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 발델리
1. 개요
미국의 前 야구선수, 現 야구 감독. 현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미네소타 트윈스의 감독을 역임중이다.
선수로써는 부상과 질병으로 인하여 그 뛰어난 재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일찍 은퇴했지만, 감독으로써 성공적인 초반 커리어를 이어나가며 향후 MLB를 이끌 차세대 젊은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2. 경력
2.1. 선수 경력
로드 아일랜드 출신으로 비숍 헨드리컨 고교 졸업반 시즌에 복사근 염좌를 안고도 5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당시 발델리는 야구 뿐만 아니라 배구, 농구 등 다른 종목에도 재능을 보였고, 성적 역시 우수해 4.25의 학점을 바탕으로 '''프린스턴, 예일, 웨이크 포레스트''' 등 다수의 명문대 진학을 고려하기도 했다. 이런 발델리를 탬파베이 데블레이스가 2000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번으로 지명했고, 고민 끝에 발델리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의 제의를 거절하고 2.25M의 사이닝 보너스와 함께 데블레이스에 입단했다.
발델리는 프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초반에는 다소 부침을 겪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에 성공했다. 입단 첫 해 팀 내 유망주 9위에 랭크된 발델리는 이듬해 5위로 뛰어올랐고, 그 다음 해인 2002년에는 시즌 중간에 하이 싱글A를 정복한 뒤 더블A를 거쳐 '''트리플A까지 연달아 승격'''하는 기염을 토하며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로 뽑히는 등, 최고의 외야 유망주로 떠올랐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탬파베이는 돈 없는 스몰 마켓 구단이었고, 팀은 하위권을 전전했다. 여기에 2002년 올스타 중견수였던 랜디 윈을 시즌 종료 후 유망주 내야수 안토니오 페레스를 받고 트레이드하며 중견수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루 피넬라 신임 감독은 차기 중견수로 만 21세의 발델리를 낙점했다.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시작해 풀타임 중견수로 시즌을 소화한 발델리는 154경기 타출장 .289/.326/.416 11홈런 78타점 27도루(10실패) bWAR 2.9 fWAR 1.8이라는 풀타임 1년차 치고는 매우 훌륭한 성적을 냈고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다.[1] 이어진 2004년, 발델리보다 한 시즌 먼저 메이저에 데뷔한 좌익수 칼 크로포드가 포텐을 터뜨리며 다소 묻힌 감은 있지만 136경기 .280/.326/436 16홈런 74타점 17도루(4실패) bWAR 3.0 fWAR 2.2를 기록해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나 수비에서 확실한 발전을 보여주며 외야 보살 리그 4위에 랭크되기도 하는 등, 크로포드 바로 뒤에서 2번 타자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발델리의 시련이 시작되고 말았다. 2004년 시즌 중간에도 잔부상으로 자리를 몇 번 비운 발델리는, 2004년 11월 동생과 야구를 하다가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는 다소 황당한 사고로 수술대에 오르며 2005시즌 개막 로스터 합류가 불발되고 말았다. 발델리는 꾸준한 재활을 통해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복귀하고자 했지만, 이번에는 운동하던 도중에 팔꿈치를 다치며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었고 결국 2005년을 통째로 수술과 재활에 써버리고 말았다. 당시 탬파베이는 칼 크로포드를 필두로 호르헤 칸투, 자니 곰스 등 젊은 타자들의 약진이 돋보였지만, 발델리의 이탈로 여러모로 부족한 데이먼 홀린스나 발만 빠른 조이 개스라이트가 중견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와버렸고, 여기에 부동의 4번타자 오브리 허프마저 부진에 빠지며 외야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렸다. 물론 스캇 카즈미어 빼고는 믿을 놈 하나 없던 선발진 때문에 한계는 있었지만, 그래도 발델리가 있었다면 허무하게 최하위로 밀리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었다.
