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테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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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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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뉴욕 양키스의 주전 1루수였으며 2016년 시즌 중 은퇴를 선언한 前메이저리거. 별명은 텍스, 혹은 T-REX. 미국에서는 주로 텍스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티렉이라고들 많이 부른다. 메이저리그에서 400홈런을 넘긴 스위치 타자 5명 중 한 명이다.[2] 조부모가 가이아나에서 건너온 이주민이라, 성은 포르투갈 쪽이다. 물론 본인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이지만.
통산성적은 14시즌 동안 타율 0.268, 출루율 0.360, 장타율 0.509, 순장타율 0.241, BB/K 0.64개, 1862안타, 409홈런, wRC+ 127,1298타점을 기록했다.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메릴랜드 출신이라 볼티모어 근교에서 오리올스의 팬으로 자랐다. 테세이라는 볼티모어의 레전드이자 500홈런-3000안타에 빛나는 명전멤버 에디 머레이를 따라 스위치히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근데 정작 가장 좋아한 선수는 돈 매팅리였다는 듯.
고등학교 재학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지명을 받았는데, 보스턴은 1라운드에 지명할 것을 약속했고, 타팀도 이를 알고 있어 테셰이라를 지명하지 않는 것에 어느 정도 합의를 봤다고 한다. 하지만 입도선매(...) 되었음을 믿은 보스턴 프런트는 1라운드에서 테셰이라를 뽑지 않았고, 9라운드로 뽑아 1라운더급 계약금을 제시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화가 난 테세이라는 조지아 공대에 진학한다. 2000년 대학 리그를 완전히 초토화시키면서 대학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딕 하우저 트로피를 받았고 일찌감치 대학 최고의 타자로 명성을 떨쳤다.[3] 그리고 그의 에이전트는 '''스캇 보라스'''.[4] 2001년 드래프트는 투타 최대어로 각각 마크 프라이어와 마크 테셰이라가 손꼽혔다 . 테세이라는 전체 1번도 유력시되었지만[5] , 보라스를 두려워한 전체 1번의 미네소타 트윈스가 테세이라와 대졸 최대어 투수인 마크 프라이어를 포기하면서, 순번이 밀렸고 결국 5번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의 지명을 받았다.[6] 그리고 역대 신인 최대 메이저리그 계약인 4년간 950만 달러에 입단했다.
2.2. 텍사스 레인저스
명성 그대로 텍사스 산하 마이너를 평정하면서 2003년에 처음 데뷔했다. 원 포지션은 3루수였지만, 이 시기 텍사스에는 뛰어난 3루 유망주인 행크 블레이락이 버티던 시기라 1루수로 옮겨갔고, 그대로 1루 자리를 굳혔다. 테세이라의 무혈입성에는 전설적인 슬러거인 라파엘 팔메이로[7] 의 볼티모어 이적이 있었다. 그런 팔메이로의 이적에 텍사스의 1루는 무주공산이었고 그자리를 테세이라가 훌륭하게 꿰찼던 것이다.
데뷔 첫 해 26홈런 84타점을 기록하면서 실력을 보여준 후, 2011년까지 매년 30홈런 100타점을 꾸준히 기록하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스위치히터로 성장했다. 2005년에는 미키 맨틀의 단일시즌 스위치타자 최다 타점 기록인 130타점을 훌쩍 뛰어넘는 144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8] 당시만 해도 이대로 가면 스위치히터의 넘버 2인 치퍼 존스도 넘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평가도 있었다.
2.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텍사스에서 활약하다가 2007년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때의 트레이드는 레인저스 입장에서는 유례없이 대박을 친 트레이드가 되었다. 엘비스 앤드루스와 네프탈리 펠리즈, 맷 해리슨, 재로드 살탈라마키아를 데려왔으니... [9]
이 때부터 유독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인 시즌 후반기에 폭발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브레이브스에서 .317-.404-.615 를 기록하며 맹활약했지만 아쉽게도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FA 이전 마지막 해에 다시 계약을 맺고 잔류했다.
