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며 특히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이라도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어야 할 정도다.[4] 이 경우 225계를 수지한다고 한다. 주로 어릴 때 삭발을 하고 단기 출가 생활을 체험하게 하는데, 한국에서 유명한 닉쿤도 이렇게 어린 시절에 삭발 후 출가한 적 있다.[5] 태국 승려들의 특징은 머리카락 뿐 아니라 눈썹까지 삭발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단기출가가 성인식의 역할을 하며, 단기출가 목적으로 승려가 되었다가 진짜로 구도하고자 승려로서 일생을 바치는 사람도 나온다. 그러나 요즘은 단기출가를 귀찮게 여겨 생략하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한다. 태국 승려들이 입는 가사는 대체로 웃따라상가이다.
태국 내에서 불교의 영향력이란 정말 어마어마해서, 드라마에서 스님이 등장하거나 왕실이 불교계 행사를 참여하는 정도는 매우 보편적이다. 2016년에 사망한 푸미폰 아둔야뎃 前 국왕만 해도 생불로 불리기도 했다. 세속의 학교 교사들 또한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태국문화와 불교문화를 함께 가르치는 전인적 교육을 마땅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깊이 있게 불교 문화에 스며든다. 방콕 도시철도 BTS 객차 내부배려석에 임산부, 노약자와 함께 스님도 앉을 수 있다.
태국 내 불교종파는 크게 왕실에서 개정한 종파와 전통적으로 역사가 깊은 종파로 나뉜다. 선불교나 명상과 같은 일반인들도 참여하기 쉬운 점을 내세운 신흥종파도 두각을 드러내며, 불교계 각종 이슈는 비교적 자주 뉴스에 오르내린다. 절에서는 대승불교와는 꽤나 다른 정통 상좌부 불교 문화가 많이 살아있다. 대승불교만 접했던 사람이라면 태국 절에서 금박을 붙이고 합장한 손에 연꽃을 끼우는 등 행위가 많이 낯설 것이다.
땅이 넓은 나라답게 태국의 절들은 정말 크다. 절 크기가 대학 캠퍼스만 한 경우도 적지 않다. 왓 아룬과 왓 포는 태국에 왔다면 꼭 들려보는 역사적 절들로 꼽힌다. 숱한 역사적인 절들과 도심 곳곳에 자리한 사찰들 외에도 새로 지은 절도 전국에 상당히 많은데, 그 중 '왓 프라 담마카야'는 규모가 태국 최대인 사찰로 유명하다.
태국에서는 불교의 중요한 날들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전국에서 주류판매를 금한다. 여행 갈 때는 참고하자. 아래는 태국에서 국경일로 지정한 불교 명절이다. 또한 해당 명절의 태국식 음력에 대응하는 한국의 음력(시헌력) 날짜를 병기하였으나, 달력 계산의 기준이 되는 경도의 차이 때문에 날짜가 하루 정도 차이나는 경우가 흔하며, 윤달 때문에 한 달 정도 차이나기도 한다.
아산하 부차 다음날은 카오 판사(Khao Phansa)라 하여 승려들이 안거(安居)에 들어가는 날(결제結制)이다. 이날도 역시 술을 팔지 않는다.
태국은 태어난 요일에 따른 불상이 있다. 절에 가면 불상 8좌가 일렬로 늘어섰는데, 각 불상마다 태어난 요일을 의미한다. 월화수목금토일 7요일에, 모든 요일을 담당하는 불상을 합쳐서 8좌. 태국의 태어난 요일별 모시는 불상
여타 남방불교처럼 시체를 보면서 명상하는 전통이 있다. 이 때문에 태국의 의과대학에서는 시체 해부 시간에 스님들에게 견학할 기회를 드림이 관례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전통은 후술할 미디어 심의에도 꽤나 영향을 미쳤다.
