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메이

 


[image] '''작곡가 명예의 전당 헌액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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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브라이언 메이
BRIAN MAY
'''
'''}}}#ffd700 입성 연도}}}'''
'''}}}#ffd700 2003년}}}''' 출처 참조

<color=#AF1E09> '''Order of the British Empire
Brian May
브라이언 메이'''
<colcolor=#AF1E09> '''본명'''
브라이언 해럴드 메이, CBE
Brian Harold May, CBE
'''국적'''
[image] 영국
'''출생'''
1947년 7월 19일 (76세)
영국 잉글랜드 미들섹스 햄프턴[1]
'''직업'''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천체물리학자, 작가
'''소속'''
1984 (1966 - 1968)
스마일 (1968 - 1970)
(1970 - )
'''서명'''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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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AF1E09> '''부모님'''
아버지 : 해럴드 메이
어머니 : 루스 메이
'''배우자'''
크리시 멀런 (1974 - 1988, 이혼)
애니타 돕슨 (2000 - )
'''자녀'''
지미, 루이사, 에밀리
'''학력'''
햄프턴 문법 학교 (졸업)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천체물리학 / BS.c)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천체물리학 / Ph.D)[35]
'''종교'''
무종교 (불가지론)
'''신체'''
188cm, 67kg
'''활동 기간'''
1964년 ~ 현재
'''장르'''

'''악기'''
기타, 보컬, 키보드
'''레이블'''
팔로폰, 할리웃
'''약력'''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 총장 (2008 - 2013)
'''링크'''
[36]


[image]
1984년 'The Works' 앨범 활동 당시 (37세) 모습
[image]
2012년 최근의 (65세) 모습
1. 개요
2. 음악적 특징
2.1. 사용 기타
2.1.1. 라이브 연주
2.1.2. 뮤직비디오 사용
3. 방한
4. 건강악화
5. 근황
6. 여담
7. 그에 대한 말말말

'''나에게 있어 기타는 매우 감성적인 것이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뛰어난 사람이고, 그의 연주에서 그것이 잘 드러납니다. 저는 어떤 기타 연주자의 소리든 듣고 따라할 수 있지만, 브라이언 메이의 소리는 따라할 수 없겠더군요. 그는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연주를 합니다.'''[원문]

스티브 바이


1. 개요


영국록밴드 기타리스트이자 천체물리학자, 전 대학총장.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2]에 진학하여 천체물리학자[3]를 꿈꾸던 그는 의 전신인 스마일에 합류한 시점에서 이미 '''박사 과정'''을 밟던 중이었다. 그러나 밴드가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면서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밴드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프레디 머큐리가 불세출의 보컬 능력과 무대 장악력을 지녔기에 가려지긴 했지만, 그의 기타 연주 실력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이다. 2005년 영국라디오 방송국인 '플래닛 락'이 실시한 투표에서 역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Greatest Guitarist of All Time) 7위에 올랐고,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100 Greatest Guitarist of All Time) 중에서는 26위에 올랐다.
트레이드 마크는 젊은 시절 때부터 유지하고 있는 장발의 곱슬머리와, 그만의 전용 시그니처 기타라 할 만한 레드 스페셜이다.[4] 키가 크고 매우 말랐다. 평상시에 통이 큰 옷을 입는 것도 이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5]

