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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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후기의 척신(戚臣)으로 고종의 외삼촌인 동시에 명성황후의 양오빠가 된다. 본관은 여흥 민씨이다.
2. 생애
1830년 판돈형부사를 지낸 민치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흥선대원군의 아내인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친동생이다. 본래 민치구에게서 태어났지만 11촌 아저씨뻘이자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민치록의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그에 따라 명성황후의 양오빠가 되었다. 고종 입장에서는 외삼촌이 처남이 된 것.
2.1. 관직 생활
고종 1년(1864년)에 중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왕이 된 고종의 휘하 관료로 입문하게 되었고 양누이인 명성황후가 고종의 왕비가 되면서 이조 참의를 지냈고 이후 호조 참판, 형조 판서, 병조 판서를 지냈다.
흥선 대원군과 명성 황후의 갈등 면에서는 민겸호, 민태호 등과 함께 명성 황후의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1874년 흥선 대원군이 실각되었을 때는 명성 황후에게 공로를 인정받아 민씨 족당의 수령이 되었다.
2.2. 민승호 암살 사건
1874년 자택에 있던 중 한 수령이 보낸 선물을 받게 되면서 선물을 개봉하려는 중 폭탄이 터져서 그 자리에서 숨졌다. 동시에 일가족도 모두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때 그의 양어머니 이씨와 아들도 함께 사망했는데, 만약 이 폭살의 배후 조종자가 흥선대원군이 맞다면 흥선대원군은 자기 처남과 사돈을 죽인 셈이 된다.'''"운현궁…"'''
-민승호의 유언.[2]
2.3. 사후
폭사 이후 고종으로부터 충정(忠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