불교 외에도 소수긴 하지만 기독교와 이슬람,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으며, 특히 태국 남부는 전통적으로 이슬람이 강하다. 불교도 다음으로는 인구 중 5%인 무슬림이 세가 커서 방콕 번화가에서는 히잡을 쓴 태국 여성을 종종 볼 수 있으며, 대형 쇼핑몰에는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이 있다. 그리고 방콕의 종교시설 중 상당수가 이슬람 모스크이고 아잔도 자주 들린다. 말레이시아와 함께 아랍인이 많은 동남아 국가가 태국이다. 특히 말레이시아와 가까운 수라타니 주 이남으로 갈수록 무슬림 비율이 높아진다.
또한 윤회라던가 유령 같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다. 현대화된 지금도 무의식에 뿌리박혀 있다. 태국 영화가 호러 장르에 강한 것도 여기에 있다. 심지어 예술영화를 만드는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영화에도 호러라든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묘사가 강하게 드러난다.
5. 자연
국토의 대부분이 열대몬순기후라서 몬순기마다 폭우가 쏟아진다. 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가 우기인데, 특히 비가 집중되는 기간은 8-9월이다. 강이 합쳐지는 지형인데다가 지형에 구배가 없어(땅이 완만해서) 강이 천천히 흐르므로 홍수 피해가 빈번하다. 2010년에도 홍수 피해가 컸고, 2011년에도 여지없이 홍수 피해가 컸다. 2011 태국 홍수 참조. 남북으로 길이가 길다. 홍수 문제는 교통 문제와 더불어 태국 내 2대 국가 과제라고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단, 홍수 문제는 방콕과 수도권에 한정되는데 그 이유는 방콕에서 산을 찾아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모든 지역이 평평하기 때문이다.[10] 북부에서 나름 쳐주는 대도시인 치앙마이만 봐도 주변에 산이 빙 둘러싼 형태를 하고 있다.
우기를 대비해서 건물마다 파이프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 앞을 안 보고 다니다가는 머리에 물 맞을 수 있다. 우기 때에는 한국의 장마의 2~3배 가량 많이 오는데, 도심에서도 홍수가 빈번한 이유가 저절로 납득된다.
북부 산악 지대에서는 겨울이 되면 수도권과는 달리 영상 10도 즈음까지도 떨어지는데, 이러한 온도에서는 몇 명씩 생명을 잃기 때문에 정부에서 경보를 내린다.[11]
파타야 주변과 남부에는 섬이 꽤 있는데,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인 경치를 자랑한다. 태국에 왔다면 육지의 해변보다는 섬의 해변을 즐길 필요가 있다. 방콕 지하철 다음으로 치앙마이도 아닌 푸껫에서 지하철 계획이 추진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5.1. 여름
일년 내내 여름으로 눈을 보거나 추위를 맞이하기 힘든 기후이지만, 정작 치앙마이를 비롯한 북부지방의 현지인들은 12월~1월의 건기 무렵에 스웨터나 점퍼를 입고 다니며 추위를 느낀다. 사실 살다보면 추위를 느낀다. 그럴 만한 게 최저기온이 15도 정도까지도 떨어지기 때문. 물론 낮에는 30도에 육박한다.
적도에 인접한 국가라서 태양빛이 강해 1년 내내 자외선 차단은 필수다.
태국인들은 시원한 계절, 비오는 계절, 더운 계절로 나누지만, 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항상 태국이 3개의 여름을 가졌다고 설명한다. 여름, 더운 여름, 아주 더운 여름 등등. 그만큼 더운 나라다. 그래서 해가 쨍쨍한 날을 날씨가 나쁘다고 표현하고, 흐린 날을 날씨가 좋다고 표현한다. 자주 쓰는 표현인 '차가운 마음(짜이 옌)'도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침착하다는 뜻이다.
