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헤드

 


'''Motörhead'''

[image]
'''출신지'''
잉글랜드 런던
'''멤버'''[1]
레미 킬미스터(베이스, 보컬)[2]
필 캠벨(Phil Campbell/기타)[3]
미키 디(Mikkey Dee/드럼)[4]
'''과거 멤버'''
래리 월리스(Larry Wallis/기타, 배킹 보컬)[5]
루카스 폭스(Lucas Fox/드럼)[6]
에디 클라크("Fast" Eddie Clarke/기타, 배킹 보컬)[7]
필 테일러(Phil "Philthy Animal" Taylor/드럼)[8]
브라이언 로버트슨(Brian "Robbo" Robertson/기타, 배킹 보컬)[9]
마이클 버스턴(Michael "Würzel" Burston/기타 배킹 보컬)[10]
피트 길(Pete Gill/드럼)[11]
'''장르'''
하드 록, 헤비메탈
'''활동기간'''
1975 ~ 2015
'''데뷔'''
1977년 앨범 <Motörhead>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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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프론트맨인 레미 킬미스터
1. 개요
2. 상세
3. 해체
4. 기타
5. 구성원


1. 개요


모터헤드는 1975년 결성된 영국헤비메탈/스피드 메탈 밴드이다. 그러나 레미 킬미스터는 모터헤드를 조금 빡센 락앤롤 밴드라고 정의했으며[12][13], 외국에서도 모터헤드는 본격적인 스피드메탈 밴드라기보다는 파워풀한 락앤롤 밴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밴드명은 레미 킬미스터가 모터헤드 결성 전에 활동했던 밴드인 호크윈드의 6집 앨범 Warrior On The Edge Of Time의 마지막 곡 Motorhead[14]에서 따온 것. 1976년 밴드명과 동일한 이름의 앨범으로 데뷔하였고, 1980년대 초반 Ace of Spades라는 음악계에 길이 남은 곡을 발표하면서 최전성기를 달렸다.
참고로 Motörhead의 정식 발음은 모퇴르헤드(...)가 아니고 그냥 모터헤드다. [15]

2. 상세


모터헤드의 사운드는 스래쉬 메탈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속도감 있는 피킹과 마샬 앰프로 퍼즈 톤을 잔뜩 먹인 금속 사운드를 핵심으로 하는 레미의 베이스 연주는 메탈 베이시스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무엇보다 특유의 흉내낼 수 없는 가래 끓는 목소리가 일품이다.[16] 다만 현재 창법은 호크윈드 재적 시절에는 쓰지 않았고 모터헤드를 결성한 뒤 바꿨다. 밴드 전성기의 드러머였던 필 테일러는 스래쉬 메탈 드러밍의 원형을 개척해 본격적인 스래쉬메탈의 탄생을 예고했다. 기타리스트였던 에디 클락 또한 메탈헤드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곤 하는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였다. 무엇보다도 '''밴드의 리더 레미 킬미스터는 모든 메탈헤드들의 우상이자 신적인 존재였다.'''[17] 레미는 자신의 목소리만큼이나 마초적이고 진솔한 락의 거인으로서 일생 내내 존중받았다.
아무리 스스로 메탈 밴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모터헤드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메탈 장르의 성립에 크게 기여한 밴드이다. 그들이 장르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메탈리카와 견주어도 결코 덜하지 않다. 흥미롭게도 이 메탈리카는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밴드로 모터헤드를 꼽는다. 메탈리카는 모터헤드의 곡을 4곡이나 커버해서 앨범에 실었고(Overkill, Damage Case, Too Late Too Late, Stone Dead Forever), 최근까지도 라이브에서 심심찮게 이 곡들을 커버하고 있다. 메탈리카의 리더인 라스 울리히는 아예 모터헤드의 팬클럽 회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2009년 라이브 투어 때는 레미 킬미스터를 '''초청해''' 함께 공연도 했다.
모터헤드가 메탈리카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하면서 메탈리카의 대표곡인 Enter Sandman을 묘하게 비틀어 부르는 바람에 모터헤드 쪽에서는 메탈리카를 싫어했다는 식의 루머가 퍼졌던 적이 있다. 실제로 모터헤드가 Enter Sandman의 제목을 Fuck Metallica라고 바꾸어 수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장난의 일종이지 진지한 악의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레미는 메탈리카와 같이 공연을 할 만큼 친한 사이였다.# 애초에 메탈리카를 싫어하면서 메탈리카 트리뷰트 앨범에 참가했을 리가 없다. 그냥 이야기들이 와전되면서 생긴 해프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는 WWE의 프로레슬러인 트리플 H의 'The Game' 테마곡을 부른 것으로 유명하며 레슬매니아에 두번[18]이나 초청되어 라이브로 부른 적이 있다. 트리플 H의 또다른 테마곡인 "King of kings" 또한 모터헤드 곡이며 트리플 H가 속해있던 팀인 에볼루션의 테마곡 "Line in the Sand" 또한 모터헤드가 불렀다. 언포기븐 2008의 테마곡 "Rock out"도 불렀다. 트리플 H가 모터헤드의 광팬이라 함께 찍은 사진들도 많다.
2015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했다.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측은 모터헤드를 Motorhead, 즉 움라우트를 뺀 상태로 라인업에 게시해서 소소하게 욕을 먹었다. 공연은 훌륭하게 노익장을 과시하며 막을 내렸다.