2. 음악적 특징


어린 시절, '''기타를 살 돈이 마땅치 않아서 전자기사인 아버지와 함께 제작한 수제 기타 "레드 스페셜"을 가지고 있으며, 50년이 지난 지금도 녹음과 연주할 시에 메인 악기로 사용하고 있다.'''[6] 때문에 그의 기타 톤은 완전한 브라이언 메이의 수제이며, 평범한 기성 기타로는 그 독특한 톤을 카피하기 어렵다.[7][8] 연주할 때는 피크 대신 6펜스 동전[9]을 사용하는데, 동전이 딱딱하기 때문에 컨트롤하며 연주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10] 브라이언 메이의 테크니션인 피트 맬런드론(Pete Malandrone)의 말에 인터뷰를 보면 동전으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에는 늘 금속 가루가 묻어있고, 픽업은 깎여나간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자주 관리를 해줘야한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동전으로 피킹한 것 때문에 기타 넥의 제일 하단 부분 역시 깎여 나갔고, 픽업 또한 눌리거나 휜 부분이 보인다.
의 대표곡 가운데 "'39", "We Will Rock You", "I Want It All", "The Show Must Go On",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등 퀸의 하드락 넘버 상당수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발라드 등 여러 장르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실상 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Made in Heaven에서 그가 작곡한 "Too Much Love Will Kill You"는 1세대 SM3 CF에 삽입되어 다시 한 번 곡을 알렸다.
[image]
속주가 특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상당히 치밀한 두뇌 플레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라이브에서 그의 솔로파트다. 3집 "Sheer Heart Attack"의 첫 번째 트랙 "Brighton Rock"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자신이 연주한 멜로디가 몇 초 뒤 스피커에서 다시 나오는 딜레이 이펙터라는 장치를 가지고, 자신의 멜로디와 화음을 맞추는 새로운 멜로디를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서 '''기타로 돌림노래'''를 하는 셈.[11] 언뜻 보기에도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막상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안드로메다급이다. 화성학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연주.

직접 확인해보자.
또한 초기 퀸 사운드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데, 7집 "Jazz" 앨범 전까지 밴드가 신디사이저 없이 특수한 사운드를 낸 것은 그의 기타가 큰 역할을 했다. 4집 "A Night at the Opera"의 그 기묘하고 놀라운 효과음에 신디음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 그의 다양한 연구와 전자공학도였던 존 디콘의 기계장치들이 초창기 퀸 사운드를 만든 것이다.
아이리쉬 기타리스트 로리 갤러거의 팬이라 한다. 같이 찍힌 사진도 있으며[12] 본인 말로는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여담으로 두 분 다 복스 앰프 마니아시다.
또한 로저 테일러와 함께 퀸의 백킹 보컬을 맡았고, 8집 The Game 앨범까지는 직접 리드싱어로 맡기도 했다. 사실 로저 테일러가 주로 서브 보컬을 맡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브라이언 메이는 꽤나 출중한 보컬리스트였다. 메이는 프레디 머큐리보다 먼저 솔로 앨범을 냈었다. 프레디 머큐리 사후 브라이언 메이 본인이 때때로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한다. 이는 로저 테일러도 마찬가지.
브라이언 메이가 직접 부른 곡 중에 유명한 곡 중 하나가 Too Much Love Will Kill You인데, 프레디 머큐리의 버전이 더 유명하긴 하지만 브라이언 메이 버전도 상당히 괜찮다. 브라이언 메이는 라이브 공연에서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이 곡을 듀엣으로 부른 적도 있는데, 다른 유명 가수들이 파바로티와 같이 불렀다가 압살당하는 굴욕을 맛보곤 했지만 브라이언 메이는 원곡자의 감성을 살려 오히려 파바로티보다 더 존재감 있는 가창을 들려줬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브라이언 메이,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리고 의외로 가성이 상당히 높다. 그의 솔로곡 'Hot Patootie'라는 곡에서 낸 '''C#6(4옥타브 도#)'''이 그의 최고음으로 알려져 있다. 0분 15초.
피아노 연주 실력도 꽤나 좋다. 원래 프레디 머큐리가 들어오기 전인 스마일 시절에는 브라이언 메이가 건반을 담당했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들어오고 나서 Queen이 결성되자 머큐리가 메인 키보드를 담당하게 되지만, 여전히 서브 키보드로 활약한다. 라이브 공연에서 Save me, Teo Torriatte 등에서는 메이가 피아노를 치곤 했다.
'''Save Me'''

결론은 작사작곡, 악기연주, 보컬능력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뮤지션.