보통 아프리카가 지구 상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역보다 태국이 더 덥다. 사실 아프리카가 덥다는 이미지는 사하라 사막을 낀 북아프리카가 불러온 보편적인 오해로 한국인이 생각하는 더운 아프리카는 이집트, 수단, 소말리아, 알제리, 차드 등 북부 아프리카이며 오히려 남아공 쯤 가면 서유럽과 기후가 별반 다를 바 없고 케냐 수도 나이로비는 고산지대라 1년 내내 서늘하다. 아프리카는 생각보다 덥지 않으며 한국에서만 돌아다니는 잘못된 상식이다. 진짜로 세계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곳은 아프리카가 아닌 뜻밖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속한 이베리아 반도와 호주 대륙이 그러한 곳이다. 이베리아는 한여름에 북부 일부만 뺀 전 지역이 40도를 넘는 폭염을 자랑한다. 그리고 호주 대륙 역시 여름에는 그 시원하다는 멜버른도 40도는 기본으로 넘어가며 폭염이 심하고 건조한지라 산불은 항상 남반구의 여름인 12-2월에 집중된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북부가 사막 때문에 극단적으로 덥기는 하지만, 사막이 없는 지역 치고는 매우 더운 편이다.특히 한국의 늦봄에 해당되는 4~5월 경에는 그 정점을 찍는데 '평균' 최고 온도가 35도에 육박하며, 보통 이 시기에는 오전 7시만 되더라도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일이 잦을 정도로 엄청난 열기를 자랑한다. 태국 최대의 축제인 쏭크람 축제가 열리는 것도 이때인데 이 축제에서 괜히 물 뿌리고 다니는게 아니다. 참고로 이 시기에는 비도 거의 오지 않아서 열을 식힐 방법이 없으며 동남아시아 기후 특성상 그늘에 들어가더라도 전혀 시원하지 않다. 그래서 이 시기에 태국을 여행할 때는 다른 무엇보다 더위에 유의해야 하는데, 특히 햇볕을 피할 만한 곳이 별로 없고 대리석에서 뿜어내는 반사열이 엄청난 왕궁 같은 곳들에서는 하루에도 몇 명씩 더위로 인해 쓰러지는 이들이 나올 정도이다.
이러한 엄청난 더위는 우기의 시작인 6월로 접어들면서 조금 누그러지는데, 대신 이때부터는 습도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태국의 6~8월 평균 상대습도는 85%에 달하는데[12] 특히 6월의 경우, 한여름 한국 더위에 적응된 이가 넘어가도 공항에서부터 숨이 탁 막힐 정도로 무덥고 습하다. 그로 인해서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4~5월보다 더 힘들게 느끼는 이들도 있으며,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쨍'한 날은 4~5월 이상의 체감 더위를 느낄 수 있다. 에어컨을 종일 틀어놔도 눅눅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냥 한증막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이런 무더위는 강수량이 많아지는 7~8월이 되면서 조금 누그러지지만 습도로 인해서 활동력은 크게 감소한다.
건기(11월 ~ 3월)의 경우에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 그렇게 끔찍하게 더운 편은 아니고, 한국의 한여름철 날씨에 비해선 선선한 경우도 있으며, 우기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 관광객들도 우기보다는 건기 시즌을 더 선호한다.[13] 특히나 12월 전후해서는 해안가 휴양지에서도 지중해성 기후와 비슷한 형태의 날씨가 만들어 져서 여행하기에 최적의 시기이다.
예상 외로 중부인 방콕보다는 남부가 더 시원하다. 진짜다. 이유는 아무래도 바다의 영향과 대륙도 때문. 그리고 당연하지만, 12월~1월에 북부 산지 등으로 들어가면 10도대까지도 진입한다.
태국에서 기록된 역대 최저 기온은 북동부 이산 지방의 사꼰나콘에서 기록된 -1.4℃이고, 역대 최고 기온은 북서부의 미얀마 접경 지대인 매홍손에서 기록된 44.6℃이다.
6.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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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위키미디어 공용.
방콕을 포함한 중부 일대는 네덜란드처럼 지대가 낮아 운하가 발달했고, 우기에는 한국의 장마는 비교도 안 될만큼 폭우가 내리기 때문에 방콕 번화가에서도 종종 침수가 일어난다. 이 침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정부에서 애를 쓰고 있다.
태국은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북부, 북동부(이산 지방. 동부를 포함한다.), 중부, 남부.
중부에는 수도 방콕을 포함해 사적지로 유명한 아유타야와 롭부리, 중부의 대표적 휴양지인 파타야, 그리고 더욱 한가한 휴양지인 라용(사멧 섬으로 가기위한 도시), 그리고 중남부에는 페차부리 인근에 왕실 휴양지로 유명한 후아힌이 있다.
