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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 내부[1] 실제로는 좀 더 어두운 편. 그리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으며, 이 사진은 사원 측에서 공식적으로 공개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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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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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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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한글
| 웨스트민스터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세인트 마거릿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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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Palace of Westminster and Westminster Abbey including Saint Margaret’s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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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 Palais de Westminster et l'abbaye de Westminster incluant l'église Sainte-Margue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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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 영국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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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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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연도
| 1987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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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기준
| (i)[3], (ii)[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 (iv)[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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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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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북쪽 익랑(North Transept)
5.5. 남쪽 익랑(South Transept)
[clearfix]
1. 개요
Westminster Abbey
[6] 발음이 어베이가 아니고 “애비”다. 런던 관광시 꼭 참고할 것.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유명한 '''
성공회'''
성당. 정식 명칭은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피터 참사회성당(Collegiate Church of St. Peter in Westminster)이다.
영국 왕실 대관식 등의 장소로 쓰이거나 왕족/위인들의 무덤이 있으며,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바로 뒷편(동쪽)에
영국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있다.
영국 왕실의 교회이자 영국 수도의 대표 교회로써,
주교좌성당(cathedral)에 준하는 위상을 지녔지만 근원이 대
수도원(abbey)이기 때문에 주교좌성당은 아니다. 영국 성공회 런던교구
[7] 성공회 런던교구에 대응되는 가톨릭 교구가 웨스트민스터 대교구다. 그 웨스트민스터 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은 바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의 주교좌성당으로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있다. 다만,
종교개혁기에는 잠시 동안 주교좌성당이었던 적은 있다.
2. 역사
960년경 혹은 970년경 초에 성 던스턴이
베네딕토회의
수도자들을 위한 공동체를 세웠고, 1042년에서 1052년 사이 어느 해인가에
참회왕 에드워드가 그 자리에 새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는 것으로 웨스트민스터의 역사가 시작된다.
13세기부터 16세기(1503)까지 지어졌다.
고딕 양식에 충실하게 지어졌다. 천장의 리브로 만들어진 워플 슬라브의 형태가 대단히 화려하다.
캔터베리 대성당,
세인트 폴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가톨릭 소속 성당이었으나
종교개혁기에
성공회로 넘어왔다.
영국 왕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자
잉글랜드와 영국 왕의 장지(葬地)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특히 무덤으로써의 의미가 대단히 큰 곳이기도 하다. 성당 지하에 따로 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당 본당 내에 유해를 안치한다. 덕분에 다른 성당에 비하면 내부 공간이 복잡한 편이다.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 1세를 비롯한 역대 왕은 물론이거니와
영국 총리들, 그리고
아이작 뉴턴를 비롯한 위인들의 무덤이 성당 곳곳에 있다. 가장 최근에 열린 결혼식은
2011년 4월 29일에 거행된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세손
[8]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손이자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의 장남.
과
캐서린 미들턴의 결혼식이었다.
3. 명칭
한국에서는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성당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1997년
다이애나 스펜서가 교통사고로 사망해 이곳에서 장례식이 열릴 당시,
조선일보에서 이 장례식을 다룬 기사로 사원이라고 적었다가 독자란에서 "
성공회 신자인데,
사원이라면
힌두교 같은 사원을 떠오르니까 사원이 아닌 성당으로 적어달라"는 항의를 듣고 이후론 성당으로 쓴다고 한 적도 있다. 한국 여행객들에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근에 '''
가톨릭'''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Cathedral)이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택시기사에게 church라고 하면 대성당(cathedral)으로 가버리는 수도 있으니 '''반드시 abbey라고 할 것!''' 단어가 기억이 안 나면
웨스트민스터 궁전(palace, 국회의사당을 지칭)으로 가자고 해도 된다. 바로 옆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으니까.
4. 20세기의 순교자 10인 조각상
[image]1998년 서쪽 문 위쪽 외벽의 빈 벽감에 다인종, 다문화에 맞는
20세기 위인들의 조각을 세웠다. 위 사진에 늘어서 있는 조각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조각상이 놓인 이 곳은
중세 이래로 조각상 없이 비어있던 공간이었다.
# 성공회 신자들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에큐메니컬 신앙에 가장 적극적인 성공회답게 성공회에서 귀감이 될만한 그리스도인들을 교파 상관없이 기리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개신교(
침례교,
루터교) 목사와
가톨릭 대주교, 수사신부,
정교회 수녀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해당 인물들은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다음과 같다.
5. 무덤
5.1. 무명 용사의 무덤
이 비석 아래에 이름도, 계급도 알 수 없는 한 영국 용사가 누워 있다. 프랑스에서 수습하여 국왕 조지 5세, 국무대신, 군대 상관, 수많은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1920년 11월 11일 휴전일에 국토에서 가장 빛나는 곳에 묻혔다. 1914-1918년의 대전쟁에서 하느님을 위해 국왕과 국가를 위해 사랑하는 자들의 고향과 대영제국을 위해 신성하고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세계의 자유를 위해 사람이 바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생명을 바친 수많은 자들을 기린다. 그는 하느님과 가문에게 선을 이루었으므로 이곳에 왕들과 함께 묻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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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문구
| "주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신다."(디모테오 후서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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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문구
|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의 복음서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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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문구
|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고린도후서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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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문구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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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바닥에는
1920년 11월 11일에 안장된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영국 육군 병사인데, 1차 대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대표하여 매장되기 위해 신분을 확인할 수 없었던 전후 발굴 유해들 가운데 선발되었다.