재활에 오래 걸리는 토미 존 수술인 만큼 2006시즌도 개막 로스터 합류는 불발되었고, 개막 후 약 두 달이 지나 2006년 6월 7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과의 홈 경기에서 7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며 드디어 복귀를 알렸다. 이어진 캔자스시티 로열스 원정에서 복귀 첫 안타를 신고한 발델리는 남은 시즌을 거의 대부분 건강하게 잘 소화하며 시즌을 끝냈다. 성적은 92경기 타출장 .302/.339/.533 16홈런 57타점 10도루(1실패) bWAR 3.2 fWAR 3.4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심지어는 십자인대 재건술과 토미 존 수술을 모두 받고 왔음에도 주루 능력은 여전했고 수비에서도 여전한 강견에 센스까지 발전하며 부상 이전보다 더욱 발전한 수비력을 보여줬다. UZR/150과 수비 종합 기여도가 500이닝 이상 소화한 모든 메이저리그 중견수들 중 13위에 해당했을 정도. 야만없이지만 풀 시즌을 소화했다면 페이스 감소 등을 고려했을 대 4 후반~5 초반의 bWAR을 기록했을 법한 성적인데,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됐다면 AL MVP였던 저스틴 모노보다 높고 데릭 지터랑 비슷한 수준이니 발델리의 활약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는 부분. 멀리 갈 것도 없고 고작 92경기 뛰고 fWAR이 같은 해 메이저리그 중견수들 가운데 12위였다. 오랜 부상 공백을 성공적으로 이겨내는 모습에 많은 팬들이 다음 시즌을 기대했으나...
이번에는 햄스트링이 발델리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발델리는 스프링 트레이닝 도중에 처음 햄스트링을 다쳤고, 이후 회복하여 개막 로스터에는 합류했으나 그 후유증 탓인지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다가 5월 17일 햄스트링 재발로 DL에 올랐으며, 재활 후 복귀를 시도했으나 또 다시 햄스트링이 말썽을 일으키며 결국 시즌아웃 되었다. 최종 성적은 35경기 .204/.268/.358 5홈런 12타점. 탬파베이 입장에서는 B.J. 업튼이 발델리의 공백을 완벽히 메운게 다행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발델리의 진짜 시련은 이제부터였다.'''
근육 부상이 계속해서 재발하고 상태가 악화되자 발델리는 정기검진을 통해 보다 자세한 원인을 알고자 했고, 그 결과 희귀병이자 불치병으로 알려진 '''미토콘드리아 근병증(mitochondrial abnormalities)'''을 진단받은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은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어 발생하는 질병으로, 근육 약화와 운동 불내성 등 초기 증상을 시작으로 케이스에 따라 예후가 천차만별이긴 하나 상태가 심각해질 경우 구토와 발작, 신경 쇠약, 심하게는 사망까지도 이를 수 있다. 특히나 운동선수인 발델리에게 근육 약화라는 증세는 치명타를 넘어 거의 사망 선고나 다름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발델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재활과 운동을 이어가며 2008년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모습을 드러냈으나, 결국 필드에 복귀하지 못하고 DL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식이요법을 통한 영양 치료와 각고의 치료를 거치며 결국 6월 중순부터 마이너리그 리햅 경기를 소화하기 시작하며 복귀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8월 10일 드디어 액티브 로스터에 등록, 시애틀 매리너스 원정에서 4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메이저리그 복귀전을 치렀다. 이후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꾸준히 포함되며 커리어 첫 ALDS/ALCS/WS 출장을 기록했다. 특히나 ALCS에서는 3차전 선발 출전해 8회 초 스코어를 5:1에서 8:1로 벌리는 쓰리런을 작렬하고, 세트스코어 3:3으로 맞선 7차전에서는 5회 말 1:2로 앞서나가는 역전 적시타를 만들어내고 이게 그대로 결승타가 되며 팀 승리와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진출에도 기여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타격에서는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2차전에서 우익수로 출전해 우익수 플라이를 잡아 1루에 미처 귀루하지 못한 제이슨 워스를 잡아내는 강견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발델리의 이러한 활약으로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에 대한 관심도가 증대되고 관련 재단의 활동이 더 활발해지는 효과도 낳았다.
