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랭 마레

 


[image]
'''Marin Marais'''
앙드레 부이스(André Bouys)가 그린 마랭 마레, 1704년
'''세례'''
1656년 5월 31일 [image] 프랑스 왕국 파리
'''사망'''
1728년 8월 15일(72세) [image] 프랑스 왕국 파리
'''직업'''
작곡가, 비올리스트, 지휘자

▲ 트리오 《성 쥬느비아브 성당의 종소리》
(Sonnerie de Sainte Geneviève du Mont-de-Paris).[1]

'''전 유럽에 작품이 알려져 있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파리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 요한 고트프리트 발터(Johann Gottfried Walther), 『음악사전''Musicalisches Lexicon(1732)''』 中

'''비올의 왕궁을 세우고 확립한 사람.'''

― 위베르 르 블랑(hubert le blanc), 『베이스 비올의 옹호''Défense de la basse de viole(1740)''』 中

1. 개요
2. 생애
2.1. 유년 시절
2.2. 궁정 생활
3. 작품
3.1. 비올 작품들
3.2. 오페라
4. 대중매체


1. 개요


프랑스 태생의 작곡가이자 비올 연주자이다. 아마 현대에 들어서는 비올라 다 감바의 부활의 일등 공신이라 할지도..?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로서의 면모와 그의 비올 작품집이 유명한데, 당시에는 오페라 작곡가로도 명성이 높았다.

2. 생애



2.1. 유년 시절


1656년 5월 31일에 세례를 받았지만 출생일이 아닌 세례일이기 때문에 마레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불명이다. 구두수선공이였던 빈센트 마레(Vincent Marais)와 카트린 발랑제(Catherine Bellanger)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레가 11살이던 1667년, 마레는 생 제르맹 록세루아 성당의 성가대로 들어갔는데, 아마 이곳에서 음악의 기초를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6살이던 1672년에 마레는 변성기가 찾아와 성가대를 그만 두고, 전설적인 비올의 대가 생트 콜롱브(Monsieur de Sainte-Colombe)에게 비올을 배우러 찾아갔다. 하지만 마레는 스승을 6개월만에 앞지르는 등 비올에 재능을 보였는데, 이를 본 콜롱브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하는데... 마레는 포기하지 않고 숨어서 콜롱브의 음악을 훔쳐 들었다.[2]

2.2. 궁정 생활


마레는 그 후에 장 바티스트 륄리가 발족한 왕립 음악 아카데미의 연주자로 들어갔는데 여기서는 륄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아카데미의 연주자 생활을 순조로웠는지 1676년 9월 21일에는 카트린 다니쿠르(Catherine Darnicourt)와 결혼했는데 슬하에 19명의 자녀를 두는 등 결혼생활은 순조로웠던 듯 하다. 계속해서 마레는 승진을 하는데 1679년 8월 1일에는 궁정의 비올 연주자로까지 임명된다.
또한 1686년에는 자신의 비올 작품집 1권을 출판하여 륄리에게 헌정하고, 륄리의 장남인 루이 륄리(Louis Lully)와 합작한 첫 오페라 <알시드>(Alcide)가 성공을 거두는 등 작곡가로서의 입지도 굳히기 시작하였다. 이후 륄리가 사망한 1687년부터 왕립 음악 아카데미의 지휘자를 맏고 이후로도 오페라 작곡가로 큰 명성을 누렸다.

3. 작품


'''풍부하고 우아한 이 음악가의 천재성을 누구라도 그가 작곡한 수많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 티통 뒤 티예(Titon du Tillet), 『프랑스의 파르나소스Parnasse François(1732)』 中


3.1. 비올 작품들



▲ 비올 작품집 2권 중, 생트 콜롱브의 무덤(Tombeau pour Mr de St. Colombe)

3.2. 오페라


상술했듯이 마레는 당시 오페라 작곡가로도 큰 명성을 누렸고 장 바티스트 륄리가 사망한 1687년부터 장 필리프 라모의 첫 오페라가 나온 1733년 사이의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마레는 4곡의 서정 비극을 작곡하였는데 그중에 《알시온》(Alcyone)은 청중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아서 1706년부터 1771년까지 여러 차례 상영됐는데 이는 당시로써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알시온은 부퐁 논쟁과 프랑스에 불어닥친 계몽사상의 바람을 피해가지는 못하여 1771년 공연 이후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오페라에 수록된 관현악곡들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으면 비판을 피해갈 수 있었다. 특히 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4막의 폭풍 장면으로 이미 마레가 죽은 1771년 언론에서도 '''묘사음악의 걸작'''으로 칭송받았다. 알시온(마레) 항목 참조.

▲ 오페라 <알시온>(Alcyone) 중 3막에 나오는 '폭풍'(Tempête) 장면. 무대 효과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빠른 32분음표와 트레몰로가 위력을 더하는데,
이러한 음악적 효과가 마레 이후에는 폭풍, 천둥 같은 장면에서 항상 등장하는 클리셰가 되었다.

4. 대중매체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을[3] 원작으로 한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 에 등장한다. 상세한 소개는 네이버캐스트 참조.[4]
JTBC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도 그의 곡이 잠깐 언급된다.

[1] 하프시코드 반주에 피에르 항타이, 바이올린에 파비오 비온디, 비올라 다 감바에 조르디 사발. [2] 이 일화는 마레와 '''동시대 인물'''인 에브라르 티통 뒤 티예가 쓴 전기모음집 《프랑스의 파르나소스》 에 나오는 이야기이다.[3]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한 바 있다.[4] 정작 OST 중 마랭 마레의 곡보다는 프랑수아 쿠프랭의 곡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다는 게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