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 킬미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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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my Kilmister'''
1945.12.24 ~ 2015.12.28
1. 인물정보
영국의 로큰롤 밴드 모터헤드의 작곡가/리드싱어/베이시스트. 마초적 이미지의 헤비한 음악, 항상 턱을 높게 치켜들고 더 높이 세운 마이크를 내린채 걸걸하게 내지르는 특유의 외침같은 보컬 자세로 익숙하다.'''LEMMY IS GO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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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크리스마스 이브 잉글랜드 태생으로 본명은 이안 프레이저 킬미스터(Ian Fraser Kilmister). 1967년 런던으로 상경해 71년부터 스페이스록 밴드 호크윈드에 가입하여 베이시스트로 활동하였으나 75년 마약 복용 혐의로 검거되면서 해고당한다.[4] 이후 친구를 포함한 멤버들을 규합해 자신의 밴드인 Bastards 를 만들고 밴드명 때문에 방송출연이 금지되자 1975년 밴드명을 Motörhead로 변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오버그라운드에 이름을 알린다. 이후 말년까지 투어를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다 2015년 생일파티 이틀 후부터 몸의 이상을 느껴 입원해 검진을 받게 되는데, 뇌와 목에서 말기 암이 발견되어 2~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고 퇴원하여 12월 28일 작고하였다.
2. 뮤지션으로서의 삶
터프하고 '놀 줄 아는' 남성의 아이콘으로서 80년대 초반부터 급부상하여 마초적인 음악인의 플래그십이 되었다. 모터헤드 동시기 또는 그 이후 세분화된 헤비메탈 하위장르들이 흔히 흑마술과 박쥐 뜯어먹는 음악(...)으로 이미지가 각인된 것에 비해 이쪽은 경쾌한 로큰롤의 느낌을 일부 간직하고 있어서 나름 대중적인 면이 있었다. 본인의 외모부터가 근육질에 큰 코, 각진 턱, 수염, 긴 흑발이어서 '멋진 남자'의 아이콘으로 기능하며 걸걸하고 가래끓는듯한 보컬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고... 음악이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WWE의 레슬러 트리플 H의 등장곡으로 쓰인 The Game을 떠올리면 된다.[5][6]
Ace of Spades, Overkill, Too Late Too Late, We Are Motörhead, Damage Case 등 많은 히트곡들을 써냈다. 후대에는 레미의 음악을 헤비메탈 내지는 스피드메탈 등으로 분류하며 로큰롤에서 헤비메탈로의 장르 확장을 개척한 대부로 부르지만, 본인은 매 콘서트마다 "Don't forget us. We are Motörhead. We play Rock 'n Roll!"이라는 고정멘트를 하며 자신의 음악을 '꽤 빠른 로큰롤'이라고 정의하는 편이다.[7]
80년대 중후반을 풍미한 스래시 메탈의 '빅4(슬레이어,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랙스)'에게 공통적으로 대부로 모셔지는 인물로, [8] 전성기 당시 영향력은 소위 말하는 연예인들의 연예인. 오늘날까지도 헤비메탈에 입문하는 음악인 또는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디스코그래피를 거슬러 올라가다 모터헤드의 커버곡을 발견한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이 스스로 그의 팬임을 언급하는 등 여러 경로로 레미 킬미스터의 발자취를 접할 수 있다.
오지 오스본과는 각별한 사이였고[9] 오지 오스본이 은퇴를 고려하고있을 때 상당한 곡들을 써주었고 히트를 첬다.[10] 이 때 써준 대표적인 곡들이 Mama I'm Coming Home,' 'See You on the Other Side,' 'Hellraiser'[11] , 'I Don't Want to Change the World,' 'Desire" and "My Little Man,' 가 있다.
베이스 연주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우선 베이스 앰프의 오버드라이브를 '''최대치'''로 설정하고, 기타처럼 '''코드를 잡고''' 친다. 이 때문에 레미의 목소리와 베이스의 소리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기타 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도 하다.[12]
여러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지만[13] 그가 가장 많이 이용한 베이스 기타는 리켄베커 4000 시리즈의 베이스 기타들이다.[14] 이를 기념하여, 리켄베커에서는 레미의 시그니춰 베이스를 발매하였다. 이름하야 'Rickenbastard'. 시그니춰 베이스를 연주하는 레미의 모습.
3. 개인사
학창시절을 웨일즈 서부 끄트머리 지역에서 보냈는데 그 지역의 유일한 잉글랜드 출신인 연유로 시비를 걸어오는 전교생들과 매일 주먹다짐하고 싸워댔다고 한다. 특유의 거친 성격은 이때부터 유래 했었는지도.. 레미(Lemmy)란 예명은 'Lend me'의 변형인데 이 학창시절에 하루가 멀다하고 돈을 빌려대서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별세하기 전까지 최소 2,000명 이상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친자관계가 알려진 자녀는 아들 둘인데 한 명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입양되었다 2010년대에 와서 겨우 찾았고, 다른 한 명은 6살 때까지 존재를 몰랐다고.. 술은 죽기 직전까지 근 40년간 하루에 잭 다니엘스를 한병 이상 꼭 마셔 제꼈다고 한다.
