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헨리에타

 

'''영국의 프린세스 로열'''
초대

'''메리 헨리에타'''


''' Mary, Princess Royal '''
[image]
'''이름'''
메리 헨리에타
(Mary Henrietta)
'''출생'''
1631년 11월 4일
런던 세인트 제임스 궁전
'''사망'''
1660년 12월 24일 (29세)
런던 화이트홀 궁전
'''장례식'''
1660년 12월 2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배우자'''
오라녜 공 빌럼 2세 (1641년 결혼 / 1650년 사망)
'''자녀'''
윌리엄 3세
'''아버지'''
찰스 1세
'''어머니'''
프랑스의 앙리에타 마리
'''형제'''
찰스 제임스, 찰스 2세, 제임스 2세 & 7세, 엘리자베스, 앤, 캐서린, 헨리, 헨리에타
1. 소개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결혼
2.3. 남편의 죽음 이후
2.4. 사망


1. 소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왕 찰스 1세의 장녀이자 오라녜 공 빌럼 2세의 아내이다. 훗날 영국의 국왕이 되는 윌리엄 3세의 어머니이며, 영국 역사상 최초의 프린세스 로열[1]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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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의 남편 빌럼과 함께
찰스 1세와 앙리에타 마리 사이에서 4남 5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어머니 앙리에타 마리의 영국식 이름인 메리 헨리에타로 정해졌다. 1642년 최초로 왕의 장녀에게 주어지는 직책인 '프린세스 로열'에 임명되었고, 이후 영국에서는 왕의 장녀에게 이 직책이 주어지는 전통이 생겼다. 프린세스 로열은 앙리 4세의 딸이었던 앙리에타 마리가 프랑스에서 왕의 장녀에게 '마담 루아얄' 직책을 주는 방식을 모방한 것이었다.

2.2.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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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빌럼 2세와 함께
찰스 1세는 메리가 펠리페 4세의 장남 발타사르 카를로스나 팔츠 선제후 카를 1세 루트비히와 결혼하길 바랐다. 하지만 메리는 오라녜 공 프레더리크 헨리의 아들 빌럼과 약혼하게 되었고, 1641년 5월 2일 런던 화이트홀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당시 메리가 9살밖에 안 됐기 때문에 부부관계는 없었다고 하며, 1642년 어머니 앙리에타 마리와 네덜란드 공국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1647년 3월 남편 빌럼 2세가 오라녜 공이 되었으나, 3년 뒤인 1650년 11월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2.3. 남편의 죽음 이후


남편이 사망한 후 며칠 뒤 메리는 아들 빌럼(훗날의 윌리엄 3세)를 낳는다. 그녀는 빌럼의 어머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아말리아로 인해 아들의 이름을 마음대로 지을 수도 없었을 정도로 권한이 약했다.[2]
스튜어트 왕조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그녀는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었으며, 국민들은 메리가 오빠 찰스 2세와 남동생 제임스 2세에게 보여준 호의적인 태도에 분노했다. 이후 그녀는 가족들을 볼 수 없었고, 제임스 2세의 시종 헨리 저민과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추문이 나돌았다.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지만 찰스 2세는 메리와 헨리 저민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1657년부터 사촌 루이 14세의 도움을 받아 섭정을 하였다.

2.4. 사망


찰스 2세가 복위된 이후 메리의 위상 또한 격상되어 1660년 9월 영국으로 돌아온다. 이후 1660년 12월 런던 화이트홀 궁전에서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1] 왕의 장녀에게 주어지는 직책이다. 현재의 프린세스 로열은 앤 공주 이다.[2] 빌럼의 이름을 찰스로 짓고 싶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