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황후 곽씨

 


'''조위의 황후
文德皇后 | 문덕황후
'''
'''시호'''
문덕황후(文德皇后)
''''''
곽씨(郭氏)
'''출생'''
184년
'''사망'''
235년
'''재위'''
'''조위의 황후'''
222년 ~ 226년
'''조위의 황태후'''
226년 ~ 235년
'''부군'''
문제(文帝)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기타 창작물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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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남편은 조비, 아버지는 남군태수 곽영(郭永), 어머니는 동씨(董氏), 언니는 곽욱. 안평군 광종현 출신. 시호는 문덕황후(文德皇后).
성은 곽씨(郭氏), 이름(名)은 불명, 는 여왕(女王). 흔히 곽여왕(郭女王)으로 불린다.

2. 정사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이 아이는 내 딸 중에서 왕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하여 여왕(女王)이라는 자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어려서 부모를 잃었고, 전란의 와중에 유랑하며 동제후의 집안에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조조가 위공이 되었을 때 눈에 띄어 동궁에 들어와 조비를 시중들게 되었다. 지모와 술수가 있어 조비가 후계자로 선택될 수 있도록 계책을 내어 조비는 이를 종종 받아들였다. 조비가 후계자가 된 이후에도 계책을 내었다.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곽여왕은 부인으로 봉해졌으며, 제위에 오르자 귀빈이 되었다. 문소황후의 죽음으로 인해서 곽여왕은 총애받게 되었다.
222년에 조비가 곽여왕을 황후로 책봉하려 하자 잔잠은 상소를 올려, 본래 첩이었던 여자를 정실로 삼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고 위로부터 화가 일어날까 두렵다며 반대했다. 다음은 상소문의 전문이다.

옛날의 제왕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밖(조정의 신하)의 도움뿐만 아니라 안(궁정)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내조의 문제는 천하가 다스려지고 혼란스러워지는 원인이 되며, 국가의 흥성과 쇠약함도 이로부터 비롯됩니다. 따라서 서릉씨의 딸(서릉루조)은 황제에게 시집갔으며, 영아 등은 순 임금에게 시집가서 모두 현명함으로써 상고시대에 향기로운 명성을 떨쳤습니다. 하나라 걸 임금이 남소 땅으로 도망친 것도 말희가 화를 야기한 것이며, 은나라의 주가 포락의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아래에는 숯불을 지피고 그 위에 죄인을 놓고 태워서 죽게하는 형벌을 세운 것도 달기를 기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선왕과 성철을 그들의 정비를 책립함에 있어서 매우 신중히 해 반드시 이전부터 계속 내려온 귀족의 가문에서 취했고, 그 중에서도 아주 정숙한 여자를 선택해 후궁, 즉 육궁을 통솔하게 하고 경건하게 종묘에 제사를 올리게 했으며, 그 결과 부인의 덕교가 계승되고 바르게 되었습니다. 역경에서, "가정의 도가 바르게 되면 천하가 안정된다."라고 했으니 안으로부터 밖으로 미치는 것은 선왕의 법령이고 제도였습니다. 춘추에서 예를 관장하는 종인, 흔하의 말에, "첩을 정부인으로 삼은 예제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제나라 환공이 규구에서 제후들과 맹약을 결심하면서 또한 말하기를 "첩을 아내로 삼는 경우는 없다." 했습니다. 지금 후궁의 대열에 들어선 첩들은 항상 수레를 타는 제왕의 지위에 근접해 있습니다. 만일 총애 때문에 이런 사람 중에서 황후를 얻는다면 비천한 사람이 갑자기 고귀한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니, 신은 후세에 아랫 사람이 제왕을 능멸해 제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전제가 느슨해지고 법도가 없어져서 화란이 위로부터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조비는 이를 무시하고 곽여왕을 황후로 세웠다. 황후가 되자 곽씨의 일가친척이 모두 관직을 얻었지만 잘못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계속 감시했다. 아마도 예전에 자기 동생이 관가에서 베를 훔치다 걸려 포훈에게 처형당한 것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듯.
224년에 조비가 동쪽에 정벌하러 갔을 때 장마비로 인해 누각이 파손되었을 때도 별 것 아니라면서 거처를 옮기지 않는 담대함을 보여줬고, 225년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을 막는 것을 저지하였다.
조조의 사촌아우이자 개국공신인 조홍에게 사적인 원한이 있던 조비가 조홍을 죽이려들어 조정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무선황후가 곽여왕에게 '조홍이 처형당한다면 내가 직접 황제(조비)에게 다음 날 바로 조칙을 내려 널 황후 자리에서 폐하겠다.'고 압박했다. 곽여왕은 위협을 느끼고 조비에게 매달려서 결국 조비는 조홍을 죽이는 것을 단념했다.
조예가 황제에 즉위하자 곽여왕은 황태후에 책봉되었으며 영안궁에서 거처하였다. 언니 곽욱이 죽었을 때 조예가 후하게 장사지내려던 것을 곽여왕이 검소하게 치르도록 말렸다. 235년에 허창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유언에 따라 수양릉의 서쪽에 묻혔다. 명제기에 의하면 곽여왕은 1월 정사일에 죽었지만 자치통감을 번역한 권중달 교수의 주석을 보면 이해 1월에는 정사일이 아예 없다. 2월에는 정사일이 존재하기 때문에 2월에 죽었다는 다른 기록이 있다면 단순한 오기이겠지만 문덕곽황후전을 봐도 이해 봄에 죽었다고만 기록되었고 2월이라고는 명시되지 않았다. 정황상 정확한 사망시점은 당대에도 몰랐던 듯하다. 당대 사서인 위략이 곽여왕은 갑자기 죽었다고 기록했음을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위략에 따르면 조예가 어머니인 문소황후가 이미 죽어 세상에 없음을 슬퍼하자 곽여왕은 우려하다 갑자기 죽었다. 문소황후가 죽을 때 조예를 이부인에게 맡겼다. 곽여왕이 죽자 이부인은 처음으로 문소황후가 참소에 의한 화를 만났으며, 죽을 때는 대렴(시신을 관에 넣는 절차)도 받지 못하고 풀어 헤친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조예는 슬프고 한스러워 눈물을 흘리며 곽여왕의 장례식을 문소황후의 장례식과 똑같이 치르도록 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조예가 새어머니 곽여왕을 죽였다. 조예는 곽여왕에게 항상 원한을 품고, 자주 울며 생모 견씨가 죽을 때의 상황을 물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곽여왕이 말하길 "선제(조비)께서 친히 죽이셨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책문하느냐? 또한 너는 사람의 자식이 되어, 죽은 부친을 원수로 삼고 추궁하며, 전 모친을 위해 그 뒤의 모친을 능멸하고 죽일 수 있느냐?" 하였다. 조예는 이 말을 듣고 분노하여 곽여왕을 핍박하여 죽이고 그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게 하였고 그 입에 쌀겨를 엄청나게 들이부은 다음 땅에 묻었다고 한다.[1]
정사와 야사의 내용이 충돌하지만 자치통감은 정사의 내용을 뒤집고 곽여왕이 문소황후를 참소했다는 야사의 이야기를 채택했다.
고개지의 계몽주에 기이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떤 사람이 주왕(周王)의 무덤을 열었더니 순장된 여자가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니 숨이 돌아오고, 몇 개월이 지나니 말을 할 수 있었으며 나이는 스무 살 정도였다. 여자는 수도로 보내져 곽태후의 사랑을 받았으며, 곽태후가 죽으니 슬프게 통곡하다가 1년쯤 후에 죽었다고 한다.[2]
수신기에도 비슷한 일화가 전한다. 동한 말년, 관중에 대란이 일어났을 때 어떤 자가 서한의 궁녀 무덤을 팠는데 매장자가 놀랍게도 살아 있어 정상적으로 삶을 회복했다. 위문제의 황후가 그 궁녀를 가여이 여겨 궁으로 들이고 서한시기 궁중에 대한 일을 물어보곤 했는데, 궁녀는 모두 하나하나 상세히 대답해 주었다. 황후가 죽자 궁녀도 너무나 애통해 한 나머지 죽고 말았다고 한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곽영이 딸이 여자 중 왕이라고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왕이라고 불렸다. 그러니까 연의에서는 여왕(女王)이 곽씨의 자(字)가 아니라 그냥 별명일 뿐이다. 조비가 황제가 되자 귀비로서 총애되고 장도와 공모해 문소황후를 죽이고 황후가 되었으나 아이가 없어 조예를 길렀다.
절세미인인 문소황후를 내쫓았다는 설정에 따라 곽씨 역시 엄청난 미인이라고 묘사 된다.