아들 중에 Paul Inder가 있고 아버지 처럼 음악을 한다. 처음 만났을 땐 자기와 어머니를 책임지지 않은 것을 원망하였으나, 정기적으로 계속 만나고 자기 역시 이쪽 계열(?) 음악과 생활을 하다보니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연 뒷풀이 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인자리에서 늘 자기 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혈육에 대해선 소중히 생각하는 듯 하다.
평생 술과 담배 등, 무엇보다도 놀기를 미친듯이 좋아했다. 평생 놀아온 이력을 고려해보면 칠순잔치까지 치르고 죽기 이틀 전에야 몸에 이상을 느끼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것이다. 이하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모터헤드 문서나 한국의 네티즌이 작성한 레미 킬미스터에 대한 글을 같이 읽으면 좋다.
술과 담배는 많이했지만 헤로인 같은 마약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약물 때문에 이른 나이에 망가진 것을 보고 오랫동안 하고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약은 하지 않았다 하고, 오히려 주변에 마약하는 사람이 있으면 두둘겨 팼다고한다. 또한 동시대의 많은 락스타들이 난잡한 폭행이나 마약, 음주운전 등으로 온갖 물의를 일으켰던 것에 비해 개인적 쾌락을 즐겼을뿐 상당히 젠틀하고 과묵한 성향이었다. 오히려 이런 점이 더 진짜 마초이즘에 가까운 편이라 락메탈계에서 대표적인 마초로 아직도 꼽히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헤비메탈 뮤지션들중에 레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나치 관련 물품을 수집하는 걸 좋아해서 이런 쪽에서 꽤나 까였다. 레미 본인은 그냥 멋있어서 모았던 거라고. 자기가 사귀었던 흑인 여자친구들도 그거 보고 뭐라 안그랬는데 애먼 데서 괜히 트집잡는다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적 있다. [15] 생전 정치 성향은 무정부주의적 리버테리안에 가까웠다. 다만 2차대전 직후에 태어난 세대여서 논란이 좀 더 있었는 듯하다. 한국으로치면 6.25 전쟁 직후에 태어난 뮤지션이 북한이나 소련 관련 물품을 수집을 한 것.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유럽군인들에게 나치의 물품들은 주요 컬렉팅 대상이였다. 그것도 돈이 돼서가 아니라 단지 멋지다는 것 때문에. 애초에 레미는 노래나 평소 인터뷰에서 이들의 사상에 대해 말한적도 없다.
[1] 4[2] 영화 에어헤드에 나온 명대사. 브랜든 프레이저 : 레미랑 신이 레슬링을 하면 누가 이길까? / 경찰 : 레미? 스티브 부세미 : 땡! / 경찰 : 신? / 스티브 부세미: 틀렸어, 이 븅신아. 이건 함정 퀴즈야. 레미가 바로 신이지롱![3] 둠 이터널에서도 이스터 에그 형태로 등장한다.[4] 호크윈드가 미국 투어를 돌던 중이었는데,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경찰이 레미가 갖고 있던 암페타민을 코카인으로 오인하여 그를 검거하였고, 때문에 레미는 며칠 동안 투옥되어야 했다. 결국 이 때문에 공연 몇 개가 취소되기도 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밴드는 그를 해고하기로 하였다고...[5] 트리플 H는 레미의 열성 팬이어서 레미에게 곡을 부탁했고, 흔쾌히 수락한 레미는 트리플 H가 레슬매니아에서 경기를 가질 때 2차례 입장곡 라이브를 해 주었다.[6] 정확히는 WWE 담당 작곡가인 짐 존스턴(Jim Johnston)이 기본 코드를 만들어서 그대로 쓰려고했는데 트리플 H가 레미 킬미스터에게 본인의 전용 주제곡 참여를 부탁해 짐 존스턴이 작업한 코드를 기반으로 지금의 The Game를 작곡했고 작업한 김에 짐 존스턴이 작곡한 다른 2곡인 에볼루션의 테마곡 Line In The Sand와 King of King도 모터헤드가 녹음해주었다.[7] 레미가 헤비메탈을 꽤 빠른 로큰롤이라고 정의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로큰롤이 처음 나왔을 때는 꽤 빠르게 연주하는 블루스 음악이라고 정의되었던 적이 있었다.[8] 2011년 뉴욕에서 스래시 메탈의 빅4들이 함께모여 콘서트를 하며 모터헤드의 overkill을 전체 다같이 연주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 모터헤드 3명이서 내는 소리가 저 20명보다 더 크다’는 반응이 많았다...[9] 영국 태생이면서 미국에 거주하면서 사는 몇안되는, 메탈 계열의 음악을 하는 동포였기에 그렇다.[10] 레미는 오지에게 몇몇 곡을 써준 개런티를 받았는데, 자기가 번 돈 보다 더 많은 금액이 들어왔을 때, 오지가 생각보다 돈을 잘버는 락스타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11] 이곡은 본인 앨범에 본인 버전으로도 수록하였다[12] 실제로 모터헤드의 공연에 친구인 브라이언 메이와 과거 모터헤드 멤버 에디 클라크, 그리고 스컹크 아난시의 기타리스트 “ACE” 를 불러 총 '''4명의 기타리스트'''가 모여(모터헤드의 필 캠벨 포함) <Overkill>을 연주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기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였다.[13] 깁슨 선더버드나 B.C Rich 베이스도 연주한 적이 있다![14] 4001, 4003, 4000 베이스를 연주하였다.[15] 나치 관련 물품은 현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높게 치는 디자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