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살로메
1. 개요
독일의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 [1]
니체, 릴케, 프로이트에게 영감을 준 여인. 당대 지식인들의 뮤즈이자 프리마돈나. 하인베르크의 마녀.
루 살로메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지적인 모습으로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러시아에서 온 뮤즈라며 칭송을 받았다. 그녀 역시 자신의 이런 조건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평생동안 자신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실질적인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남자와[2] 연인으로서의 감정은 생기지 않지만 자신의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고 자신과 인문학적인 관심사가 일치하는 남자들을 동시에 사귀었고 정신적인 교류를 하는 남자와는 육체적인 관계를 철저히 거부했다.
2. 생애와 만난 남자들
1861년 2월 12일 프랑스계 위그노 교도인 러시아 야전군 참모본부의 고급장교 구스타프 살로메와 북독일-덴마크계 상인의 딸인 루이스 윌리엄의 딸로 태어난다.
그녀의 저작 《자유로운 여자 이야기》에 따르면 첫사랑은 루터교 교회의 목사였던 하인리히 길로트로, 그로부터 철학, 형이상학, 논리학, 종교사를 배웠다. 후에 길로트가 그녀와 결혼할 것을 원했고, 이를 원치 않았던 그녀는 당시 여성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였던 취리히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대학에 입학했다.
취리히에서 공부하던 중, 원인불명의 질병으로 폐에 이상이 생겼다. 기후를 바꿔야 한다는 처방에 따라 1882년 1월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젊은 철학자 파울 레에를 만나 사귀기 시작하며 철학과 신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했고 레에는 루에게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그녀에게 소개했다.
루를 보고 첫눈에 반한 니체는 자신의 철학을 이해하고 함께 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리하르트 바그너를 소개하는 등 루를 각별히 아꼈고 루 역시 니체의 사상에 큰 관심을 보이며 레에와 절교하고 니체와 사귀기 시작한다. 이읃고 니체는 살로메에게 청혼을 하는데 그녀는 니체의 청혼을 거절하고 오히려 절교했던 레에에게 다시 연락하여 레에와 니체에게 어떠한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고 오로지 서로 철학만을 논의하면서 지내는 동거 생활을 하자는 의견을 낸다. 레에는 살로메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의 주장을 미련없이 받아들였고 니체는 루의 주장에 엄청 화를 냈으나 '루와 같은 집에 살 수만 있다면 괜찮아'하면서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직후, 니체는 다시 루에게 청혼을 하나 거절 당하면서 그 집을 나오게 된다.
레에와 살로메는 계속 베를린에서 동거 생활을 하면서 사회학자, 작가 등 여러 부류의 지성인들과 교류한다. 1887년 계속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로메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레에가 살로메에게 청혼을 했지만 루 살로메는 지금처럼 친구로서의 관계까지만 유지한 채 동거 생활을 계속하자며 레에의 청혼을 거절하면서 동거하던 집을 떠나버린다. 집에서 나온 루는 그녀에게 '너와 결혼하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며 열렬한 구애를 하던 동양언어학자인 F.K.안드레아스와 결혼해버린다. 그녀는 안드레아스와 결혼을 하는 조건으로 성생활이 없는 결혼 생활과 다른 남성들과 자유롭게 데이트 및 외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내걸었고 안드레아스가 이를 받아들이자 루 살로메는 안드레아스와의 결혼을 승낙했다고 한다.[3] 루 살로메의 결혼 소식을 듣고 니체는 우울증에 빠지고, 레에는 평소 루와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절벽 앞에서 투신자살한다. 한편, 안드레아스는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교수직을 잃은 1891년부터 아내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다가 1892년부터 별거한다. 하지만 루 살로메는 그가 죽는 1930년까지 서류상의 결혼 관계는 유지했다고 한다.
1895년에는 15살 연하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만나 수 년간 친교를 유지한다. 원래 릴케의 이름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세프 마리아 릴케였는데, 살로메의 주장에 따라 프랑스식 '르네'를 독일식 '라이너'로 바꾸고, 글씨체도 바꾸었다고 한다. 이 외에 살로메는 릴케에게 톨스토이 같은 문호들을 소개시켜주는 등 릴케의 문학에 큰 기여를 한다. 릴케와 살로메는 연인으로 발전하나 살로메는 점점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을 지나치게 우상화하는 릴케에게 염증을 느끼고 '자유'를 주장하며 자신의 다른 연인들과 외박을 하였고 이러한 살로메에게 릴케는 점차 집착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살로메가 여느 때처럼 다른 연인과 외국으로 여행을 가버리자 릴케가 살로메에 대한 그리움을 주제로 쓴 시들과 편지를 살로메와 그녀의 연인이 함께 묵고 있던 호텔에 보내는 강수까지 썼고 며칠 후 살로메는 릴케에게 헤어지자는 내용의 짤막한 답장을 보내고 죽는 날까지 릴케를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릴케와 헤어진 후 살로메는 1912년 바이마르에서 열린 제3차 정신분석학회에서 당시 그녀의 연인이었던 정신분석학자 폴 비에레로부터 정신분석학계의 대가 프로이트를 소개받아 죽을 때까지 친분을 유지했다. 물론 이때에도 살로메는 프로이트의 제자들과 자유연애를 하였으며 프로이트의 조교 중 한 사람은 살로메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슬퍼하며 자살한다.
70세부터 노쇠로 인해 앓기 시작한 당뇨병으로 몸이 허약해져 병원에서 요양하기 시작한 살로메는 병원에서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감사'를 집필하고 1937년 1월 5일 당뇨, 요통, 유방암 등으로 7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3. 저작
1885년 《하느님을 차지하려는 싸움》
1894년 《작품에 나타난 니체》
1895년 《Ruth(루트)》
1896년 《모르는 영혼에서》
1898년 《Fenitschka(페니취카)-어떤 방탕》
1899년 《인간의 아이들》
1901년 《마, 어떤 초상》
1902년 《중간지대에서》
1910년 《에로티시즘》
1917년 《소년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
1919년 《집》
1922년 《하느님 없는 시간. 그 밖의 동화》, 《악마와 그 할머니》
1923년 《Rodinka(로딘카)》
1928년 《하얀 길 위의 릴케》
1931년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