[10] 벨기에에서 발굴된 뒤 관에 안치한 유해들을 늘어놓고, 육군 장교 한 사람이 눈을 가린 채 관들 중 하나에 손을 대는 방식으로 뽑았다.
이 무명 용사는 훗날
미국으로부터 참전한 모든
영국군을 대표하여
메달 오브 아너를 받았으며 무덤 근처 기둥에 훈장이 있다. 이 무덤은 전쟁에서 전사한 영국 군인 모두를 기리는 상징이며,
유럽 문화 특성상 교회 바닥에 안치된 다른 무덤은 밟아도 별 상관없지만
[11] 아무래도 하느님의 성전인 교회를 천국과 동일시하여, 천국 바로 곁에서 묻히고 싶은 염원으로 인해 교회 바닥에 안치되고 싶어하는 문화가 생긴것으로 보인다. 이 무명 용사의 무덤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교회 바닥에 만들어진 무덤들은 밟고 다녀도 상관없는데, 이건 안치된 고인이 아예 교회의 일부가 되었다는 식의 취급이다. 참고로, 당연하지만, 아무나 교회 내부에 안치될 수 없다!!
이 무덤만은 밟는 게 금지라 장례식을 할 때에도 관을 운구하는 사람들이 여기만은 피해서 걸어가는 걸 볼 수 있다.
[image]바로 이것. 왕가의 결혼식에도 저 자리는 절대 밟지 않는다.
1923년 4월 26일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결혼식에서 엘리자베스가 입장하던 중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오빠 퍼거스를 추도하며 무명 용사의 무덤 위에 부케를 올렸는데, 이후 로열 웨딩이 있을 때마다 신부의 부케를 무명 용사의 무덤 위에 올려놓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image]2011년,
캐서린 미들턴의 부케
[image]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국 국빈 방문 때 참배한 적이 있다. 무덤 주변의 조화는
양귀비로, 영국에선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추도하는 꽃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 묻힌 왕족들 중에서 군주는 '''
굵은 붉은색 글씨'''로 강조했다.
'''왕족'''
|
피장자
| 출생
| 사망
| 안장
| 비고
|
'''참회왕 에드워드'''
| 1003.
| 1066.01.05.
| 1066.01.06.
|
|
웨식스의 에디스
| 1025.
| 1075.12.18.
|
| 참회왕 에드워드의 아내
|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 1080.
| 1118.05.01.
| 1118.
| 헨리 1세의 첫째 아내
|
'''잉글랜드의 헨리 3세'''
| 1207.10.01.
| 1272.11.16.
| 1272.11.20.
|
|
1대 랭커스터 백작 곱사등이 에드워드
| 1245.01.16.
| 1296.06.05.
|
| 헨리 3세와 엘레오노르의 2남
|
캐서린
| 1253.11.25.
| 1257.05.03.
|
| 헨리 3세와 엘레오노르의 3녀
|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 1239.06.17.
| 1307.07.07.
| 1307.10.27.
|
|
카스티야의 엘레오노르
| 1241.
| 1290.11.28.
| 1290.11.17.
| 에드워드 1세의 첫째 아내
|
캐서린
| 1264.06.17.
| 1264.09.05.
|
| 에드워드 1세와 엘레오노르의 2녀
|
조앤
| 1265.
| 1265.09.07.
|
| 에드워드 1세와 엘레오노르의 3녀
|
존
| 1266.07.13.
| 1271.08.03.
|
| 에드워드 1세와 엘레오노르의 1남
|
헨리
| 1267.07.13.
| 1274.10.14.
|
| 에드워드 1세와 엘레오노르의 2남
|
바르 백작부인 엘레오노르
| 1269.06.18.
| 1297.08.29.
| 1298.10.12.
| 에드워드 1세와 엘레오노르의 4녀
|
체스터 백작 알폰소
| 1273.11.24.
| 1284.08.19.
| 1284.08.26.
| 에드워드 1세와 엘레오노르의 3남
|
베렝가리아
| 1276.05.01.
| 1277.
|
| 에드워드 1세와 엘레오노르의 8녀
|
성명 미상
| 1277.
| 1278.
|
| 에드워드 1세와 엘레오노르의 9녀
|
1대 켄트 백작 우드스톡의 에드먼드
| 1301.08.05.
| 1330.03.19.
|
| 에드워드 1세와 마거릿의 2남
|
1대 콘월 백작 엘섬의 존
| 1316.08.25.
| 1336.09.13.
|
| 에드워드 2세와 이사벨라의 2남
|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
| 1312.11.13.
| 1377.06.21.
| 1377.07.05.
|
|
헤이너트의 필리파
| 1314.06.24.
| 1369.08.15.
| 1370.01.09.
| 에드워드 3세의 아내
|
'''잉글랜드의 리처드 2세'''
| 1367.01.06.
| 1400.02.14.
| 1413.
