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7왕
1. 개요
로마 왕정 시대 로마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7명의 왕.
로마 7왕의 이야기는 너무 오래된 데다가 거의 전설 내지 설화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며, 역사학자들은 이들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예로 로마 7왕 전설에 따르면 5번째 왕인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왕위 등극은 어디까지나 에트루리아 출신의 한 '개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도시국가'인 로마의 왕으로 선출된 것이지만, 역사학자들은 실제 이 시기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강력한 영향력 내지는 사실상 지배하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걸 로마인들이 나중에 듣기 좋게 윤색한 것이 이러한 로마 7왕 전설이라는 것이다.
2. 로마 7왕
2.1. 로물루스
- 로물루스 문서 참조.
2.2. 누마 폼필리우스
- 누마 폼필리우스 문서 참조.
2.3.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로물루스와 마찬가지로 라틴계. 전사였다고 하며 라틴계 도시인 알바롱가[1] 를 공격하여 정복하였다.
2.4. 안쿠스 마르키우스
누마의 외손자이며 투표를 통해 선출된 최초의 왕.
테베레 강에 처음으로 다리를 놓았고, 테베레 강 어귀에 있는 항구도시 오스티아를 정복하여 로마가 지중해로 진출하는 터를 놓았다.
종교의 올바른 설립에 큰 중요성을 두었다고 한다.
2.5.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상인 출신으로 에트루리아계. 안쿠스 시대에 로마에 도착했으며 자신의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선거운동을 하여 왕이 되었다.
당시 목축업과 농업이 주축이 되던 로마 사회가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왕 때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하여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시기를 '''상업왕 시기'''라고도 한다. 그 후 선왕의 아들들에게 암살되었다.
2.6.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본래 노예 출신이지만 명민한 모습을 보여서 타르퀴니우스는 그를 해방노예로 만들어주고 사위로 삼기까지 했다.
타르퀴니우스가 암살된 뒤에 왕위에 올랐다. 도시의 외적 방어를 위해 성벽을 건설했는데 그 성벽을 '''세르비우스 성벽'''이라고 했다. 후에 한니발도 공략을 포기하고 돌아갈 정도로 견고했다고 전해지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도시 계획 중 파괴했다고 한다.
2.7.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일명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아들이자 세르비우스의 사위였다. 장인인 세르비우스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세르비우스의 딸이자 수페르부스의 아내는 아직 숨이 붙어있던 아버지를 마차로 짓밟아 확인사살했다고...
각종 기념물을 세우고 측근들이 전횡을 일삼아 로마인들의 불만을 많이 샀다가 섹스투스라 불리는 아들이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를 겁탈하였고 그녀가 자살하자 이를 방아쇠로 결국 반란이 일어났으며, 로마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폐위 후, 에트루리아계 도시의 지원을 받아 여러 번 로마를 침공하였으나 결국 실패한 후 잠적했다. 콜라티누스는 이후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함께 로마 공화국의 첫 집정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