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왕(주)
1. 개요
주나라의 제5대 왕이자, 천자. 재위 기간은 55년.[1] 소왕의 아들이며, 주 공왕의 아버지다. 죽서기년(竹書紀年)과 함께 출토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소설 <목천자전(穆天子傳)>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2. 견융 정벌과 서나라 정벌
목왕은 소왕의 원정으로 국력이 쇠했기 때문에 그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인재 등용에 힘썼다. 백경(伯臩)을 태복에 임명했고, 경명(冏命)을 반포해 어느 정도 국력을 회복하였다.[2] 그리고 어느 정도 국력이 다시 강성해지자 주 목왕은 견융족을 정벌하고자 했다. 그러나 제공인 모보(謀父)가 내실을 다지자고 간했으나 목왕은 듣지 않았다.
목왕 12년[3] 봄, 견융족 토벌에 나섰으나 이득을 얻지 못했다.
당시 제후들이 화목하지 못했는데,[4] 죄 중에서 사안이 의심스러운 것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보후가 제안했다해서 보형이라고 했다.[5]
서(徐)나라[6] 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목왕은 그들을 토벌하였다.[7]
3. 만년까지
목왕 14년, 기련산 아래 흑수 유역의 서역 마술사들이 여러 기예를 보이자 주 목왕은 그들을 거두어 손님으로 대우했다. 이들이 외모가 많이 다르고 옥[8] 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보면 아마도 토하라인이나 사카인인 듯 하다.
목왕 19년, 9사[9] 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쳤다.
목왕 39년, 도산에서 회맹했다.[10]
목왕 40년 봄, 목왕은 남정으로 들어가 여후를 사구에 봉했다.[11]
목왕 51년, 여후에게 형벌을 만들게 하니 이것을 여형이라고 불렀다.
목왕 55년, 그가 죽고 태자인 희예호가 즉위하니 그가 공왕이다.
4. 여담
전설에 따르면 그는 목왕 팔준이라는 8마리의 명마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 다만 나무위키 주나라 문서와 재위 기간이 다른 현상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것은 공화(共和) 시기 이전의 사료가 난리로 인해서 사료가 유실되어 일어난 현상이다. 최초의 기전체 사서인 사기에는 연대 고증을 할 수 없어서, 사마천이 포기를 하고, 연도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니.....[2] 이 대목은 사기 주 본기의 주 목왕 대목을 참조해 만들었는데, 그 자세한 내용이 전하지 않았으나 당시 사회 모순에 대해 대처해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3] 연도가 불분명하니 그냥 이렇게 표기한다.[4] 이때부터 춘추시대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5] 사기에 나타난 최초의 벌금 기록이다.[6] 서나라는 후한 대의 서주 지역에 있는 나라다.[7] 단 이 때 망하지는 않았다. 춘추시대 때까지 서나라가 존속해있기 때문이다.[8] 주로 호탄에서 생산된다.[9] 사는 군대 단위로 여기서 사단이라는 부대 단위가 나왔다.[10] 이 행사는 매우 중요했는데, 이 회맹은 제후들의 단결을 다지는 의식이었다. 훗날 천자가 힘이 약해져 패자가 대신하게 된다. 이때만해도 천자의 권력은 강한 편이어서 천자 주도로 회맹이 가능했다.[11] 사구는 지금으로 치면 경찰 청장과 대법원장을 겸한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