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 반정부 시위

 

1. 개요
2. 시위
2.1. 발단
2.2. 전개
3. 같이 보기


1. 개요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작은 왕국 바레인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 아랍의 봄의 일부이며 강경 진압으로 바레인 정부는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받았다.
바레인의 석유 자원은 미미하지만 미 5함대 사령부가 위치해 있기에 정치적으로 민감하다.

2. 시위


[image]
[image]
시위 군중으로 가득한 진주 회전 교차로
[image]
[image]
시위 직후 소개된 진주 회전 교차로와 2011년 3월 철거 후의 모습

2.1. 발단


시위의 원인은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시아파에 대한 지배층 수니파의 차별이다.
2월 4일에는 이집트의 시위대에 대한 연대 성격의 시위였다. 14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되자 가구마다 1000디나르(약 3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11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별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지급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기에 시위대들은 멈추지 않았다.

2.2. 전개


[image]
'분노의 날' 로 규정된 14일 바레인의 수도인 마나마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정치 개혁과 차별 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최루가스와 고무탄으로 진압을 하였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으며 20대 청년 알리 압둘 하디 무샤이마이(Ali Abdul Hadi Mushaimai)가 숨졌다. 내무장관은 이에 대한 진상조사 지시를 내리고 군대의 책임자가 조의를 표했다. 600~700명의 시위자들은 14일 밤 다른 장소로 옮겨서 저녁까지 시위를 계속했다.
15일 전날 사망한 청년 알리에 대한 장례 행렬 및 반대 시위가 계속되던 중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진압 중 수십 명의 부상자가 나오고 최소한 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천 명의 시위대는 수도 마나마 중심의 룰와 (진주) 교차로 광장을 점유하였다. 하원 내에서 1당의 자리를 차지[1]한 시아파 야당 알 웨파크(Al-Wefaq)는 국회 참여를 중단하고 시위대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였다.
16일, 15일에 사망한 시위자의 장례식이 열렸다. 펄 광장에 모인 시위대의 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17일 현지시간 새벽 3시, 수천 명의 시위대가 자고 있던 펄 광장을 경고 없이 기습적으로 경찰이 습격했다. 경찰은 시위대에게 최루탄, 고무탄환, 곤봉 등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했으며 시위대 축출 직후에 광장 주변에 철조망을 설치하여 출입을 통제했다. 수시간 후에 바레인 국가안보위원회는 계엄령을 선언하고 바레인 전역과 마나마 시내에 군 병력과 탱크와 장갑차가 투입되었다. 특히 바레인 군대와 경찰은 바레인 전역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대한 진압에 들어갔다. 진압 과정에서 군대와 경찰이 실탄 사격을 가했다는 말도 있다. 내무부 대변인은 "시위대에 대화의 기회를 주었지만 시위대는 기회를 모두 잃었다. 광장을 무력으로 비울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최소 5명이 숨지고 230여 명이 다쳤다. 현지에 있는 뉴욕타임즈의 니컬러스 D. 크리스토프가 들은 말에 의하면 24세의 청년이 수갑이 채워진 채로 경찰에게 구타당한 후 처형당했다고 한다. 부상자를 치료하면서 의사임을 밝혔음에도 경찰에게 구타당했고 의식을 잃은 경우도 있다. 부상자를 옮기는 의료진과 취재 중인 기자에게 대놓고 실탄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의 취재진도 군 헬기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경찰은 진압하면서 시아파에 대한 욕설을 내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실탄 사격으로 인해 가득 찬 바레인 병원의 모습.
Salmaniya 병원이 부상자로 가득 찼지만 내무부는 앰뷸런스의 출입을 차단하였다. 인터넷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아파 야당의원 18명은 항의의 표시로 의회에 사퇴서를 냈으며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리비아, 바레인, 예멘의 현 상태에 우려를 표하면서 평화 시위의 폭력 사용을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18일, 바레인 남부 도시인 시트라의 시아파 모스크에서는 수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시위 중 숨진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열렸다. 진압은 이뤄지지 않았다. 수도인 마나마는 헬기와 탱크를 포함한 군대가 요소요소를 점유하고 있는 중이며 수백 명이 참여하여 친정부 시위도 열렸다. 국왕은 충돌을 해결하자는 말을 하면서 모든 정당과의 대화를 제안했다. 현재 시위대의 구호도 정치 개혁을 외치던 것에서 바레인 국왕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의 하야를 요구[2]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일부 노동조합은 20일부터 폭력 진압에 항의하여 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19일, 시아파 야당인 알 웨파크는 하마드 국왕의 대화 제안을 거부했다. 군대가 거리에 있는 상태는 대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게 이유이며 입헌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현재의 내무장관-국방장관을 제외한 새 임시 정부 구성을 요구했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무담당 최고위원 또한 폭력 진압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펄 광장에 오전까지만 해도 진주해있던 군대는 왕세자의 명령으로 떠났다. 경찰의 진압은 미약하게나마 계속되었지만 결국 물러났고 수천 명의 시위대가 펄 광장을 다시 점유하고 있다. 경찰은 물러갔다고. 왕세자가 야권과의 신뢰 회복과 폭력 진압에 대한 미국의 강한 거부감을 감안하여 군경을 물러나게 한 것. 왕세자가 국영 TV에 나와서 지체된 개혁이 혼란상을 빚었다고 밝힌 것을 볼 때 야권과의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20일, 시위대는 진주 광장을 점유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으며 폭력 진압 재발의 가능성은 희박해보이는 상황이다. 국왕과 야당과의 대화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듯.
