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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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 북유럽을 중심으로 바이킹들이 널리 사용하던 약 60~80cm정도의 길이에 1.2~1.5kg 정도의 한손용 도검이다. 찌르기보다는 베기를 주로 사용할수있게 검신의 폭이 넓고 경량화를 위해 칼날에는 풀러가 파여있다. 테이퍼 경사가 (칼 끝 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없어 양 날은 거의 수평에 가깝다.
바이킹 소드는 로마 후기 민족이동시기(서기 4~8세기) 또는 게르만 철기시대의 게르만 도검류들로부터 제련, 제작 기법이나 형태적으로 얼마간 영향을 받긴 했으나[1] , 더 직접적으로는 로마의 도검인 스파타의 직계후손이라 보기도 한다.
이 검들은 제작할 무렵에는 철강의 탄소를 세세하게 조절하기 힘든 점을 보완하고자 고탄소강과 저탄소강, 두 종류 쇠봉을 마치 꽈배기 감듯 달궈 꼬아서 이를 두들겨 단조하고 담금질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접쇠 기법으로 구조강도를 높였다. 이런 식으로 주조한 도검은 검신에 물결 무늬가 드러나고 각 철강의 장단점들이 서로 보완되어 강도면에서 월등하다. 이런 접쇠기법은 바이킹 소드의 기술적, 형태적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로마의 글라디우스를 만들 때부터 사용된 방법이다.[2] 그 때문에 검 표면에 있는 모양이 마치 뱀의 몸이 뒤틀린 듯한 문양이 나타나는데, 뵐숭 사가와 같은 초기 게르만 전설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검을 묘사할 때 ''' 뱀이 똬리를 튼 듯한 무늬가 있다'''는 묘사로 표현한다. 이 방식은 중세로 이어져 패턴 웰디드 공법이 되었다.
바이킹 소드는 거친 바이킹들이 만든 조잡한 도검이라는 인식이 있긴 하지만, 실제 발견된 유물중에는 뛰어난 탄성과 강도를 지니고 있는 것들도 있는데, 이는 당시 바이킹의 주요 교역로중 하나였던 볼가 강 루트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이란등의 지역에서 순도 높은 철광석을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
실존 유물 중 일명 'Ulfberht'[3] 라 불리는 바이킹 소드들의 경우에는 서기 800, 1000년경에 제작되었음에도 현대의 고탄소강에 필적하는 높은 탄소 함유량과 철의 순도도 높았던 당시로서는 오버테크놀러지에 가까운 무기였는데, 탄성도 높으면서 충격을 받아도 날이 부러지거나 휘는 일도 적었고, 테이퍼가 파인 디자인 덕분에 가벼우면서 충격에도 강력했다. 이 'Ulfberht'에 사용된 순도 높은 철은 노에서 1700도 이상으로 철을 가열하여 불순물을 없애야 하는데, 유럽에서는 산업혁명 시기인 1700년대 중반 이후에 들어서야 보편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Ulfberht' 는 칼날에 'VLFBERHT' 라는 문구가 각인되어 있는데, +VLFBERHT+ 와 +VLFBERH+T 로 2종류 각인이 출토된다고 한다. +VLFBERH+T 가 탄소 함량이 높은 철로 만들어진 진품이고, 나머지는 복제품 으로 보고 있다. 유튜브에서 "Secrets of the Viking Sword" 라고 검색하면 'Ulfberht'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이후 바이킹 소드는 주 사용자들이던 노르드(바이킹)인들이 노르만족이란 이름으로 유럽의 각 지역에 정착하고 동화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폼멜은 원반 형태로 변화하고, 크로스 가드는 방어용으로 길어지고, 칼 끝을 제외하면 풀러가 수평을 이루던 칼날도 풀러가 짧아지고 테이퍼가 길어지며 칼끝이 뾰족하게 바뀌었고, 11세기에 들어서는 흔히 '중세 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아밍 소드로 변화하게 된다. 때문에 중세 초, 중기의 도검들을 보면 바이킹 소드의 흔적을 조금씩 확인할 수 있다.
바이킹들이 오늘날의 러시아 지역에 정착하며 세워진 노브고로드 공국, 키예프 공국등의 루스 공국들에서도 유물로서 바이킹 소드와 유사한 형식의 도검들이 발굴되는데, 차이점이라면 아밍 소드의 형태로 변화해간 서유럽의 바이킹 소드들과 달리 루스 공국 지역의 검들은 대략 중세 말인 1300~1400년대까지 그 형태를 유지했다는 점이다.