|
|
보헤미아의 앤
| 1366.07.11.
| 1394.07.11.
| 1394.08.04.
| 리처드 2세의 첫째 아내
|
'''잉글랜드의 헨리 5세'''
| 1386.
| 1422.08.31.
| 1422.11.07.
|
|
발루아의 캐서린
| 1401.10.27.
| 1437.01.03.
| 1437.
| 헨리 5세의 아내
|
요크의 마거릿
| 1472.04.10.
| 1472.12.11.
| 1472.
|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의 4녀
|
1대 요크 공작 슈루즈버리의 리처드
| 1473.08.17.
| 1483.
| 1674.
|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의 2남
|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5세'''
| 1470.11.02.
| 1483.07.29.
| 1674.
| 1674년 런던탑에서 발견된 유골이 매장
|
앤 네빌
| 1456.06.11.
| 1485.03.16.
| 1485.03.25.
| 리처드 3세의 아내
|
마거릿 보퍼트
| 1443.05.31.
| 1509.06.29.
| 1509.
| 헨리 7세의 어머니
|
'''잉글랜드의 헨리 7세'''
| 1457.01.28.
| 1509.04.21.
| 1509.05.11.
| 튜더 왕조의 개창자
|
요크의 엘리자베스'''
| 1466.02.11.
| 1503.02.11.
| 1503.02.24.
| 에드워드 4세의 장녀이며 헨리 7세의 아내
|
엘리자베스 튜더
| 1492.07.02.
| 1495.09.14.
| 1495.09.27.
|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의 2녀
|
서머싯 공작 에드먼드
| 1499.02.21.
| 1500.06.19.
| 1500.
|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의 3남
|
캐서린 튜더
| 1503.02.02.
| 1503.02.10.
| 1503.
|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의 4녀
|
클레페의 앤'''
| 1515.09.22.
| 1557.07.16.
| 1557.08.03.
| 헨리 8세의 넷째 아내
|
콘월 공작 헨리
| 1511.01.01.
| 1511.02.22.
| 1511.
| 헨리 8세와 캐서린의 1남
|
콘월 공작 헨리
| 1514.12.
| 1514.12.
| 1514.
| 헨리 8세와 캐서린의 3남
|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6세'''
| 1537.10.12.
| 1553.07.06.
| 1553.08.08.
| 헨리 8세와 제인 시모어의 아들
|
'''잉글랜드의 메리 1세'''
| 1516.02.18.
| 1558.11.17.
| 1558.12.14.
| 피의 메리
|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 1533.09.07.
| 1603.03.24.
| 1603.04.28.
| 처녀 여왕
|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
| 1542.12.08.
| 1587.02.08.
| 1612.10.28.
| 스코틀랜드 여왕이며 제임스 1세의 어머니
|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 1566.06.19.
| 1625.03.27.
| 1625.05.17.
|
|
덴마크의 앤
| 1574.12.12.
| 1619.03.04.
| 1619.05.13.
| 제임스 1세의 아내
|
웨일스 공 헨리 프레더릭
| 1594.01.29.
| 1612.11.06.
| 1612.12.07.
| 제임스 1세와 앤의 1남
|
팔츠 선제후비 엘리자베스 스튜어트[12] 1623년 남편인 프리드리히 5세가 페르디난트 2세의 보헤미아 왕위를 찬탈하여 제국 파면 당함에 따라 선제후비의 지위 상실. 1648년 복권. 자세한 것은 30년 전쟁 참고.
| 1596.08.19.
| 1662.02.13.
| 1662.02.17.
| 제임스 1세의 앤의 1녀, 조지 1세의 조모
|
라인 궁중백 루프레히트[13]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의 아들(팔츠-짐메른계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로 프리드리히가 30년 전쟁 초반에 투른 백작 등 보헤미아 신교도에 의해 페르디난트 2세 대신 보헤미아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페르디난트 휘하 장수인 틸리 백작에게 패해서 망명한 후 이 사람은 영국으로 오게 된다. 이후 영국 내전에서 왕당파로 참전한다. 작위는 컴벌랜드 공작. 참고로 팔츠 선제후위는 1623년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 가문의 막시밀리안 1세에게 넘어가지만 1648년 30년 전쟁의 결과 다시 팔츠계 비텔스바흐 가문에게 돌아온다. 이후 직계는 1685년 단절되고 종친인 팔츠-노이부르크 가문이 뒤를 잇는다. 그러나 이 집안도 1742년 단절되고 바이에른계도 1777년 단절됨에 따라 팔츠-츠바이브뤼켄의 카를 테오도르가 '''바이에른과 팔츠의 선제후'''로서 비텔스바흐의 두 영지를 통합한다. 이후 그가 후사 없이 죽어 12촌인 막시밀리안 요제프가 뒤를 잇고 지금까지 그의 후손들로 이어진다.
| 1619.12.17.
| 1682.11.19.
| 1682.
|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의 3남
|
메리 스튜어트
| 1605.04.08.
| 1607.09.16.
| 1607.09.23.
| 제임스 1세와 앤의 3녀
|
소피아 스튜어트
| 1606.06.22.
| 1606.06.23.
| 1606.