2.1. 사용 기타



2.1.1. 라이브 연주


[image]
라이브와 스튜디오 녹음때 제일 많이 사용하는, 자신과 퀸의 상징이기도 한 레드 스페셜.
  • 레드 스페셜(John Birch 레플리카)
[image]
'최초의' 레드 스페셜 레플리카. 브라이언이 영국의 현악기 기술자 존 버크(John Birch)에게 주문을 의뢰해 받은 기타라고 한다.[13] 다만 오리지널과 같은 픽업을 썼음에도 소리가 유사하지 않아 브라이언 본인은 사실 별로였다고. 결국 예비용 기타가 되었다. 1982년 8월 9일 미국 뉴저지에서의 Space 투어의 공연 중 레드 스페셜의 줄이 끊어져 빡친 브라이언이 애꿎은 이 기타를 박살내는 퍼포먼스를 한다.
[image]
초기 라이브 시절 때 백업용으로 구비해둔 Fender Stratocaster. 브라이언이 음악 활동으로 돈을 벌어서 산 최초의 브랜드 기타일지도.[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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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스트랫과 비슷한 이유로 구매한 Gibson Les Paul 디럭스 모델. 다만 이것도 앰프와의 조합이 생각보다 잘 맞지 않아서 비축해두다가 갖고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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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me 앨범의 수록곡 의 녹음과 라이브 때 썼던 Telecaster[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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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Space 앨범 투어 중 위의 John Birch 레플리카를 공연 도중에 부순 브라이언이 새로 구입한 예비용 Flying V기타. 다만 이후 투어에서 을 연주할 때 쓴 적이 있다.

2.1.2. 뮤직비디오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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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사용 기타이며 뮤직비디오에서도 자주 쓴다.
  • 레드 스페셜(John Birch 레플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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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 News of the World의 수록곡 와 <We Will Rock You>의 뮤직비디오에 사용되었는데, 이는 추운 날씨에 레드 스페셜을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image]
위 문단에서 서술했듯이 의 뮤직비디오에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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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의 수록곡 의 뮤직비디오에서 브라이언이 쓴 스트라토캐스터 모조품. 아마 중후반부에 프레디가 기타를 뺏어서 던지는 장면 때문에 쓴 듯하다. 해당 곡의 녹음은 원래대로 레드 스페셜을 사용.
  • 워시번 R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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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ind of Magic 앨범의 수록곡 뮤직비디오에서 사용했다. 위의 스트랫과 같이 곡 녹음은 레드 스페셜로 진행.
  • 브라이언 메이 해골 기타(Brian May Skull Gui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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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ks의 수록곡 'It's a Hard Life' 뮤비에서 사용된 자신의 두개골을 본딴 기타.

3. 방한


2014년 8월 14일 잠실에 위치한 서울종합운동장에서 '슈퍼소닉 페스티벌 2014'를 통해 꿈에 그리던 퀸의 첫 내한공연이 이루어졌다. 멤버 로저 테일러와 보컬 아담 램버트와 함께 출연해 열정적인 연주를 펼치며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특히 'Love of my life'를 중심으로 많은 한국어를 쏟아냈다. 퀸의 라이브 역사상 최초로 "I Was Born to Love You"를 락버젼으로 연주했다.
2020년 1월 15일에 약 6년만에 내한공연을 위해 퀸 멤버인 로저 테일러, 그리고 아담 램버트와 함께 재방문 및 18일에서 19일 간 이틀 동안 공연을 했다. 공연장소는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고척 스카이돔. 로저 테일러와 함께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 문을 빠져나오는 순간, 수많은 팬들이 입국장 밖에서 환호성과 함성을 지르면서 맞이했는데, 특히 많은 젊은 여성팬들의 환호성이 장난 아니었다. 본인도 기뻤는지 이걸 동영상으로 찍어놓은 걸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기쁨의 코멘트를 적었다.