2.4. LA 에인절스
2008년, 트레이드 된지 1년만에 다시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LA 에인절스로 시즌 도중에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여기서도 .358-.449-.632 의 비율에 13홈런 43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하며 시즌 후반기는 푸홀스가 부럽지 않았다.
2.5. 뉴욕 양키스
그리고 2008시즌을 마치고 FA로 풀렸고, 30홈런 100타점은 기본에 수비력이 좋은 1루수를 놓치고 싶은 구단은 없었다. 이에 달려든 구단이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에인절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워싱턴 내셔널스. 가장 많은 돈을 제시한 것은 내셔널스[10] , 고향과 제일 가까운 곳은 볼티모어지만, 결국 우승 반지를 위해 뉴욕 양키스 행을 선택했다.[11] 그리고 2009년 오자마자 39홈런 122타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선수 자신은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르고, 팀은 마쓰이 히데키의 대활약에 힘입어 9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여담으로, 히 드랍 더 볼 때 끝내기 득점을 기록한 선수[12] 이기도 하다.
그런데 2010년부터는 매번 좌타석에서 당겨치기만 주구장창 하는 바람에 좌우 스탯이 완전히 불균형[13] 이 되었고, 좌타석에서는 라이언 하워드 같은 수비 시프트가 출현했다. 양키스 팬들은 그 때문에 분통이 터져서 먹튀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롸레기, 먹튀 얘기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운 버레기와 묶어 티레기로 부르는 중. 때로는 '''수비형 1루수'''라고까지(...) 그래도 장타율이 5할에 근접하고 선구안도 좋은지라 OPS 상으로는 8할대를 유지했으며 2004년 이후 이어온 기록인 30홈런 100타점을 2011년에도 달성했다. 시즌 최종 39홈런 111타점인건 최강의 강타자로 불릴 만 한데, 비율스탯이 .248 .341 .494(...) MVP를 노리는 커티스 그랜더슨과 마찬가지로 타율이 너무 낮다는 점에서 양키스 공격에 있어 지장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클러치 능력은 있으니...[14]
2.5.1. 2012년
2012년에도 전년도와 다를바 없이 A-Rod와 함께 '''덤앤더머'''를 맡았으며 수비형 1루수로 분전했다(...)
그래도 7월 들어 3할 이상의 맹타를 휘두르며 많은 장타를 쏟아내다보니 7월 전까지 .772에 그치던 OPS를 7월 말이 되어서 .845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후반기 A-Rod가 힛 바이 피치에 의한 부상으로 장기 결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테셰이라의 30-100을 향한 본능이 양키스에겐 절실했고 7월 달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30-100은 거뜬할 듯 보였다.
그러나 8월 말, 경기 중 예기치 않게 종아리 부상을 당하며 시즌 막판을 말아먹고 말았다. 팀이 상당히 급했던 탓에 10일만에 9월 8일 볼티모어 원정에서 복귀했지만 경기 내내 베이스러닝에는 불편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지게 되면 다시 지구 공동 선두가 되는 상황에서 양키스는 3-5로 뒤지던 9회초에 4-5를 만들며 찬스를 이어 나갔다. 1사 1, 3루 상황에서 등장한 티렉은 2루수 앞 땅볼을 쳤고 병살을 막고자 열심히 달렸고 슬라이딩까지 시도하여 명백히 세이프 판정을 받아 5-5 동점에 2사 1루가 되는가 했으나 1루심이었던 제리 밀스의 퇴근본능 판정으로 병살타 아웃이 되며 경기가 끝나고 본인도 슬라이딩 과정에서 부상이 도졌다.[15] '''망했어요.'''