| 제임스 1세와 앤의 4녀
|
콘월과 로스시 공작 찰스
| 1629.03.13.
| 1629.03.13.
| 1629.
| 찰스 1세와 헨리에타 마리아의 1남
|
프린세스 로열 메리'''[14]
| 1631.11.04.
| 1660.12.24.
| 1660.12.29.
| 찰스 1세와 헨리에타 마리아의 1녀
|
앤 스튜어트
| 1637.03.17.
| 1640.11.05.
| 1640.12.08.
| 찰스 1세와 헨리에타 마리아의 3녀
|
캐서린 스튜어트
| 1639.06.29.
| 1639.06.29.
| 1639.
| 찰스 1세와 헨리에타 마리아의 4녀
|
글로스터 공작 헨리
| 1640.07.08.
| 1660.09.18.
| 1660.09.21.
| 찰스 1세와 헨리에타 마리아의 4남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찰스 2세'''
| 1630.05.29.
| 1685.02.06.
| 1685.02.14.
| 왕정복고
|
요크와 올버니 공작부인 앤 하이드
| 1637.03.12.
| 1671.03.31.
| 1671.04.05.
| 제임스 2세의 첫째 아내
|
캐서린 로라 스튜어트
| 1675.01.10.
| 1676.10.03.
| 1676.
| 제임스 2세와 메리의 1녀
|
이저벨 스튜어트
| 1676.08.28.
| 1681.03.02.
| 1681.03.04.
| 제임스 2세와 메리의 2녀
|
케임브리지 공작 찰스
| 1677.11.07.
| 1677.12.12.
| 1677.12.13.
| 제임스 2세와 메리의 1남
|
샬럿 머리아 스튜어트
| 1682.08.16.
| 1682.10.16.
| 1682.10.18.
| 제임스 2세와 메리의 4녀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메리 2세'''
| 1662.04.30.
| 1694.12.28.
| 1695.03.05.
| 공동왕
|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
| 1650.11.04.
| 1702.03.08.
| 1702.04.12.
|
'''그레이트브리튼의 앤'''
| 1665.02.06.
| 1714.05.01.
| 1714.08.24.
|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왕
|
컴벌랜드 공작 덴마크의 조지
| 1653.04.02.
| 1708.10.28.
| 1708.11.13.
| 앤 여왕의 부군
|
성명 미상
| 1684.05.12.
| 1684.05.12.
| 1684.05.13.
| 앤과 조지의 1녀
|
메리
| 1685.06.02.
| 1687.02.08.
| 1867.02.10.
| 앤과 조지의 2녀
|
앤 소피아
| 1686.05.12.
| 1687.02.02.
| 1687.02.04.
| 앤과 조지의 3녀
|
성명 미상
| 1687.01.21.
| 1687.01.21.
| 1687.
| 앤과 조지의 자식, 유산
|
성명 미상
| 1687.10.22.
| 1687.10.22.
| 1687.10.22.
| 앤과 조지의 아들, 사산
|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
| 1689.07.24.
| 1700.07.30.
| 1700.08.09.
| 앤과 조지의 1남
|
메리
| 1690.10.14.
| 1690.10.14.
| 1690.10.14.
| 앤과 조지의 4녀
|
조지
| 1692.04.17.
| 1692.04.17.
| 1692.04.18.
| 앤과 조지의 2남
|
성명 미상
| 1693.03.23.
| 1693.03.23.
| 1693.03.24.
| 앤과 조지의 딸, 사산
|
성명 미상
| 1700.01.24.
| 1700.01.24.
| 1700.
| 앤과 조지의 아들, 사산
|
'''그레이트브리튼의 조지 2세'''
| 1683.11.10.
| 1760.10.25.
| 1760.11.11.
|
|
안스바흐의 캐럴라인
| 1683.03.01.
| 1737.11.20.
| 1737.12.17.
| 조지 2세의 아내
|
웨일스 공 프레더릭 루이스
| 1707.02.01.
| 1751.03.31.
| 1751.04.13.
| 조지 2세와 캐럴라인의 1남
|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어거스타
| 1719.11.30.
| 1772.02.08.
| 1772.02.15.
| 프레더릭 루이스의 아내
|
요크와 올버니 공작 에드워드 어거스터스
| 1739.03.25.
| 1767.09.17.
| 1767.11.01.
| 프레더릭 루이스와 어거스타의 2남
|
엘리자베스 캐럴라인
| 1740.12.30.
| 1759.09.04.
| 1759.09.14.
| 프레더릭 루이스와 어거스타의 2녀
|
컴벌랜드와 스트래선 공작 헨리
| 1745.11.27.
| 1790.09.18.
| 1805.08.25.
| 프레더릭 루이스와 어거스타의 4남
|
루이즈 앤
| 1749.03.08.
| 1768.05.13.
| 1768.05.21.
| 프레더릭 루이스와 어거스타의 3녀
|
프레더릭 윌리엄
| 1750.05.13.
| 1765.12.29.
| 1766.01.04.
| 프레더릭 루이스와 어거스타의 5남
|
어밀리아 소피아 엘리너[15]
| 1711.05.30.
| 1786.10.31.
| 1786.11.11.
| 조지 2세와 캐럴라인의 2녀
|
캐럴라인 엘리자베스
| 1713.06.10.