4. 건강악화


아담 램버트와 함께 꾸준한 월드 투어 활동을 해왔으나, 2016년 10월 21일 브라이언 메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건강 악화에 대한 글을 남긴다. 참고 2014년경에 암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2016년 다시 재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암이라는 단어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글 중에 'persistent illness which is destroying my energy and my will.'의 문장으로 보아 암이 재발하여 다시 암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은 2016년 Queen + 아담 램버트 아시아 투어까지는 자신이 어떻게든 컨디션 조절을 하여 무사히 마쳤으나, 계속되는 체력저하와 건강악화로 인해 여태까지 꾸준히 듀오로 활동했던 켈리 엘리스와의 2016년 4분기 일정을 모두 취소하게 된다. 브라이언은 앞으로의 모든 SNS 활동과 기자 접촉을 자제하고 조용히 건강 회복에 전념하겠다는 말을 남겼고, 팬들에게 깊은 사과의 글을 남겼다. 브라이언 메이의 트위터 활동은 2016년 10월 22일에 올린 글을 마지막으로 활동이 정지된 상태였으나, 2016년 11월 10일 기준으로 건강이 회복된 것인지 다시 트위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건강이 많이 회복된 상태라고 하며, 이후 다시 왕성한 SNS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5. 근황


[image]
[17]
  • 인스타그램에 팬에게 받은 여성의 가슴이 달린 맥주컵 사진을 올렸는데, 한국의 트페미들이 메이의 인스타그램에 몰려가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기사) 이에 외국팬들은 '겨우 컵 사진 가지고 정색하지 말라' 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항의소동이 일어난 뒤 다른 각도에서 찍은 컵 사진을 한 번 더 올렸다. 본인이 소동을 인지했는지는 모르나, 서양권 유명 가수들이 어그로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같은 행동을 한 번 더 해서 본인의 주관을 못박아 버린다'는 것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 2019년 7월 10일 랩소디 투어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퀸+아담 램버트 캐나다 밴쿠버에서의 공연 중 Bohemian Rhapsody를 연주할 때 철갑슈트를 입고 등장했다.[18] 2020년 퀸 내한 때도 Bohemian Rhapsody의 기타솔로 부분에서 이 슈트를 입고 등장했다.
  • 2020년 5월 초 경미한 심장마비 증세가 있었다고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밝혔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 2020년 5월 27일, Nature communications지에 참여저자로 투고된 논문이 출간되었다.[19]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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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이미지는 브라이언 메이와 비슷하다. 가브리엘 르벨(Gabriel Revel)의 '천문학자의 초상'이라는 작품. 마침 브라이언 메이의 또다른 직업이 천문학자다. 단, 천문학자가 르네 데카르트라고 이름이 잘못 되어 있다.
  • 딥 퍼플의 전 기타리스트이자 레인보우의 기타리스트인 리치 블랙모어를 좋아하는지 그와 관련된 다큐나 인터뷰에서는 그의 실력이나 음악적 행보에 대해 매우 부러워하고 극찬을 한다.[20] 그 영향인지 솔로 활동 때 리치 블랙모어의 레인보우의 대표곡 중 하나인 Since You've Been Gone를 자주 연주 한다.[21] 반대로 리치도 브라이언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말을 하였다.[22]
  • 또한 블랙 사바스의 기타리스트인 토니 아이오미와 절친이다. 나이대가 비슷하기도 하고, 록 에이드 아르메니아에서 토니가 단독 인터뷰를 하다가 한켠에 서있는 브라이언을 불러서 같이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으며, 토니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을 때, 첫 게시물로 올린 사진을 같이 찍기도 하였다.
