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퍼스트

 


'''Ladies First'''
1. 개요
2. 유래설


1. 개요


'''"숙녀 먼저"'''

남성이 여성을 배려할 때 주로 사용해왔던 문구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서양의 신사도가 레이디 퍼스트 문화를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레이디 퍼스트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
2020년에 와서는 양성평등 의식의 성장으로 현실, 미디어 에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며 한쪽의 일방적인 배려보다는 쌍방간의 배려가 중요시 되어지고 있다.

2. 유래설


  • 중세시대의 기사도에서 나온 여성에 대한 배려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이다. 중세시대의 기사들을 보면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겁탈한 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 깡패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11세기 즈음부터 교회가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자 기사 계급을 교회에 봉사하는 쪽으로 이끌어 나갔다. 이때 등장한게 기사도였으며, 기사도의 주요 덕목들 중에는 약자와 부녀자 보호라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이 부녀자 보호 조항이 레이디 퍼스트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당시의 레이디는 단순히 여성이 아니라 귀족 여성이라는 의미였다. 실질적으로 모든 여성이 아닌, 귀족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었던 셈.
  • 중세시대 기사들이 문 뒤의 암살자를 확인하기 위해 여성을 먼저 내보냈다.
→ 문 밖에 암살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신분이 떨어지는 하녀들을 먼저 내보냈다는 설인데, 어찌됐든 여러 가설들 중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이다. 애초에 레이디는 귀족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하녀를 레이디로 부른다는 것은 한국으로 치면 무수리나 여성 노비를 아씨라고 부르는 급의 낭설이다. 이 설과 아래 설은 그 인권의식 험한 중세~전근대에조차 존재할 정도였던 몇 안되는 진짜배기 배려마저도 어떻게든 까내리고 싶어하는 세력들이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 거름망으로 쓰기 좋다.
  • 전쟁 때(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국내에선 6.25 때 그랬다고 퍼지기도 한다.[1]) 지뢰를 확인하기 위해서, 혹은 총알받이로 여자를 먼저 보내면서 생긴 말이다?
→일종의 도시전설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은커녕, 참호전 환경에서 가장 지뢰 피해가 심했던 제1차 세계 대전에서조차 이런 기록은 어디서도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소련의 제한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아예 여성이 전선에 서지도 않았다. 대부분은 본토의 공장에서 남성들을 대신해 노동지원을 했고[2], 군대 내에서 여성의 역할도 레이더 탐지, 통신 의무 등 비전투병과에 집중되어 있었다. 유일한 예외인 소련도 여성의 전투병과 지원을 허가했을 뿐, 총알받이 같은 특수한 역할을 맡기진 않았다. 상세는 여군 문서 역사 부문 참조 바람. 어느 나라에서 그랬는지조차 알려져있지 않은 상황인데 유독 이 설이 한국에만 많이 퍼져있다. 나치 독일일본 제국이 민간인을 동원하기는 하였으나 [3] 이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진 일이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면 그렇게 죽은 여성들의, 유족들의 항의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거나 그러한 일을 벌인 곳에서 사과를 했어야 상식적으로 아귀가 맞는다. 게다가 지뢰밭이 깔려있다면 굳이 뚫고 갈 이유도 없고 지뢰밭이 없는 다른 루트로 피해서 침투를 하는 것이 더더욱 올바른 전술일 것이다. 굳이 밟혀 죽어서 피해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 설령 지뢰 매설 지역을 돌파한다 하더라도 지뢰제거장비는 장식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다!
출처랍시고 나온 글이 하나뿐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배경과 지뢰, 총알받이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오로지 이 글에 나온 shot이라는 단어 하나에 이상한 살을 붙여 한국에서 믿고 있는 상황인데, 원글에서 작성자는 가설만 네개를 제시했고 그 중에서도 믿기 힘든 설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그 시대의 여성으로서의 삶은 위 문단에서 보듯이 끔찍할 정도로 엄격하고 수동적이었다.[4] 하지만 그 시대가 끔찍했다면서 이런 식으로 날조된 이미지를 덧칠하기만 하는 행동이 오히려 그 시대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활약했던 사람들[5]의 존재를 지우는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1] 주로 국내의 온라인에서 '지뢰이디 퍼스트' 등으로 곡해하며 유포를 일삼는데, 한국 남성들이 전쟁 당시 지뢰밭을 통과할 때 여자들을 먼저 보내서 지뢰 유무를 확인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는 어느 미군이 기록한 내용이라나. 정확한 출처가 없어 신빙성이 없는 기록이며, 간혹 이 기록이 인용된 국내의 모 책자가 출처의 전부다. 국내 유튜브에는 한편으로 중세 무렵에 기사들이 암살자 확인을 위해 하녀를 먼저 던졌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떠돌고 있다.[2] 남성들이 징집되어 병사로 전선에 나간동안 여성들이 이 자리를 메운 덕분에 여성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됐다.[3] 나치 독일은 폴란드 침공에서 폴란드인을 인간방패로 사용하였고 일제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1억 총옥쇄에 따라 비전투인원을 남녀불문하고 강제 동원하였다.[4]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과거에도 여성의 인권은 그렇게 낮지 않았다. 위 문단에선 '남성은 죽이고 여성은 겁탈'했다고 서술되어 있듯이 남자는 그냥 죽였다. 상류층을 제외하면 평민들은 남녀모두 인권자체가 없던 시절이었고, 한국의 경우에는 조선 초까지는 여성의 인권은 남성과 크게 차이가 없었고 중기부터 유교의 영향으로 남녀의 인권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조선 중후기의 영향으로 '과거에는 남성과 여성의 인권차이가 많이 났다'라는 인식이 생긴것이다.[5] 2차대전 중 소련은 수많은 여성 저격수와 에이스 파일럿은 물론, T-34로 티거 전차 3대를 격파하고 적성훈장을 수훈받은 전차장 알렉산드라 사무센코나와 309명 이상을 저격하고 소비에트연방영웅훈장을 수훈받은 류드밀라 파블리첸코 같이 지금도 러시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웅들을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