결국 이 부상 이후 마지막 보스턴과의 홈시리즈 3연전이 돼서야 복귀. 복귀전에서 홈런을 쳤으나 두번째 경기에서 팀이 16안타를 치는 동안 혼자 6타수 무안타에 잔루를 9개를 남기면서 경기를 말아먹을뻔했다. 다행히 라울 이바녜즈가 9회말에 동점 투런 홈런을 쳐주고 12회말에 워크오프힛을 쳐준 덕에 살았다. 단 이 날 티렉을 4번타자로 출장시킨 조 지라디 감독이 많은 비난을 들어야 했다. 어찌되었든 연속시즌 30-100 기록을 8시즌에서 마감하게 되었다. 24홈런 84타점과 .251 .332 .475 비율스탯은 사실상 커리어 로우. 플레이오프에서는 양키4적이 크나큰 삽질을 거듭하는 상황 속에서 열심히 똑딱질이라도 한 덕분에 욕을 크게 먹지는 않았다.
2.5.2. 2013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미국 대표팀에 합류하여 타격 연습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출전이 좌절되었다. 조 토레 WBC 미국 대표팀 감독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연습경기에서 폴 코너코에게 WBC 참가를 요청하는등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메이저리그 각 팀 주전 1루수들에게 전화질을 했다는 후문(...)[16] 그리고 본인은 8주~10주 결장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양키스 팬들은 좌절했 다.
재활을 무사히 마치고 5월 31일자로 팀에 복귀했다. 6월 3일 경기에서는 개인 통산 8번째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하지만 6월 중순에 바로 부상당해 부상자 명단에 오르고 말았다. 그리고 오른쪽 손목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오며 6월 말에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2.5.3. 2014년
8월 17일 탬파베이 레이스 전에서는 통산 361호 홈런을 터뜨리며, 조 디마지오와 동률을 이뤘다. 통산 361홈런은 MLB 역대 80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 소항목은 '''2014년 9월 27일''', 페넌트레이스를 '''2경기 남기고''' 작성되었다.(...) 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테세이라의 성적은 처참했다. 9월 27일 기준 타/출/장 .217 / .315 / .403. 물론 리그 전체적으로 투고 타저인 걸 감안해야 하고, 또 리그 평균적인 타자의 성적을 100 으로 잡고 그에 비해 얼마나 더 생산적인 타격을 했는 지 평가하는 스탯인 wRC+ 로 보면 테세이라의 wRC+ 는 101 로 평타는 쳐 줬지만,[17] '''평타나 치라고 8년 1억 8천만불을 지불한 건 아니다.''' 거기에 테세이라의 보직은 1루수다! 2014년 1루수들의 평균적인 타/출/장은 .252/.326/.419 이며 wRC+ 는 109 다. 테세이라의 포지션을 감안하면 2014년 성적은 확실히 평균 이하다.
그나마 테세이라를 위한 변명을 해 보자면, 어차피 서른살 전후의 선수에게 8~10년 계약을 제시할 때에는 '그래 뒤에 3~4년 연봉은 그냥 위로금으로 생각해라' 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건 사실이다. 테세이라의 계약 종료 시점이 2016 년인 걸 생각하면 테세이라의 2014년 성적이 시궁창인 건 어느 정도 예정된 일이다. 하지만 암묵적인 동의는 암묵적인 동의고, 팬들 입장에서 테세이라가 8년 1억 8천만불을 받았는데 똥을 싸고 있다는 사실은 분통 터질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사실 테세이라는 2013년에도 밥값을 못 했고, 솔직히 2012년도 밥값을 한 건 아니다. 즉 먹튀를 시전한 해가 8년 중 4년, 엄격히 이야기하면 5년에 해당한다는 것(...).
2.5.4. 2015년
커리어 내내 시즌 초반에 부진했던 것과는 다르게 4월부터 홈런을 양산하며 부활한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함께 양키스 타선을 이끌고 있다. 타율은 2할 초중반에서 놀지만 눈야구와 한 방 공격력으로 타율 대비 생산력이 높다. 4월 3주차에는 한 주간 0.333/0.429/1.000 OPS 1.429 5홈런 10타점 6득점을 기록하며 뉴욕 양키스 공격을 이끌었으며, AL 이주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5월 5일 기준으로 25경기 10홈런 22타점 15득점 18득점 18안타 .205/.324/.602 OPS 0.926 등을 기록하고 있다. 타율이 매우 낮은 반면에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는 각각 아메리칸리그 공동 2위와 4위에 올라있다. 또한 10홈런 중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5개의 홈런을 기록 중이다.
