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메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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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mond Edwin "Ray" Mabus, Jr.
1. 개요
레이먼드 에드윈 레이 메이버스 주니어(Raymond Edwin "Ray" Mabus, Jr.) (1948.10.11일 생)
미합중국의 정치인, 민주당 당원, 2009~2017년까지 제75대 해군장관을 지냈다. 1984~1988년까지 미 미시시피 주 감사원장 역임, 1988~1992년까지 제60대 미시시피 주지사 역임, 1994~1996년까지 주사우디 미국대사를 역임했다.
2. 생애
1948년 10월 11일 미시시피 스타크빌(Starkville)에서 출생, 미시시피 애커먼에서 동네 철물점 주인의 외아들로 자랐다. 동네 공립 고등학교를 상위 5% 우등생으로 졸업한 뒤 미시시피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을 상위 10% 우등생으로 졸업하며 법무박사(JD) 학위를 받았다. 1970년에 미합중국 해군에 입대하여 함정병과 장교로 미 해군 순양함 USS 리틀 록 (CLG-4)함에서 근무한 후 1972년 해군 중위로 전역했다. 전역 후에는 미 제5연방항소법원에서 인턴쉽으로 법원 행정사무직 근무를 하기도 했다.
메이버스는 미 워싱턴DC에 있는 미합중국 국회 농업위원회 법률자문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그의 고향인 미시시피에서 미국 민주당의 윌리엄 윈터가 주지사로 당선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주지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1983년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미시시피 주 감사원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84년부터 1988년까지 감사원장을 역임하며, 공금횡령과 허위지출을 수사하는 미 연방수사국(FBI) 작전에 공조 수사를 하기도 했다. FBI 작전 결과 25개 카운티에서 57명의 관리자들이 적발되었으며 그 중 2명은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87년 그가 39세가 되었을 때 미시시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53%의 득표율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선거가 가난한 백인과 여피의 선거구도였음에도 백인 유권자의 30%만 그를 지지하였고, 전체 유권자의 30%에 불과한 흑인층이 압도적으로 그를 지지하여 당선될 수 있었다. 주지사 재직 중 그는 학교 교사들을 위해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봉급인상률로 처우를 개선하는 등 교육문제에 집중하여, 미국 경제지 포춘지가 선정한 10명의 교육 주지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88~1992년까지 그가 주지사로 재직하는 동안 미시시피 주는 새로운 일자리가 꾸준히 증가했고, 투자와 관광수지, 수출이 증가했다. 그의 성공적인 행정에 힘입어 그가 미시시피 주에서는 100년만에 첫 재임 주지사가 될거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1991년 선거에서 48% 득표에 그치는 바람에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하였다.
1994년에는 빌 클린턴 미합중국 대통령이 그를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로 지명했다.[1] 재임기간 중인 1994년 예멘 내전으로 인한 사우디 국경위기와 1994년 이라크 위기사태를 맞았다. 1995년에는 6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사관에 차량폭탄 테레공격을 수습하기도 했으며, 아동유괴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와 미국 기업(보잉 및 AT&T) 사이에서 160억달러 이상의 계약 체결을 돕기도 했다. 미시시피에 대한 애착이 있었는지 대사 관저와 집무실 탁자를 미시시피 전화번호부로 장식하거나 벽면을 미국 국기와 미시시피 주기로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 한동안은 정계에서 일하지 않고, 대신 기업 쪽에서 일했다. 2006년~2007.4월까지 그는 Foamex International사의 회장 겸 CEO로 재직하며 회사를 파산으로부터 구해냈으나 CEO 취임 9개월만에 결국은 파산하고 말았다. 2007.8월 그는 세계 최대의 산업용 건전지 유통 제조업체인 에너시스사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2009.3.27일 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은 그를 해군부 장관으로 지명했고, 2009.5.19일 국회 인준절차를 거쳐, 2009.6.18일 워싱턴 해군 조선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부 장관에게 취임선서를 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이라고 한다.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1975년에 월드시리즈를 보고 팬이 됐다고. 이 월드시리즈는 굿 윌 헌팅에도 나오는 등 미국에서 굉장히 명경기이다.
[1] 여담으로 아랍권과 관련된 공부나 경험은 없지만 미국에서 대사는 대통령이 자기 측근들에게 여러 정치적 경험을 쌓게 해주는 커리어패스나 보은인사로 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