  • 천체물리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해서, 2002년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근 30년 만에 완성한 논문으로 드디어 2007년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메이가 퀸 합류 시 다니고 있던 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이다)를 땄으며, 2008년에는 토니 블레어영국총리 부인 '셰리 블레어'의 뒤를 이어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의 총장으로 정식 취임했다.[23] 이후에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천문학 연구소 객원 연구원. Visitors 항목(아래쪽) 2016년 9월 4일 프레디의 탄생 70주년 하루 전에, 프레디가 사망한 1991년에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에서 발견된 ‘소행성 17473’의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라고 명명했으며 국제천문연맹(IAU)이 이를 승인하였다. 이 부분은 2021년 2월 7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다뤄졌다.
  • 1983년 밴 헤일런의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REO 스피드웨건의 드러머 앨런 그래처, 제프 벡과 함께 당시 베이스계를 주름 잡던 필 첸 등 거물 멤버를 모아 Star Fleet Project 앨범을 냈다. 또 1991년에 솔로앨범 Back to the light[24]를 발매하였고 수록곡 중 하나인 Driven By You를 싱글커트했다.
  • 2011년에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싱글인 "You And I"[25]에 피처링했다. 레이디 가가는 퀸의 대단한 팬이라 브라이언 메이가 콜라보레이션에 동의했을 때 울기까지 했다고...그런데 정작 자기 예명의 모티브가 된 "Radio Ga Ga"의 원곡자 로저 테일러는 참여하지 않았다. 팬들의 반응은 '전설적인 퀸의 기타리스트가 팝 피처링을 하다니!', '브라이언의 새 연주를 들을 수 있다니!' 정도로 나뉜다. 이 곡엔 브라이언 메이가 작곡한 명곡 "We Will Rock You"의 그 유명한 '쿵쿵짝' 리드밍을 편집하여 넣기도 했으며, 2011년 'MTV Video Music Awards'에서 직접 출연해 라이브로 연주하였다.[26]
  • 2011년 퀸 다큐멘터리 Days of our lives에서 밝힌 바로는 아버지가 자신이 밴드를 한다는 것에 굉장히 반대했다고 한다. 아들을 위해 레드 스페셜 기타도 손수 만들어 주셨지만 어디까지나 취미로만 하길 원했다고. 브라이언의 교육에 물심양면으로 투자한 데다 공부로 성공하길 희망해서인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락 밴드를 하겠다며 느닷없이 학업을 중단하는 바람에 인생을 던졌구나 생각했다고. 후에 퀸이 성공한 뒤에도 밴드 활동을 탐탁치 않아했지만 7집 News of the World 미국 투어 중 메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에 초청해 양친이 보러 왔는데,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던 도중 아버지가 그때서야 브라이언의 밴드 생활을 인정해줬다고 한다.
  •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 등장하여 'Brighton Rock'을 연주하고 곧바로 'We Will Rock You'를 연주했다. 연주 중간에 비치는 그의 표정 중 관중들의 떼창으로 감동에 젖은 듯한 표정이 드러나기도 했다.
  • 퀸 멤버 중 유일한 비흡연자다. 인터뷰 영상이나 곡을 만드는 과정의 영상을 보면 로저, 프레디, 존은 항상 한 번씩은 담배 피우는 걸 볼 수 있다.[27] 하지만 프레디는 퀸의 정규 13집 앨범 The Miracle 녹음부터 금연해[28] 70년대 미성을 되찾았다. 로저는 여전히 흡연자이고 존도 가끔 찍히는 사진에서도 흡연하는 사진이 있다.
  • 'Jazz' 수록곡이자 프레디 머큐리의 히트곡 중 하나인 Don't Stop Me Now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정확히 말하자면 착잡한 심정이라고 한다.) 방탕하고 막 사는 소위 양아치 같은 삶을 담고 있는 가사에, 이 곡을 쓴 프레디가 방황기 때 그런 식으로 살다가 밴드가 휘청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프레디가 그렇게 살다 결국 너무 빨리 죽어버렸다고 생각해서 프레디의 사후에는 더욱 더 꺼리게 되었다고 한다.[29]