6월 22일 경기를 앞두고 최소 2경기에 나설 수 없다고 한다. 2주간 경부 통증이 테세이라를 괴롭혔는데, 그동안 참고 출전했다고. 이날까지 테세이라는 65경기 출장해 타율 .251, OPS 0.920을 기록하고 있었고, 팀 내 최다인 18홈런을 뽑아내고 있었다.
7월 3일 탬파베이 레이스 전에서는 시즌 20호 홈런을 기록, 팀이 시즌 80경기를 치렀는데 벌써 지난시즌 22개에 2개차로 다가섰다. 이 날까지 테세이라는 자신이 기록한 20개의 홈런 중 17개를 3점차 이내의 접전 상황에서 때려내고 있다. 이 가운데 동점 홈런이 3차례, 팀에 리드를 안기는 홈런이 7차례로 흔히 말하는 영양가 만점의 홈런을 다수 때려내고 있는 것이다. 타점 능력도 찾아가고 있다. 이 날까지 기록한 58타점은 이번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5위이자, 아메리칸리그 1위 기록이다. 시즌 117타점 페이스로, 2011년 이후 4년 만에 100타점 시즌도 가능한 상황이다. 시프트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본인의 타율보다 2푼 이상 높은 .271를 기록하고 있으며, 득점권 찬스에서 때려낸 7개의 홈런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네 번째로 많은 숫자다.
여기에 테세이라의 현재 타율(.246)은 향후 개선의 여지도 크다. 현재 테세이라의 BABIP는 .219에 불과하다. 2009년을 마지막으로 3할 대의 BABIP를 기록한 뒤 계속해서 수직 낙하하고 있는 가운데, 올 시즌 그의 BABIP는 최악의 타율을 기록한 지난해의 .233보다도 낮은 개인 통산 최저 기록이다. 이는 올 시즌 테세이라가 더욱 불운한 시즌을 보내고 있거나 그를 상대하는 팀들의 시프트가 더욱 정교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으로, 이는 사실상 테세이라 스스로의 힘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부분들이다. 대신 테세이라가 통제 가능한 부분이 있다. 바로 수비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홈런과 삼진이다. 테세이라는 올 시즌 플라이 볼 대비 홈런 비율이 22.9%로, 이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을 뛰어 넘는 개인 통산 최고 기록이다. 삼진율에도 주목해야 한다. 테세이라의 올 시즌 삼진율은 14.9%로 지난해의 21.5%보다 7%가까이 떨어뜨렸으며, 2008년의 13.6%에 이어 통산 두 번째로 좋은 기록이다. 시즌 43볼넷-48삼진 비율 역시 가장 좋은 기록으로, 올 시즌 테세이라가 선구안에 유독 중점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여름 와서는 더욱 대폭발, 7월에는 월간 성적 .333/.422/.724을 찍으면서 양키스 지구 선두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8월 들어와서는 갑자기 폭삼기계로 돌변하다가, 8월 18일 미네소타전에서 오른쪽 정강이뼈에 파울타구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그 뒤로 8월 25일에 부상에 복귀했으나 오른쪽 정강이뼈 골절이 발견되어 결국 9월 12일에 시즌아웃이 되었다. 테세이라가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양키스도 결국 9월에 질주를 시작한 토론토에게 지구 선두를 내주고 말았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패배했다.
최종 성적은 .255/.357/.548 31홈런 79타점 wRC+ 143 WAR 2.9. 규정타석 달성에는 실패했으나 2011년 이후로 오랜만에 30홈런을 달성하였고, 2009년 이후로 처음으로 장타율 5할과 OPS 9할을 돌파하였다. 부상만 아니면 나름 밥값한 시즌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떨어져가는 내구성이 문제.