21일, 만여 명의 시위대가 진주 광장에서 시위를 계속 하고 있다. 이집트의 타흐리흐 광장처럼 유치원과 숙소, 식량 보급 공간 등이 생기면서 장기화 될 조짐이 보인다. 영국에 망명 중인 급진 성향의 시아파 야당 지도자가 22일 귀국하기로 하였다. S&P는 정정 불안을 이유로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렸다. F1 바레인 대회는 취소되었다.
22일, 10만여 명이 넘는 시위가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대가 모여 수상의 사임을 넘어서서 왕정 자체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왕은 수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사우디로 떠났다.
23일, 바레인 정부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정치범 23명을 석방했다.
24일, 시위대는 여전히 거리를 메우고 있다.
25일, 정부는 지난 폭력 진압에서 희생된 시위대에 대한 추도의 날을 선언하였다.
26일, 시아파 재야 지도자인 하산 마샤이마가 귀국하고 시위대 전면에 나서면서 민주화 시위가 격렬해졌다. 그는 펄 광장에서 거짓말만 늘어놓는 국왕을 믿을 수 없으며 지금이 바레인을 민주화할 기회라면서 '왕정을 타파하고 민주 정부를 세우자'고 연설하였다. 일단 민주화 세력은 총리를 선거로 선출하는 등의 입헌군주제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일 국왕은 장관 5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지만 노동장관을 주택장관으로, 석유장관을 에너지장관으로, 외무장관을 보건복지장관으로, 노동차관을 노동장관으로 승진시키는 등 하나마나한 회전문 인사였다. 추가로 주택 융자를 25%를 깎아주는 조치를 취했다.
27일, 바레인에서는 500여명의 시위대가 인간띠로 의회 출입문을 봉쇄하여 회의 속개가 지연되기도 하였다.
3월 14일 바레인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며 걸프 협력 기구(GCC)의 회원국들에게 '''병력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즉각 바레인에 사우디아라비아군을 파병했으며 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도 곧 군대를 파병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시위의 규모가 바레인 정부 단독으로는 막기 어려운 수준이며 사우디걸프 지역 다른 국가들이 시아파의 세력 확산에 그만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17일 총격으로 6명이 사망했으며 바레인 보안군이 병원에 난입해 의료진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편 파티마라는 12살 소녀가 시위 도중 사망했던 아버지를 위해 시위가 일어났던 곳을 방문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시위대들을 진압했던 바레인 왕정들을 비판하기도 했었다.https://www.thenational.ae/world/mena/king-of-bahrain-says-subversive-external-plot-has-been-foiled-1.600506 바레인에서는 이 소녀를 "순교자의 딸"이라 불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SVDVW35B0Vk
27일 바레인 정부가 군대와 경찰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군쿠웨이트군, 아랍에미리트군까지 끌어들인 강경 진압을 펼치자 시위 동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어 야당은 다시 타협안을 제시한 상황이다. 아직 바레인 정부의 응답은 없다.
4월 들어서도 바레인 정부는 이란의 세력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걸프군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시아파 정당에 대한 탄압이나 해산 명령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 자체는 과거에 비하면 약해진 편이라고는 하나 시리아에서 시위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동력을 되찾은 상황이라고 한다.
사실 바레인의 시위는 좁게 보면 정부와 국민들의 다툼이지만 국제적인 시각으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패권 다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바레인이 시아파인 이란과 수니파인 사우디의 경계에 위치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위치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군대 파병과 이란의 비난 성명도 이를 염두에 두고 봐야 한다.
6월 들어 바레인 정부의 계속된 강경 진압으로 바레인의 시위는 해제되었고, 6월 28일 바레인에 주둔한 사우디군과 쿠웨이트군, 아랍에미리트군이 철수하였다.
7월에는 정부와 시위대가 협상을 진행했다. 이후로도 2년째 산발적인 시위와 협상이 반복되었다. 2012년 9월(10월 시위/집회 전면 금지령), 2013년 2월 중순#, 8월#, 10월 중순#의 시위가 대표적이다. 시아파를 주축으로 하는 야권은 수니파 왕정에 대해 선출직 총리제를 요구했다.
2014년, 2015년, 2016년은 물론 그 이후 현재까지도 매년 2월에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사우디군까지 투입되었던 2011년에 비하면 지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반정부시위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2019년 7월에는 시아파 시위자 2명을 사형집행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시위가 잠깐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3. 같이 보기


[1] 총 40석 중 18석. 상원 40명을 국왕이 지명하기 때문에 1당이라고 해서 여당이 아니다.[2] 'Down Down Hamad!'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