3. 해체


2015년 말, 비극적인 소식들이 이어졌다. 11월 11일에는 모터헤드의 전 드러머인 필 테일러가 타계하였다.
12월 28일, 레미 킬미스터가 타계했다. 26일에 암을 발견한 뒤 이틀만의 급사였다고 한다. 레미는 Aftershock 활동부터 이미 제세동기를 차고 다니는 상태였지만, 마지막까지 담배와 음주 등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5년 12월 초 건강 악화로 인해 보드카를 오렌지 주스로 대체했을 때는 이미 대처하기에 늦어 있었다. 레미는 사망 전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콘솔 게임을 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오지 오스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인생을 즐길 대로 즐기면서''' 떠났다.[19] [20]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모터헤드는 '''레미의 죽음과 함께 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2018년 1월 11일에는 전 기타리스트 에디 클라크가 폐렴으로 사망했다. 전성기 시절, 그러니까 이들의 최고 명작 Ace of Spades를 만들었던 시절의 멤버들이 전부 세상을 떠난 것이다.
2019년 9월 19일, 원년 결성멤버인 래리 왈리스(Larry Wallis)가 사망했다.

4. 기타


  • 밴드의 이름을 딴 헤드폰/이어폰 시리즈가 출시되어 있다. 시리즈 이름은 모터헤드폰. 국내에도 출시됐다. 44,000원짜리 메탈 특화 커널형 이어폰인 오버킬 같은 경우 비츠 이어폰과는 다르게 메탈 쪽에 한해서는 가성비가 좋다.
대부분의 시대를 3인조 록 밴드의 형태로 존재해 왔지만, 예외적으로 1980년대 중반에는 필 캠벨과 마이클 버스턴이 함께 있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4인조였던 때도 있었다. 실은 정식 데뷔 에전에도 실현될 뻔한 것이었는데, 1975년 필 테일러가 드러머로 들어오고 나서 기타리스트가 두 명이 있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밴드가 오디션을 통해 에디 클라크를 기타 담당으로 영입하였으나, 뒤이어 오리지널 기타리스트 래리 월리스가 밴드를 떠나 에디 혼자 기타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 3인조 라인업이 구성되었던 것.
드러머 미키 디는 현재 스콜피언스의 객원 드러머로 활약 중이다. 가끔씩 스콜피언스 공연에서 모터헤드 곡도 커버하는 것으로 보인다.

5. 구성원


모터헤드/멤버 문서 참조

[1] 2015년 당시의 라인업 기준.[2] 1975 ~ 2015[3] 1984 ~ 2015[4] 1992 ~ 2015[5] 1975 ~ 1976/2019년 사망[6] 1975[7] 1976 ~ 1982/2018년 사망[8] 1975 ~ 1984, 1987 ~ 1992/2015년 사망[9] 1982 ~ 1983[10] 1984 ~ 1995/2011년 사망[11] 1984 ~ 1987[12] 모터헤드의 Let It Rock 커버 영상(유튜브엔 Johnny b goode로 제목이 되있다.)을 보면 락앤롤 본연에 충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좀 헤비할 뿐.[13]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소나타 악티카가 있는데, 모터헤드가 초지일관 전설로 남은 반면 소나타 악티카가 파워메탈에서 점점 힘빠진 말랑말랑한 락으로 메탈 팬들의 혹평을 듣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14] 참고로 이 곡은 프라이멀 스크림이 커버하기도 했다. 밴드가 모터헤드와 호크윈드를 존경한다고 한다.[15] 이처럼 밴드명에 발음과 무관한 움라우트를 첨가한 밴드는 모터헤드 외에도 적잖이 있다. 선배인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Öyster Cult)를 시작으로 퀸즈라이크(Queensrÿche: 이 밴드는 발음을 설명하고 다녀야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 등등. 이를 가리키는 명칭은 메탈 움라우트(Metal Umlaut). 레미 킬미스터가 인터뷰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그냥 세 보이려고 찍었다(I only put it in there to look mean.)"고 한다.[16] 물론 이 때문인지 레미의 보컬에는 보이스라인이 거의 없다. 하지만 다른 밴드 노래 커버에는 전혀 문제없다.[17] 락, 메탈계에서 레미의 영향력은 오지 오스본 못지 않게 어마어마했다. 정말이지 락의 대부라 일컫기에 한치의 부족함도 없었다. 레미가 죽기 며칠 전 70세 생일파티를 위해 모였던 뮤지션들의 면면만 보아도 이는 잘 드러난다. 잭 와일드, 스캇 이안, 스티브 바이, 슬래시 및 구 건즈 멤버들, 세바스찬 바하, 로버트 트루히요, 빌리 아이돌 등의 쟁쟁한 라인업이 레미의 생일을 맞아 축하공연을 펼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또한 레미의 장례식장에서도 롭 핼포드, 스캇 이안 등의 쟁쟁한 락계 거물들이 추도사를 이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18] 레슬매니아 17(2001년), 레슬매니아 21(2005년)[19] 메탈리카는 자신들의 10집 앨범 Hardwired... to Self-Destruct에서 레미에게 바치는 헌정곡 'Murder One'을 수록했다.[20] 오지 오스본은 거친 마초들이 즐비한 메탈씬에서도 기행과 음주,마약등으로 유명해 지금까지 안죽고 살아있는게 신기한 뮤지션 top10에 뽑힌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