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역사
카롤루스 대제가 죽고 프랑크 왕국이 셋으로 분할되었을 때 잠시 장남 로타르의 영지인 중프랑크에 속했다. 중프랑크의 영토 중 알프스 이북 지역은 로타르의 이름을 따서 로타링기아(로트링겐)으로 불린다. 로타르가 죽고 로트링겐을 두고 서프랑크 왕국과 동프랑크 왕국의 분쟁이 벌어졌으나 최종적으로 동프랑크 왕국을 계승한 독일 왕국에 병합되었다.
이후 브라반트 공국(브뤼셀 백국), 림부르크 공국, 룩셈부르크 공국, 플란데런 백국 등이 있던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아르덴 백작 지크프리트 1세가 트리어의 성 막시민 수도원으로부터 룩셈부르크 일대의 영토를 얻어내어 룩셈부르크 백작이 되어서 다스렸다. 지크프리트 1세가 세운 룩셈부르크 가문은 결혼 동맹 덕분에 14세기 초 보헤미아 왕국을 획득하였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에까지 올랐다. 룩셈부르크 가문은 아예 본거지를 보헤미아의 프라하로 옮겨버렸다. 룩셈부르크는 브라반트 공국, 림부르크 공국, 룩셈부르크 공국 등에 합쳐지게 되었다.
1437년 룩셈부르크 가문의 대가 끊겼고, 부르고뉴 공국이 새로 룩셈부르크를 지배했다. 이후 결혼 동맹을 통해 1477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부르고뉴 공국을 상속받아서 합스부르크 네덜란드를 형성했다. 카를 5세가 퇴위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둘로 나눠졌을 때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에 있던 룩셈부르크는 저지대의 영토와 함께 스페인 합스부르고 왕조의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상속되었다.
17세기에 루이 14세에 의해 잠시 프랑스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에게 귀속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대프랑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1794년 프랑스가 벨기에와 함께 룩셈부르크를 점령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열린 빈 회의에서 오스트리아가 북이탈리아를 얻는 대가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포기했다. 룩셈부르크는 대공국으로 승격되었고, 네덜란드 국왕이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하게 된다. 또한 같은 해 세워진 독일 연방에 가입했다.
1839년 런던 회의에 의해 서쪽 영토 절반을 벨기에에 할양해야 했다. 1842년 독일 관세 동맹에 가입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인 1867년 독일 연방을 탈퇴하고 영세 중립국의 지위를 받았다.
1890년 동군 연합이던 네덜란드에서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하면서 룩셈부르크는 직위 계승 방식에 따라 방계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의 아돌프 대공에게 상속되어 네덜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분리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가 종전 후인 1919년에 샤를로트 여대공이 즉위해서 룩셈부르크는 남편인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펠릭스 대공의 통치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고, 네덜란드나 벨기에와 달리 아예 독일 본토로 합병되고 젊은이들은 독일군으로 징집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인 1945년 영세 중립을 포기하고 NATO에 가입하였다.
1987년에 부르봉-파르마 본가와 귀천 상혼에 대한 분쟁이 벌어져서 공식적으로 부르봉 가문과 결별하고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이라고 칭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