중서부에는 미얀마와 국경을 마주한 깐자나부리가 있다. 깐짜나부리엔 한때 일본군이 포로로 납치한 (주로) 영국인들을 부려먹으며 설치한 철도가 유명하며 관광명소가 되었다.
북부는 주로 높은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치앙마이가 대표 도시로, 불과 2백여년 전에는 란나 왕국의 수도 였다. 치앙마이를 따라 더 북쪽으로 가면 북부 제2의 도시인 치앙라이가 있다. 치앙마이와 치앙라이보다 더더욱 북쪽에 위치한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은 한 때 마약 재배로 유명한 태국-라오스-미얀마 접경지였는데, 지금은 왕실의 지원 하에 커피 등의 고부가가치 작물 등을 재배하고 있다. 그리고 미얀마 수장족인 카렌족의 마을이 모여있는 매홍손, 북부로 가는 골목에 해당하는 핏사눌록, 그리고 수코타이 왕국의 수도 수코타이가 이곳에 있다.
북동부는 흔히 이산 지방이라고 부르며, 사실상 라오스와 문화적으로 동일하다. (사실 라오스도 태국과 다를바 없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산 지방의 문턱인 나콘랏차시마에서 북부와 동부로 갈리는데 동부의 중심은 우본라차다니, 북부의 중심은 우돈타니다. 우돈타니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농카이라는 국경도시가 있는데, 여기서 태국-라오스 우정의 다리를 통해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으로 넘어갈 수 있다. 우본라차다니에서 동쪽으로 나아가 라오스의 빡세 방면으로 넘어갈 수도 있으나 그다지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
남부는 길쭉한 산맥으로 미얀마와 접경지이며, 말라카 해협 인근까지 내려오면 갑자기 넓어지는 평지와 양쪽으로 둘러싸인 긴 해안가를 통해 실로 남국에 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태국 최대의 섬이자 최대의 휴양지 푸껫, 푸껫 인근 내륙 해안도시 끄라비, 푸껫에 필적하는 휴양지 사무이(꼬 사무이)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수랏타니 및 나콘시탐마랏, 그리고 말레이시아 인근 대형 상업도시인 핫야이, 송크라, 빠따니가 자리하고 있다.
양쪽이 해안인 남부에 크라 운하를 뚫으려는 계획이 있으나 정권 불안정으로 인하여 실현 가능성은 현재로선 다소 낮은 수준이다.
6.1. 태국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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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77개의 주와 수도 방콕으로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다. 태국어로 주는 '짱왓'이라고 하며, 다시 877개의 암프로 나눌 수 있다.
방콕을 제외한 유명한 주로는 치앙마이, 치앙라이, 촌부리, 푸껫, 아유타야 등이 있다.
가장 아래 쪽에 위치한 사뚠, 송클라, 빠따니, 얄라, 나라티왓은 대표적인 태국의 분쟁지역으로 되도록 가면 안 된다. 여기가 원래 말레이인들의 고유 영토였었는데 태국이 침략으로 강탈한 곳이라 말레이인들의 분리주의 테러가 잦은 곳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곳을 뺀 나머지 지역은 매우 안전하다. 마치 한국에 올 때 연평도 같은 곳만 피하면 안전하다는 의미와 동일하다.[14]
6.2. 국경 넘기
과거에는 서쪽 미얀마 방면으로는 육로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오랫동안 전혀 없었다. 그나마 치앙마이에서 북쪽, 혹은 서쪽의 매솟 등을 통해 길이 있기는 한데, 양국이 서로 쉴새없이 으르렁거리고 있는지라 시장상인들을 배려하여 물자교류를 위해 2km 한정으로만 잠깐 왔다갔다 할 수준이 전부였다. 돈을 벌기 위해 불법 월경하려는 미얀마인들을 막기 위해, 국경의 군경들은 거동이 수상한 사람 발견시 일단 붙잡은 뒤 태국 국가를 불러보게 하거나 태국 문자를 순서대로 외우게 하는 식으로 테스트하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미얀마의 개방정책 실시로 외국인에게도 육로 국경 통과가 전면 허가된 상황이다.