| 1757.12.28.
| 1758.01.05.
| 조지 2세와 캐럴라인의 3녀
|
조지 윌리엄
| 1717.11.13.
| 1718.02.17.
| 1728.02.23.
| 조지 2세와 캐럴라인의 2남
|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어거스터스
| 1721.04.15.
| 1765.10.31.
| 1765.11.10.
| 조지 2세와 캐럴라인의 3남
|
5.3. 신랑(Nave)
'''신랑 (Nave)'''
|
피장자
| 출생
| 사망
| 안장
| 비고
|
체스터 백작 알폰소
| 1273.11.24.
| 1284.08.19.
| 1284.08.26.
| 에드워드 1세와 엘레오노르의 3남
|
2대 레넉스 공작 루도빅 스튜어트
| 1574.09.29.
| 1624.02.16.
| 1624.
| 정치가
|
토머스 톰피언
| 1639.
| 1713.11.20.
| 1713.
| 시계제조공·기계공 [16]
|
아이작 뉴턴 경
| 1642.12.25.
| 1727.03.20.
| 1727.03.28.
| 물리학자·수학자·천문학자·연금술사
|
프랜시스 애터베리
| 1663.03.06.
| 1732.02.02.
| 1732.05.12.
| 지식인·정치가·주교
|
조지 그레이엄
| 1673.07.07.
| 1751.11.20.
| 1751.
| 시계제조공·발명가·지구물리학자
|
존 안드레
| 1750.05.02.
| 1780.10.02.
| 1821.11.28.
| 육군장교 [17] 미국 독립전쟁 때 스파이로 활동하던 중 대륙군에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
로버트 스티븐슨
| 1803.10.16.
| 1859.10.12.
| 1859.
| 철도기술자·교량설계자 [18]
|
찰스 베리 경
| 1795.05.23.
| 1860.05.12.
| 1860.05.22.
| 건축가 [19]
|
10대 던도널드 백작 토머스 코크런
| 1775.12.14.
| 1860.10.30.
| 1860.
| 해군제독
|
데이비드 리빙스턴
| 1813.03.19.
| 1873.05.01.
| 1874.04.18.
| 선교사·탐험가
|
찰스 라이엘 경
| 1797.11.14.
| 1875.02.22.
| 1875.
| 지질학자 [20] 근대 지질학의 체계를 정립해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
조지 길버트 스콧 경
| 1811.07.13.
| 1878.03.27.
| 1878.04.06.
| 건축가·역사가
|
조지 에드먼드 스트리트
| 1824.06.20.
| 1881.12.18.
| 1881.
| 건축가
|
찰스 로버트 다윈
| 1809.02.12.
| 1882.04.19.
| 1882.04.26.
| 생물학자
|
1대 버뎃쿠츠 여남작 앤절라 버뎃쿠츠
| 1814.04.21.
| 1906.12.30.
| 1907.01.05.
| 대부호·자선가 [21] 할아버지 토마스 쿠츠로부터 쿠츠 은행의 주식 절반을 상속받아 갑부가 되었으나 자신의 재산을 자선활동에 아낌없이 출연한 공로가 인정되어 1871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았다.
|
1대 켈빈 남작 윌리엄 톰슨
| 1824.06.26.
| 1907.12.17.
| 1907.12.23.
| 수리물리학자·공학자 [22] 전자기학·열역학·지구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대서양 횡단 케이블의 부설을 성공시켰다. 절대온도의 단위인 켈빈이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으로 유명하다.
|
'''무명 용사의 무덤'''
| -
| 1920.11.11.
| 본 항목의 '무명 용사의 무덤' 참조.
|
앤드루 보너 로
| 1858.09.16.
| 1923.10.30.
| 1923.
| 제35대 총리
|
1대 플러머 자작 허버트 플러머
| 1857.03.13.
| 1932.07.16.
| 1932.
| 육군원수
|
1대 앨런비 자작 에드먼드 앨런비
| 1861.04.23.
| 1936.05.14.
| 1936.05.19.
| 육군원수
|
1대 러더퍼드 남작 어니스트 러더퍼드
| 1871.8.30.
| 1937.10.19.
| 1937.10.25.
| 핵물리학자 [23]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원소붕괴와 방사화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0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
조지프 존 톰슨
| 1856.12.18.
| 1940.08.30.
| 1940.09.04.
| 물리학자 [24] 전자와 동위원소의 발견자로,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제자들 가운데서 7명이 노벨상을 받았는데, 어니스트 러더퍼드도 톰슨의 제자였다.
|
네빌 체임벌린
| 1869.03.18.
| 1940.11.09.
| 1940.
| 제60대 총리
|
1대 윌링던 후작 프리먼 프리먼토머스
| 1866.09.12.
| 1941.08.12.
| 1941.
| 제13대 캐나다 총독, 제22대 인도 총독
|
비어트리스 웨브
| 1858.01.22.
| 1943.04.30.
| 1947.12.
| 사회학자·경제학자·사회주의자 [25]
|
1대 패스필드 남작 시드니 웨브
| 1859.07.13.
| 1947.10.13.
| 사회학자·경제학자
|
어니스트 베빈
| 1881.03.09.
