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애스틀리

 

'''릭 애스틀리
Rick Astley
'''

[image]
'''본명'''
리처드 애스틀리(Richard Paul Astley)
'''출생'''
1966년 2월 6일(58세)
'''국적'''
영국 [image]
'''직업'''
싱어송라이터
'''데뷔'''
1987년 1집 앨범
<Whenever You Need Somebody>
'''소속 그룹'''
FBI(1985년)
1. 개요
2. 상세
3. 빌보드 차트
3.1. 빌보드 1위
3.2. 빌보드 2위
3.3. 빌보드 3위 ~ 10위


1. 개요


[image]
전성기 시절
21 years old, looks like he’s 18, sounds like he’s 50, and dances like he’s 12.
Yes you’ve seen this before.[1]
영국가수이자 1980년대 종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하이에너지로 전세계를 주름잡은 뮤지션이다. 본명은 '리처드 폴 애스틀리(Richard Paul Astley)'이다. 전성기 기준으로 젊은 나이에도 중년스런 중저음 음색이 인상적인 가수.
국내에서는 흔히 릭 애슬리라고 표기하며 미국 내에서도 흔히 애슬리에 가깝게 발음하나 Rick Astley가 영국인인 관계로 영국식 발음을 존중하여 본 문서에서는 릭 애스틀리로 표기하기로 한다. [2]

2. 상세


잉글랜드 북부 랭커셔의 작은 도시인 뉴턴러윌로스(Newton-le-Willows)에서 4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많은 뮤지션들이 그랬듯 어릴적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십대시절에는 밴드 드러머, 밴드 리드보컬을 맡기도 했다. 이렇게 지역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중 1985년에 프로듀서 트리오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SAW)에게 발탁되었고, 당대 영국 최고의 프로듀서 집단이었던[3] 스톡 에이트켄 워터맨의 프로듀스를 받으며 백보컬, 스튜디오 엔지니어 등 준비기간을 거쳐[4] RCA레이블로 1987년 정식 데뷔를 했다.
그렇게 발매된 데뷔 앨범 'Whenever You Need Somebody'에서 처음으로 싱글컷된 'Never Gonna Give You Up'이 전 세계를 휩쓰는 빅 히트를 했고, 뒤를이어 후속싱글인 'Together Forever'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등 후속타를 치면서 전 세계적 유로비트/하이에너지 붐을 이끄는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데뷔앨범은 미국에서만 2백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려 연간차트 15위에 드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후 후속앨범인 'Hold Me in Your Arms'도 여러곡을 차트 top 10에 올린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5]
3집에서는 기존 SAW의 프로듀싱을 벗어나 엘튼 존에게 프로듀싱을 받아 3집 또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의 end title 버전인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End Title)에서 백 보컬을 맡았다. 하지만 4집은 상업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 즈음에 애스틀리는 런던 출신의 덴마크인 영화감독인 르네 바우사게르(Lene Bausager, 1965 ~ )와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졌는데, 이후 가수로서의 활동보다는 가정에 충실하겠다며 1993년에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수년 동안 가요계를 떠나있다가, 2002년에 5집 'Keep It Turned On'을 발매하고 뮤지션으로서 복귀했다. 이후 커버앨범을 발표하고 작곡가로서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는 등 활동을 펼쳤으나, 예전의 인기를 되찾지는 못했다.
그러던 와중 2008년에 정말 뜬금없는 이유로 다시 유명세를 얻게(?) 되었는데, 애스틀리의 최고 히트곡인 'Never Gonna Give You Up'의 뮤직비디오가 인터넷상에서 낚시용 밈으로 히트를 치는 괴이한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넷상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2008년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 'Best Act Ever'를 수상하게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릭롤링''' 문서 참조. 이로 인해 본의 아니게 강제 컴백을 당해서 미국 추수감사절 최대의 행사로 꼽히는 뉴욕 메이시즈 퍼레이드 생중계 현장에서 직접 릭롤링을 시전하기까지 했다.
2015년에는 마크 론슨브루노 마스Uptown Funk커버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6년 10월, 50세를 맞아 근 20년만의 신보 '50'을 발매했다. Keep Singing이나 Angels on My Side 등의 곡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가스펠스러운 원숙해진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또 앨범 출시를 맞아 레딧에서 AMA(Ask Me Anything)을 진행했다.
2018년에는 'Walk Like A Panther'라는 영국 영화의 주제곡을 불렀다.[6] 역시 한층 깊어진 목소리를 보여주며[7] 호평을 받았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홈레코딩으로 푸 파이터스부터 포스트 말론까지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커버곡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냈는데, 여전히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릭롤링이 나온지 12년이 되었는데, 이쯤되면 밈 하나로 다시 부상한 것을 넘어서 아예 제 2의 전성기를 맞는 수준.
여담으로, 전성기때도 잘생겼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50세가 넘은 지금도 굉장한 미중년이라는 평을 받는다.

3. 빌보드 차트



3.1. 빌보드 1위



3.2. 빌보드 2위



3.3. 빌보드 3위 ~ 10위


  • It Would Take A Strong Strong Man (1988) 10위
  • She Wants To Dance With Me (1989) - 6위
  • Cry For Help (1991) - 7위

[1] 유튜브 댓글[2] 영국에서는 보통 Astley를 발음할 때 t를 묵음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다만 영국 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t 발음을 굉장히 짧고 약하게 발음하며 일부 영국인들은 t 발음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흔히 water를 [워러\]로 발음하고 영국 용인발음에서는 [우어터\]로 발음하지만, 일부 코크니 구사자를 비롯한 영국 사람들은 그냥 t를 무시하고 [우어\]로 발음하기도 한다. 따라서 애슬리나 애스틀리 중 어느 한쪽이 옳은 표기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이는 영어가 언어학적으로 표기 심도가 깊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다른 예시로는 영국의 화학자이자 자유주의 정치학자인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가 있다. 다중자음 'stl'은 어원별로 그 발음이 다른데, 가령 'Whistler'와 'Hustler'는 [위슬러\]와 [허슬러\]로 발음한다.[3] SAW카일리 미노그를 히트 가수로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며, 그 전에는 You Spin Me Round (Like a Record)로 UK차트 1위를 찍은 적도 있다.[4] 이때 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보조했다고 한다.[5] 월드와이드급 인기답게 일본에서 광고도 찍었다. 안성기박중훈이 열연한 1988년 한국영화 칠수와 만수에서도 디스코텍에서 릭 애스틀리의 Together Forever가 흐르고 젊은이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6] The All Seeing I의 1999년 곡커버한 곡이다.[7] 레딧에 올라온 글을 보면 톰 존스 느낌이 난다는 댓글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