북쪽 라오스 방면으로는 상기했듯 농카이에서 우정의 다리를 통해 넘어가면 아주 수월하다. 차로 30분만 더 달려가면 바로 수도 비엔티엔이 나온다. 서쪽방면은 메콩강이 온통 막고 있어서 건너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카이손 폼비한이나 빡세 방면으로는 육로가 있다. 다만 거의 깡촌이라서 그다지 볼 일은 없다. 최근 동북부 지방에 대한 경공업 투자가 늘어나면서 노동력과 물자 이동이 빈번한 편. 단 주의점이 있다면 라오스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무비자로 30일까지만 체류가 가능하다.
동쪽 캄보디아 방면으로는 방콕에서 버스나 기차 타고 아란야프라텟으로 가면 육로로 넘어갈 수 있다. 혹은 동남부의 뜨랏에서 국제선 배를 타고 캄퐁으로 넘어가면 수도 프놈펜 방면으로 갈 수 있다. 다만 앙코르와트가 목적인 경우엔 먼저 시엠립으로 가야하므로 육로로 가는것이 여러모로 낫다. 프놈펜에서 시엠립으로 가려면 톤레삽(톤레 호수)를 빙 둘러서 돌아가야 하기 때문. 캄보디아와 태국의 사이도 그다지 좋은 건 아니지만 태국이 지위에선 우선이기 때문에 넘어가는 것 자체에선 그다지 문제되진 않는다. 단 해당 지역에 접근하면 외교부에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여행자제-황색경보가 발령되어있기 때문.
남쪽 말레이시아는 방콕에서 페낭 버터워스 역까지 직통 열차도 있으며, 핫야이까지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내려간 다음 남쪽 버터워스 방면으로 계속 가거나 서남쪽 코타바하루 방면으로 가면 된다. 일단 버터워스 역까지 가면 거기에서부터는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KL 센트럴 역이나 나아가 싱가포르의 우드랜즈 역으로 가는 열차도 매일 다닌다. 진입이 상당히 수월한 편이다. 실제로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가 태국보다 잘 사는 나라지만 종교적 이유로 자유로운 문화 때문에 말레이계 민족들이 종종 태국에 놀러가기도 한다.
6.3. 민족 및 인구
태국인 문서 참조.
여자가 남자보다 120만 명 정도 더 많다. 남아선호사상이 별로 강하지 않아 출생 시의 성비는 남:여 1.06 정도로 자연성비에 가깝지만, 남성의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15-64세 성비를 계산하면 남:여 0.98 정도이며 65세 이상으로는 압도적으로 여초가 된다.
국토의 면적에 비해서는 인구가 적은 편이다. 전통적으로 태국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는 노동력 부족이 중대한 문제였다고 한다. 일본이 태국의 3/4 면적에 산림면적이 70~80%인 국가인데도 1억 2천만 명을 기록하는 것과 대조적이다.[15] 그래도 20세기 초에 화교 이민을 받아들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인구를 불리기도 했지만 비료의 보급, 의료수준의 향상, 고출산으로 인구가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인구수가 가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더 이상 받아들일 필요도 없어지고 해서 한동안 강압적으로 동화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출산율이 2명대를 밑돌기 시작하면서 인구성장은 주춤해진 상태로 2010년대 들어와서는 노동력 부족이 문제가 되고있기 때문에 미얀마나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노동력을 대대적으로 수입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국토 면적과 인구 규모(2015년 기준 6600만)가 둘 다 유사한 국가는 프랑스다. 한편으로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에 다음으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로 현재 출산율은 1.6명대로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처럼 떨어지고 있는 출산율 때문에 유엔에서 내놓은 인구전망에 따르면 2100년에는 태국인구가 5000만 명선 아래로 내려간다고 내다봤다. 이는 중간값이고, 최저값은 30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나왔다. 최고값도 7500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현재보다 조금 증가하는 선에 그친다.[16]
6.3.1. 중국계 태국인(시노 타이)
시암 즉 현재 태국은 건국부터 차오저우(朝州)[17] 계 화교가 조주계 군사들을 모아 왕이 된 나라다. 실제로 태국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시암 이후의 태국이란 나라는 차오저우계가 완전히 새로 만든 나라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당장 현 태국 짜끄리 왕조의 시조인 라마 1세와 그 이전 왕조인 톤부리 왕조가 모두 중국계다. 그만큼 시암 이전의 태국과 이후의 태국은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크게 다르다.[18]
중국계 태국인을 뜻하는 시노 타이(Sino Thai)는 전통 태국계와 중국계의 혼혈을 말하며 상당수는 조주계[19] 를 일컫는다. 이들은 주로 방콕을 중심으로 하는 태국 중부를 주요 무대로 삼는다. 객가인 및 광동인 등을 비롯한 다른 계열의 화교들은 과거 란나 왕국이었던 북부의 치앙마이나 남부에서 주로 활동한다. 당장 객가인이었던 탁신 친나왓의 친나왓 가문도 원래 치앙마이가 기반이었다.