4. 기타 창작물



4.1.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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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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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이름이 11~13탄까지는 를 미표기한 곽씨(郭氏)로, 14탄부터는 자를 반영한 곽여왕(郭女王)으로 나온다.
삼국지 11 콘솔판에서 추가되었다. 능력치는 통솔력 32/무력 6/지력 79/정치력 74/매력 85. 자못 심술궂게 생긴 일러스트지만 보유 특기는 경국#s-3이라서 꽤 좋다. 연의 설정을 반영해서 그런지 문소황후가 혐오무장인데, 어차피 문소황후의 특기도 경국이라 둘이 함께 엮어쓸 일은 전혀 없다. 대신 보유자 중 가장 낮은 매력치가 눈길을 끄는 정도.
삼국지 12에도 등장하며 매력이 없어졌기 때문에 능력은 씁쓸하다. 일러스트 감상용 캐릭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남편 조비에게 간언을 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삼국지 13에서는 통솔 42/무력 4/지력 69/정치 64이다. 병과적성은 C/C/C에 특기는 상업 2/ 위풍 1(조비 인연 효과). 중신특성은 없다. 전수특기는 상업이며 전법은 창속약화. 도토리 키재기지만 전체적으로 견씨만 못하다. 하지만 능력치가 C급 임에도 불구하고 생포했을 때 죽였다가는 배우자인 조비와 원수관계가 되므로 조심하자. 관도대전 시나리오에 경우 어째서인지 이미 조비의 아내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22, 무력 6, 지력 70, 정치 64, 매력 68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배로 깎인 대신 무력이 2, 지력이 1 상승했다. 개성은 재원, 주의는 패도, 정책은 본초학 Lv 2, 진형은 학익, 전법은 혼란, 매성, 친애무장은 조비, 혐오무장은 견씨, 조예다.

4.2. 대군사 사마의


곽조(대군사 사마의) 문서 참조.

4.3. 영걸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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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 곽여왕(郭女王)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2019년 6월 업데이트에서 난세여걸의 패에 추가되었다. 병종은 군주계, 성우는 사문영.

5. 둘러보기



'''조위의 역대 황후'''
황조 건국

'''문덕황후 곽씨'''

명도황후 모씨

[1] 이 방식은 문소황후가 죽을 때 받은 초빈으로 조예는 똑같은 형벌로 원수를 처형한 것이다.[2] 다만 이 이야기는 구라일 가능성이 높다. 주왕 시절과 위나라 시절의 세월의 차이를 고려해보면 20살에 묻혔던 사람이 그 때까지 살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 곽태후가 살던 시기에 누가 몰래 이 여자를 잡아다가 넣어놨는데 다른 사람에게 구출되었거나 하면 또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