최종 성적은 28경기 .263/.344/.475 4홈런 13타점. 복귀한 것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의미를 지는데 타격도 잘 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임팩트를 보여줬다. 다만 아무래도 병의 여파로 운동 능력이 크게 떨어지며 단 하나의 도루도 하지 못했고, 수비도 잘 보지 못해 거의 지명타자나 대타로만 나섰으며 가끔 백업 코너 외야수로만 들어가고 원래 포지션이던 중견수로는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가난한 스몰 마켓인 탬파베이는 이런 이유로 풀 타임으로 뛰는데 어려움을 겪는 발델리를 눌러 앉힐 여유가 없는 팀이었다. 이미 2009년부터 시작되는 옵션을 포기한 상황에서 발델리의 연봉 2.25M은 탬파베이에게는 분명 부담스러운 금액이었고, 탬파베이는 결국 발델리를 논텐더 방출했다.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을 맺어 커리어를 이어갔다. 이 즈음 다시 한 번 정밀 진단을 받았는데, '미토콘드리아 이온통로병'이라는 세부 진단을 다시 받게 되었다. 근병증 중에서도 세포의 문제로 인해 신경 통로에 문제가 발발하는 유형인데, 발델리는 그 사례 중에서도 상태가 양호해 식이요법과 치료만 잘 이어가면 생명 등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라고. 이후 발델리의 진단은 라임병의 하위 분류 중 마비/근육 이상 등의 카테고리로 재분류 되게 된다.
아무튼 보다 긍정적인 소식과 함께 보스턴에 새 둥지를 튼 발델리는 가족들이 전부 보스턴의 팬이라며 보스턴에서의 생활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로 우익수로 나왔으나 여전히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리고 시즌 막판에는 어깨를 다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도 제외되는 등 고생하다가 결국 한 시즌만에 보스턴을 나왔다. 시즌 성적은 62경기 .253/.311/.433 7홈런 23타점.
그리고 2010년 스프링 트레이닝에 발델리는 탬파베이 레이스로 돌아왔다. 최초에는 야구를 할 수 없는 몸상태라는 판단 하에 마이너 리그에서 외야 수비 및 주루 어시스턴트 코치 역할을 맡았으나 발델리 본인은 몸 상태가 좋아지면 선수로 뛰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7월 19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선수로 복귀했다. 싱글A에서 실전감각을 찾은 뒤 빠르게 승격을 이어간 발델리는 9월 1일 확장 로스터와 함께 메이저리그에 돌아왔고, 이후 대타 요원 겸 백업 외야수로 활동했다. 이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포함되었지만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ALDS 1차전, 세 타석을 소화한 후 부상으로 인해 댄 존슨으로 교체되었고, 결국 이로 인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중도 하차했다. 그리고 이는 발델리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로스터에서 낙마한 후 발델리는 은퇴 결심을 굳혔고, 앤드류 프리드먼 단장의 제의로 고민의 시간을 가진 뒤 2011년 1월 26일, 만 29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렇게 탬파베이가 기대하고 팬들이 기대했던 유망주는, 부상과 질병으로 인한 시련 끝에 결국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게 되었다.
2.2. 지도자 경력
은퇴 후 발델리는 구단 특별 보좌 역으로 구단에 남았고, 이후 마이너리그 인스트럭터로 전임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 케빈 캐시 신임 감독의 부임과 함께 탬파베이 1루 주루 코치로 선임되면서 코치로서 메이저리그에 돌아오게 되었다. 2017시즌부터는 필드 코디네이터로 선임되어 선수들의 수비 코칭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수비 전략 구성과 상대 타자 전력 분석 등의 업무를 맡았다.
2018시즌 종료 후 여러 구단의 감독 면접에 발델리가 포함되어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10월 25일 미네소타 트윈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최초의 1980년대생 MLB 감독이자, 선임 이후 현재까지 MLB 최연소 감독이기도 하다. 당장에 같은 팀 선수인 넬슨 크루즈보다도 한 살 어릴 정도.
2018년 78승으로 부침을 겪던 미네소타는 2019년 화끈한 장타력을 바탕으로 101승을 거두고 AL 중부지구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30홈런 타자 5명에 팀 홈런 307개라는 신기록을 써가면서. 단축시즌으로 치러진 2020시즌에도 36승 24패로 AL 중부 1등을 기록했다. 다만 두 시즌 모두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하며 광탈한 점은 불안 요소인데, 사실 발델리 이전부터 미네소타는 유난히 포스트시즌에 부진하며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생겨버린 점도 감안해야 할 듯. 포스트시즌 18연패를 기록중인 현재 미네소타의 마지막 포스트시즌 승리가 '''요한 산타나가 사이영 타먹던 2004년'''(...)이다. 적어도 정규 시즌 팀 운용은 현재까진 합격점을 받고 있으니, 다음 시즌에는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