시노타이를 포함한 화교는 인구의 14%이상을 차지하는 많은 숫자를 자랑한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도 시노타이계였다만 이 사람은 조주계가 아니다. 이는 필리핀인 중에 상류층 가문은 중국계 필리핀인인 시노 필리피노였던 것과 같은 개념이다. 단지 시노 타이들의 수가 더 많을 뿐인데 중국인들이 중세때부터 태국으로 활발히 이주했던 게 크다. 원체 태국인 자체가 황하 유역에서 기원하여 윈난성, 광시좡족자치구 일대에서 살던 사람들이라 비록 한족은 아니더라도 중국과 접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다 남중국과 가까워서 몽골족이 중국을 통일해 원나라를 세우자 몽골족의 말발굽에 밟힌 남방 사람들은 대거 이민을 택해 남쪽으로 빠져나갔고 그 중에 현재 태국인 시암이 제일 많이 가는 목적지였다.
처음부터 시노 타이의 경우 외모가 몬족이나 크메르족이 섞여 조금 이질적으로 보이는 타 태국인과 달리 동아시아 사람과 흡사해서 처음에는 태국인인 줄 모른다. 정확히는 태국 하면 한국인들이 선입견으로 떠올리는 그런 외모와 거리가 멀어 위화감이 드는 것인데 원래 태국인의 조상은 윈난성에서 이주하였고 황하가 기원인 태족이었다. 단지 현재의 태국으로 내려오면서 원주민이던 몬족 그리고 옆으로 밀어내던 크메르족이나 말레이인과 피가 섞였을 뿐이다.
태국인들이 흰 피부를 추구하는 경향은 시노 타이들이 부유했었고, 지금도 부유하기 때문인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
시노 타이들은 전통적인 태국인들과는 다른 교육과 생활 속에서 자란다. 물론 태국 혁명 이후 피분송클람 정권의 강력한 동화 정책 덕분에 주된 언어로 중국어를 하거나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시노 타이는 0에 가까울 만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상류층 사회는 그들에 의해 주도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오늘날에도 남아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조주계여야 하며, 조주계가 아닐 경우 인정 받지 못한다. 최근의 2006년, 2014년에 각각 탁신 친나왓 및 잉락 친나왓을 축출한 태국 쿠데타도 알고 보면 이러한 중국계 태국인들의 지역싸움이 있는데 탁신/잉락 전 총리 집안인 친나왓 가문은 조주계가 아니다.
방콕 중에서도 야오왈랏 일대는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차이나타운이기 이전에 화교들의 첫 번째 무대였다. 방콕은행, CP와 같은 대기업들도 역시 시노 타이들이 설립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태국 금융업은 죄다 시노 타이들이 꽉 잡고 있다. 그리고 연예계 등도 중국계 핏줄의 중국계 태국인들이 꽉 잡고 있으며 이런 것들이 나중에 흰 피부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시노 타이들은 다른 주변 국가들과는 달리, 스스로를 강력하게 태국인으로 받아들이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그들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거나 민족적 차별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필요에 따라서 은근하게 태국인에게는 없는 중국식 이름, 중국식 생활 방식을 과시하기는 한다. 그러나 중국 본토에 대해서는 경멸하며, 더럽고 조악하다고 생각한다.[20] 특히 이들 중국계 태국인들은 모두 중국 남부 출신이기 때문에 중국 북부는 더욱 멸시한다. 아예 북부 중국인을 몽골인, 만주족 등 오랑캐가 한족화했다고 깔 정도다.