| 1951.04.14.
| 1951.06.08.
| 정치가
|
1대 애틀리 백작 클레멘트 애틀리
| 1883.01.03.
| 1967.10.08.
| 1967.11.07.
| 제43대 총리
|
유스트 더 블랑
| 1908.11.14.
| 1968.01.01.
| 1968.
| 케이프타운 대주교[26] '아파르트헤이트의 골칫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차별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
|
스티븐 호킹
| 1942.01.08.
| 2018.03.14.
| 2018.06.15.
| 물리학자
|
5.4. 북쪽 익랑(North Transept)
'''북쪽 익랑 (North Transept)'''
|
피장자
| 출생
| 사망
| 안장
| 비고
|
1대 랭커스터 백작 에드먼드
| 1245.01.16.
| 1296.06.05.
|
| 헨리 3세의 아들, 랭커스터 왕가의 시조
|
휴 본
| ?
| 1536.08.28.
|
| 묘비 유실
|
토머스 브라운
| 1535.
| 1585.05.02.
|
| 신부
|
조지 버든
| ?
| 1593.
|
| 묘비 유실
|
존 폭스
| ?
| 1623.
| 1623.09.27.
|
|
토머스 블라그
| 1613.
| 1660.11.04.
|
| 군인
|
레이디 우드
| ?
| 1665.
| 1665.04.01.
| 헨리 우드 경의 아내
|
에드워드 브루턴 경
|
|
| 1665.06.26.
| 군인
|
크리스토퍼 머즈그레이브
| 1664.07.02.
| 1718.
| 1718.09.16.
| 정치가
|
새뮤얼 브래드퍼드
| 1652.12.20.
| 1731.05.17.
| 1731.05.22.
| 주교
|
앨루어드 클라크
| 1696.
| 1742.05.31.
|
| 작가·신부
|
조지 헤이스팅스 페르디난도 헤이스팅스
| 1730.03.29. 1732.03.23.
| 1743.12.20. 1743.04.21.
| 1743.
| 헌팅던 백작 부부 테오필루스와 셀리나의 아들
|
1대 채텀 백작 윌리엄 피트[27]
| 1708.11.15.
| 1778.05.11.
|
| 제10대 총리
|
존 블레어
| 1705
| 1784.06.24.
|
| 신부
|
1대 맨스필드 백작 윌리엄 머리
| 1705.03.02.
| 1793.03.20.
|
| 변호사·판사·정치가
|
윌리엄 피트[28]
| 1759.05.28.
| 1806.01.23.
|
| 제16·18대 총리
|
2대 런던데리 후작 로버트 스튜어트[29]
| 1769.06.18.
| 1822.08.12.
|
| 정치가·외교관
|
1대 콜체스터 남작 찰스 애보트
| 1757.10.14.
| 1829.05.08.
| 1829.05.14.
| 법정변호사·정치가
|
존 맬컴 경
| 1769.05.02.
| 1833.05.30.
|
| 군인·정치가·역사가
|
윌리엄 윌버포스
| 1759.08.24.
| 1833.07.29.
| 1833.08.03.
| 정치가[30]
|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 1809.12.29.
| 1898.05.19.
|
| 제41·43·45·47대 총리
|
5.5. 남쪽 익랑(South Transept)
이곳에는 사원 내부에서도 문인들이 많이 안장되어 있어서 통칭 '시인의 코너(Poets' Corner)'라고도 한다.
'''남쪽 익랑 (South Transept)'''
|
피장자
| 출생
| 사망
| 안장
| 비고
|
로버트 하울리
| ?
| 1378.08.11.
| 1378.
| 군인
|
니콜라스 리틀링턴
| ?
| 1386.11.29.
|
| 신부·수도원장
|
제프리 초서
| 1343.
| 1400.10.25.
|
| 작가·시인, <캔터베리 이야기>의 저자
|
윌리엄 베델
| ?
| 1518.07.03.
|
|
|
레이첼 브리검
| 1553.03.
| 1557.06.
| 1557.06.21.
| 니콜라스 브리검의 딸
|
에드먼드 스펜서
| 1552.
| 1599.01.13.
|
| 시인
|
게이브리얼 굿맨
| 1528.11.06.
| 1601.06.17.
|
| 웨스트민스터 참사회장
|
프랜시스 보몬트
| 1584.
| 1616.03.06.
|
| 시인
|
윌리엄 캠던
| 1551.05.02.
| 1623.11.09.
| 1623.11.19.
| 역사가·지지학자·문장관
|
로버트 레인 경
| ?
| 1624.
| 1624.10.02.
| 정치가, 묘비 유실
|
존 보몬트 경
| 1582.
| 1627.04.
| 1627.04.19.
| 시인
|
피어스 그리피스
| ?
| 1628.08.28.
|
| 해적, 묘비 유실
|
마이클 드레이턴
| 1563.
| 1631.12.23.
|
| 시인
|
휴 홀랜드
| 1569.
| 1633.07.23.
| 1633.07.23.
| 작가·시인
|
토머스 파
| 1483?.
| 1635.11.14.
|
| '''152세'''까지 생존한 것으로 알려짐
|
벤 존슨
| 1572.06.11.