2.5.5. 2016년
개막 후 3경기에서 0.364/0.417/0.909 2홈런 7타점 4득점 4안타 OPS 1.326 등을 기록 중이다.
5월 막바지에 목부상으로 4일간 결장했다.
6월 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 도중 3회, 오른쪽 무릎에 불편함을 호소해 교체됐고 MRI 촬영 결과 무릎 관절 연골 파열 진단을 받았다.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으로 이동했다.
7월 4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전에서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이로서 미키 맨틀(536홈런), 에디 머레이(504홈런), 치퍼 존스(468홈런), 카를로스 벨트란(415홈런)에 이어 빅리그 400홈런을 기록한 5번째 스위치 타자가 되었다.
그러나 7월 중순에 또 부상으로 아웃되었다.
결국 2016년 8월 5일, 시즌 후 은퇴할 예정임을 선언했다. 사유는 자신의 올해 성적이 너무 부진해 속상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목이 계속 아프고[18] 무릎도 다치면서 더 이상 자신의 몸이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은퇴 방식은 FA계약을 하지 않음으로서 자연스레 은퇴하는 것이라고 한다.
2016년 9월 28일(현지시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홈경기에서 9회말 데뷔 후 첫 끝내기 만루홈런을 쳐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첫 끝내기 홈런이자 커리어 마지막 홈런이 되었다.
최종성적은 .204 .292 .362 .654 15홈런 44타점 fWAR -1.0
3. 연도별 성적
4. 플레이 스타일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프로 데뷔 첫해를 제외하고 2011년까지 매년 30홈런 100타점 이상의 타격 성적을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30홈런 100타점 이상과 2할 후반의 타율은 기대할 수 있는 타자. 다만 양키스 이적 이후, 시프트의 등장으로 타율이 조금 떨어졌지만 이를 준수한 장타력과 참을성, 선구안으로 커버했다. 고타율의 타자라기보다는 OPS 형의 타자에 좀 더 가까운 타입. 스위치히터로서 에디 머레이, 치퍼 존스 이후 가장 성공적인 타자로 꼽힌다.
큰 부상을 당한 적도 거의 없을 정도로 몸 관리나 건강에도 별문제가 없었다. 데뷔 후 30홈런 100타점 기록을 거의 매년 이어간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전성기에는 부상때문에 DL로 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탄탄한 내구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양키스로 이적한 뒤에는 점점 유리몸이 되더니 두 시즌이나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결국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이 14시즌이라는 비교적 짧은 커리어의 원인이 되었다.
수비 실력은 굉장히 훌륭해 1루수로 골드 글러브를 2012년까지 총 5회 수상했고 2012년에는 필딩 바이블 상도 수상했다. 물론 1루 자리가 수비 부담이 그리 크지는 않다고 하지만, 1루수로 보여주는 수비의 안정감은 분명 선수의 가치를 높이는데 작게나마 플러스 요인임에는 분명하다. 1루 수비가 선수 본인한테는 큰 상품가치로 보이지 않을수도 있지만 팀 입장에서 내야가 불안할 때 이런 좋은 선수 있으면 굉장한 것이다. 단적으로 양키스의 수비스탯 변화로도 살펴볼 수 있는데, 메이저리그 최악급의 1루 수비를 펼쳤던 제이슨 지암비가 떠나고 2009년 테세이라가 1루자리를 차지하자, 딱히 송구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던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수비가 좋아졌다(...). 엥간한 송구는 죄다 다 잡아주는 테세이라의 수비 안정감 덕분에 보다 포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 둘의 레인지까지 조금 더 넓어졌다. 거기에 로빈슨 카노 역시 테세이라의 수비 레인지 덕에 수비에서 일취월장, 테세이라 영입 이후 전체적으로 내야가 '''매우''' 안정화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2009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18경기 연속 무실책 경기 팀 프랜차이즈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슬로우 스타터로 유명하다. 2012시즌 기준, 통산 3/4월 타율이 .236이다(...) 올스타브레이크 또는 약 6월 중순까지는 이건 뭐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분통터지는 공갈포짓만 하다가, 그 이후로는 괴물타자가 된다. 3~4월에 철저히 잉여짓하다가 5월 즈음부터 슬슬 살아나고, 6월 즈음부터는 숫제 푸홀스 놀이를 시작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전반기에 까먹은걸 중후반기에 왕창 몰아쳐서 성적을 반등시키는 타입. 그래서 별명이 후반전을 위해 체력을 아끼는 서태웅의 이름과 조합한 서티렉.
