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니샤드
1. 개요
Upanisad"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존재가 그 뒤에도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당신에게서 지혜를 얻어
이 문제에 대한 궁금증을 풀게 해 주세요.[1]
이것이 세 번째 소원입니다."
<<카타 우파니샤드 제1부 1장 20절>>
비밀의 교의(敎義), 심의서(深義書)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에게 가까이 앉아 귓속말로 전해듣는 (진리)" 이라는 뜻. 힌두교와 불교 교리의 이론적 · 사상적 토대를 이루는, 동서양을 통틀어 자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철학적 사유들의 집대성. 대중에게 친숙한 업(業), 윤회(samsara) 등의 개념이 여기서 처음 정립되었으며, 언급한 두 종교뿐만 아니라 인도철학의 근간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2. 우파니샤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먼저 우파니샤드를 논하기 전에 베다에 관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해설집(브라흐마나(Brahmana))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파니샤드는 베다 전통의 맨 마지막 단계에서 형성되었고, 그 내용이 가히 베다 사상의 결정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베다의 끝'이라는 의미인 '베단타'라고도 불린다."그 문제에 대해서는
조차 의심을 품은 적이 있다.그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다.
내가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구나.
나찌께따[3]
여, 그것 대신에 다른 소원을 말하라."
<<카타 우파니샤드 제1부 1장 21절>>
베다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4] 은 불, 바람, 천둥, 태양과 같은 자연의 힘을 형상화하여 자연신으로 숭배하고, 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례용 서적을 전하고 모았다.
이렇게 만든 초기 베다시대에는 자연 신들에 대한 찬양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가 가장 중요한 인간 행위로 여겨졌지만, 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점차 여러 자연 신들이 하나의 신(세계신, 일체신)으로, 그리고 신이라기보다는 세계의 근원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발전했다. [5] 우파니샤드는 이런 베다의 사상을 계승하여 이것을 신이 아닌 인간이 주체가 되는 사색의 장에서 존재의 본질(아트만), 세상의 참모습(브라흐만)에 관한 고찰로 발전시켰다.
'''주의할 점은, 우파니샤드가 베다와 설정상 그 격을 나란히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찌됐건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수많은 해설서들 중 하나일 뿐이다.[6][7]
2.1. 제사 제일주의에 대한 반기
베다의 해설집들은 시대의 변화[8]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워진 각 베다의 내용을 분석하고 의미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는데, 제사 라는 행위에 치우친 해석에 반발한 사람들이 또 다른 해설집(아란야까(Aranyaka))를 통해 제사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제사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베다의 상징을 신이 아닌 인간의 입장[9] 에서 해석하고 발전시킨 것이 바로 우파니샤드다.'''"아버지, 그럼 저는 누구에게 바칠 건가요?"'''
<<카타 우파니샤드 제1부 1장 4절>
베다에서 우파니샤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제사의 형식주의와 권위는 점점 강화되다가 마침내 강한 저항에 부딪힌다. 형식적인 제례의식보다는 정성이 중요하고, 신에게 제사의 대가를 기대하기보다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반대 주장이 나온 것이다.
업과 윤회의 개념도 이러한 저항으로부터 나왔다. 제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선한 행위를 하면 선한 결과를 받고, 악한 행위를 하면 악한 결과를 받는다는 업 사상과 업으로 인한 결과를 받기위해 사람이 반복해서 세상에 태어난다는 윤회 사상이 등장한 것이다.
3. 저자에 관해
우파니샤드는 어떤 철학자 개인의 철학이 아니다. 베다를 해설하는 전통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도철학은 언제나 기존의 것에 해설을 붙이는 형식으로 발달했다. 베다는 물론이고, 기원전 1000년경부터 쓰여진 베다의 해설집에서도 계보의 흔적만 드물게 찾을 수 있을 뿐, 저자의 이름은 발견할 수 없다. 해설집의 마지막 부분인 우파니샤드도 철학자 개인이 아니라 전통을 중시하는 수많은 이름없는 철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11]"죽음의 신이여,
신들도 알고 싶어했고,
당신도 쉽게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시니
저는 더더욱 알아야겠습니다.