  • 비틀즈의 팬으로 유명하다. "I don't think anybody comes close to The Beatles, including Oasis."[30][31]라며 비틀즈를 향한 빠심을 내비쳤으며 실제로 폴 매카트니 공연에 초청받아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 젊은 시절 지미 헨드릭스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32] 덕분에 평소 지미 헨드릭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는 훗날 그 사실을 알고 두고두고 브라이언을 부러워했다는 후문이 있다.
  • 통상적인 피크대신 6펜스 동전을 사용하는지라 줄을 자주 끊어 먹는다고 한다. 이는 라이브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1982년 Milton Keynes 공연 실황을 녹화한 퀸의 라이브 앨범인 'Queen on Fire – Live at the Bowl'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Dragon Attack 연주 중 기타 솔로 직전에 줄이 끊어진다. 빠르게 기타를 교체해오는 브라이언과, 그 사이 즉흥적인 존 디콘의 베이스 솔로가 감상 포인트. 2분 30초부터. 2분 34초경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33]
  • 위에서 말했듯이 대게 6펜스 동전으로 피킹하지만, 피킹할 때 생기는 특유의 긁히는 듯한 피킹음이 없어야 할 때에는 검지손가락으로 연주할 때도 있다. 이렇게 연주할 시 부드러운 음의 표현이 가능해진다.
  • 면도를 깔끔히 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한 때 수염을 길렀던 적이 있다. #
  • 환경 운동가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참가 당시에도 팔뚝에 여우가 그려져 있는 퀸을 상징하는 Q가 새겨진 코트를 입고 등장했고, 일설에 의하면 해당 사냥 행위와 자신의 의견이 상반되어 더 높은 훈장 수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도.
  • 사냥 관련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동물애호가이며,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다. 2019년 12월 27일에 2020년 1월은 비건으로 살아보겠다고 인스타그램에서 밝혔다. 만약에 마음에 들면 그 이후로도 쭉 비건으로 살겠다고.
  • 여담으로, 또 다른 명 기타리스트로 소문난 조 새트리아니가 1991년 브라이언이 주최한 스페인 기타 콘서트에 출연했을 때, 며칠 간의 리허설을 마친 뒤 조와 브라이언, 그리고 또 다른 게스트였던 스티브 바이와 함께 셋이 한곳에 있었다고 한다. 조와 스티브는 워낙 퀸의 엄청난 팬이었고, 둘 다 기타리스트였기에 브라이언에게 "당신의 기타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라는 부탁을 했고, 브라이언이 흔쾌히 허락하자 조는 '나도 브라이언 같은 소리를 낼 수 있겠지.'라며 잔뜩 기대에 부푼 채 연주를 했다고 한다. 허나 결국 조는 브라이언같은 소리를 내기는커녕 어떻게 해도 자신 같은 소리만 난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고, 기타를 스티브에게 넘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티브는 그래도 잘하니까 소리를 낼 수 있겠지'라며 기대했지만 스티브도 매한가지, 본인다운 소리만 났다고 한다. 결국 둘은 포기하고 기타를 브라이언에게 넘겨 연주를 부탁했고, 그의 연주를 들은 조는 훗날 그 감상을 천사가 하늘에서 걸어내려오는 듯한 소리였다. 라고 말했다.
  • 중산층 출신임에서 알 수 있듯, 믹 재거처럼 오랜 기간동안 보수주의자였다. 젊은 시절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선거 때 영국 보수당에 투표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 영국 총선 때 보수당의 여우 및 오소리 사냥 관련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고 그로 인해 보수당에 투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2017년 영국 총선과 2019년 총선에서는 사냥 행위에 대해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노동당의 대표 제러미 코빈을 지지하면서 보수라고 하기 어려워졌다.[34] 또 2015년 총선 때에는 데이비드 캐머런을 비판하고 녹색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영국 하원의원 선거 출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결국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만약 출마했다면 노동당이나 잉글랜드 웨일스 녹색당 소속으로 출마했을 가능성이 높다.