그리고 수비 시프트 시대의 대표적인 피해자 중 한명이다. 양키스 이적 첫 해인 2009년까지 줄곧 .300 내외의 BABIP 을 기록해왔으나, 둘째해인 2010년부터는 BABIP 이 .268 → .239 → .250 으로 급락해간다.[19] 대표적인 당겨치는 타자로서 변한 야구의 패러다임으로 인한 희생양이 되었다.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매 겨울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 끝까지 시프트를 넘어서지 못했다. 어찌보면 그걸 뛰어넘지 못한 본인의 능력을 탓해야겠으나, 5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도 훨씬 훌륭한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다.물론 티렉스 커리어에서 5년 정도 전성기를 더 유지할 수 있었다고 가정하면 명전 후보자가 될 만큼 지금 테셰이라의 커리어 만으로도 충분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라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커리어를 쌓기는 했다.정상을 찍고 내려온게 빨라 아쉬울 뿐...
5. 기타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는 두 번 소집되고, 한 번 참가했는데, 첫 번쨰 참가한 2006년에는 한국전에서 2삼진을 당해주는 등 17타수 1안타를 기록. 직전 시즌 3할 40홈런을 친 타자답지 않게 한국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거하게 국밥을 말아드셨다. 2009년에는 양키스 이적 떄문에 구단 차원에서 만류하여 참가하지 않았다. 2013년에는 참가하려고 했는데, 소집 후 훈련 중에 부상을 당한 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이후 허리 쪽 손, 무릎 쪽 부상이 결정타가 되어2013 시즌을 통쨰로 쉬고 결국 점점 성적이 하락하게 되어 조기 은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 여타 메이저리그 선수들처럼 자선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기 이름을 내건 재단이 있으며,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이름으로 고등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고, 세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취미는 독서, 낚시, 사냥, 골프라고.
- 정작 FA가 되고서 볼티모어는 커녕 지구 라이벌 뉴욕 양키스를 가버리는 바람에 볼티모어 오리올스 팬들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실제 오퍼도 볼티모어가 총액 면에서 $30M 가까이 더 불렀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승반지 얻고자 볼티모어의 구애를 씹었다. 이에 고향팀이니까 당연히 올거라고 생각하던 볼티모어 팬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고, 테세이라가 양키 저지를 입고 캠든 야즈에 온 첫 경기에서부터 끔찍한 야유를 보냈다. 참고로 가장 많은 금액을 부른 팀은 워싱턴 내셔널스라고 한다.
- 원래 등번호는 텍사스 시절에 23번을 달았는데, 양키스에서는 25번을 달았다. 이유는 양키스의 23번은 돈 매팅리의 번호로 영구결번되었기 때문. 테셰이라의 어릴 적 우상이 돈 매팅리라고 한다.
- 그 유명한 히 드랍 더 볼에서 홈인을 해서 극적인 역전승리를 결정지은 선수다.
- 야구 외에 SNS 에도 나름 열심이며,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2013년 1월 뮤지컬 <Rock of Ages>에 출연한 모습
- 2017년 월드 시리즈 종료 후 한때 양키스 팀동료였던 브라이언 맥캔과 가족이 된다. 그 이유는 테세이라의 아버지와 맥캔의 어머니가 재혼하기 때문이다.