| 1637.08.16.
| 1637.08.
| 시인·극작가·배우
|
위릴엄 쿼터메인의 아내
| ?
| ?
| 1661.07.15.
|
|
윌리엄 로
| ?
| 1645.
| 1645.09.21.
| 신부
|
조지 제이
| ?
| ?
| 1661.11.05.
|
|
존 오스벨더스턴
| 1601.
| 1666.03.01.
| 1666.03.03.
| 시인
|
토머스 치핀치
| 1600.
| 1666.04.08.
| 1666.04.08.
| 시인·극작가·수필가
|
에이브러햄 카울리
| 1618.
| 1667.07.28.
| 1667.08.03.
| 시인·극작가·수필가
|
윌리엄 대버넌트 경
| 1606.03.30.
| 1668.04.07.
| 1668.04.09.
| 시인·극작가
|
로버트 머리 경
| 1608.
| 1673.07.04.
| 1673.07.06.
| 수학자·화학자
|
존 데넘 경
| 1615.
| 1669.03.19.
| 1669.03.23.
| 시인, 묘비 유실
|
윌리엄 우트럼
| 1625.
| 1679.08.23.
| .
| 신부
|
헨리 카
| 1620.
| 1652.
| 1690.08.25.
|
|
존 드라이든
| 1631.08.09.
| 1700.05.01.
| 1700.05.13.
| 시인·극작가·비평가
|
샤를 드 생드니
| 1614.
| 1703.09.09.
| 1703.
| 작가·군인
|
윌리엄 버나비
| 1673.
| 1706.11.08.
|
| 극작가
|
프랜시스 드 브레발
| ?
| 1708.
| 1708.01.29.
|
|
시어도어 건터
| 1620.
| 1713.
| 1713.01.22.
|
|
제임스 사르트르
|
|
| 1713.09.05.
| 신부
|
에드워드 워턴홀
| 1635.
| 1713.11.12.
| 1713.
| 주교
|
리처드 루카스
| 1648.
| 1715.06.29.
| 1715.
| 신부
|
로버트 사우스
| 1634.09.04
| 1716.07.08.
| 1716.
| 신부·자선가
|
애넌데일 후작부인 소피아 페어홀름
| 1668.03.19.
| 1716.12.13.
| 1716.12.18
|
|
데임 메리 스틸
| 1678.
| 1718.12.26.
|
| 리처드 스틸 경의 아내
|
슐렌베르크 남작 프리드리히 빌헬름
| 1680.01.24.
| 1720.01.03.
| 1720.01.14.
| 시인
|
윌리엄 크레이그
|
| 1720.01.19.
|
| 신부
|
제인 우트럼
| ?
| 1721.10.04.
| 1721.
| 윌리엄 우트럼의 아내
|
윌리엄 콩그리브
| 1670.01.24.
| 1729.01.19.
| 1729.
| 극작가·시인
|
앤 올드필드
| 1683.
| 1730.10.23.
| 1730.10.27.
| 배우
|
에드워드 애스핀월
| 1678.01.01.
| 1732.08.03.
| 1732.08.08.
| 작가·신부
|
존 게이
| 1685.06.30.
| 1732.12.04.
| 1732.12.04.
| 극작가·시인
|
에이드리언 드리프트
| 1675.
| 1737.03.05.
|
| 묘비 유실
|
2대 아가일 공작 존 캠벨
| 1680.10.10.
| 1743.10.04.
| 1743.10.15.
| 군인
|
조지 프레드릭 헨델
| 1685.02.23.
| 1759.04.14.
| 1759.04.20.
| 작곡가
|
조슈아 워드
| 1685.
| 1761.12.21.
| 1761.
| 의사
|
6대 크랜스턴 남작 제임스 크랜스턴
| ?
| ?
| 1773.07.14.
|
|
아킬레스 프레스턴
| 1733.
| 1764.07.12.
| 1778.06.12.
| 군인
|
데이비드 개릭
| 1717.02.19.
| 1779.01.20.
| 1779.
| 배우·극작가
|
조지 제임스 리델
| 1759.
| 1783.04.22.
| 1783.
| 군인
|
새뮤얼 존슨
| 1709.09.18.
| 1784.12.13.
| 1784.12.
| 시인·평론가
|
존 핸더슨
| 1747.03.08.
| 1785.12.03.
|
| 배우
|
로버트 애덤
| 1728.07.03.
| 1792.03.03.
| 1792.
| 건축가
|
바바라 심슨
| 1740.
| 1795.03.02.
|
|
|
제임스 맥퍼슨
| 1736.10.27.
| 1796.02.17.
| 1796.
| 시인
|
윌리엄 챔버스
| 1723.02.23.
| 1796.03.10.
| 1796.
| 건축가
|
리처드 컴벌랜드
| 1732.02.19.
| 1811.05.07.
| 1811.
| 작가·극작가
|
제임스 와이엇
| 1746.08.03.
| 1813.09.04.
|
| 건축가
|
윌리엄 빈센트
| 1739.11.02.
| 1815.12.21.
| 1815.12.29.
| 신부·웨스트민스터 수석사제
|
리처드 셰리든
| 1751.11.04.
| 1816.07.07.