그처럼 심오한 가르침을 당신 말고 또 누가 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에겐 이것 말고 아무런 소원도 없습니다.'''[10]
"
<<카타 우파니샤드 제1부 1장 22절>>
이렇게 만들어진 우파니샤드의 형성 연대는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300여 년경이다. '우파니샤드'라는 이름이 붙은 우파니샤드 문헌은 200여 종이 있는데, 대표적인 우파니샤드들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이때 형성된 우파니샤드들은 인간 존재에 관한 깊은 사색을 담고있고, 특정한 철학자들의 철학을 펼친 것이 아니라 수백 년간 많은 철학자들이 남긴 어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해설집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인도 철학의 갈래를 낳게 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특정 철학이나 종파에 관계없이 후대에 영향을 크게 미친 고전 우파니샤드 18종을 고古우파니샤드라 하며, 이 페이지에서는 이것만을 다룬다. [12]
4. 우파니샤드에서는 무엇을 찾는가?
우파니샤드의 가장 큰 주제는 신이 아닌 인간 존재에 관한 탐구다. 우파니샤드에서는 기존의 베다가 풍부하게 보여 주던 자연 신들과 신들에 대한 제사가 오히려 관심에서 멀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불신과 근원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베다의 형식주의를 누른 것이다.브라흐만의 지혜를 구하는 자들이 서로 이야기하기를
과연 브라흐만은 세상의 근원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누구로 인해 우리는 살아 있는가.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 설 것인가.
브라흐만을 아는 자들이여!
누구에게 영감을 받고
우리가 이 모든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지 말해 보세.
시간, 본성, 필요성, 우연, 근원 물질, 자궁, 푸루샤[14]
.이것들이 세상의 근원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
이 모든 것들을 합한 것도
근원 아트만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리오,
또한 아트만도 기쁨과 슬픔에 매이니
세상의 원인이 되지 못하네.
<<슈웨타슈와따라 우파니샤드 제1장 1절>>
4.1. 개략적인 이해를 위한 용어들
4.1.1. 아트만과 브라흐마
- 아트만: 산스크리트어에서 '호흡, 숨'을 뜻하며, 절대 변하지 않는 초월적인 자아를 뜻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육체와 대비되어 윤회해도 변하지 않는 영혼에 해당한다.
- 브라흐마(브라만): 산스크리트어에서 '힘'을 뜻하며, 우주를 창조하고 일체를 지배하는 근본 원동력이다. 세계의 근원적 창조원리이며, 일체만물이 모두 브라만으로부터 나온다. 이후 힌두교에서 일체만물을 창조·지배하는 우주의 최고신 브라흐마(Brhama, 梵天)로 신격화되었다.
4.1.2. 마야(maya), 무명(無明)
우파니샤드에서는 사람이든 무엇이든 한번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 살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 사람이 살아가는 무대인 것이다. 배우가 연기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스스로 그 배역에 심취하듯, 사람도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그 역할에 심취한다. 그러나 배우도 연극이 끝나면 자기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집으로 간다. 그 집을 우파니샤드에서는 바로 우주의 본체이며 영혼인 브라흐만이라고 부른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세상이 연극 무대처럼 진짜 집이 아니고, 잠시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환영(幻影)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마야(maya)라고 하는데,''' 우주의 본체이며 창조의 근원인 브라흐만이 만들어놓은 그물망이라고도 하고,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마야를 환영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닌 환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세상은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사용하는 공간'''"일 뿐이라는 뜻이다. 브라흐만은 우주의 본체이고,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해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지만 세상은 늘 변하고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환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살고있는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자만'하거나 반대로 '자포자기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지혜가 부족한 사람, 즉 무지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무명'''(無明, avidhya)[15] 이다. 그러니깐 무명은 우리 눈을 가려 자신의 참모습, 우주의 근원을 볼 수 없게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이것은 거울과 같이 맑은 마음에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지혜를 담아야만 없앨 수 있다.