6. 관련 문서
[1] 1루수[2] 나머지 네 명은 미키 맨틀, 에디 머레이, 치퍼 존스, 카를로스 벨트란[3] 몇 년 후 테세이라의 조지아공대 후배인 맷 위터스는 스위치히터라는 공통점으로 '''마스크를 쓴 테세이라'''라는 어마어마한 평가를 받고 드래프트에 등장한다. 하지만 위터스의 방망이는 터지지 않았다..[4] 10년 동안 테세이라의 에이전트를 전담하다 2011시즌 전에 해고되었다.(...)[5] 발목이 나가면서 철심을 박아야 하는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테셰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6] 프라이어는 2순위로 시카고 컵스에 입단. 그리고 미네소타가 선택한 선수는 연고지 고등학교를 나온 고졸 포수 조 마우어다. 3순위는 돈이 없은 탬파베이 데빌레이스의 암흑기 상징인 대원 브라즐턴... 4순위는 필리스의 가빈 플로이드였다.[7] 이 후 약쟁이임이 밝혀져 의미 없지만 역사상 4명밖에 없는 500홈런-3000안타를 이뤄낸 타자이다. 게다가 팔메이로가 텍사스에서 활약하던 1999년~2003년은 5시즌동안 평균 2할8푼이 넘는 타율에 무려 214홈런을 기록했다.[8] 테세이라의 확고한 자리매김으로 인해 2000년 고졸 타자로 플로리다 말린스의 전체 1순위 지명자였으나, 텍사스와의 우게스 어비나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되었던 아드리안 곤잘레스는 또 다시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 연고지 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건너갔다. 그리고 텍사스산 1루수로서의 포텐셜을 만개하며 올스타 1루수로 성장하게 된다.[9] 애틀란타와 트레이드 전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트레이드를 논의한 적이 있고,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다저스의 스카우팅 디렉터 로건 화이트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됐다. 이때 텍사스가 테세이라를 줄 테니 달라고 요구한 선수는 '''클레이튼 커쇼'''.[10] 믿기지 않겠지만 워싱턴 D.C.도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규모 생활권이다. 자연히 빅마켓이라 소비가 많아지면서 수익이 많이 발생한다. 제이슨 워스의 계약에 팬들이 충공깽에 떨면서도 구단 재정에 문제는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 내셔널스가 넘쳐흐르는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건 티렉스의 경우처럼 '''선수들이 안와서'''다.(...) [11] 이때 받은 보상픽으로 에인절스가 지명한 선수가 '''마이크 트라웃'''이다.[12] '''Here comes Teixeira''' 라는 말이 나온다.[13] 2011시즌 좌타석 .224 .325 .453 우타석 .302 .380 .587(...) 양키스타디움이 좌타자 친화 구장이라 당겨치기로 신나게 홈런 때릴 수 있긴 하다만 타율이 이래서야 못쓴다.[14] 주자 없을 때는 멘도사 라인을 오르내리며 잉여짓이나 하지만 주자 한명이라도 나가면 순식간에 괴수가 된다. .289 .385 .601[15] 경기를 진 것도 모자라 타선이 슬럼프인 과정에서 막 복귀한 중심타자가 부상이 도지기까지 하였으니 양키스 팬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고, 양키스 경기를 담당하는 YES는 이후에 테세이라 이야기만 나오면 이 장면의 영상을 틈만 나면 틀었을 정도. 참고로 제리 밀스는 1년전 피츠버그와 애틀랜타의 경기에서 누가봐도 아웃인 장면을 세잎 판정을 내리며 피츠버그가 DTD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6] 결국 1루수는 에릭 호스머(...)로 결정되었다.[17] 이는 테세이라가 리그 평균에 비해 1% 더 생산적인 타자였다는 걸 말한다. wRC+ 가 120 이라면 리그 평균에 비해 20% 더 생산적인 타자.[18] 당연히(...) 감기 걸려서 목 아픈거하곤 다르다.[19] 이는 좌타석 한정으로 우타석에서는 계속 수준급의 리그의 성적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