우리가 잘 아는 연예인 중에서 민니와 닉쿤, 텐(NCT), 그리고 중국판 프로듀스 101인 화전소녀 101에 나왔던 리쯔팅 등이 중국계 태국인이다. 리쯔팅의 경우는 원래 태국식 성명을 쓰는데 중국 쪽에서 용케 중국식 성명을 찾아내서 예명으로 쓰는 케이스다.
7. 정치
- 태국/정치 문서 참조.
8. 군사
- 태국군 문서 참조.
9. 경제
- 태국/경제 문서 참조.
10. 사회
- 태국/사회 문서 참조.
11. 문화
- 태국/문화 문서 참조.
12. 외교
- 태국/외교 문서 참조.
13. 교육
세계에서 국제학교가 가장 많은 나라로도 유명하다. 일찍이 유럽과 교류한 영향으로 영국계 국제학교의 수가 많다. 제 2외국어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의 유럽 언어 혹은 중국어, 일본어를 같이 배우도록 구성한 점도 큰 장점으로 부각된다. 90년대 이후로 그 수가 폭증하였으며, 국가적으로도 국제학교 유치를 적극 지원한다.
일반 학교에서는 한국과 같은 6-3-3-4 제도로 운영하고 있다.[21] 그리고 정규교육과정에는 불교가 포함된다. 유럽에서 종교 과목이 있는 것과 유사하다. 미국의 교실에서 크롬북을 사용하는 것 처럼, '1학생 1태블릿' 정책을 추진 중이다. 외국어 과목 중에 팔리어도 있는데 이는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대학교도 교복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22] 대학 및 국제학교 등의 학비는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문화적 특성상 교육에 집착하지 않으며, 대학 입시 등에 특별히 열을 올리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명문대에 대해서는 왕실과의 연계 등으로 자부심이 큰 편이다. 최초의 대학은 쭐라롱꼰 대학으로 1871년 왕실 전용 교육 기관에서 시작하여, 1917년 첫 대학으로 승격되어 오늘날에도 태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특이하게, 중고교 교육과정 중 군사 교육을 추가로 이수하면 군 징집 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징병제(+제비뽑기)라곤 하지만, 대다수는 학교에서 수업으로 이수하기 때문에 모병제에 가깝다.
14. 창작물에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는 문명 5에서 시암 문명으로 등장한다.
SF 소설 《와인드업 걸》은 배경을 근미래 태국으로 삼았다. 식민지를 면한 역사적 특성을 살려 유전자 조작을 통한 대규모 농업기업의 식량주권 위협에 대항하는 국가로 나오...는데 어째 알맹이는 영 안 좋은 상태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아유타야 용병함대' 등 NPC이름과 여러 모험 퀘스트에서 태국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만화 《블랙 라군》의 배경인 로아나프라는 설정상 태국에 있다는 가상의 항구도시다. 실제로 태국에 이런 도시는 없다. 다만 항구도시와 해변 앞바다의 거대한 바위절벽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보면 태국 남부 휴양지중 하나인 끄라비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캡콤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최종 스테이지 무대이기도 하다.
니혼 팔콤의 궤적 시리즈에 나오는 리벨 왕국의 지형의 모델은 태국의 지형을 본따서 만들었다.
만화 《Back Street Girls》에서는 피아퐁이라는 성전환수술의 달인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당장 조폭 걸즈 3인방부터 태국가서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몇몇 인원들이 태국 가서 수술을 받는데, 대부분 결과가 예쁘게 나온다.
히트맨(2016) 4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지역이다. 짜오프라야 강에 위치한 히마판 호텔이 암살 무대로 등장한다.
14.1. 태국 국적, 출신의 캐릭터
태국인#s-5.3 문서 참조.