4.1.3. 업과 윤회, 해탈
문서 참조.
4.1.4. 신의 개념과 신적 존재들
우파니샤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 복을 구하는 기복 신앙과 이론에 반대한다. 우파니샤드의 관심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고, 우파니샤드 철학은 인간의 존재(방식)을 고민하는 철학이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의 가장 큰 주제인 아트만과 브라흐만은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에서 파악해야 할 존재의 본질이다. 그런 까닭에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신들은 다른 종교의 신들과 달리, 인간의 존재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동원된 다양한 은유적 도구에 불과하다.
아그니, 바유, 인드라는 인도 사상이 형성되어 기록으로 전해진 베다 시대의 주요 신들로, 베다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신들이지만, 우파니샤드에서는 단지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등장인물에 불과하다. 베다 시대의 신들 가운데 바수(Vasu, 생명의 신), 루드라(Rudra, 파괴의 신), 아디띠야(Aditya, 태양신의 일종.)도 등장하지만, 역시 전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신뿐 아니라 인도신화에 나오는 신들도 이야기에 끌어들인다. 인도 신화에서 신적 존재로 분류되는 존재에는 브라흐마(Brahma, 창조주), 프라자바티(Prajanapati, 조물주) 피트라가나(Pitragana, 조상신,귀신), 간다르바(Gandharva, 반인반신의 음악 신.)[16] 아크샤(Yaksa, 부의 신인 쿠베라를 보좌하는 신.), 아수라(Asura)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브라흐마는 신화 시대의 대표적인 신으로, 비슈누(Visnu, 유지의 신), 시바(Siva, 파괴의 신)와 함께 우주의 3대 원리를 표현하지만, 우파니샤드에서는 엑스트라처럼 잠깐 나오고 만다. 프라자바티도 이야기 속에 여러 번 등장하지만, 마찬가지로 은유적 도구일 뿐이다.
우파니샤드는 신화에서처럼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만심, 욕심, 이기심과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신을 잠깐 빌려올 뿐이다.
우파니샤드가 설명하려고 하는 근원 존재 브라흐만은 설명할 길이 없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 조물주, 베다의 신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 근원존재를 상상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신들은 어떤 위계도 계보도 없다. 다시 말하면 우파니샤드에서는 신이 그 자체로 살아움직일 수 없는 막대인형에 지나지 않는다.
5. 힌두교, 불교와의 관계
우파니샤드 이전 인도를 지배하던 브라만 교의 베다들은 본래 아리아 인들이 인더스 문명의 건설자인 드라비다 족을 침략하고 군림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제사장인 브라만에 그 종교적 권력과 구원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였다. 따라서 당연히 위에서부터의 교리를 통해 카스트 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사물에 영적인 신이 들어가 있다는 베다의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면서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발전해 왔으며, 특히 사람은 죽은 뒤에도 영혼인 아트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 사상을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세력이 커지게 되며, 이러한 윤회사상은 '자신의 직분에 순종적으로 일해야지만 더 좋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지배자의 지배논리로 사용되면서 더욱 대중적인 사상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아리아 인들이 인도 주변 부족과 전쟁을 거듭하면서 쇠퇴하고, '''생산력과 금권'''을 가진 상인들 즉 바이샤 계층이 성장하면서,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다음 가는 3인자로서의 위치에 불만이 점점 가중되었다. 이들에게 기존의 우파니샤드 교리를 뒤집는 불교 철학과 자이나교의 탄생은 혁명적이었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아트만이 없다'는 안-아트만(무아)를 주장했다. 안-아트만이란, 영원 불멸의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고, 윤회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나 자신의 아트만이 있다고 믿을수록 나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마음의 고통은 심해지기 때문에, 아트만을 애초부터 믿지 않으면 마음의 평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점점 커져 우파니샤드 사상을 삼켰으나, 윤회사상은 이후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후에 근본불교가 변질되어 탄생한 대승 불교에서는, 이러한 아트만의 윤회와 안-아트만의 해탈을 둘 다 긍정하게 되는 모순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