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희

 

1. 개요
2. 일화
3. 말희와 달기
4. 대중문화 속의 말희


1. 개요


末喜[1]
중국 전설 속의 미인.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졌으며 하나라의 마지막 제왕, 걸왕의 비(妃)였다.

2. 일화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말희는 산동 유시씨의 딸이었는데, 때마침 걸왕이 그곳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멸망시키자 그 복수로 걸왕을 타락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걸왕한테 주지육림을 시키고 거대한 궁궐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상나라의 탕왕한테 잡혀 걸왕과 함께 추방당해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비록 복수를 위해 일을 벌였다지만 그 때문에 무고한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걸 생각하면 악녀가 맞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애초에 그녀 입장에선 조국을 멸망시킨 적국의 국민들이고, 자신의 일족을 위해 스스로 악역이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판단은 각자의 몫.
일설로는 당초부터 걸은 말희를 요구하였다고 전해진다.

3. 말희와 달기


역사상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하나라 걸왕과 말희의 이야기와 상나라 주왕달기의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동일하다. 이런 이유로 옛날부터 둘 중 하나가 다른 쪽의 모티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어왔다.[2] 하나라가 고증학의 등장 이래 그 존재가 부정되어 가면서, 한때 요녀 달기의 이야기를 말희에게 덮어 씌었다는 설이 중심이 되었다. 근래 은허 유적지에서 대량의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상나라의 존재는 증명해도 하나라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록이 나오지 않았기에, 한쪽이 다른 한쪽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추측의 신빙성은 급격히 올라갔다.[3] 다만 기존에 추측했던 것과는 차이를 보이는 기록들이 나왔는데, 갑골문에서 서경이나 사기 속의 기록과 달리 오히려 주왕대에 왕권이 안정되고[4], 제사를 바로 모시는[5] 모습을 보이면서, 주왕을 깎아 내리기 위해 '''실존하지 않고 전설 속에 전해지는''' 말희의 이야기를 달기에 겹쳤다는 설 또한 힘을 얻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대에 발견된 갑골문이나 홍도문 등을 따르면, 아마 상나라의 지배력 확장에 기존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던 상나라의 제후국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연합하여 주왕 제신을 몰아내고 주나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봉건 왕권 체제를 설립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짧게 말해 주왕 때 왕권이 안정되고 나라 운영에 문제가 없었다면 달기는 나라를 망치는 요녀가 될 수가 없다. 이렇게 보면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그럴 듯한 건국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주왕을 달기라는 요녀의 여색에 빠져 폭군이 되어 나라를 망쳤다고 깎아내린 걸로 볼 수 있다. 전설에 전해지는 요녀 말희의 이야기를 주왕의 애첩(또는 비)인 달기에 덮어씌웠다는 이야기다.
현재 하나라의 실존 가능성 자체가 강하게 의심받고 있기에, 앞으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져야 그녀의 실존 여부와 행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 대중문화 속의 말희


만화봉신연의》에서는 달기와 동일인물이라는 설정. 이때 여와가 탕왕에게 힘을 주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녀의 부하가 된다. 참고로 한국에 처음 단행본으로 출시되었을 때는 '말희(妺喜)'의 '말(妺)' 자를 번역자가 잘못 본 나머지 ''''매희(妹喜)''''로 오역해 버렸다.[6] 이래서 고전소재 만화의 번역은 번역가를 잘 골라야 된다.
게임여신전생》 시리즈에서는 요수 '''체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체페이란 걸비(桀妃)의 중국어 발음을 '''잘못''' 읽은 것이다. 걸비(桀妃)는 한어병음 표기는 Jiéfēi로 표준표기법으로는 "제페이"고 실제 발음은 "찌에페이"에 가깝다.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으로 Chieh-fei라서 잘못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진 여신전생 if…》에서 체페이는 탐욕계의 보스로 등장하는데, 탐욕계에서 얼마나 보물상자를 열었는가에 따라서 강함과 모습이 변동한다.

[1] 이 외에도 이름의 표기가 妺喜, 末嬉, 妺嬉로 다양하다. 물론 이 글자들이 어떻게 나왔을지는 그냥 보면 알 수 있다.[2] 이 외에도 주나라 유왕 때는 포사라는 여인이 나오는데, 디테일은 좀 다르나 경국지색이란 부분은 똑같다. 폭군경국지색은 중국 고대국가 국가 막장 테크의 예시로 여럿 인용된다.[3] 이 갑골문의 내용(갑골문 중에서는 상나라 탕왕 이야기를 기록한 갑골문이 존재한다)에 따르면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세운 시조로 여겨지는 탕왕이 실은 상나라를 새로 중흥시킨 왕이며, 하나라의 언급 또한 나오지 않았다. 이로서 오히려 하나라의 실존에 더욱 의심이 증폭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적 또한 발굴되었지만 이것 또한 중국 역사 왕조에 해당하는 황하 문명과 양쯔강 문명과는 다르다는 결과만 나왔다. 현재 중국사학계에서는 사기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나라를 인정하고 있지만, 중국 이외의 국가의 학자들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한다. 이를 통해본다면 하나라는 실존한다 해도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큰 일개 마을이나 일종의 부족연맹체'''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아졌다.[4] 왕권 내부의 안정으로 외부 정복이 활발했다는 기록이 있다.[5] 주 무왕이 주왕 제신을 토벌하는 원인 중 하나가 하늘에 대한 제사를 게을리 한다는 것이었다.[6] 참고로 말자와 매자의 차이는 계집 녀(女)에 末이 붙었는지 未가 붙었는지 차이(...) 좀 더 알아보기 쉽게 말하자면 '''획 길이''' 차이 뿐이다. 아무 사전지식 없이 보면 착각할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