| 1816.
| 극작가·정치가
|
에바 개릭
| 1724.02.29.
| 1822.10.16.
|
| 데이비드 개릭의 아내
|
윌리엄 기퍼드
| 1756.
| 1826.12.31.
| 1827.
| 작가
|
존 아일랜드
| 1781.09.08.
| 1842.09.02.
| 1842.
|
|
토머스 캠벨
| 1777.07.27.
| 1844.06.15.
| 1844.
| 시인
|
헨리 프랜시스 케리
| 1722.12.06.
| 1844.08.14.
| 1844.
| 작가·번역가
|
1대 매콜리 남작 토머스 매콜리
| 1800.10.25.
| 1859.12.28.
| 1860.01.09.
| 역사가·정치가
|
찰스 디킨스
| 1812.02.07.
| 1870.06.09.
| 1870.06.14.
| 소설가
|
조지 그로트
| 1794.11.17.
| 1871.06.18.
| 1871.06.24.
| 역사가·정치가
|
윌리엄 스포티스우드
| 1825.01.11.
| 1883.06.27.
| 1883.
| 화가
|
로버트 브라우닝
| 1812.05.07.
| 1889.12.12.
| 1889.12.31.
| 시인·극작가
|
1대 테니슨 남작 앨프리드 테니슨
| 1809.08.06.
| 1892.10.6.
| 1892.10.11.
| 시인
|
헨리 어빙 경
| 1838.02.06.
| 1905.10.13.
| 1905.10.20.
| 배우·극장경영자
|
토머스 하디
| 1840.06.02.
| 1928.01.11.
| 1928.01.16.
| 소설가·시인
|
러디어드 키플링
| 1865.12.30.
| 1936.01.18.
| 1936.01.23.
| 소설가·작가. <정글북>의 저자[31] 영어권 작가로는 처음으로 1907년 노벨문학상 수상.
|
길버트 머레이
| 1866.01.02.
| 1957.05.20.
| 1957.07.05.
| 시인
|
레이프 본 윌리엄스
| 1872.10.12.
| 1958.08.26.
| 1958.09.19.
| 작곡가
|
존 메이스필드
| 1878.06.01.
| 1967.05.12.
| 1967.06.20.
| 작가·계관시인
|
위스턴 휴 오든
| 1907.02.21.
| 1973.09.29.
| 1974.10.02.
| 시인
|
애덤 폭스
| 1883.07.15.
| 1977.01.17.
| 1977.01.
| 시인·신부
|
로런스 올리비에 남작
| 1907.05.22.
| 1989.07.11.
| 1991.09.16.
| 배우·프로듀서·연출가
|
6. 로열 웨딩
영국(잉글랜드) 왕족은 볼드체로 표시.
7. 기타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제정한 곳이다.
- 영국과 미국에서는 위인들이 안장되는 영예로운 장소로 여겨진다.
- 호머 헐버트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 원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 윈스턴 처칠은 자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원에 묻히지 않았는데, 처칠이 부모의 무덤 곁에 묻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정문에는 그를 기리는 석판이 깔려 있고, 여기에는 "윈스턴 처칠을 기억하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 마이클 패러데이는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사후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안장될 것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혜택들도 거의 대부분 거절했다고.
-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찰스 다윈 역시 이곳에 묻혀 있다. 여기
- 프랑스의 작가이자 학자인 볼테르는 아이작 뉴턴이 국장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을 본 후 "영국에서는 일개 교수가 자신의 천직에 뛰어났단 이유만으로 위대한 왕처럼 묻히는 일이 벌어진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프랑스에 비해 영국은 과학을 중시했었고, 비교적 계급보다는 실리를 추구했었다는 이야기.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발원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편 볼테르는 말년에 교회에 대한 비판을 했기 때문에 파리에선 기독교식으로 매장되는 것이 거부되었고, 친구들이 몰래 상파뉴의 한 교회에 묻어야 했다. 훗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뒤에야 국립묘지로 개장된 팡테옹에 이장되었다.
- 사원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 중에는 배틀 오브 브리튼에서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조국을 구한 영국 공군 장병들을 기리기 위한 것도 있다.
- 성당 정면쪽의 신랑(nave)과 외부의 클로이스터(회랑)는 입장이 무료이지만 성당 안쪽인 성가대석(choirs) 등은 입장료가 20파운드 이상이다. 실내에서는 촬영 금지이며, 클로이스터 근처는 사유지라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으니 주의.
- 역사유적이기에 앞서 교회이므로 매주 일요일 성공회의 예배인 감사성찬례나 성무일과(아침기도와 저녁기도)에 참석할 수 있다. 장엄하기로 유명한 감사성찬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고 싶으면 일요일 오전 11:15 예배에 참석하면 된다. 단 동쪽 문 앞에서 줄을 서야한다. 또 매일 저녁 5시에 성공회의 전통적인 전례인 "노래로 드리는 저녁기도(choral evensong)"에도 참석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독교 전례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 런던 지하철 웨스트민스터 역과 세인트 제임스 파크 역에서 내리면 지척이다. 물론 웨스트민스터 역은 관광객으로 매우 혼잡하다(...)
-
8. 대중문화의 웨스트민스터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