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글라브 왕조
1. 개요
9세기 초 지방 통제 및 안정화를 위해 총독으로 파견되었으나. 행정 미비, 과확장 등으로 사실상 반쯤 독립국이 되어있다가 압바스 왕조가 멸망하자 완전히 독립국이 되었다가 10세기 초 파티마 왕조에게 멸망-흡수 당한다.
2. 배경
756년에 이베리아의 후우마이야 왕조, 789년에 모로코의 이드리시 왕조가 사실상 독립하면서 아바스 왕조의 하룬 알 라시드가 제국의 서부에 대한 통제력이 붕괴하는 것을 통감하고 독립 세력들의 동진을 막기 위해 튀니지의 카이르완에서 세력을 형성한 수니파 출신 이브라힘 이븐 알 아글라브를 이집트령의 서쪽 변경지역의 총독(아미르)으로 임명한 것이 아글라브 왕조의 시초이다.
그 이후로 아글라브 왕조는 아바스 왕조의 종주권을 존중하고 아바스 왕조에 적대적인 세력들의 동진을 막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나 9세기 중반 이후 이집트에도 툴룬 왕조 등 독립 왕조가 세워지며 아바스 중앙 정부와의 교류가 어려워지자 사실상 독립 세력이 된다.
3. 시칠리아 진출
아글라브 왕조는 카르타고의 선박 제조술을 이어받아 강력한 해군을 양성하였다. 동로마 제국과 지중해 중부의 해상 패권을 놓고 경쟁한 끝에 시칠리아를 정복하면서 시칠리아 에미르국이 세워졌다.
또한 해군력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등의 해안을 노략질하며 기독교 국가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4. 사회적 변화, 문화적 번영
튀니지 지역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주요 주교좌 중 하나인 카르타고 주교좌가 있어 기독교의 세가 강했고 7세기 초의 카르타고는 기독교 제국이었던 동로마 제국의 제2의 수도 역할을 할 정도였다. 이슬람화 이후에도 100년이 넘도록 다수로 남아있던 튀니지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아글라브 왕조의 번영과 유화정책으로 그 때에 이르러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무슬림이 되었다.
시칠리아를 정복하여 곡식과 소금이 풍부해진 아글라브 왕조의 번영은 카이로완의 대 모스크 (그랜드 모스크)에 투영되어 있다. 당시에 메카, 메디나, 다마스쿠스, 바그다드의 모스크와 함께 당대 최고의 모스크라고 불리던 대 모스크는 서부 이슬람의 본산이자 성지가 되기에 충분했다. (후에 코르도바, 카이로에도 대 모스크가 생기며 존재감은 줄긴 한다.)
5. 멸망
909년에 알 마디야에서 일어선 파티마 왕조에게 멸망당한다.
6. 기타 및 대중매체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867년 올드갓 시나리오로 시작하면 등장한다. 봉신들이 세가 크고 직할령이 적다는 디버프가 있기는 하지만 6천 정도의 둠스택을 무상으로 가지고 시작하며 마침 전성기 시절이라서 국력도 괜찮은 수준. 시작부터 동로마에 시칠리아 성전 명분으로 공격 중인데 하필 강성하기로 손꼽히는 마케도니아 왕조 시절이라 시작부터 좀 빡빡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