15. 주요 도시
- 중부
- 이산 지방
- 우돈타니
- 콘깬
16. 관광
17. 관련 문서
[1]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2] 공교롭게도 베네수엘라의 친 차베스파 VS 반 차베스파의 대결구도하고도 일정 부분 유사하다.[3] 태국 헌법에서는 국교를 규정하지 않으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4] 물론 세속국가라 법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며, 요즘은 이런 경우가 많이 드물어졌다. 특히 도시에서.[5] 실제로 데뷔 초기에 야심만만 예능선수촌에서 이미 자신이 절에 출가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6] 석가모니가 80세 되던 해 마가 월(月)의 보름날, 아무 예고도 없이 석가모니에게 직접 출가하여 아라한의 경지에 든 제자 1250명이 죽림정사에 모였다. 석가모니는 이들에게 설법하고 자신이 열반하리라 말하였다고 한다. 태국 화교들은 이날을 만불절(萬佛節)이라 표현한다.[7] 한국 불교에서는 승려들이 이날 하안거에 들어간다.[8] 석가모니가 처음 깨달음을 얻은 뒤, 녹야원에서 과거에 자기와 함께 수행했던 동료 5명에게 처음으로 설법함을 두고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부른다. 태국의 화교들은 이날을 삼보절(三寶節)이라 표현한다.[9] 과거에는 이날을 유두절이나 유두날이라고 부르며 절기로 쳤다.[10] 그래서 과거 아유타야 왕국 시절 전통가옥들을 보면 대부분 강가로부터 높게 고상가옥 형식으로 지어졌다.[11] 북부지역 우기같은 경우는 일교차가 심하기때문에 한국 환절기보다 더 극심한편이다. 심하면 독감에 걸릴수도 있다. 그래서 주로 노인사망자가 많이 나온다.[12] 한국의 여름철 최난월 평균 상대습도는 75% 내외이다.[13] 분지, 평지등의 지형적 특성도 기후에 영향을 미치나 한국과 태국의 위도차는 상당하여 그것을 상쇄하는 수준이고 고도가 높은 고산지역이 아닌 한, 태국과 같은 저위도, 아열대, 열대기후 지대는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더 크거나 연간 기온차가 일정하게 높은것이 특징이며, 반면에 한국과 같은 중위도 온대, 냉대기후 지대의 경우 연교차가 큰것이 특징인데, 이는 비슷한 위도대에 위치한 국가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요소라 다른 국가들과는 구분되는 어느 한 국가만의 고유 특성으로 볼 순 없다. 또한 환경오염 측면에서 방콕과 같은 대도시를 필두로 태국이 한국에 비해 깨끗한 편이 아니므로 그런 차이가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힘들다.[14] 다만 연평도는 북한에 의한 포격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크게 안전한데 비해 여기는 신변의 직접적 위협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연평도는 굳이 비유를 하면 그렇다는 것이다.[15] 인도차이나 반도가 2기작을 넘어 3기작도 가능한 지역이라 식량이 풍부하고 인구가 많았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열대지방의 엄청난 강수량에 땅에 있는 영양분들이 다 쓸려나가기 때문에 비료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농사 짓기 좋은 지역이 아니었다.[16] 자세한 내용은 참고[17] 차오저우는 중국 광둥성 동부에 위치한 곳이다. 이 지역은 차오산이라고 부르며 푸젠성과 언어 및 음식이 가깝다.[18] 베트남도 역사적으로 중국과 비슷한게 많았다. 베트남/역사 참고. 아예 중국계 왕조인 남월이 베트남 역사 시작이었으니 말 다 했다.[19] 치우차우로 불린다.[20] 이 점은 종교와 언어가 다르지만 같은 중국계 혈통인 싱가포르의 중국계도 똑같다. 싱가포르 중국계는 기독교 교세가 강하고 무신론자도 많으며 불교도도 많은 반반이다. 시노타이는 대부분 소승불교에 대승불교를 약간 짬뽕한 현지화된 중국 불교를 믿는다.[21] 정확하게 따지자면 6-6(3+3)-4이다. 한국의 중학교, 고등학교와 같은 등급인 롱리얀 마타욤쓱사를 머똔(저학년. 중학생)과 머쁠라이(고학년. 고등학생)로 나누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두기 때문.[22] 사실 한국도 1970년대 이전에는 대학생 교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