7. 그에 대한 말말말


'''나의 기타 영웅'''

데이브 그롤

'''그는 지배자입니다. 최고의 팝 지향적 기타리스트이죠.'''

제프 벡

'''그는 대단하고 매우 매력적인 기타리스트입니다'''

리치 블랙모어


[1]그레이터 런던 햄프턴. 마거릿 대처 시기 대처 내각과 반대되는 진보적인 정책을 폈던 노동당 지방 정부를 탄압하기 위해 보수적인 근교 지역을 그레이터 런던에 편입시킬때 함께 런던 지역에 편입되었다.[원문] "He's a class act from head to toe, and it shows in his playing. I can listen to any player and pantomime their sound, but I can't do Brian May. He's just walking on higher ground."[2] 영국의 명문 대학으로 특히 공과대학 쪽은 영국 최고의 명문이며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3] 천체물리학은 "'''Astrophysics'''", 천문학은 "'''Astronomy'''"이다. 실제로 브라이언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물리학자라고 불렀다. 다만 현대 천문학에서 이 두 용어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천문학에서 천체물리학이 나왔으며, 현대에 들어서 물리학 기반 없는 천문학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천체물리학과 천문학이 같다고 봐도 된다.[4] 어려서는 자신의 곱슬을 싫어했음과 더불어 두발 단속으로 인해 저 머리를 일일이 펴서 다녔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고등학생 시절 밴드 '1984' 소속 당시 사진.(맨 오른쪽이 브라이언)[5] 최근 인스타그램에 새로 맞춘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수트핏이 상당하다.[6] "핑거보드는 러스틴 플라스틱 코팅(러스틴 플라스틱 코팅은 대부분 악기보다는 식탁 같은 규모가 조금 큰 제품에 광택을 내는 데 쓰이는 듯하다.)으로 칠했고요. 트레몰로는 자전거 안장에 다는 주머니로 만들었는데, 끝부분의 놉은 뜨개질용 바늘로, 스프링은 낡은 오토바이의 밸브 스프링으로 만들었답니다." - Queen In Their Own Words 中 -[7] 바디에 쓰인 목재부터 자기집의 벽난로를 지탱하고 있던 100년 묵은 마호가니 나무다. 그 이외의 모든 부품들은 여타 기타에 쓰이는 정규 부품이 아닌 잡동사니로 만든 부품이라 소리를 흉내내기 힘들다. 만약 브라이언 메이가 정규 부품으로 제작을 했다면 어느 정도 흉내낼 수 있었을 것이다.[8] 레드 스페셜에 쓰일 픽업 부품도 처음에는 본인이 제작했지만, 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Burns사의 Tri-Sonic 픽업을 구매해 달았고, 현재의 그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9] 영국 파운드 화폐개혁 이후에 2.5펜스로 유통되다가 1980년부로 통용 정지되었다. 물론 따라해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6펜스를 구해서 피크로 쓰고 싶다면 호주의 5센트 동전을 대용으로 써도 된다. 6펜스 동전과 호주 5센트 동전의 스펙이 동일하기 때문이다.[10] 비슷한 경우로 ZZ TOP의 빌리 기븐스도 멕시코의 페소 동전을 피크로 쓴다.[11] 더욱 놀랍게도 이것을 라이브에서 '''그대로 재현한다'''.[12] 이 사진에는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도 있다.[13] 참고로 이는 친구이자 동료인 블랙 사바스(밴드)의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의 추천이었다고 한다.[14] 다만 브라이언은 스트랫을 써보니 엄청난 기타도 아니었거니와 본인이 즐겨쓰던 VOX AC30 앰프와의 소리 조합이 잘 맞지 않아서 백업용으로 비축해두다가 나중에는 갖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15] 참고로 현재 본인 소유의 스트라토캐스터가 있다. 연주하는 영상에 등장한 모습과 브라이언의 설명(서스테이너가 내장되어 있다고 한다.)