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대텔레비죤
1. 개요
1983년 12월 1일[1] 개국한 (2015년 7월~11월 사이 일시중단) 북한의 국영방송이다. 줄여서 만수대TV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2. 상세
명목상으로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가 관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선중앙텔레비죤의 감독을 받고 있으며, 조선중앙텔레비죤과 같은 PAL방식으로 방송하며 디지털방송은 DVB로 송출된다. 단, 지방에서는 유선으로 송출된다. 채널번호는 12번이라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12통로'라고 부른다고. 한국으로 치면 KBS 2TV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방송국이다. 방송국 설립 당시 최신, 최고급 방송 설비들을 사들였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들었으리라고 추정되지만 이미 타 공산권 국가에서든 TV채널을 2개, 3개씩 가지는 것이 보통이었고, 당대의 북한이 여유가 없던 국가는 아니었던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한일은 아니다.
북한의 대표 채널인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북한 전역에서 방송되었던것과는 다르게 1991-1995년 초/1997년/2001년의 남한 SBS[2] 와 비슷하게 평양직할시 지역에서만 방송되고 있었으나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6년에는 북한 전역으로 방송권역을 확충했다. 또한 매일 방송인 조선중앙텔레비죤과는 달리 이 방송은 오로지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만 방송된다. 이런 점에서 오랜 기간동안 이 채널이 소위 '일반 주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평양시민과 고위층들을 위한 방송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방송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후 4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10시간 정도.
평양을 방문한 한 외국인이 찍은 방송시작영상[3] 에서는 찬양곡 충성의 한길로 가고가리라가 나오면서 평양시내의 주체탑, 평양대극장, 인민대학습당, 마지막에는 조선로동당의 로고와 만수대예술극장이 나오면서 만수대텔레비죤이라 나오고 그 이후애는 조선중앙텔레비죤처럼 김일성, 김정일의 노래를 내보낸 후 방송순서를 나레이션 없이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1970년대에 조선중앙텔레비죤이 금요일 오후 외국 영화를 조선말로 더빙하여 방영하던 것을 아예 채널을 분리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채널에서는 보도 프로그램은 거의 하지 않으며 대부분 예술공연과 영화, 스포츠 등 오락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특히 미국같은 '''자본주의 국가'''의 영화나 애니메이션 역시 방영된다는 점에서 조선중앙텔레비죤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4] 보도 프로그램도 있긴 하나 대부분 북한의 보도가 아닌 해외의 보도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김씨 일가 찬양은 당연히 빠지지 않는다.) 여하튼 여러모로 구닥다리스럽다는 조선중앙TV에 비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북한 주민, 특히 수신이 가능한 평양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외국의 방송을 수신하기 위하여 평양직할시 사동구역 오류리에 인공위성 중계소를 설치하여 남한을 포함한 다양한 나라의 방송화면을 받는다. 이것을 종합하여 김씨 일가에 보고하는 데 주임무가 있다.
북한의 두번째 TV채널로 개국되었기는 했지만, 오랜기간 동안 이 방송의 수신 범위가 평양으로만 국한된 것은 전국 방송을 하면 북한 당국이 사상 통제가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5] 더구나 이 방송은 원래 김일성, 김정일의 전용 채널로 생긴 방송이었는데, 자본주의적 프로그램이 많은(이라고 쓰고 오락적인 프로그램이 많다고 쓴다.) 이 방송의 성격을 안 김일성이 관리자들을 꾸짖은 뒤 평일 방송이 없어지고 주말, 공휴일에만 방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만 단순히 자본주의적인 이유로 송출을 제한했다는 것은 도식적으로 해석한것이고 사실 여타 공산권 국가에서도 알바니아 정도를 빼면 두번째나 세번째 TV채널을 만들고 이를 지방에도 송출하는 것[6] 을 생각하면 실제로는 김일성이 대중문화에 있어서 소위 꼰대에 가까운 타입이라서 그런면이 강했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이 때문에 방송 지역이 평양 한정이라서 평양시민의 특혜[7] 중 하나로 간주되어왔고, 지방 사람들도 이 방송을 보기 위해 갖가지 물건으로 안테나를 만들어 몰래 봤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기인 2016년에 송출제한을 없애면서 전국방송을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90년대 말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활성화되며 북한경제가 차츰차츰 회복세에 접어들며 어느정도 여유가 생긴 계층이 늘어나면서, 지방에서도 중국산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남한드라마와 영화, 노래를 비교적 쉽게 구입할수있는 환경이 되어버렸다. 즉, 북한당국으로써 '''만수대 텔레비전의 송출제한을 시킬만한 이유가 없어져버렸다는 것인데''' 그래도 상당기간 동안 비용상의 문제 등으로 송출제한이 유지되어왔다. [8] 그러다가 김정은이 북한TV의 시청률이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캐치하면서 그나마 시청률이 높은 만수대TV의 송출제한 폐지를 지시했고,[9] 결국 2016년에 송출제한을 완전히 풀어버리며 전국방송을 시작했고 디지털 셉톱박스의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지방에서도 만수대TV가 제2채널로써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보다 앞선 2015년 7월, 만수대텔레비죤의 송출을 중단하고 8월 15일체육전문방송국을 신설했지만, 동년 11월 원상복구되고 송출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다만 체육TV를 완전히 폐국시킨것은 아니고 디지털 유선 TV 채널로 송출하고 있다.
3. 관련 문서
[1] 북한에서 발간한 <조선향토대백과>에서는 1974년 12월 4일이라고 한다.[2] 북한과 다르게 중계유선방송을 통한 테이프넷 방식으로 중계가 허용된다.[3] 오후 7시쯤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4] 물론 미국 것보다는 주로 옛 소련이나 중국, 동구권, 인도 영화가 주로 방영된다.[5] 여담이지만 비슷한 이유로 동양방송도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에 수도권 지역과 부산, 경남일부 지역에만 방송되었다.[6] 물론 소련과 중국에서는 수도권 채널이 지방에 송출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지만 이는 국토가 너무 넓기 때문에 전국송출망을 확충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7] 평양시민이 징계를 받아 평양에서 추방되거나 타 지방으로 발령 등의 이유로 이사를 갈때 제일 아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이 방송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기도 했다. [8] 다만 김정일은 영화를 즐겨보던 영화광인데다가, 가끔씩 남한방송을 보기는 봤고, 일부 드라마들도 즐겨볼 정도로 영상취향에 있어서는 딱히 구닥다리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 북한의 영상제작 수준이 그리 높지않은데다가 소재제한은 쓰잘데기 없이 많지, 고난의 행군으로 새로 방송기술을 들여놓을 돈은 없지 하면서 수준이 정체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조선중앙TV의 방송수준이 말 그대로 구닥다리의 끝을 달리게 되어버렸던 것이 문제지. 그나마 김정은이 집권하면서는 좀 나아졌지만 그 나아졌다는것도 남한으로 치면 전두환 정부 시기를 연상케 하는 수준(...).[9] 애초에 북한 최고지도자 입장에서 자국TV 시청률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장마당에서 남한이나 외국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빈도가 늘어나는 것이 좋은 일일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