에 따르면, 에드 오브라이언(Ed O'Brien,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시그니춰 모델인 것으로 추정된다.[16] 다만 녹음 당시에는 텔레캐스터의 초기 모델이었던 Esquire(에스콰이어)를 사용. 로저의 것이었다고.[17] 브라이언과 브라이언 본인 역을 맡은 배우 귈림 리[18] 이에 대해 댓글 중 하나는 "우와! 록티머스 프라임이잖아! :D(Hey, it's Rocktimus Prime! :D)"라고 재치있게 말했다.[19] 네이쳐의 자매지로, 과학에 관한 모든 분야를 다룬다.[20] 리치 블랙모어는 오랜 세월동안 메탈만 하나가 3번째 아내와 결혼하면서 바로크 풍의 포크 음악으로 전향했는데 이런 파격적인 음악적 행보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21] 지금까지 공식 보존된 자료로는 2번 연주되었는데, 우연일지는 몰라도 솔로 활동 때는 리치와 레인보우 시절을 함께 한 드러머 코지 파웰이, 2012년 Sunflower Jam에 출연하였을 때는 리치와 딥 퍼플 시절을 함께한 이언 페이스(Ian Paice)가 드럼으로 참여했다.[22] "브라이언은 이 계통에서 가장 성격 좋은 사람 중 하나(One of the nicest guy in the business)일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심지어는 농담도 던졌다.("그 친구 키가 좀 너무 크긴 합니다만, 그건 뭐 어쩔 수 없겠죠.") 참고로 두 사람은 모두 록 에이드 아르메니아의 수록곡 의 기타 연주를 담당하였다.[23] 영국의 대학총장은 명예직이며, 실권은 부총장이 행사한다.[24] 지미 페이지, 닐 머레이, 코지 파웰 같은 거물급 아티스트들이 참여했고 존 디콘도 우정 참여하였다. 국내에서도 EMI/계몽사를 통해서 동시 발매되었다.[25] 퀸의 A Day at the Races 앨범에도 존 디콘 작곡의 동명의 곡이 존재한다.[26] 푸 파이터즈의 데이브 그롤이나, 팝스타 케이티 페리 등이 역시 퀸빠임을 드러내며 열광했다고 한다.[27] 다만 프레디의 경우 1979년까진 비흡연자였다.[28] 당시 에이즈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29] 메이와 디콘은 방탕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성장 배경도 그렇거니와 술·담배를 꺼리며 욕설도 잘 하지 않는, 보통 생각하는 락 밴드 멤버의 모습과 다른 건전한 모습이다.[30] 해석하자면 "그 누구도 비틀즈에 근접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오아시스를 포함해서."[31] 여기서 굳이 오아시스를 언급한 이유는, 당연히 오아시스의 위상이 비틀즈에 근접한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당시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를 포함해서 언론에서 오아시스가 제 2의 비틀즈라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다.[32] 지미 헨드릭스가 브라이언의 대학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 공연의 기획에 브라이언이 참여했다. 참고로 브라이언은 이때 지미를 굉장히 쿨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대기실에서 나오자마자 특유의 쿨한 말투로 "무대가 어디지, 친구?(Where's the stage, man?)"라고 물어보았고, 이후 공연을 시작했다고. 그리고 연주를 지켜보던 브라이언은 '분명 저건 기타고, 저건 앰프가 분명해. 그런데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또 자신의 기타 실력에 만족하던 상태였지만 그의 Foxy Lady 라이브를 보며 "정말 압도 되었었고, 무섭기까지 했다. (중략) 난 정말 기타를 내려놓고 싶었다. 출처[33] 참고로 밑의 영상에서 브라이언이 바꿔온 기타가 바로 위에서 말했던 John Birch 레플리카이다.[34] 보통 환경운동을 지지하는 중도파는 노동당보다는 자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사회주의자인 코빈을 지지했다는 것은 브라이언 메이의 정치관이 늙어서 진보적으로 변했다고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